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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미래

순환자원 ‘채굴’하는 도시 광산

2022-01-20

우리가 사는 도시에도 ‘광산’이 숨어있다는 사실 아시나요?

우리나라에서 매년 발생하는 폐가전제품은 수십만톤. 폐가전은 재활용할 수 있는 철과 비철, 희소금속까지 모두 품고 있는 고부가가치 광산입니다. 순환자원의 보고이자, 경제성까지 아우르는 도시광산은 천연광산 만큼이나 중요한 첨단 산업입니다.

폐가전 및 IT기기 등을 파쇄해 추출한 동(구리) 과립. 이러한 물리적인 선별 과정과 정련 과정을 거쳐 고순도 산업 소재로 거듭난다.

도시광산에서 채굴한 도쿄올림픽의 금메달

지난해 여름 일본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1년 지연된 2020 도쿄올림픽과 패럴림픽이 열렸습니다. 드높은 의지와 오랜 훈련을 바탕으로 가장 우수한 기록을 낸 선수들은 저마다 영광의 메달을 받았는데요. 도쿄올림픽 · 패럴림픽 기간 중 선수들에게 수여된 메달은 총 2729개로 금메달 871개, 은메달 873개, 동메달 985개에 달합니다. 메달의 무게는 금 · 은 · 동 각각 556g, 550g, 450g이고요.

올림픽마다 메달의 무게와 크기는 조금씩 다르며, IOC 규정상 은메달과 동메달은 각각 은과 동이 주재료지만 금메달만큼은 순금이 아니라 은제 메달에 6g 이상의 금을 도금해도 됩니다. 따라서 도쿄올림픽 · 패럴림픽에서 수여된 메달에 사용된 금 · 은 · 동의 총 무게는 5kg · 959kg · 443kg 남짓입니다. 제조 과정에서의 손실분과 수여되지 않은 여분의 메달도 만들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소요량은 훨씬 더 많았겠죠.

2020 도쿄올림픽과 패럴림픽의 메달은 전량 도시 광산에서 ‘채굴’한 금 · 은 · 동으로 제작됐다.

놀랍게도 이 메달은 모두 수명을 다하거나 버려진 전자제품에서 회수한 금속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친환경 올림픽을 내세운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2016년부터 가능성을 타진한 끝에 재활용 자원으로 메달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이듬해 전 국민을 상대로 ‘2020 메달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전자제품 기부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2019년까지 휴대폰 621만 대를 비롯한 폐(廢)전자제품 7만8985톤을 수거했고, 5000개 이상의 메달을 만들 수 있는 금 · 은 · 동을 추출했습니다.

 

도시광산: 폐가전에서 유용한 금속 회수

도쿄올림픽 · 패럴림픽의 메달은 자원 재활용 중에서도 ‘도시 광산(Urban Mine)’의 개념에 가장 부합하는 사례입니다.

도시 광산은 금속이 제품 또는 폐기물의 형태로 거주지 주변에 넓게 분포되어 양적으로 광산의 규모에 달하는 상태 또는 그러한 폐기물에서 유용한 자원을 추출하는 산업을 말합니다. 도시 광산의 대상물은 산업 전반에서 발생할 수 있죠. 전부 또는 일부에 금속을 사용해 제조하는 모든 제품, 즉 수명을 다하거나 폐기된 전기 · 전자제품과 배터리 등이 될 수 있습니다.

 

재활용을 기다리는 컴퓨터 기판. 오늘날 대부분의 가전제품에도 PCB(회로기판)가 들어 있다.

 

도시 광산은 1980년대 후반 일본 도호쿠대학 선광제련연구소의 난조 미치오(南條道夫) 교수가 주창한 것인데요. 순환자원 중에서도 특히 ‘희소금속’을 얻을 수 있다는 매력이 크고, 또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 지역에서 효과적으로 운영이 가능하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도시 광산의 가치는 크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경제성입니다. 광산에서 채굴하는 원광(천연 광석)은 금속의 함유량이 낮아 정련 과정을 거쳐 순도를 높이는 작업을 합니다. 하지만, 개별 가전에는 비록 미량이 사용된다고 해도 이미 순도가 높은 금속이 포함됩니다. 때문에, 폐전자제품에서는 무게 대비 더 많은 양의 광물을 회수할 수 있죠. 대표적인 귀금속인 ‘금’을 예로 들면, 통상 금광석 1톤에서 금 5g을 추출하는 데, 비해 같은 1톤의 무게라면 폐가전에서는 20g, 폐PC에서는 53g, 폐휴대폰에서는 무려 400g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사례는 물론 대략적인 예시이고, 실제 제품과 기중에 따라 실제 함유량과 추출량이 달라집니다.)

둘째, 희소금속 재활용입니다. 도시 광산은 천연 광석 대비 함유량이 높다는 점 외에도 ‘희소금속‘의 재활용에 대한 가치가 큽니다. 코발트 · 탄탈룸 · 팔라듐 · 인듐 등 점점 더 발달하는 IT산업에서 널리 사용되며 중요성 또한 커지고 있는 희소금속은 소수 국가에 편재돼 있어 수요-공급 시장 모델에 더해, 심지어 정치적인 맥락도 작용합니다. 따라서 도시 광산 개발은 희소금속의 안정적인 공급에 커다란 보탬이 됩니다.

셋째, 친환경입니다. 폐전자제품에서 유용한 금속을 회수하는 도시 광산은 그 자체로 환경오염을 줄이는 활동입니다. 인류가 토해내는 쓰레기의 상당수는 전기 · 전자제품이 차지하며, 노출된 지상에 버려지거나 지하에 매립된 이들 쓰레기는 오랜 시간에 걸쳐 오염을 발생시킵니다. 도시 광산은 폐기된 전자제품을 수거하는 것이 최초의 과정인 만큼 자연스럽게 환경오염을 개선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급성장 예고된 자원 순환 산업

도시 광산은 크게 보면 자원 재활용에 속하지만, 폐기 제품에서 금속 부품을 분리해 선별하는 수준에 그치는 기존의 재활용 산업을 넘어 금속 물질을 정련하는 과정까지 포함하는 더 넓은 개념입니다. 따라서 도시 광산은 폐기제품 수거에서부터 산업 원재료로 즉각 사용할 수 있도록 가공하기까지의 완전한 자원 순환 시스템을 말한다고 할 수 있죠. 현재 전 세계 각국은 자원 경제, 희소금속 안정 공급, 친환경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도시 광산 산업을 육성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올림픽 메달 제조 사례는 일본이 친환경은 물론 실용적인 도시 광산 프로세스를 운영하고 있다는 성과 보고나 다름 없습니다. 일본의 도시 광산 대표 기업인 도와홀딩스는 산하의 자회사들을 통해 원료 수집에서부터 해체 · 선별, 제 · 정련, 금속 가공과 소재 생산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수직계열화하는 데 성공했는데요. 이 회사는 게르마늄 · 루테늄 · 갈륨 · 셀레늄을 포함해 모두 22개 금속 회수 기술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폐전기 · 전자제품 쓰레기 처리 지침(WEEE Directive)을 운용하기 시작한 유럽연합에서 가장 큰 도시 광산 기업은 벨기에의 유미코어입니다. 세계 최대의 재활용 플랜트를 보유하고 있으며 매출의 30% 정도를 도시 광산에서 만듭니다. 유미코어는 독자적인 회수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데, 폐휴대폰의 경우 60% 정도만 분해한 다음 용융 · 정제해 여러 가지 희소금속까지 분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배터리 수요가 커진 만큼 폐배터리 재활용도 전 세계적 관심사다. 지난해 뉴욕 증시에 상장한 캐나다 라이-사이클의 작업 공정. (출처: li-cycle.com)

최근 북미에서 가장 이름을 날리고 있는 도시 광산 기업은 캐나다의 라이-사이클(Li-cycle)입니다. 라이-사이클은 폐배터리를 전문적으로 재활용하는 회사로, 지난해 8월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인 페리닷과 합병을 통해 뉴욕증권거래소에도 상장했습니다. 아직은 적자 상태지만 금속과 희소금속, 비금속을 추출하는 친환경 재활용 기술력이 인정받은 데다가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의 성장에 대한 기대 덕분에 이 회사의 상장 소식은 산업 · 경제계 전반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었습니다. 최근 국내 배터리 전문기업인 LG에너지솔루션과 LG화학도 최근 라이사이클에 지분을 투자하고 장기적인 공급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오는 2023년부터 10년에 걸쳐 배터리의 주요 원재료 중 하나인 니켈 2만톤을 공급받기로 했습니다.

 

국내 도시 광산 개발, 모두의 관심이 필요한 때

우리나라도 재활용 산업이 양적으로 팽창하고 있으며 고부가가치 도시 광산을 육성하기 위한 공감대가 형성된 상황입니다. 현재로서는 수거를 제외하면 크게 두 단계로 산업군이 구성돼 있는데요. 먼저 폐전자제품을 물리적으로 분리하는 선별 업체가 있습니다. 에스피네이처와 같이 폐가전제품을 해체 · 파쇄해 소재별로 선별 출하하는 자원 재활용 업체가 대표적이고, 서울시의 SR센터처럼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재활용 사업을 운영(에코시티서울에 위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음 단계로는 철과 비철, 플라스틱 등 품목별로 분류한 재활용 원료를 매입해 제 · 정련하여 금 · 은 · 코발트 · 팔라듐과 같은 고순도 원료로 가공하는 GRM, 성일하이텍 등의 업체가 있습니다.

다만 우리나라는 아직 도시 광산에 대한 개별법이 존재하지 않고 여러 가지 관계 법령이 혼재하며 관련 업무를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분담하는 등 제도적으로는 미흡한 면이 있습니다. 한국표준산업분류에도 도시 광산 산업이라는 별도 분류가 존재하지 않고 ‘수집 및 운반’ ‘해체 · 분리 · 정제련’ 등 분류 코드가 달라 현황 파악과 업종별 정책 지원이 어렵다는 지적도 존재합니다. 이에 따라 국회입법조사처는 ‘도시광산 산업 현황과 향후 과제’ 보고서를 통해 “관련 통계 및 분류 체계를 재정비하고 생태계 조성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습니다.

도시 광산은 전 세계적으로 당면한 이슈인 친환경 의제에 맥락을 같이하는 동시에 금속 자원의 가채연수(현재 확인된 매장량을 연간 생산량으로 나눈 값) 감소에 대응하는 가장 효과적인 산업 전략입니다. 어쩌면 인류 문명의 지속적인 발달을 지탱할 주요한 바탕 기술 중 하나가 도시 광산일 수 있는 것이죠. 완전한 자원 순환을 달성하기 위해 생산만큼이나 중요한 과정은 바로 회수와 재활용인 만큼, 도시 광산에 대한 관심이 필요할 때입니다.

 

<자료출처>
한국환경정책학회 <환경정책> 제27권 제4호
국회입법조사처 <이슈와 논점> 1754호
서울정책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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