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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표셀렉트

방구석 1호차 1열에서 떠나는 인생 기차 여행

2022-04-12

자신이 마법사라는 사실을 알고 호그와트로 향하는 해리 포터. 기계 인간이 되기 위해 여정을 떠나는 철이. 낯선 여자가 남긴 15분 후 출발하는 티켓을 들고 즉흥적으로 리스본으로 향한 그레고리우스. 이들의 공통점을 눈치채셨나요? 미지의 세계를 향해 떠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바로 그들이 열차에 몸을 실으며 시작되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전거, 자동차, 버스 등 육지를 달리는 다른 교통수단도 우리를 원하는 목적지까지 데려다줍니다. 그 중에서도 열차가 여행과 모험 서사의 시작이자 수단으로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열차가 지닌 특수성 때문일 겁니다.

다른 교통수단들은 열차보다 비교적 우리 삶 속에 더 가까이 존재합니다. 더 많이 이용하기에 그저 또 다른 일상의 연장선처럼 느껴질 수 있죠. 그런데 도시와 도시, 지역과 지역, 비교적 먼 거리를 잇는 열차는 여러 면에서 특별합니다. 우선 플랫폼과 선로가 모두 있는 곳, ‘기차역’이라는 특수한 지정된 장소로 가야 탑승할 수 있습니다. 이때 여행, 출장 등 보통 특별한 이유가 있어 열차를 타러 가죠.

출발한 열차는 선로를 따라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풍경으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창밖으로 넓은 들판과 우뚝 솟은 산이 펼쳐지고, 집들이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작은 마을, 그 마을과 마을을 잇는 도로와 그곳을 달리는 자동차와 버스가 보입니다. 내가 속한 것이 아닌, 한발 물러나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는 풍경이 펼쳐지죠. 바로 이 지점에서 열차와 철학이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의 저자 에릭 와이너는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철학과 기차는 잘 어울린다. 기차 안에서 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버스에서는 생각할 수 없다. 아주 조금도 불가능하다. 느껴지는 감각이 다르기 때문이거나, 어쩌면 연상 작용 때문일 수도 있겠다. 버스는 어린 시절에 갔던 수학여행이나 캠프처럼 내가 가기 싫었던 장소를 떠올리게 한다. 기차는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나를 데려다 준다. 그것도 생각의 속도로.

철학은 어떤 존재, 개념, 현상에 질문하고 생각하고 또다시 질문을 던지며 인간, 삶, 세계의 본질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그러나 보통의 우리에게 일상의 무게를 오롯이 지며 무언가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질문하며 답을 찾기란 쉽지 않죠. 아마 에릭 와이너에게도 마찬가지였기에, 그는 이 책을 쓰는 기차에서 쓰기로 마음먹었는지도 모릅니다. 그에게도 기차는 일상에서, 늘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에서 한걸음 물러나 새롭게 생각하고, 낯설게 보고 새로운 시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이겠죠.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에서 에릭 와이너는 루소, 쇼펜하우어, 간디 등 역사상 가장 위대한 14명의 철학자들을 골라 삶의 지혜를 전합니다. 그의 이야기가 특별한 건 ‘변증법’, ‘스토아학파’처럼 어렵고 딱딱한 이론으로 철학자와 그의 철학에 접근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철학자들의 다양한 일화를 통해 우리에게 그들의 지혜를 전하는데요. 그중 가장 공감됐던 이야기를 하나 소개하려 합니다.

 

《명상록》에는 “침대에서 나오기가 힘들면……”이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글이 많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많은 부분이 중요한 침대 문제를 다룬 비밀 논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침대에서 나오는 방법뿐만 아니라 굳이 왜 그래야 하는가를 다룬 논문…(중략) 마르쿠스는 상반된 두 견해 사이를 오가며 홀로 토론을 벌인다.

“내가 세상에 나온 목적, 내가 태어난 이유를 실행하려 하는데 왜 불평을 해야 한단 말인가?”
“아니면 이게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인가? 이불 안에서 따뜻하게 몸을 웅크리는 게?”
“하지만 이 안에 있는 게 좋은데……”
“그럼 너는 ‘좋은 기분’을 느끼려고 태어난 것인가? 여러 가지 일들을 실행하고 경험하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위의 인용된 글의 주인공은 철학자이자 로마의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입니다. 위험한 이불 밖으로 나오기 싫어한 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뿐 아니라 몇 천 년 전의 사람도 같았던 모양입니다.

기차가 중간 중간 여러 정차역을 거치는 것처럼,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도 여러 철학자의 역에 정차합니다. 그가 안내하는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에 몸을 실으면, 멀게만 느껴졌던 철학이 조금은 더 가깝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나 열차가 언제나 사색의 공간이자 특별한 모험의 시작으로만 남아있지는 않습니다. 철도 발전을 위해 밤낮없이 노력하는 삼표그룹의 일원들처럼 누군가에게는 열차가 삶과 같을 겁니다. 앞의 작품이 우리가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철학과 기차의 공통점에 비롯하여 다양한 일화를 통해 지혜를 전해준다면, 다음 소개할 요시다 슈이치의 장편소설 《타이베이의 연인》은 열차와 선로가 인생 그 자체를 의미하는 작품입니다.

주인공 다다 하루카는 오이물산 타이완 신칸센 사업부에서 근무하는 직원으로, 일본의 신칸센 수출이 결정된 후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타이완에서 파견 근무 중입니다. 그녀는 타이완 여행에서 우연히 한 사람을 만나게 된 계기로 타이완이라는 나라에 더 마음이 가게 되었고, 결국 파견 근무까지 오게 되죠.

이미지: Klook

이 소설 전체를 아우르는 배경은 타이완 고속철도 프로젝트입니다. 타이베이부터 가오슝까지 타이완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이 철도는 일본이 최초로 수출한 신칸센이죠. 소설이지만 착공 당시 있었던 일들을 굉장히 현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소설 주인공이 아니라 실제 존재하며 업계에 종사하는 누군가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합니다.

 

“예의 그 분기기 설명이죠?”
“18번만으로 충분하다는 일본 쪽의 근거를 다시 설명하라는 거야”
“어쩔 수 없죠, 뭐. 타이완에 신칸센이 들어오긴 하지만 시스템의 절반은 프랑스 독일 팀이 맡았으니까. 뭐든 서로 납득할 때까지 대화하자는 게 전제 조건이었잖아요.” 현재 타이완의 신칸센은 일본 신칸센과 프랑스 독일 고속철도의 합작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철도 위를 달리는 열차는 틀림없는 일본의 신칸센 700계이지만, 철도 부설 공사나 시스템은 프랑스 독일 연합팀이 개발하게 된 것이다.

“시속 200킬로미터;”
스피커에서 또다시 무라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루카는 디지털 패널로 또다시 눈을 돌렸다. 210, 220, 230. 속도가 점점 더 올라갔다. 지금까지 시운전에서는 이쯤에서 속도가 떨어진 경우가 많았다. 하루카는 양손을 모은 채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발밑에서 느껴지는 기분 좋은 진동만이 온몸을 지배했다. ‘달려! 달려! 달려!’라고 하루카가 마음속으로 외쳤다. 마치 자기 몸이 타이완 남부의 아름다운 풍경 속을 달려가는 기분이었다.

 

사실 이 소설의 원제는 ‘길(路)’인데요. 고속철도라는 하나의 새로운 길이 완성되어가는 동안 어떤 과정을 거치고, 어떠한 수많은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실감 나게 그리고 있습니다. 기술적인 문제, 시운전 연기 등 선로를 착공하며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 일본에서 배로 들어온 고속철도를 구경하러 모여든 타이완 사람들, 열차를 점검할 수 있는 정비 공장이 세워지고 그곳에 새롭게 취직하여 교육을 받는 정비공 등 여러 사연이 다채롭게 등장하죠. 철도와 관련된 일을 하는 독자는 익숙한 풍경에 공감을, 보통의 독자는 하나의 선로가 완성되는데 얼마나 많은 이들의 인생이 엮이고 보이지 않는 노력이 필요한지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타이완 고속 열차의 수주부터 개통까지의 이야기를 근간으로 흘러가지만 그렇다고 철도 이야기만 등장하는 건 아닙니다. 타이완에서 태어나고 자라다 전쟁이 끝나고 일본으로 귀국한 노인, 업무를 풀어가는 두 나라의 방식 차이 때문에 고생하는 직원 등 타이완과 일본의 관계, 역사, 문화 차이 등을 폭넓게 아우르고 있죠. 또한 타이완에 대한 작가의 애정도 느낄 수 있는데요. 주인공들의 시선을 통해 묘사되는 타이완은 마치 글자가 살아나 눈앞에 펼쳐지는 듯 생생한 풍경으로 다가옵니다.

 

타이베이라는 도시는 밤이 되면 거리의 냄새가 바뀐다. 스쿠터나 자동차의 소음이 줄어든 만큼 가로수들이 활기를 띠는지, 도시 전체가 숲으로 둘러싸인 것처럼 변한다. 실제로 런아이루나 둔화베이루 같은 큰 거리는 도로에 가로수를 심은 게 아니라 가로수 속에 도로를 만든 것처럼 보일 만큼 나무가 많아서, 밤이 되면 도시의 네온 불빛에 반사된 환상적인 남국의 숲이 떠오른다.

노란색 택시가 잇달아 달리고 그 틈새를 가로지르듯 스쿠터가 빠져나갔다. 도로 맞은 편 골목에서는 죽을 파는 포장마차에서 김이 솟아올랐다. 소음과 향신료 냄새와 눈부신 아침 햇살 속에서 하루카가 더없이 좋아하는 타이완의 아침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처럼 다양한 의미로 우리 삶 속에 스며든 열차와 철도. 계속되는 코로나로 이전보다 자유로운 여행이 어려워진 지금, 방구석 1호차 1열에 탑승해 인생 기차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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