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초기, 물을 끌어오는 공간, 동물의 습격으로부터 식물을 지키기 위해 울타리를 치는 먹을거리를 만드는 공간이었던 정원. 인류는 차츰 정원의 아름다움을 발견했고, 중세 유럽을 비롯해 전세계의 특권층은 개인 저택의 건축물과 어우러지는 정원을 조성하고 자연을 누렸습니다.
건축물보다 더 많이 알려진 동서양의 대표 정원을 소개합니다.
보볼리정원은 프랑스 베르사유궁전의 모델이 된 이탈리아 피렌체 피티궁전의 정원입니다. 피티궁전보다 이곳 정원을 보기 위해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할 정도로 여행 명소로도 손꼽히는데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중 하나로, 건축, 예술, 유럽 정원에 영감을 준 메디치 가문의 저택이었습니다. 이곳은 본래 상인이자 정치가로 메디치가에 경쟁심을 품은 루카 피티가 세운 저택이었습니다. 메디치가보다 더 크게 저택을 지으려 했지만, 재정상태 악화로 결국 저택 완공을 보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고, 후손에 의해 메디치가에 넘기게 되었습니다.
보볼리 정원은 16세기 중반, 메디치 코시모 1세가 아내를 위해 지었습니다. 이탈리아식 정원 중 중요한 전형 중 하나로, 대칭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웅장하고 기하학적인 형태를 띱니다. 미로처럼 보이는 프랑스식 정원과 달리 언덕을 이용해 단계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는 사이프러스 가로수길, 높은 개암나무 길,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삼지창을 들고 있는 ‘넵툰의 분수’, 다양한 조각상이 있는 인조 석회암 동굴, 역사상 최초 오페라가 공연된 것으로 알려진 원형 극장 등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보볼리 정원의 가장 꼭대기에는 메디치가의 통치와 도시 방어를 위해 세운 벨베데레 요새가 있는데요. 피렌치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입니다. 또, 여기엔 1700년대 코시모 3세가 세운 예술가들의 응접실이자 커뮤니티였던 건물이 있는데요. 1973년부터 도자기박물관으로 바꾸고 왕족이 사용하던 도자기, 비엔나 스타일의 도자기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평소 그릇이나 엔틱 도자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꼭 한번 들려보고 싶을 법한 공간입니다.
보볼리 정원은 영화 <인페르노>에서 톰 행크스와 펠리시티 존스가 정원의 자갈밭 위를 전력 질주하고, 수많은 계단과 벽을 넘는 고난이도 액션을 찍은 장소이기도 합니다. 또한 보볼리 정원의 초목을 살리고 후대 유산으로서 보존하기 위한 문화 프로젝트 ‘보볼리 정원의 봄 (프리마베라 디 보볼리(Primavera di Boboli))’을 진행했는데, 명품브랜드 구찌가 3년간 200만 유로를 지원하며 정원이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보르비콩트성은 17세기 재정부 장관을 지낸 니콜라 푸켓의 저택으로, 여타 다른 귀족의 성보다 우아해 당시 군주였던 루이 14세의 질투를 부른 것으로 유명합니다. 보르비콩트성의 정원은 화가 샤를 르 브룅, 건축가 루이 르 보, 프랑스 정원의 창시자인 조경가 앙드레 르 노트르 등 당대 최고의 사람들이 모여 만든 공간이었는데요.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것으로 유명하며, 조경사 앙드레 르 노트트의 최초 걸작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보르비콩트성 정원은 프랑스 정원의 특징인 평면기하학식의 발상지입니다. 평면기하학식은 중앙축을 기준으로 좌우 대칭이 뚜렷하고 잔디, 회양목 등을 이용해 무늬를 만드는 방식을 말하는데요.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테라스, 테를 두른 꽃 화단 등이 있습니다. 재단한 회양목과 목탄을 이용해 동양 양탄자 무늬를 수놓은 ‘터키의 양탄자’는 관광객이 보르비콩트성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광경으로 손꼽습니다. 가장 높은 언덕에는 헤라클레스 조각상이 있는데요. 이 조각상을 통해 니콜라 푸켓이 위대한 권력을 뽐내고 싶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이야기했든 보르비콩트 정원은 베르사유 정원에 영향을 주었는데요. 앙드레 르 노트르를 그대로 불러 공사를 맡겼다고 합니다. 비슷하지만 베르사유는 좀 더 강한 권력을 뽐내고 있는데요. 궁전에서 정원을 내려다보면 루이 14세의 엠블럼인 태양 심볼을 확인할 수 있으며, 헤라클레스보다 더 막강한 신인 아폴로 상이 중앙에 놓여 있다고 합니다. 당시 루이 14세의 질투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일본은 ‘정원의 나라’라고 불릴 정도로 인공적으로 조성한 정원이 1,000여 곳에 달하는데요. 그중 일본 겐로쿠엔은 오카야마 시의 고라쿠엔, 미토 시의 가이라쿠엔과 함께 3대 정원으로 꼽힙니다. 겐로쿠엔은 광대함, 고요함, 기교, 고색창연함, 수로, 조망 등 6가지 특징을 조합한 정원이라는 뜻으로, 에도시대 가나자와를 통치하던 영주 마에다 가문이 1676년 공사를 시작해 170여 년이라는 긴 시간 만에 완성한 곳입니다.
겐로쿠엔은 에도시대 대표적인 정원 양식을 보여주는 명작으로 꼽히는데요. 이 방식을 ‘임천회유식’이라고 부릅니다. 임천회유란 집안에서 감상하는 정원이 아닌 넓은 토지에 인공연못과 구릉을 조성하고 군데군데 정자나 다실을 지어 연못 주변을 따라 거닐며 정원을 감상하도록 조성된 정원을 의미합니다.
이곳의 가장 큰 볼거리는 연못 가스미카이케입니다. 구릉 정상에 드넓은 바다를 형상화했다고 하는데요. 이 연못은 당시 10km나 떨어진 하쿠산에 석관을 연결해 수압을 끌어올려 물을 채운 인공연못이라고 합니다. 에도시대의 수리시설이 굉장히 뛰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 정원은 인공미가 특징적인데요.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최대한 자연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우리나라 정원과 달리 일본은 나무 하나부터 흙 한 줌까지 가꾸는 듯한 느낌이 납니다.
겐로쿠엔은 일본의 번제도(막부시대 영주가 다스리던 영지)가 폐지되면서 1874년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되었고, 다채로운 사계절 풍경 덕분에 일본인과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는 공간이 되고 있습니다.
소쇄원은 조선 중종, 양산보가 스승인 조광조가 개혁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자 회의를 느끼고 숲속으로 들어가 세상에 나오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지은 별서정원입니다. 별서정원이란 세속의 벼슬이나 당파싸움에 개입하지 않고 전원이나 산속 깊숙한 곳에 집을 짓고 자연과의 관계를 즐기기 위해 만든 정원입니다.
소쇄원의 조성시기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1520년대 중반 짓기 시작해 1530년대 후반 오늘날의 모습을 갖췄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10m를 훌쩍 넘은 왕대숲이 오솔길을 형성하고 있는 소쇄원은 초입부터 자연으로 가득합니다.
소쇄원은 크게 세 구역으로 나뉘는데요. 계곡을 건너기 전 대봉대 구역, 계곡 너머 광풍각, 그보다 위에 있는 집인 제월당입니다. 이중 광풍각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방이 한가운데 있고 주변으로 마루가 놓인 형태라 사방에서 정원을 즐길 수 있습니다. 광풍각에 올라 정면을 바라보면 물이 흐르는 작은 계곡과 마주하며, 시원한 바람과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수 있습니다.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뜻의 ‘소쇄’라는 이름이 어떻게 지어졌는지는 정설을 비롯해 여러 설들이 있어 왔는데요. 2021년 문화재청이 양산보와 교유했던 김인후의 문집 <하서전집>에서 ‘소쇄원이라는 이름이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명작 <면양정가>를 지은 문인 송순’이라는 사실이 공개되며 소쇄원의 새로운 이야기가 발굴되기도 했습니다.
Tipbox. 동양 정원과 서양 정원의 차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의 정원은 풍수지리, 음양오행, 유교, 도교 등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는데요. 사상은 정원의 입지, 공간 구성, 배치, 구성요소 등을 좌우했다고 합니다. 한국은 건축의 외부 공간에 정원을 조형적으로 구현하기 시작한 시기는 삼국시대로 추측하며, 자연경관을 그대로 사용하고 인공물을 보조적으로 사용했습니다. 인위적인 조성보다는 자연의 섭리를 따르고자 하는 철학이 엿보입니다.
한편 서양은 아담과 하와의 ‘에덴’동산에 그 기원을 두고 있으며, 16세기 식물의 과학적 연구와 수집, 중세시대 수도원의 약초원 등 종교적 영향을 받으며 더 확대되었습니다. 신의 대리자인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사상이 지배적이었던 프랑스에서는 정원 디자인을 ‘인간의 정신세계가 자연보다 우위에 있음’을 표현하는 양식이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영국은 자연을 닮은 곡선형의 풍경식 정원을 조성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서양 정원의 기준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