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도호 작가는 ‘집짓는 미술가’라 불리기도 합니다. 서울, 뉴욕, 런던 등 작가가 이주하며 살고 경험한 ‘집’을 소재로 다양한 재료와 방식으로 독특한 해석을 선보이는데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집’은 고정된 집이 아닌 떠도는 집에 가깝습니다. 물리적, 지리적인 공간을 넘어 그 안에서 상호 작용하며 얻게 되는 감정과 경험에 더 집중해 ‘집’을 마음의 고향, 기억의 보고로 해석합니다. 이를 통해 ‘집이란 한 곳에 고정된 것이 아닌, 주체가 가는 곳을 따라간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백남준을 잇는 한국 대표작가 서도호 작가는 2001년 제49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한국관 대표로참가해 그 이름을 세계에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국내에서는 작고한 거장의 개인전만 연다는 과거 리움미술관의 불문율을 깨고 2012년 처음 살아있는 작가로서 개인전을 열어 화단과 대중들의 관심을 불러 모으기도 했죠.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이어가고 있는 그의 작품은 주로 ‘집’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머물며 보고 거주했던 공간의 기억과 경험을 다층적으로 해석해 선보입니다. 서도호의 집과 공간은 고정된 채 멈춰있는 곳이 아니라 주체를 따라 움직이는 공간입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2013년작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Home within Home within Home within Home within Home》은 이름 그대로 집 속에 집을 품은 형태의 작품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을 기념해 탄생한 이 작품은 가장 안쪽에 서도호 작가가 어린 시절 살았던 성북동 한옥이, 바깥쪽으로는 미국 유학 초창기에 지내던 빌라 건물을 구현해 마치 빌라가 한옥을 품고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이 작품의 재료는 여름용 한복인 은조사인데요. 속이 비치는 은조사와 폴리에스터를 이용해 한옥집에서의 추억과 새로운 미국의 생활지를 중첩함으로써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 존재하는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기억을 보여주었으며, 여러 도시로 이동하며 정체성을 고민하는 작가의 모습을 그려냈습니다. 얇고 가볍고, 빛이 그대로 투영되며 유동적인 천을 이용해 고정적이면서도 구조화되고 묵직한 이미지를 주는 건축물을 구현한 그의 아이디어는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특히, 반투명한 얇은 천을 바느질한 집에 손잡이, 창문, 기와, 문고리, 전기 스위치까지 표현한 섬세함이 돋보입니다.
2011년작 《떨어진 별 Fallen Star》엔 작가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미국 유학 시절 살았던 브루클린 아파트 사이에 서울 한옥이 똑 떨어진 모습을 하고 있는 이 작품은, 2008년 1/5 크기로 줄여 만든 설치-조각 버전인 《떨어진 별 1/5》로 처음 공개됐고 같은 제목으로 2011년 사람이 살 수 있는 정도의 크기로 제작한 작품을 샌디에이고의 캘리포니아 주립대 공대 건물에 설치했습니다. 타이틀에서도 ‘우주라는 전혀 다른 세계에 있는 별이 다른 세계로 갑자기 전이된 상황’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죠.
작가는 작품을 통해 유학 생활 중 전혀 다른 환경에서 겪게 되는 변화와 경험을 이야기하는데요. 마치 떨어져 박힌 듯한 건물들의 모습이 작가가 경험한 급격한 문화적 전위, 문화 충돌을 상상하게 하고, 때로는 관람객 자신의 경험을 투영하게 합니다. 다만, 작가는 이 작품을 충돌이 아닌 ‘소프트랜딩(Soft Landing)’이라 설명하고 있는데요. 설치 조각 버전을 자세히 살펴보면, 집에 낙하산이 묶여 있어 이를 통해 연착륙의 모습은 연출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유학 생활을 시작하기 전 문화적 차이를 알고 왔으며, 다만 그 차이를 느끼고 적응하는 게 아주 오랜 시간 천천히 진행되었고 이를 이 작품에 담으려 했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공공 설치미술로도 그 이름을 알리고 있습니다. 2024년 3월, 워싱턴DC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 앞마당에 박물관 100주년 기념으로 설치된 《공인들 Public Figures》이 그 주인공인데요. 곳곳에 우뚝 써 있는 DC의 다양한 기념물과, 《공인들》에는 특정 위인이 없습니다. 그 대신 동상 아래 다양한 인종의 400여 명이 동상대를 떠받들고 있는 모습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서도호 작가는 한국에는 절대 죽지 않고 늘 새로워지며 힘을 합치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민초’라는 개념을 언급하며 국익과 공공선을 이야기하는 권력 집단이 아닌 그 무게에 지탱하는 민중들에게 주목하며 우리가 익숙해져 있는 권력과 구조에 질문을 던집니다. 이 작품은 공개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스미스소니언의 명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012년 이후 오랜만에 국내에서 서도호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데요. 이번 전시명은 ‘스페큘레이션스(Sepculations)’입니다. 한국말로는 사변, 추론, 사색을 뜻하는 의미하는데요. 이 단어는 작가가 작품을 만드는 작업 과정을 대변합니다.
그의 작업 과정은 ‘만약에’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진행된다고 합니다. 그의 대표작인 천으로 만든 집 역시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다른 장소로 옮길 수 있다면’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는데요. 기존에는 천으로 만든 집이라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머릿속에 꽉 차 있는 생각들이 펼쳐지는 과정을 담아냈습니다.
전시관에서 제일 먼저 마주하는 작품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밝은 주황색 구명복입니다. 집과 구명복, 두 개의 사물 사이에는 관련이 없어 보여 관람객으로 하여금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데요. 그는. ‘집이란 무엇인가?’라는 상상 아래 천으로 만든 집이 차곡차곡 접어서 어디든 들고 다닐 수 있는 이동의 집이었다면, 구명복은 ‘한 사람이 들어가는 가장 작은 대피소’라는 의미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집과 옷이 닮았다는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1층에서 전시 중인 ‘다리 프로젝트’는 서도호 작가가 살았던 서울, 뉴욕, 런던의 집을 등거리로 잇는 지점에 ‘완벽한 집’을 짓는 상상에서 시작되었는데요. 작가는 세 도시를 연결하는 다리를 만들어 북극해에 집을 짓는 상상의 과정을 통해 이 작품을 탄생시키며, 극지 환경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함께 고민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작가 자신이 즐겨 찾던 가게를 대관람차에 실어 옮긴 재미있는 상상력이 돋보입니다. 2층 전시 공간에서는 ‘다리를 놓는 집 리버풀’, 트럭 위의 이동식 한옥을 연출한 ‘비밀의 정원’ 등 서도 작가의 유명 작품을 축소한 미니어처 모델과 만드는 영상, 구상하는 과정에서 스케치나 드로잉 등을 함께 전시해 작가의 작업 과정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한편, 많은 작업의 과정을 거쳐 한층 확장된 작가의 시선을 살펴볼 수 있는데요. 어릴 적 한옥과 거주에 대한 개인 서사에 초점을 맞췄다면, 오늘날 그의 작품은 사회적, 시대적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처음으로 선보이는 작품 ‘향수병’은 바닷가에 불시착한 한옥을 물이 채워진 유리 케이스 안에 3D 모델로 구현했습니다. 모래 해변에 폐허처럼 부서진 한옥, 물 위로 떠다니는 파편과 쓰레기가 보이는데요. 해변에 난파한 집은 난민 문제를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다리 프로젝트’ 역시 북극해에 완벽한 집을 짓는 일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부딪칠 수 있는 북극의 기후와 지속가능성 문제 등의 고민을 작품에 녹였습니다.
서도호 작가는 30년간 ‘집’이라는 건축 공간을 소재로 개인의 감정, 정체성, 환경간의 상호작용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작업물과 더불어, 현실로 이뤄지지 않을 것 같은 예술가의 상상력이 구현된 ‘집’의 프로토타입까지, 이번 전시회를 통해 그 여정을 따라 한번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TIP. 서도호: 스페큘레이션스 : 2024.08.17 – 11.17 아트선재센터 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