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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이 뚫려 있어도 건물은 왜 무너지지 않을까 – 현대 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

2022-02-15

프랑스 파리에서 동쪽으로 약 13km 정도 떨어진 도시 르랑시(Le Raincy)에는 독특한 외관의 성당이 하나 있습니다. 세월의 흔적으로 인해 거뭇거뭇해진 갈색 혹은 회색을 띠는 유명한 유럽 도시의 여느 고딕 성당들과는 달리 이곳 르랑시 성당(Church of Notre Dame du Raincy)의 차가운 회색 벽의 조금은 더 현대적인 모습입니다.

사진: Jacques Mossot (structurae.net)

근 콘크리트의 아버지, 오귀스트 페레

1923년에 세워진 이 현대적인 모양의 성당은 철근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성당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군인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는 르랑시 성당은 근대 철근콘크리트 건축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오귀스트 페레(Auguste Perret)가 설계한 건물입니다. 오귀스트 페레는 철근콘크리트를 근대 건축물에 본격적으로 도입했다고 알려진 건축가이죠.

오귀스트 페레 (사진: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강화콘크리트라고도 불리는 철근콘크리트(reinforced concrete)가 사용된 역사는 사실 200년도 넘지 않습니다. 시초는 19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프랑스의 한 정원사 조제프 모니에(Joseph Monier)는 점토로 만든 도자기 화분이 자꾸 깨지는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콘크리트를 사용해 화분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갈라지는 현상은 여전히 발생했죠. 이때 그는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립니다. 콘크리트 안에 철망을 삽입해 뼈대를 만드는 겁니다. 이렇게 철근콘크리트의 시대는 프랑스의 한 정원사의 손에서 시작됩니다.

모니에는 이후 철근콘크리트를 이용해 만든 화분이나 수조, 교량 등 여러 제품의 특허를 냈지만, 잠재력으로 가득한 이 재료를 건축에도 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아직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19세기 후반, 여러 건축가에 의해 연구되던 철근콘크리트는 20세기 초반이 되어서야 오귀스트 페레의 손에 의해 건축 양식에서도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오귀스트 페레는 파리의 프랭클린가 25번지에 있는 최초의 철근콘크리트 아파트, 샹젤리제 극장, 르랑시 성당 등을 지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폭격으로 인해 파괴되었던 도시 르아브르(Le Havre) 재건에 힘썼습니다.

페레에 의해 “재건된 르아브르 시는 통일적인 방법론과 조립법의 사용, 모듈 단위 시설망의 체계적인 사용, 콘크리트의 활용 등에서 전후 도시 계획과 건축의 대표적인 사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프랭클린가 25번지 아파트 (사진: Wikimedia Commons, CC BY 2.0)

샹젤리제 극장 (사진: Wikimedia Commons, CC BY 3.0)

그러던 1907년의 어느 날, 오귀스트 페레의 건축 사무소에 인턴이 한 명 들어 옵니다. 이는 훗날 20세기 건축사를 이끄는 인물 중 하나가 됩니다. 바로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입니다.

현대 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

현대 건축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코르뷔지에는 기존의 적조식 건축법에서 철근콘크리트를 활용하는 현대적 건축으로 양식을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우리가 지금 떠올리는 아파트라는 건물 형태를 가장 먼저 확립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코르뷔지에의 본명은 샤를 에두아르 잔레그리(Charles-Édouard Jeanneret-Gris). 1920년 가명으로 기사를 쓰기 시작하면서 ‘르 코르뷔지에’라는 가명을 쓰기 시작했죠. 스위스에서 태어나 시계를 만들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시계와 공예를 배우던 그는 학교 선생님의 추천으로 건축에 입문합니다. 젊은 시절 유럽 이곳저곳을 여행하던 그는 1907년 오귀스트 페레의 건축 사무소에 인턴으로 취업했고, 당시 페레에게 배운 철근콘크리트 활용법은 이후 그의 건축 양식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의사에게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있다면 현대 건축가에게는 코르뷔지에의 근대 건축 5원칙이 있습니다.

필로티 – 흔히 볼 수 있는 빌라의 1층을 생각하면 됩니다. 2층부터 주거 공간이 시작되며 1층에는 기둥만 있어 주차장으로 활용하는 형태가 대다수이죠. 요는, 필로티로 건물을 지상에서 들어 올려 정원을 확대해 아래 공간까지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옥상 정원 – 과거에는 빗물을 흘려보내기 위해 옥상에 경사를 두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철근콘크리트를 사용하면서 건물의 강도는 높이면서 방수도 가능해져, 활용도가 높아진 옥상을 정원과 같은 형태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유로운 파사드(입면) – 과거에는 벽이 건물 전체를 지탱했습니다. 벽이 무너지면 상부의 무게를 지지할 수 없으므로 건물도 무너졌죠. 하지만 철근콘크리트로 만든 기둥으로 건물을 지지할 수 있게 되면서 모든 벽을 막을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덕분이 입면 디자인이 자유로워졌죠.

자유로운 평면 – 비슷한 맥락에서 철근콘크리트 덕분에 건물 내부 평면을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게 되었고 더불어 미적 요소를 더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로로 긴 창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벽이 건물을 지탱하던 과거에는 창을 세로로 길게 내야 했습니다. 가로로 길게 내면 벽의 지지력이 약해져 무너졌을 테니까요. 하지만 벽을 뚫을 수 있게 되면서 창문도 가로로 길게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코르뷔지에의 근대 건축 5원칙을 모두 반영해 처음 세운 건물이 바로 빌라 사보아(Villa Savoye)입니다.

(사진: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프랑스 문화유산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된 빌라 사보아는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건물 중 가장 유명하고 많은 사랑을 받는 건물 중 하나입니다. 파리 외곽의 푸아시(Poissy)에 있는 빌라 사보아는 필로티 구조로 1층은 주차장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옥상에는 외부에 노출된 테라스가 있습니다. 이 외에도 자유로운 입면/평면, 가로로 긴 창까지 다섯 가지 요소가 모두 집약되어 있습니다.

사진: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또한 빌라 사보아에는 코르뷔지에의 도미노(Dom-Ino) 하우스 설계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라틴어의 집(Domus)와 혁신(Innovation)의 합성어입니다. 최소한의 철근콘크리트 기둥이 모서리에서 상부를 지탱하고 평면 한쪽에 계단을 만드는 아래 그림과 같은 개방적인 설계를 의미하는 도미노 구조는 지금이야 새로울 것 없이 익숙한 형태이지만, 이 이론이 등장한 당시에는 굉장히 혁신적이 구조였습니다.

도미노 하우스 설계도 © FLC/ADAGP

코르뷔지에는 20세기 중반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아파트 형태를 창시하며 새로운 주거 형태를 선보인 선구자이기도 합니다. 프랑스 마르세유에 있는 유니테 다비타시옹(Unité d’Habitation)이라는 아래의 건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세워진 건물입니다. 전쟁으로 인해 도심은 폐허가 되고 주거지가 파괴되어 주택난이 심각해지면서 프랑스 정부는 주택공급에 힘을 쏟았고 그 과정에서 코르뷔지에의 건축 철학이 반영되어 나온 것이 바로 유니테 다비타시옹입니다. 총 337세대가 거주할 수 있는 이 건물은 물론 철근콘크리트로 만들어졌으며, 옥상에 있는 테라스에는 운동, 일광욕 등을 즐길 수 있는 오픈 공간이 있습니다.

마르세유에 있는 유니테 다비타시옹 © FLC/ADAGP

유니테 다비타시옹은 코르뷔지에가 세운 모듈러 이론(modulor)이 적용된 초기 건물이기도 합니다. 모듈러 이론은 코르뷔지에가 건축에 조화와 비례를 적용하기 위해 정립한 이론입니다. 가령 집 안에서 팔과 다리를 뻗어 춤을 추든 스트레칭을 하든 가장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수치, 즉 인간의 신체 사이즈와 건축물 사이의 황금비율을 정해 이를 기반으로 건축물을 만든 겁니다. 오늘날 아파트의 기본 천고가 2.3m인 것도 코르뷔지에의 모듈러 이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당시 그가 기준으로 삼았던 183cm 키의 성인이 손을 들었을 때 손끝 높이가 226cm였기 때문이죠. 모듈러 이론을 더 자세하게 알아보고 싶다면 그의 저서 <모듈러>에도 상세히 나와 있으니 참고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코르뷔지에가 고안한 모듈러 이론 © FLC/ADAGP

이 외에도 코르뷔지에의 건물은 독일의 바이센호프 공동주택, 인도 찬디가르 국회의사당, 일본의 도쿄 국립서양박물관 등 세계 곳곳에 퍼져 있습니다. 그리고 2016년, 세 건축물을 포함한 17개의 건물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죠. 그중에서도 프랑스에 있는 롱샹 성당(Chapelle Notre-Dame-du-Haut)은 직선을 강조해왔던 과거 건축물과는 달리 마치 가우디의 그것처럼 자연적인 곡선 요소를 넣은 것이 눈에 띕니다.

롱샹성당 (사진: Foundation Le Corbusier)

 

미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죠. 가우디처럼 자연적인 요소와 곡선을 더 중시했던 사람이 있는 반면 코르뷔지에처럼 논리와 합리성, 직선을 미의 기준으로 삼았던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미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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