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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향한 인간의 끝없는 열망, 초고층빌딩 ‘마천루’의 세계

2024-03-07

하늘을 향한 인간의 끝없는 열망, 초고층빌딩 ‘마천루’의 세계

서울을 비롯해 뉴욕, 홍콩, 도쿄, 상하이, 시드니 등 세계적인 대도시를 여행하다 보면, 도시의 아름다운 스카이라인에 마음을 빼앗기거나 높은 빌딩숲이 선사하는 낯선 풍경에 감탄하는 순간을 경험하곤 합니다. 각각의 개성을 지닌 건물들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며 그려내는 도시의 스카이라인은 종종 도시 전체의 이미지를 좌우하기도 하는데요. 그 중심에 하늘을 찌를 것처럼 높게 솟아있는 건물, 마천루(摩天樓·Skyscraper)가 있습니다. ‘현대건축의 꽃’이라고도 불리는 마천루는 일반적으로 높이 200m 이상의 고층 빌딩을 의미하는데요. 완공되는 순간부터 도시의 풍경과 스카이라인을 바꾸는 것은 물론, 그 도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의 역할까지 수행하게 됩니다.

 

미국과 아시아, 중동 지역으로 이어지는 초고층 빌딩의 역사

이러한 마천루 즉 초고층 빌딩 문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곳으로 미국의 시카고와 뉴욕을 꼽을 수 있습니다. 1931년 뉴욕에 건설된 381m 높이, 102층 규모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Empire State Building)은 39년간이나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 1위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오다가 1970년 세계무역센터(World Trade Center: 417m, 110층)에 이어 1973년 시어스 타워(Sears Tower: 442m, 108층)가 시카고에 완공되면서 그 자리를 내어주게 됩니다. 두 도시 모두 도시화로 인해 급격히 증가한 인구를 효과적으로 수용하고자 기존의 저층 건물을 높게 올려 고층으로 재개발하는 방법을 고민하게 된 경우인데요. 이 무렵 철근 콘크리트를 기반으로 한 프레임 구조나 콘크리트 코어 등의 기술적 진화가 함께 이루어지면서 초고층 빌딩의 안전성과 효율성을 뒷받침하는 건축 환경 또한 갖출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미국이 독점하다시피 하던 초고층 빌딩의 타이틀이 아시아권으로 넘어오게 된 것은 1998년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 452m 높이의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Petronas Twin Tower)가 건설되면서부터입니다. 그로부터 5년 후 대만의 타이페이 101(Taipei 101: 508m) 빌딩이 또 한번 최고 높이를 경신하며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후 홍콩과 도쿄, 상하이, 싱가포르 등의 아시아권 대표 도시들과 함께,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와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중동 지역에까지 초고층 빌딩들이 대거 건설되면서 유럽을 제외한 전 세계가 본격적인 초고층 빌딩 경쟁에 접어들게 됩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마천루, 부르즈 할리파와 메르데카 118

그렇다면 현재 가장 많은 초고층 빌딩을 보유한 국가는 어디일까요? 세계초고층도시건축학회(CTBUH)의 통계에 따르면, 150m 이상의 마천루를 기준으로 했을 때 홍콩을 포함한 중국이 3,273개로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뒤를 이어 미국(892개)과 아랍에미리트(336개), 말레이시아(293개), 일본(280개), 그리고 대한민국(276개)이 TOP 6에 올라 있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2023년 기준 전 세계 초고층 빌딩 순위 50위 안에 든 곳들 가운데, 절반에 해당하는 25곳이 모두 중국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 가장 많은 초고층 빌딩을 보유한 국가가 아닌 ‘도시’를 기준으로 한 순위에서도 중국은 1위 홍콩을 비롯해 심천, 광저우, 상하이, 우한, 충칭 등이 모두 10위권을 기록하고 있을 정도로 독보적인 위치를 자랑합니다.

출처: 세계초고층건축도시학회(CTBUH)  ** 메르데카 118(현재 2위)이 업데이트 이전

하지만 세계 최고 높이의 건물에 주어지는 ‘Tallest Building’ 1위의 영예는 중국이 아닌 아랍에메리트가 가지고 있습니다. 2010년 두바이에 건설된 부르즈 할리파(Burj Khalifa)는 828m의 어마어마한 높이를 자랑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마천루로, 현재까지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지상 163층(첨탑 포함 시 209층)의 규모로, 내부는 호텔과 주거시설, 사무실, 쇼핑센터 등으로 이루어진 복합건물입니다. 사막의 꽃을 형상화한 디자인에 이슬람 건축 양식을 접목시켜 하늘을 향해 끝없이 뻗어있는 나선형 모양을 하고 있는데요. 총 58기의 엘리베이터와 2만9천여 개의 커튼월, 4만 톤에 달하는 철근과 164,000㎥의 고성능 콘크리트가 사용되었습니다. 공사비용만 총 15억 달러에 달하는 부르즈 할리파의 설계는 초고층 빌딩 설계로 유명한 미국 시카고의 건축회사 SOM(Skidmore, Owings & Merrill)이, 시공은 우리나라의 삼성물산이 맡아 진행했는데요. 공기 중의 모래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수평으로 된 돌출부를 최소화하고 수직 요소만을 활용한 디자인과 함께 3일에 한 층씩 건설하는 최단 공기 시공으로 큰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1월,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 부르즈 할리파의 뒤를 잇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마천루가 새롭게 완공되었는데요. 바로 높이 679m의 초대형 복합시설, 메르데카 118(Merdeka 118)입니다. 지상 118층 규모로 건설된 메르데카 118은 1998년 완공 이후 줄곧 말레이시아의 랜드마크 역할을 해온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의 452m 높이를 훌쩍 뛰어넘어 베트남 호치민의 랜드마크 81(Landmark 81)에 잠시 내어주었던 ‘동남아시아 최고층 마천루’의 타이틀을 다시 한번 탈환하게 됩니다. 특히, 쿠알라룸푸르는 150m 이상의 마천루를 173개나 보유한 세계 7위, 동남아시아 1위의 초고층 도시로, 이는 중국 상하이(184개), 일본 도쿄(173개)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메르데카 118의 최상층에는 도심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설치될 예정이며, 시공 당시 지상 500m 높이에 타워크레인을 설치하지 않고 유압잭을 통해 밀어 올려주는 리프트업 공법을 통해 160m에 달하는 첨탑을 설치하는 등 최첨단 고난이도 기술이 총동원되었습니다.

 

압도적인 스카이라인을 자랑하는 중국의 도시들

그럼 이제 세계에서 마천루를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 중국의 초고층 빌딩들을 만나볼까요? 국제도시 상하이의 동부 지역에 위치한 푸동신구에는 120도 가량 비틀어진 것처럼 보이는 나선형의 상하이 타워(Shanghai Tower)가 위용을 자랑합니다. 2015년 높이 632m에 128층 규모로 지어진 이 건물은 현재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마천루이자 중국 내에서 가장 높은 빌딩으로, 초고층 빌딩의 도시 상하이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랜드마크입니다.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용을 형상화한 나선형의 디자인은 120도 가량 비틀어져 있는데, 이는 바람에 의한 흔들림을 최소화하고 안정감을 높이는 등의 기능적 측면을 고려한 것이기도 합니다. 건물 내부는 전망대와 레스토랑, 호텔, 사무실, 각종 상업 시설 등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외에도 중국은 500m 이상의 마천루를 4개나 더 보유하고 있습니다. 광둥성 선전시에 위치한 599m의 핑안국제금융센터(Ping An Finance Center)를 비롯해 중국의 대표적인 쥬얼리 회사 ‘저우타이푸’가 두 도시에 연이어 건설한 광저우 CTF 파이낸스 센터(Guangzhou Chow Tai Fook Finance Center: 530m)와 텐진 CTF 파이낸스 센터(Tianjin Chow Tai Fook Finance Center: 530m), 마지막으로 베이징 시틱 타워(CITIC Tower: 528m)에 이르기까지 각 도시마다 초고층 빌딩이 만든 압도적인 스카이라인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의 대표적인 마천루 중 다수의 설계를 미국 뉴욕에 위치한 세계적인 건축회사 콘 페더슨 폭스(Kohn Pedersen Fox Associates, 이하 KPF)가 맡았는데요. KPF는 우리나라의 롯데월드타워, 서초 삼성사옥, 송도 국제업무지구 등의 설계를 담당한 곳이기도 합니다.

 

1km가 넘는 극초고층 빌딩, 제다 타워 프로젝트의 재가동

2017년 서울 잠실 한복판에 완공된 롯데월드타워(Lotte World Tower)는 123층의 규모에 첨탑 구조물을 포함한 높이가 555m에 달하는 세계 6위의 마천루입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곡선의 유연한 아름다움을 강조하기 위해 도예(고려청자)와 붓의 형상에서 디자인 모티브를 가져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완만한 곡선을 그리고 있는 건물 외벽에는 총 4만2천여 장의 유리창을 부착하여 그 위에 빛이 반사되면서 건물 전체의 우아함을 극대화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현재 국내에서 롯데월드타워 다음으로 높은 건물로는 부산 해운대에 위치한 LCT 랜드마크 타워(412m, 101층)와 서울 여의도의 파크원 타워(333m, 69층)가 3위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사실 국내 마천루 순위는 2028년 이후 뒤바뀔 수도 있었습니다. 2014년 현대자동차그룹이 삼성동의 옛 한국전력 부지를 매입해 추진 중이었던 글로벌비즈니스센터(이하 GBC)의 초기 설계안에 롯데월드타워보다 14m 더 높은 569m의 메인 타워가 포함되었기 때문인데요. 최근 2월 현대자동차그룹이 서울시에 105층의 메인 타워 대신 242m 높이의 55층 2개 동으로 설계를 변경하는 GBC 개발 계획 변경 제안서를 제출하면서, 국내 마천루 1위의 주인공이 바뀌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세계 1위의 마천루인 부르즈 할리파도 언제까지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현재로선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828m라는 압도적인 높이를 자랑하고 있지만 하늘을 향한 인간의 끝없는 열망은 계속해서 새로운 역사로 이어지고 있으니까요. 이제 인류 최초로 1km가 넘는 극초고층 빌딩이 사우디 아라비아의 해안 도시 제다에 완공될 날이 머지 않았습니다. 2013년 착공해 68층까지 공사가 진행된 상태에서 2018년 돌연 공사를 중단하며 완공을 확신할 수 없었던 제다 타워(Jeddah Tower)가 최근 다시 공사를 재개한다는 소식을 알린 것입니다. 착공 당시 기준으로 건축 비용만 1조 3,200억 원이 소요되는 제다 타워는 높이 1,008m에 168층 규모로 설계되었는데요. 부르즈 할리파를 설계한 SOM(Skidmore, Owings & Merrill)의 최고 경영자 출신인 건축가 아드리안 스미스(Adrian Smith)가 이끄는 건축회사 AS+GG(Adrian Smith + Gill Gordon Architecture)가 설계를 담당했습니다. 2025년 이후 제다 타워가 예정대로 완공된다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전망대를 보유하는 것은 물론, 인공 건축물 중 1km가 넘는 유일한 건축물이라는 새 기록을 쓰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같이 마천루의 높이가 높아질수록 강한 풍압이나 진동에 취약하지 않도록 하는 과학적인 건축 기법들이 함께 요구됩니다. 또한, 강력한 내진 설계를 비롯해 피난안전구역, 비상용 승강기 설치 등 안전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하고요. 설계와 시공 모든 면에서 최상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것은 물론, 최고의 기술력까지 요구되는 마천루의 세계. 특히, 대규모 도시화와 전 세계적인 기후 변화의 영향에 직면한 이 시점에서 초고층 빌딩의 건설은 더 이상의 자연생태계 파괴를 막는 현실적 대안이자 ‘지속가능한 수직 도시’라는 새로운 미래를 여는 방법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습니다. 압도적인 규모와 높이를 바탕으로 어느새 대도시의 상징처럼 자리잡은 마천루의 탄생과 기록 경신의 역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 더 높은 곳을 향하는 사람들의 열망과 함께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