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지속가능한 미래

지구를 살리는 집과 오피스, 탄소중립시대의 모듈러 건축

2025-03-13

지구를 살리는 집과 오피스, 탄소중립시대의 모듈러 건축

부동산, 인프라, 산업구조를 아우르는 건설업은 세계 GDP의 13%를 차지하는 세계 경제에서 가장 큰 산업입니다. 하지만 타 산업에 비해 고비용 저효율이라는 지적과 함께 전문인력의 초고령화로 인한 생산성 하락, 안전사고, 현장 소음 및 분진 등에 대한 문제제기가 계속되어 왔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건설업계는 노동집약에서 기술집약으로의 체질개선에 나서고 있는데요. 업계가 적극적으로 4차산업혁명 기술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대표적 기술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 바로 모듈러 건축입니다. 앞서 언급한 문제들을 해결할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는 모듈러 건축은 환경성과 경제성을 조화롭게 고려한 지속가능한 건축 방식이자 가장 핵심적인 미래 생산방식으로 손꼽히며 전 세계적으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출처; wikipedia commons

생산성 향상의 혁신을 가져온 지속가능한 모듈러 건축

일반적으로 건축이라 하면 기초를 다진 후 골조공사를 통해 뼈대를 세우고 설비와 마감을 진행하는 형태를 떠올릴 텐데요. 최근에는 이렇게 현장에서 ‘짓는’ 건축이 아닌 ‘쌓거나 놓는’ 방식의 모듈러 건축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모듈러 건축이란 기본 골조, 전기배선, 온돌, 욕실 등 자재와 부품이 포함된 박스 형태를 공장에서 70~80%정도 제작해 현장의 시공된 기초 위에 레고 블록을 맞추듯 간단히 조립하는 건축을 말합니다.

건설업계의 트렌드로 부상한 탈현장공법(OSC, 공장에서 건물 구조나 설비 등을 사전 제작한 후 건설 현장에서 운반해 조립, 설치하는 방식) 중 하나로, 날씨, 안전, 작업여건, 현장상황 등 여러 가지 건설현장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고질적 문제로 여겨진 인구 감소로 인한 노동력 부족 현상과 공사 품질 향상, 환경 부하 저감 등 현재 직면해 있는 문제 극복을 위한 방안으로 모듈러 생산 방식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죠.

다양한 문제 해결의 돌파구로 떠오르고 있는 모듈러 건축의 가장 큰 장점은 공사기간 단축입니다. 현장에서 터파기 공사를 하는 시간에 공장에서 모듈 제작 작업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공사기간을 평균 30%정도 단축시킬 수 있습니다. 공기단축은 공사비용 단축으로 이어지죠. 모듈러 건축으로 짓는 주택 시공비용은 내구재, 마감재, 인테리어 등에 따라 달라지지만 보통 일반 콘크리트 주택 공사비용의 60% 수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공장은 안전시설이 완비되어 있기 때문에 사고를 예방할 수 있고, 동일한 환경에서 제작해 균일한 품질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사용 중에 평면 변경도 가능하고, 구조 변경 및 유지보수도 용이합니다.

모듈식 건축은 현장에서 조립이 용이하도록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분해가 가능한데요. 이로 인해 분해 시에도 훼손이 적어 주요 자재의 최대 80~90% 가량을 재활용할 수 있고, 상태가 좋은 자재들은 재사용할 수 있어 탄소 배출 측면(기존 방법대비 44% 감소)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는 모듈러 건축 자재의 재활용률은 약 90%에 달하며 폐기율은 약 5% 정도에 달하며, 국내 폐기물 발생량 중 약 46%가 건설폐기물에 해당한다고 발표 했는데요. 폐기물 감소에 큰 역할을 하는 모듈러 건축은 친환경 건축의 미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되고 있습니다.

<모듈러 건축공법 개념도> 출처: 국토교통부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는 모듈러 건축 현황

BRI(business research insight)에 따르면 전 세계 모듈러 건설시장 규모가 2031년에 연평균 성장률 5.4%를 기록해 1억 9,734만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현재 영국은 연간 약 4.2조원의 시장규모를 형성하고 있고, 유럽과 북미 등에서는 전체 건설시장의 약 20~25%가 모듈러 건축이 차지하고 있죠. 일본도 1950년대 심각한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모듈러 주택을 늘려가기 시작해 이미 전체 주택시장의 약 5~7%에 달하는 12~15만 호의 모듈러주택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글로벌 모듈러 건축물 시장 규모 예측> 출처: BRI

우리나라의 경우 모듈러 건축 시장 초창기(2003~2007년)에는 학교와 군 시설 등의 공공건축 시장을 중심으로 건축이 이루어졌습니다. 이후 2012년까지는 해외 자원개발 프로젝트들을 중심으로 수출용 시장이 형성되었고, 호주나 러시아, 괌 등의 해외로 수출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들이 시도되었습니다. 2013년부터 2019년까지는 본격적으로 국토교통부 R&D 사업이 진행되며 다수의 모듈러 공동주택들이 만들어졌죠. 2020년 이후부터는 12층 규모의 고층화에 대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모듈러 건축시장이 세계적으로 큰 폭의 성장세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국내 대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모듈러 사업에 진출하며 활성화를 맞게 되었습니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모듈러 건축 시장은 2022년 1,757억 원에서 1년만인 2023년에는 8,000억 원대로 1년 만에 4배가량 급증했고. 2030년대에는 2조원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모듈러 건축의 적용 과정> 출처: 한국철강협회

 

각 나라를 대표적인 고층 모듈러 건축 사례

영국은 1950년대부터 모듈러 기술을 적용해왔고, 건설 시장 규모, 도시화율이 우리나라와 유사해 국내 모듈러 건축시장 벤치마킹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는데요. 2000년대 이후 고층 주거시설, 호텔, 병원 등의 공공시설 등의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해 연간 25% 성장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텐 디그리 크로이던(영국)> 출처: hdawards

2023년 영국에서 가장 높은 모듈러 건축물인 텐 디그리 크로이던(Ten Degrees Croydon)이 완공되었는데요. 38층과 44층 두 개의 주거용 타워로 연결된 이 타워는 카페, 체육관, 요가 스튜디오, 영화관 등의 레저시설, 공유 작업 공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546실 규모의 상업용 임대 주택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텐 디그리 설계는 영국 건축사무소인 HTA 디자인이 맡았는데, 현장에서 공사를 시작하는 동안 공장에서 약 1,500여 개의 주거용 유닛을 제작하여 현장에 운반해 하나씩 쌓아올려 건설했으며, 모듈러 공법을 통해 통상 건설 과정에서 생기는 탄소 배출량을 40%까지 감축시켰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라 트로브 타워(호주)> 출처: Hickory

이에 앞서 호주는 멜버른에 2016년 11월 44층 규모의 라 트로브 타워(La Trobe Tower)를 완공했습니다. 건축가 로더로우먼(Rothelowman)이 디자인 한 건축물로, 외관은 피아노 건반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구성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학생들의 기숙사로 사용되는 만큼 공부와 사교를 위한 테라스, 라운지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높이 150m에 달하는 이 타워를 시공한 호주의 대표 건설회사인 히코리(Hickory)는 건물을 지을 때 지역 내 교통 혼잡 때문에 저녁에만 공사를 했는데도 19개월 만에 완공해 공사기간을 원래 계획했던 26개월보다 30% 절약했다고 전했습니다.

<애비뉴 사우스 레지던스(싱가포르)> 출처: unitedtec

싱가포르는 국가 주도하에 2015년부터 모듈러 건축 산업의 육성을 위한 인센티브 도입 및 기준 제‧개정 등 제도개선을 통해 모듈러 건축 산업을 빠르게 성장시키고 있습니다. 정부도 모듈러 공법을 일정 비율 이상으로 적용하는 것을 입찰조건으로 내걸며 인센티브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죠. 또한 공영주택은 물론 민간택지를 불하할 때도 모듈러 공법으로 시공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현재 전체 공동주택의 90% 이상을 모듈러 방식으로 짓고 있으며, 그 덕분인지 현재 모듈러 공법으로 지어진 최고층 건물이 싱가포르에 위치해 있습니다. 192m의 56층 애비뉴 사우스 레지던스(Avenue South Residence)는 모듈러 건축의 혁신을 보여주는 사례로 3,034개의 3D 모듈을 사용해 건설되었습니다. 시공을 맡은 ‘유나이티드 테크 컨스트럭션’(United Tec Construction)은 모듈러 건축을 통해 먼지와 소음은 줄이고 근로자의 안전과 품질은 끌어올렸으며 인력과 공사기간을 약 40%까지 감축했고, 각 동을 18개월에 완공했다고 밝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규모로 시도한 모듈러 건축물인 평창동계올림픽 미디어 레지던스입니다. 연면적 1만 305㎡에 3개동 300실 4층 규모로 지어진 국제방송 기자단 숙소는 90% 이상 재활용 가능한 철골 구조를 활용해 기존 공법에 비해 탄소 배출량을 44% 감소시켰습니다. 현장 설치와 마감시간이 6개월, 기타 부대공사 이후 점검까지는 총 8개월이 소요되어 기존 공사기간에 비해 18개월을 앞당겼습니다. ‘iF 디자인어워드 2019’에서 국내 최초로 금상(Gold Award)을 수상한 이 시설은 이후 포스코가 구입하여  직원 및 관계사들의 휴양시설로 활용하고 있어 올림픽 시설의 고질적 문제였던 사후활용 문제해결까지 완벽한 친환경 건축물의 모범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용인영덕 경기행복주택> 출처: 현대엔지니어링

지난 2023년 8월에는 국내 모듈러 주택 고층화에 기틀들 다진 용인영덕 경기행복주택 입주식이 열렸습니다. 높이 13층, 총 106세대의 규모로 지어진 이 주택은 국내 자체 모듈러 기술 33개 주요 공법을 중고층 아파트에 최초로 적용한 사례입니다. 자체 기술로 13층 이상 지은 것은 세계에서 6번째였죠. 그동안 국내 모듈러 주택은 기술적 한계로 인해 12층에 머물 수밖에 없었는데요. 경기행복주택은 내화 기준(13층 이상 모듈러 건물은 3시간 이상 화재를 견뎌야 함)을 통과한 첫 모듈러 주택으로 의미가 매우 큰 프로젝트였습니다. 13층까지 짓는데 약 15개월밖에 걸리지 않아 기존 대비공사기간을 40% 단축했으며, 자재를 재활용하여 탄소저감 효과까지 보여준 이곳은 ‘2023 대한민국 국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모듈러 건축 미래 전망은?

해외에 비하면 아직 우리나라 모듈러 주택 시장규모는 작은 편이지만, 앞으로 성장가능성이 높은 시장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에 발맞춰 2022년 11월 국토부는 모듈러정책협의체(LH공사,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한국철강협회 모듈러건축위원회 및 관련 전문가)를 출범해 모듈러 주택 산업 활성화를 위한 본격적인 정책지원 및 주택법 개정을 통해 높이 제한, 용적률 등의 규제를 완화시키는 방법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그동안 업계에서는 모듈러 건축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설계와 시공 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확장형 일괄입찰방식(모듈러 건축 업체가 설계, 제작, 시공까지 맡는 일)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는데요. 지난 2024년 3월 LH는 세종에 지어질 국내 최대 규모의 모듈러 주택을 스마트 턴키방식으로 추진한다고 밝혀 이목을 끌었습니다. 스마트 턴키는 공사 설계부터 시공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스마트 건설 기술을 적용하는 일괄입찰방식으로, 기존 턴키방식 대비 공사기간을 10~20% 단축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현장 공법 위주의 현행 건축관련 법제도 개선과 인센티브 제공 등 제도적 문제점에 대한 돌파구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국내 건설사들도 이러한 정부의 기조에 발맞춰 모듈러 건축 시장에 뛰어들어 특화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는 등 모듈러 신사업 수주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시장 규모가 점차 커지면 사전 제작품을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되어 비용이 줄어들기 때문에 시장의 선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겠죠.

안전한 건설현장 구현과 생산성의 극대화뿐만 아니라 친환경적이기까지 한 모듈러 건축은 앞으로 기술의 발전과 함께 더욱 정교하고 디자인적으로도 다양한 옵션을 제공하며, 주택 수요 충족을 넘어 더욱 효율적인 지속가능한 건축물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겁니다. 미래 건설 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모듈러 건축. 꾸준한 정책적 지원을 통해 모듈러 건축 산업 저변이 확산되어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더욱 많고 다양한 모듈러 건축물들을 만나볼 수 있게 되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