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 우리는 전례 없는 이상기후로 폭염과 폭우가 반복되는 현상을 겪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역대급 폭우에 철도 운행이 멈추고, 곳곳에서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났고 펄펄 끓는 폭염에 전국에서 온열질환을 앓거나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집중호우에 이어 극심한 폭염으로 시금치와 미나리는 2배, 상추는 한달만에 3.2배로 급등했습니다.
이건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닌데요. 미국, 이란, 브라질 엘니뇨와 폭우, 폭염, 가뭄 등을 겪으며 농산물 작황이 불안정해지고, 그리스에서는 땅과 나무가 바짝 말라 전국에 산불이 확산되었습니다. 태풍과 비의 위력도 더욱 세져 태풍 ‘독수리’가 지나간 중국은 남동부 푸젠성에서만 9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이같이 날로 극심해지는 기후변화 속에서 이를 완화하기 위한 전 세계 기업과 정부의 노력, 에너지 이니셔티브 RE100과 CF100도 하나의 이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RE100은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맺은 2014년 파리협정의 성공을 지지하는 캠페인입니다. 국제 비영리 환경단체 ‘The Climate Group’과 CDP(탄소 정보공개 프로젝트) 가 연합해 2014년 뉴욕 기후주간에서 선포 후 시작되었는데요. RE100은 Renewable Electricity 100%의 줄임말로, 2050년까지 기업이 소비하는 에너지 중 전력의 100%를 풍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전략으로 바꾸자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RE100은 현재 연간 전력소비량이 100GWh 이상 소비 기업이나 포춘 1000대 기업과 같은 글로벌 위상을 가진 기업을 대상으로 합니다. RE100은 에너지 소비자이자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중심이 되어 기후 변화에 대응할 방법과 재생에너지를 확신시키는 비즈니스 사례를 만들어 공유하고 확산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주요 내용으로는 기업의 에너지 비용 관리, 경쟁력 강화, 탄소배출 목표 달성 등이 있습니다.
RE100 참여 기업은 현재 415개 사인데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애플, 에어비앤비, 3M, 구글 등 글로벌 기업들과 기아, KT, LG에너지솔루션, 삼성, SK하이닉스 등 국내기업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RE100 참여 기업은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로 100% 전환을 목표로, 연도별 수치는 기업이 자율적으로 수립하고 있습니다. 대신 2030년까지 60%, 2040년까지 90% 이상 달성하도록 권고함으로써 차근히 목표치를 올리도록 돕습니다.
RE100 이행을 검증하기 위해 제3기관을 통해 기업의 재생에너지 사용 실적을 검증하고, CDP(탄소 정보공개 프로젝트) 위원회가 연례보고서를 통해 이행 실적을 공개하고 있는데요. 2020년 이미 참여한 기업의 31%가량이 RE100의 목표를 달성했으며, RE100의 선두주자인 구글은 자체 건설과 PPA*를 통해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RE100 달성기업이라고 해서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한 것은 아닙니다. 재생에너지로 최대한 충당하되 부족한 부분은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s, Renewable Electricity Certificates)를 구매해 채웁니다. 말 그대로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해 에너지를 공급한 사실을 증명하는 인증서로, 태양광, 풍력, 연료전지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소에서 1MWh 전력을 생산하면 1REC가 발급되는데, 이를 기업이 사들여 인증에 사용합니다. 이런 활동도 재생에너지 확산에 크게 기여한다고 판단해 인정해주고 있습니다.
한편, 한국은 2021년부터 한국형 RE100 제도(이하 K-RE100)를 본격 도입해 운영 중입니다. K-RE100은 글로벌 RE100과 달리 기업, 공공기관, 지자체 등이 참여 가능합니다. 한국 기업의 RE100 이행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 재생에너지 사용을 원하는 기업, 공공기관 등에 지원하는 목적에 있습니다. 또한 PPA와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가 주요 실천 방법인 글로벌 RE100과 달리 K-RE100은 낙찰 방식으로 일반 전기에 녹색 프리미엄 비용 가격을 붙인 녹색 프리미엄 제도가 도입되어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PPA(Power Purchase Agreement):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를 발전사업자와 전기사용자가 직접 거래하는 방식
최근에는 CF100이 국내 언론에서 뜨겁게 주목 받고 있습니다. CF100이란 Carbon Free 100%의 줄임말로, 사용하는 전력 전부를 탄소 배출이 없는 에너지로 공급한다는 뜻입니다.
한국에서 CF100이라고 지칭하는 제도는 사실 ‘연중무휴 무탄소 에너지 콤팩트(24/7 Carbon-free Energy Compact)’가 정식 명칭입니다. 이 이니셔티브는 유엔 에너지(UN energy)와 지속가능에너지기구(SE4ALL), 두 개의 국제기구와 글로벌 기업 구글의 협력하에 2021년 9월 발족했습니다. 국제기구가 참여했다는 점과, 1세대 탄소 중립 운영, 2세대 RE100 달성을 이끌며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기업 구글이 다음 단계로 지향하는 목표로 주목 받았습니다.
RE100을 통해 기업들은 꾸준히 태양광과 풍력 중심의 에너지를 구매해 기후 위기 극복에 기여하고 있지만, 실제 총 전력사용량이 재생에너지와 일치하지 않는데요. 쉽게 설명하자면, RE100은 탄소배출권을 인정하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만큼 흡수해 총량을 0으로 만드는 탄소중립을 기준으로 합니다. 이에 반해 CF100이라고 불리는 24/7 CFE는 탄소배출 자원에 의존하는 현재 상황을 벗어나 진짜 무탄소 에너지로 전력을 생산하고 소비하며, 재생에너지 생산과 우리의 소비량을 일치시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습니다. RE100과 달리 원자력을 포함하고 있고, 수력과 바이오매스 발전에 대한 구체적인 인증 기준을 별도로 제시하지 않은 점에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CF100을 달성하기 위한 조건이 있는데요. 직접 원전, 풍력, 태양광, 그린수소 등 발전소들과 전력이 서로 이동하도록 선로를 연결하는 계통 연계와 대규모 에너지 저장 시스템 구축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원전을 포함한다는 면에서 이행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전력의 생산과 이동, 소비를 이끌고 추적할 전력망과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훨씬 더 혁신적이고 고난이도의 일이라고 평가합니다.
기업 재생에너지 이니셔티브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전 세계 전력소비 및 온실가스 배출 7위이지만 2021년 기준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7.5%로 글로벌 수준의 4분의 1에 불과 합니다. 같은 해 한국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43.09TWh로, 전력을 많이 소비하는 상위 30개 사의 지난 5년 평균 연간 산업용 전력량이 100TWh를 상회한다는 것을 볼 때, RE100 및 탄소중립 환경에 대응하기에 쉽지 않습니다.
또한 RE100 2021년 이행보고서에서 국내 기업의 총 전력사용량은 전 세계 4위지만, 이 중 재생에너지 조달 비율은 3%밖에 되지 않습니다 총 전력사용량 1~3위인 미국, 중국, 일본의 재생에너지 비율이 79%, 40%, 95%인 것과 비교하면 현저히 부족합니다.
국내에서는 제도, 가격, 공급 물량 등 재생에너지 조달이 어려운 여러 장벽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과 제도 측면에서 온실가스 감축 규제가 빠르게 도입되고 있고 투자기관, 신용평가 부분에서 기업의 기후변화 대응 노력이 주요 평가 지수에 포함되며 다국적 기업이나 협력사에서도 RE100 참여를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RE100과 24/7 CFE을 끊임없이 주목하고 있으며, 두 가지 중 달성 가능한 목표가 무엇인지 계속해서 논의하고 있습니다.
사실 두 개념은 서로 다르거나, 대안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RE100이 100% 재생 가능한 전기를 사용하자는 거라면, 24/7 CFE는 24시간 무탄소 전원으로만 전기를 공급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즉, RE100은 기업과 기관이 사용할 전기를 100% 재생에너지로 조달 하자는 것이고, 24/7 CFE는 전력 시스템까지도 탄소를 완전 제거하자는 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에너지원에서도 살짝 차이를 보이는데요. RE100이 태양광, 풍력, 수력 등의 재생에너지를 주요 에너지원으로 채택한다면, 24/7 CFE는 재생에너지에 원자력, 수소에너지, 연료전지 등이 추가됩니다. 결국 두 캠페인은 방법과 목표, 수단에 차이가 있을 뿐 현재 유지되는 화석연료 중심의 전력시장 개편을 바라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공급자와 수요자, 정부가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가 ‘CFE 포럼’ 출범식을 갖고 CF100의 제도화 추진에 나섰습니다. 올해 연말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협정문에 CF100을 의제로 제안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탄소중립 달성이 글로벌 경쟁력에 중요하다는 이야기이겠지요.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함일 뿐 아니라 기업에게는 새로운 성장 기회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 기업들도 끊임없이 논의하고, 국제 트렌드에 발맞춰 나가는 과정이 필요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