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창적인 조형언어들은 늘 새로운 자극을 선사합니다. 특히 거장들의 손을 거쳐 탄생한 혁신적 건축물들은 그 놀라움이 배가 되곤 하는데요. 최근 몇 년 간 헤르조그 앤 드뫼롱, 도미니크 페로, 쿠마 켄고 등 세계적인 건축 거장들의 작품을 서울에서도 감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수의 건축가들이 디자인 경쟁을 펼치는 무대이자, 아시아의 새로운 문화예술의 도시로 떠오르는 서울. 세계적인 건축가들에 의해 볼거리 가득한 디자인 도시로 거듭나며 시민들에게 즐겁고 행복한 경험을 선사하고 있는 새로운 서울의 건축 풍경을 만나봅니다.
사진출처: KKAA
오직 소리를 위해 탄생한 공간인 오디움은 음향을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는 오디오 박물관입니다. 청계산입구역에서 1㎞ 거리에 위치한 오디움은 연면적 22만 4,246㎡ 규모에 지하 2층, 지상 5층으로 지어져 있는데요. 이곳은 여타 박물관과 달리 외관에서부터 관람이 시작됩니다. 최대 40m에 이르는 알루미늄 파이프 2만 여개가 건물을 감싸고 있는 모습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마치 소리가 그대로 쏟아져 내리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사진출처: KKAA
건축을 담당한 쿠마 켄고는 이곳이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특별한 장소인 만큼 그에 걸맞는 특별한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의 최종 목표는 하나의 숲과 같은 건축물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기존 박물관에서 한 단계 발전한 곳으로 탄생시키기 위해 질감, 빛, 바람, 향기 등을 모두 느낄 수 있는 장소를 구현해 냈습니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바로 외관의 알루미늄 파이프입니다. 다양한 색상의 빛을 잘 반사할 수 있도록 아노다이징(Anodizing)으로 마감해 날씨와 시간,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을 즐길 수 있게 했고, 현악기의 줄을 표현하고자 30, 50, 70㎜의 얇은 알루미늄 파이프를 골랐죠. 또한 이를 랜덤하게 배치해 인위적 질서를 넘어 자연에서만 나타나는 무작위성을 드러냈습니다.
외부 계단 벽면은 두꺼운 석재를 거친 마감으로 처리하여 돌계곡과 같은 형태로 만들었는데요. 알루미늄 파이프의 경량감과 돌의 중량감이 한데 어우러져 실제 자연 속에 들어와 있는 듯 하기도 합니다. 돌로 둘러싸인 계단을 내려가야 입구로 들어갈 수 있게 해놓은 것도 충분히 건축물을 탐색한 후 드라마틱하게 소리의 세계로 발을 들이게 한 건축가의 의도입니다.
사진출처: KKAA
로비로 들어서면 알래스카에서 공수해온 편백나무의 향기가 코끝을 스치는데, 자연적인 소재를 사용해 관람객에게 편안함과 안온함을 선사하여 음향을 차분히 체험할 수 있도록 한 섬세한 배려가 돋보입니다. 전시실 내부는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올수록 약한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건축가의 설계 특징 중 하나이기도 한데, 오디움에서도 그러한 모습이 잘 드러나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건축 그 자체로 시각과 후각, 청각을 순서대로 일깨우는 오디움은 19세기 에디슨이 발명한 축음기와 빈티지 오디오 시스템, 10만 여장의 LP 등의 소장품과, 만족도 높은 무료 도슨트 청음 프로그램으로 방문객들에게 두 번 이상 꼭 와야 할 유니크한 장소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사진출처: WHITESTONE
일본 갤러리가 한국 미술계에 진출한 첫 사례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 화이트 스톤 갤러리입니다. 화이트스톤은 도쿄를 시작으로, 홍콩, 타이베이, 상기포르 등에 지점을 두고 있는데요. 지난 2023년 9월 역사적 관광지와 문화시설들이 들어서있는 용산에 문을 열었습니다. 무엇보다 세계적인 건축가인 쿠마 켄고가 디자인 설계를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죠.
사진출처: WHITESTONE
화이트스톤 갤러리 리노베이션과 오디움 설계 외에 부산 롯데타워, 네이버커넥트원 등 한국에서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 쿠마 켄고는 한국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기 위해 작년 5월 성수동에 앤드어소시에이츠 한국 사무소를 열기도 했습니다. 그는 “최근에는 서울이 선구적이고 실험적인 방향에 있다고 느낀다”며 “한국의 컨템퍼러리 문화는 지금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고, 그런 문화적 자극을 받아서 건축에 살리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는 다른 나라의 화이트스톤 갤러리들을 감독하기도 했는데요. 이번 용산 갤러리는 신축이 아닌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한 공간으로, 연속적으로 부드럽게 이어지는 갤러리 관람을 위한 순환을 콘셉트로 하여 전시장마다 높이를 다르게 디자인하거나, 같은 층에 계단을 두어 관람객들이 전시 관람을 하면서 예술작품뿐만 아니라 공간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디자인 되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사진출처: WHITESTONE
이곳의 백미는 단연 옥상입니다. 조각정원으로 꾸며진 이곳은 남산의 푸르름을 배경삼아 작품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휴식공간으로서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우선시하는 건축가의 개성이 잘 드러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새하얀 벽의 갤러리를 관람한 후 옥상으로 올라오면 원목마루가 깔린 따뜻한 분위기의 루프톱을 즐길 수 있는데, 자연스러운 천연목재 감성을 전달하기 위해 복합 데크보드(목재 섬유와 플라스틱을 재활용해 친환경적이며 내구성이 좋음)를 사용했습니다.
이 갤러리의 또 하나의 특징은 이름과 정반대인 바로 검은색 외벽입니다. 쿠마 켄고는 검은색으로 택한 이유로 일상을 벗어나 추상적인 아트 공간으로 다가가기 위한 도입적 체험을 만들어내고 싶어서라고 밝혔죠. 예술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는 일상 세계에서 특별한 세계로 데려다주는 역할을 하는, 기대와 놀라움을 느낄 수 있는 입문 공간이기 때문에 전시된 작품에 몰입할 수 있도록 ‘건축적인 존재를 지우는 일’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주변의 모습을 오롯이 담아내며 하나의 풍경처럼 동화되도록 만든 통유리창도 이와 맥락을 같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출처: 서울시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사업은 강남권 광역복합환승센터와 대규모 지하도시를 짓는 사업으로, 서울이 만들어지고 난 이후 최대의 도시계획사업이라고도 불리는데요. 이화여대 캠퍼스 설계자로 잘 알려진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가 코엑스와 잠실운동장 일대 약 16만㎡ 규모로 들어설 광역복환승센터 설계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는 GITC는 혼잡한 강남 도심을 재생시키는 기념비적인 프로젝트로, 인프라도 건축적 요소를 입게 된다면 도시를 변화시키는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줄 것이라 자신하고 있죠.
사진출처: 서울시
지상에는 축구장의 약4개 규모의 지하 진출입구 및 지상 보행로가 될 잔디광장(THE GREEN LAND)이 만들어집니다. 보행 친화적 산책로로서 일상 속 야외활동이나 휴식뿐만 아니라 콘서트나 불꽃놀이 등 다양한 이벤트 장소로 활용할 수도 있죠. 그 아래로 버스와 택시 정류장이 들어서고, 생활‧문화 및 여가시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될 예정입니다. 도미니크 페로는 지하 4층 깊은 공간까지 전체 시설에 빛이 닿을 수 있도록 자연광을 적극 활용하여 지하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었는데요. 이를 위해 삼성역부터 봉은사역까지 560m 길이의 라이트빔이 설치될 예정입니다. 라이트빔은 태양광을 흡수 및 집적하고 반사시키는 태양광 공급시설로, 지하에서도 지상에 있는 것처럼 환한 자연광을 접할 수 있게 해주죠.
GTX와 도시철도, 지하철, 버스 등 5개 광역‧지역철도를 탈 수 있는 대규모 환승 공간이 마련됨에 따라 우리나라의 물류의 축을 바꿀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새로운 대중교통의 중심이자 시민들이 즐겨 찾는 편안한 공간이 될 강남국제환승센터(GITC) 라이트 워크(Light Walk)의 모습은 오는 2028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사진출처:herzogdemeuron
수장고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물과 작품을 보존, 유지 및 관리하기 위해 만든 보관시설입니다. 보전을 우선하기 때문에 접근성이 제한되어 있어 관람객에게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데요. 하지만 폐쇄적인 수장고와 달리 일반 전시관처럼 수장고 자체를 전시공간으로 만든 개방형 수장고들이 있습니다. 서리풀 보이는 수장고 역시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국립민속 박물관 파주관에 이은 개방형 수장고 중에 하나입니다. 2028년 서초구 구 정보사령부 부지에 설립된 예정으로, 서울시립미술관, 서울공예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의 공동 아카이브 공간으로서 문화예술자원 10만점을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국내 최초로 모든 소장품과 미술품의 복원 과정을 100% 공개한다는 점이 개관을 더욱 기대하게 합니다. 또한 현재 서울시 소장품 공개율은 5%인데, 보이는 수장고를 통해 공예, 조각, 회화, 등의 소장품 공개율을 30%까지 끌어올릴 예정이라고 합니다.
사진출처:herzogdemeuron
서리풀 보이는 수장고는 국제설계공모로 진행되었는데, 포스터앤파트너스, MVRDV(네덜란드) 등 세계적인 건축사무소 외에도 노먼 포스터, 자크 헤르조그 등 7명의 건축 거장들이 직접 참석하며 연일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공개 프레젠테이션 결과 스위스의 헤르조그 앤 드뫼롱의 설계디자인이 선정되었는데요. 이들은 2001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하고, 중국 베이징올림픽주경기장, 테이트 모던 갤러리, 독일 함부르크 엘프필하모니 등을 설계하며 건축가 위의 건축가로 불리고 있죠.
열린 수장고는 상시 개방되어 언제나 볼 수 있고, 모두가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건축가의 말처럼 서리풀 보이는 수장고는 상부를 떠받치는 단순하고 우아한 기하학적 형태의 4개의 매스(특정한 형태를 가지지 않는 큰 덩어리) 사이로 도입공간과 정원을 배치했습니다. 이 정원은 시민 누구나 쉽고 편하게 수장고를 이용할 수 있도록 박물관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며 개방과 활용의 융합형 뮤지엄으로서의 변화를 이끌어갑니다.
사진출처:herzogdemeuron
건물 전면에는 대지에서 채울한 암석을 재활용하고, 태양광 패널을 붙여 친환경적인 면모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하 2층~ 지상 7층 규모의 수장고는 유물의 노출로 인한 손상을 최대한으로 줄이기 위해 온도 조건에 따라 수장품을 4가지로 분류해 보존할 계획이며, 내부를 중심으로 고깔 형태로 개방한 구조로 1층에서도 전시품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6층 전면은 통유리로 설계한 카페로 서울 도시의 파노라마 뷰를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들 예정입니다. 서리풀 보이는 수장고는 앞으로 자연과 문화, 도시생활을 융합시키는 문화 저장소이자 서울의 대표적 랜드마크로서 지역의 가치를 높이는데 일조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서울 도심의 상징적 장소인 서울역이 2029년 새롭게 탄생합니다. 서울역 북부역세권 복합개발사업 덕분인데요. 이곳에 지하 6층에서 39층까지 오피스, 판매시설, 호텔, 전시 등을 두루 갖춘 5개동의 복합시설이 들어섭니다. 서울 도심에 대규모 MICE 시설이 조성되기 때문에 다양한 국제 행사 유치가 가능해지면서 비즈니스의 중심지로 발전이 기대되고 있습니다.
국제지명설계 공모 결과 덴마크의 헤닝 라르센의 서울 밸리(Seoul Valley)가 당선작으로 선정되었는데요. 빛의 거장이자 지속가능한 건축을 추구하고 있는 만큼 서울의 상업적인 이미지를 보행자 중심의 친환경적 도시로 탈바꿈 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전했죠.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정원이나 한옥 등의 모습을 상실한 지금의 공간을 해체해, 옛 서울의 아름다운 건축물과 어우러진 살기 좋은 공간을 만들겠다는 의미입니다.
사진출처: Henning Larsen
헤닝 라르센은 무엇보다 도시의 복잡함 속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데 초점을 두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를 위해 오피스와 호텔 빌딩은 보행자가 바람, 공해, 도시의 소음을 피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빌딩 곳곳에 녹지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또한 상업공간을 빽빽이 조성해 미로 같은 환경을 만드는 대신 서로 떨어뜨려 독립적으로 배치해 오래 머물려 탐험할 수 있는 공간을 구현할 예정입니다. 또한 지금보다 대지의 높이를 높게 설정해 넓은 계단과 하늘정원을 만들어 보행자가 이 공간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작은 공원과 테라스 등도 여러 층에 마련할 계획입니다.
사진출처: Henning Larsen
1977년부터 약 45년간 레미콘 공장으로 사용된 성수동 삼표 부지가 업무, 상업, 문화, 숙박 등 다양한 기능을 담은 복합개발로 변화합니다. 서울숲과 한강에 둘러싸여 있는 이곳은 2023년 한강변 글로벌 미래 업무지구로 조성 구상이 발표되면서 세계적인 건축가들을 초청해 공모를 진행했는데요. 스키드모어, 오윙스 앤드 메릴(SOM)사가 제안한 ‘서울숲의 심장’이 최종 선정되었습니다. SOM은 시카고에 기반을 둔 세계적 건축설계 및 엔지니어링 회사로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 미국의 35 허드슨 야드, 우리나라의 63빌딩 등의 유명 건축물을 설계를 맡았습니다. 3개의 초대형 건축물은 서로 연결되어 도보 이동이 가능하게 되며, 선큰광장(대지를 파서 조성한 자연광 지하광장)이 조성되어 자유롭게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곳이 마련될 예정입니다. 서울숲의 심장이라는 이름처럼 이 공간은 업무와 상업, 문화 등의 다양한 기능을 아우르고, 경제적, 문화적 효과를 창출하며 단순한 도시개발을 넘어 서울을 대표하는 글로벌 비즈니스 허브로서 서울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중요도 높은 프로젝트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디자인은 도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식 중 가장 효율적인 수단으로 꼽혀왔습니다. 혁신적인 건축물들은 시민의 삶의 질과 도시품격 향상뿐만 아니라 도시문제 해결에도 도움을 주기 때문이죠. 잘 만들어진 하나의 창의적 건축물들은 문화, 경제, 사회 전반에 두루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도시의 분위기를 전환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도 도시에 디자인을 적용해 디자인으로 도시의 가치를 업그레이드하려는 노력들을 해오고 있습니다. 지난 2023년 ‘디자인 혁신도시 서울’을 만들어나가기 위해 미래지향적이며 매력적인 디자인 혁신 도시를 선언하며 도시건축 디자인 혁신방안을 발표한 서울 또한 이러한 디자인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고 볼 수 있겠죠. 세계적 추세와 여러 혁신방안에 힘입어 지금의 서울은 거장들의 손길을 거쳐 다양한 디자인의 특색 있고 상징성 있는 건축물들을 많아지며 날마다 새로운 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앞으로도 많은 건축가들의 새로운 시도들을 통해 서울만의 독특하고 매력적인 지역 정체성이 만들어져 디자인 저력을 갖춘 지속가능한 21세기형 글로벌 디자인 도시로 성장해나가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