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와 국제건축사연맹(UIA)은 건축과 도시 디자인 분야에서 역사와 현대성이 조화를 이루며 세계적 가치를 지닌 세 도시를 ‘세계건축수도’로 선정했습니다. 이들 도시는 건축적 정체성을 강렬하게 드러내는 동시에, 지속 가능한 도시 발전의 방향성을 제시하며 전 세계적으로 건축과 도시 디자인의 중요성을 확산하는 데 기여하고 있죠. 세계건축수도가 담고 있는 의미와 함께 각 도시의 독창적인 건축적 특징과, 해당 도시의 건축적 정수를 담아내며 시대를 초월한 미학과 기술적 혁신을 보여주는 대표적 건축물을 살펴봅니다.
건축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UIA(국제건축사연맹)는 세계건축대회 개최를 통해 각 도시의 건축적 중요성을 세계에 알리고 있는데요. 세계인들의 축제인 세계건축대회* 개최와 더불어 대회가 열리는 도시에 더 많은 이목을 집중시키고, 각 도시의 문화유산 보존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기 위해 2018년 11월, UIA는 유네스코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2017년부터 2027년까지의 10년간의 실행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 계획에는 2020년, 2023년, 2026년동안 세계건축대회가 개최되는 도시를 ‘세계건축수도’로 지정하는 이니셔티브가 포함되었습니다.
출처: UIA 홈페이지
유네스코-UIA 공동위원회는 도시의 건축적 유산, 현대 건축의 발전, 지속 가능한 도시 개발에 대한 기여를 평가하는 기준에 따라 신청서를 제출한 도시 중 최대 3개 도시를 선정합니다. 선정된 도시는 제출된 자료를 바탕으로 철저한 심사를 거쳐 최종적으로 발표됩니다.
10년간 유지되는 유네스코와의 협약 덕분에 현재 세계건축수도로 선정된 도시는 리우데자네이루, 코펜하겐, 바르셀로나 단 3곳뿐이죠. 세계건축수도로 선정된 도시는 세계건축대회가 개최된 해로부터 1년 동안 건축 관련 주요 이슈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건축유산을 기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이들 프로그램은 건축 전시회, 워크숍, 건축 투어, 세미나, 공공예술 프로젝트 등으로 구성되며, 도시의 문화적 자산과 건축적 역량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 중요한 기회로 작용합니다. 세계건축대회가 며칠간 진행되는 단기 행사인 반면, 세계건축수도로 선정된 도시는 이러한 관련 프로젝트를 장기간에 걸쳐 진행하는데요. 이는 해당 도시의 국제적 인지도를 높이고, 경제적 활성화는 물론 건축, 경제, 문화적 차원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며, 지속 가능한 건축과 도시 재생 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토마스 보니에르(UIA) 회장은 “유네스코와 함께하는 세계건축수도 지정은 전 세계에서 건축과 도시 디자인의 문화적 가치와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기여할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디자인의 가치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 세계건축대회: 각국을 대표하는 건축 거장들과, 수많은 건축인들이 선정된 도시에 모여 강연 및 포럼, 공개토론회, 건축문화투어 등을 통해 최신 건축 트렌드를 논의하고 미래 발전 방향에 대해 모색하는 시간을 갖는 행사로, 건축계의 올림픽이라 불린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7년 두 번의 도전 끝에 서울에서 세계건축대회를 개최하며 우리나라 도시 건축을 전 세계에 알리고 위상을 높이는 기회를 가졌다.
출처: UIA 홈페이지
2020년 최초로 선정된 세계건축수도는 바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입니다. 세계 3대 미항으로 꼽히는 이곳은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문화적 경관이 매력적으로 혼재된 도시라는 찬사를 받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바 있죠. 6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리우데자네이루는 1763년부터 1960년대까지 브라질의 수도로 기능하며 정치적, 경제적 중심지로 자리 잡은 도시입니다. 예술, 음악, 축제 등 다양한 문화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며 브라질의 문화와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죠.
리우데자네이루는 포르투갈의 식민지 시대 건축 양식부터 현대적이고 혁신적인 디자인까지 다양한 스타일을 아우르고 있습니다. 역사적인 건축물 중 하나인 시립극장은 고전주의와 르네상스 양식이 결합된 형태로 파리의 오페라 하우스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외관을 자랑하고 있는데요. 외부의 정교한 조각과 내부의 화려한 샹들리에, 섬세한 장식 등의 우아한 디자인으로 현재까지 많은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20세기 중반 이후 급속한 현대화가 시작된 리우데자네이루는 기능성과 미니멀리즘을 중시한 모더니즘 건축의 영향을 받아 리우데자네이루 현대미술관, 세하라지 궁전(Palácio da Sé) 등의 현대적인 건축물을 짓게 됩니다. 21세에 들어서 기후변화와 환경문제가 전 세계적인 이슈로 부각됨에 따라 리우데자네이루도 지속가능한 건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저탄소 도시로 발전하기 위해 녹색 건축과 에너지 효율성을 고려한 건축물들을 설계하고 있는데요. 도시 내 자연환경과 공공 공간을 복원해 도심과 사람, 자연을 연결하는 선형공원(파르케 마데이라, 파르케 라지 오 등) 프로젝트, 파빌리온 에코파(리우올림픽과 패럴림픽에 사용된 경기장으로 재활용된 자재와 태양광 패널을 사용해 에너지를 자급자족하는 구조로 설계), 리우데자네이루 시청청사(태양광패널 설치, 고효율 HVAC(냉난방공조) 시스템 및 녹지공간 도입) 등 환경보호와 도시 발전을 동시에 추구하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혁신적인 건축물들을 건설해가고 있습니다.
① 브라질 모더니즘 건축의 시작점, 오스카 니마이어와 니테로이 현대미술관
출처: Pexels
다채로운 리우의 역사와 문화를 반영한 건축물들로 가득한 만큼 건축적으로 중요한 도시이자 매력적인 도시로 손꼽히며 많은 관광객들이 리우데자네이루를 찾고 있는데요. 이곳은 20세기 건축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꼽히는 오스카 니메이어와 같은 세계적 건축가를 배출한 곳이기도 합니다. 곡선을 통해 독창성과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그는 건축이 단순히 건물이 아닌 사람들에게 변화를 가져다주는 도구가 되길 바라며 건축을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힘썼습니다. 1956년 브라질 정부는 해안지역에 집중된 인구를 내륙으로 분산시키기 위해 브라질리아로 수도를 옮기기 위한 준비를 했는데요. 오스카 니마이어가 브라질리아 프로젝트를 맡아 주요 건축물들을 설계하며 기존 도시 설계방식과 다른 전혀 새로운 형태의 건축물들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리우데자네이루에도 그가 설계한 건축물이 있는데요. 고유한 원형 디자인이 특징인 니테로이 현대미술관은 외관 그 자체가 예술작품처럼 보일만큼 예술적이고 실험적인 요소들을 반영한 건축물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니마이어의 가장 유명하고 혁신적인 작품 중 하나로 꼽힙니다. 1996년 완공된 이곳은 공중에 떠 있는 UFO를 연상시키는데요. 둥근 구조물이 해안과 맞닿아있어 마치 바다에 떠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② 종교시설을 넘어선 현대건축의 성지, 성세바스찬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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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데자네이루 도심 한복판에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거대한 콘크리트 피라미드가 우뚝 솟아있습니다. 1976년 높이 75m, 지름 106m의 거대한 원뿔형 구조로 완공된 대성당은 건축가 에드가 폰세카가 마야의 피라미드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한 작품입니다. 당시 전통적인 고딕 양식의 성당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파격적이고 대담한 디자인으로 주목받으며 단순한 종교 시설을 넘어 브라질 현대 건축의 대표적 예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2만여 명 정도 수용이 가능한 넓은 규모의 천장부터 바닥까지 이어지는 네 개의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으로 스며드는 자연광은 성당 내부에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며 외부의 콘크리트가 주는 차가움과 대비되는 신비로운 감동을 선사합니다.
③ 우리 모두를 위한, 내일의 박물관
2016년 리우올림픽 개최를 위한 도시 재개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15년에 개관한 내일의 박물관은 낙후된 항구지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지속 가능성, 환경 보호, 기술 발전 등을 테마로 인류와 지구의 미래를 탐구하는 전시들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어 미래의 상징이자 리우데자네이루의 현대화의 상징으로 손꼽히고 있죠. 생물학적인 조형미와 구조공학적인 설계로 유명한 스페인 건축가인 산티아고 칼라트라바가 설계한 만큼 외관 또한 미래적이고 유기적인 형태를 띠고 있는데요. 우주선이나 혹은 거대한 고래나 공룡, 새의 뼈대를 떠오르게 하는 모습으로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무엇보다 이 건물은 지어질 때부터 친환경적인 건축물로 관심을 받았는데요. 건물 천장에 태양광 패널을 사용해 40% 가량 에너지를 절약하고, 주변 바닷물을 냉각시스템에 활용하여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했으며 빗물 재활용시스템으로 물 사용량 또한 최소화하는 등 ‘내일의 박물관’이라는 이름처럼 미래를 위한 지속 가능한 건축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영감을 주는 건축물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출처: UIA 홈페이지
2023년 7월 2일 UIA 세계건축대회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이 말은 곧 코펜하겐이 두 번째 세계건축수도로 선정되었다는 뜻이죠. 코로나 팬데믹으로 아쉽게 온라인으로 개최되었던 지난번 세계건축대회의 아쉬움을 덜기위해 전 세계 135개국 6,000명이 넘는 인원이 코펜하겐을 찾아 사례발표와 토론회, 연구논문 발표 등의 활발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건축인들에게 덴마크 코펜하겐은 지속가능한 건축물과 공공기관으로 가득 찬 도시인데요. 친환경성을 국가 기치로 내세우는 만큼 수도인 코펜하겐은 2021년 TimeOut에서 세계에서 가장 지속 가능한 도시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1950~1970년대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던 시기에 고도의 성장발전을 이룬 코펜하겐은 이후 환경과 자원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점차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지속가능한 건축에 주목했고, 이러한 의지는 건축물을 통해서도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에너지 절약형 건축과 함께 공공교통 시스템의 확장(1962년부터 2023년까지 4단계에 걸친 도시계획을 통해 보행과 자전거 중심의 도시구조의 변화를 이룸), 녹지 공간 확대 등의 도시계획을 함께 추진했고, 이후 코펜하겐은 녹색 건축의 중요한 거점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기능성과 미니멀리즘, 지속가능성을 핵심으로 진화해온 코펜하겐은 20세기 중반부터 오늘날까지 혁신적인 건축물들을 탄생시켰습니다.
① BIG, 공동체의 조화와 더불어 혁신적 생활공간을 선사하다!
출처: BIG 홈페이지
덴마크 출신의 세계적 건축가인 비야케 잉겔스(Bjarke Ingels)는 코펜하겐에 본사를 둔 BIG(Bjarke Ingels Group)의 설립자로, 다양한 지속 가능한 건축 프로젝트를 통해 도시 환경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코펜하겐의 유명한 랜드마크 중 많은 건축물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는데요. 폐기물 처리 시설을 시민들이 즐길 수 있도록 인공 언덕과 스키 슬로프가 있는 혁신적인 공간으로 재해석한 열병합 발전소인 아마게르 바케 (Amager Bakke), 다양한 주거공간과 상업시설이 어우러진 친환경 복합건축물인 8 House도 그의 작품이죠.
코펜하겐 북쪽 해안의 프레데리시아(Frederiksberg)에 위치한 The Mountain Dwellings도 빼놓을 수 없죠. 2008년에 완공된 The Mountain Dwellings은 계단 모양의 독특한 외관으로 아랫집 옥상이 윗집의 정원이 되는 구조의 아파트인데요. 주민들의 상호작용과 커뮤니티를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멀리서보면 계단식 논밭같기도 한 이곳은 아파트가 아닌 전원주택에 사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기존의 주거 건축과 다른 새로운 접근으로 신선한 활력을 선사하는 이 아파트는 독특한 디자인뿐만 아니라 태양광 패널과 친환경적인 건축 자재를 사용해 건물 냉난방 비용을 절가하고 빗물 수집시스템과 스마트 에너지 관리시스템을 도입해 에너지 사용을 최적화하며 사람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향한 건축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② 스마트시티로 재개발되는 노하운
출처: Nordø 홈페이지
세계건축수도로 선정된 코펜하겐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을 손꼽자면 바로 이곳, 노하운(Nordhavn) 구역일텐데요. 코펜하겐은 과거 산업과 물류 중심지였던 노하운을 스마트 지구로 변모하고자 대규모 재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환경 친화적 기술과 도시 인프라가 접목된 미래 도시 모델을 만드는 것이었죠. 55,000㎡ 규모에 115개의 주택과 공공 공간 등을 조성해 2023년부터 입주를 시작했는데요. 탄소배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태양광 패널, 지열시스템, 해상 풍력 발전 등을 결합해 도시 내 에너지 수요를 충당할 수 있게 했으며, 스마트 그리드를 통해 실시간 에너지 사용을 관리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또한 자동차 사용을 줄이기 위해 전기차와 공유 모빌리티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으며, IoT 기술이 적용된 다양한 스마트 시스템(실시간 데이터 기반의 교통 및 에너지 관리시스템, 쓰레기 수거 시스템 등)으로 효율적이고 최적화된 모습으로 도시 운영을 해나갈 계획이죠.
노하운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는 2050년까지 단계별로 개발될 예정인데요. 친환경기술과 혁신적 도시 계획이 결합된 지속가능한 도시모델로서 전세계적인 스마트시티 개발의 중요한 벤치마크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③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UN17빌리지
UN빌리지는 UN의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를 모두 반영한 세계최초의 주거단지입니다. 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는 인간, 지구, 번영, 평화, 파트너십이라는 5개 영역을 세분화해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17개 목표로 정리한 UN의 비전적인 계획으로 2015년 9월 유엔 총회에서 채택되었습니다. 두 번째 세계건축수도이자 세계건축대회를 개최한 코펜하겐은 건축과 도시디자인이 17개 지속가능발전 목표를 달성하는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해 논의를 거듭했고, 그 결과 재개발프로젝트의 일환으로 UN빌리지를 짓게 되었습니다.
환경제품선언(EPD) 인증*을 받은 저탄소 콘크리트를 사용해 기존 시멘트보다 탄소배출량을 30% 줄였으며, 건물 옥상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에너지를 자급자족할 수 있게 설계했습니다. 건축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은 100% 재활용하여 순환경제 실현에 앞장섰는데요. 이에 LEED(미국), BREEAM(영국)과 함께 세계 3대 친환경 건축 인증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는 DGNB(독일 지속가능 건축협회)에서 Gold/Platinum 레벨(환경적, 경제적, 사회적 지속가능성이 매우 우수), DGNB Heart(사람 중심의 건강하고 쾌적한 실내환경을 제공), WELL(입주자의 건강과 웰빙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건축물)로 인증 받기도 했죠. 또한 다양한 연령층이 어우러지는 다양한 공간을 만들고, 5개 건물마다 각각의 커뮤니티 매니저를 두는 등 입주민들의 교류를 촉진하는 커뮤니티 중심의 환경을 조성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기후 발자국을 줄이는 동시에 양질의 커뮤니티를 제공하는 주거용 건물인 이곳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지속가능한 라이프스타일을 직접 체험하며 만족도 높은 삶을 즐기고 있습니다.
* 환경제품선언(Environmental Product Declaration) : 제품 전과정(원료물질 취득, 제품 생산, 유통, 사용, 폐기)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탄소배출량) 등 환경영향을 정량적으로 공개하는 제도로, 여러 환경성 정보(원발자국, 탄소발자국, 오존층영향, 산성비 중) 중 온실가스 배출량(탄소발자국) 정보를 포함하고 있어 국제 탄소규제 대응을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부각되고 있다.
출처: UIA 홈페이지
리우데자네이루와 코펜하겐을 거쳐 2026년 세계건축수도의 타이틀은 스페인의 바르셀로나가 넘겨 받았습니다. 유네스코-UIA는 바르셀로나를 선정한 이유로 도시의 독특한 건축과 도시 정체성 등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고 밝혔는데요. 그만큼 바르셀로나는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풍부한 건축적 유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르셀로나에 유독 독창적 건물들이 많은 이유는 19세기 초 바르셀로나에서 시작한 도시 구조 계획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인구 과밀로 인해 도시 확장의 필요성을 느낀 바르셀로나는 새로운 격자형 거리 체계를 만들었는데요. 주요 골자는 자동차와 사람들이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도시를 작은 정사각형과 직선도로들로 나누는 것이었죠. 또한 교차로를 넓게 쓰고 가시성을 좋게 하기 위해 모든 모서리를 45도로 자르기도 했습니다. 이후 건축가들은 이러한 격자 도로에 맞는 건축물을 설계하기 시작했고, 결론적으로 격자 도로는 바르셀로나 건축에 많은 영향을 끼치며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바르셀로나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가우디의 대표작 중 하나인 카사밀라도 건물의 모시리를 둥글게 만들어 자연스럽게 주변 도로와 어우러지도록 설계되었다고 하죠. 바르셀로나는 안토니 가우디와 같은 독창적인 건축가들의 유산뿐 아니라 그의 스승인 도메네키 이 몬타네르,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으로 불리는 미스 반 데어 로에 외에도 현대 건축을 선도하는 장 누벨, 라치드 마이어, 헤르조그& 드 뫼롱 등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활동한 도시로, 전통적인 건축물과 현대적인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매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오랜 역사와 문화, 예술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건축물을 보기위해 바르셀로나를 찾고 있습니다.
① 미완성의 걸작품,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출처: 사그라다 파밀리아 홈페이지
가우디의 건축으로 가득한 바르셀로나를 거닐다보면 초현실적 동화 속을 여행하는 기분이 들죠. 빛과 색, 질감, 형태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강렬하고 깊은 인생을 남기는 가우디의 건축은 보는 것만으로 그의 삶을 생생하게 경험하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합니다. 바르셀로나의 상징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가우디 사후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건설이 계속되고 있는데요. 가우디는 기존의 고딕양식을 발전시켜 보다 자연스럽고 유기적인 형태로 변형시켰습니다. 또한 이 성당을 ‘신을 찬미하는 거대한 성경’이라 표현하며, 건축을 통해 신앙을 담아내고자 43년간 건축에 헌신했죠. 그래서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평생 동안 탐구해온 자연주의, 구조적 혁신, 종교적 신념을 담아낸 가우디 건축의 정점이자 가우디 정신의 결정체라 불리고 있습니다. 독특한 곡선 형태와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디테일로 바르셀로나의 랜드마크가 된 사그라다 파밀리아외에도 바르셀로나에는 다채로운 모자이크 타일이 특징인 카사 바트요, 환상적인 색감으로 동화 속 세상에 온 듯한 느낌을 주는 구엘공원 등 혁신적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는 건축물로 가득한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건축 덕분에 살아있는 예술 도시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② Less is More, 미스 반 데 로에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출처: 파빌리온 홈페이지
모더니즘 건축의 대표작이라 불리는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은 1929년 국제전시회를 위해 지어진 건물입니다. “Less is More”로 요약되는 미스 반 데 로에의 작품으로 단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건물 내부 또한 복잡한 장식 또한 거의 없는 아주 간결하고 단순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대신 대리석과 오닉스 등의 고급 자재를 사용해 건물의 내외부를 꾸몄고, 이 소재들은 자연광을 반사시켜 공간에 깊이를 더했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는 유리와 철의 조화인데요. 투명한 유리벽을 통해 내외부의 경계를 허물어 공간의 개방성과 유동성을 높였습니다. 미스 반 데어 로에는 건축적 순수성과 기능적 미학으로 공간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여러 차례에 걸쳐 끊임없이 설계 도면을 수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죠. 전시회가 끝난 후 철거 예정이었지만 역사적 가치와 건축적 중요성을 인정받으며 1986년 복원되어 현재의 모습으로 재탄생되었습니다.
③ 빛과 곡선으로 빗어낸 바르셀로나의 보석, 장 누벨의 아그바르 타워
2005년 144m, 38층의 초고층 빌딩으로 완공된 아그바르 타워. 장 누벨은 바르셀로나의 문화적 유산과 현대적 기술을 융합한 건축물을 설계하고자 했는데요.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종탑과 바르셀로나 몬세라트 산맥의 부드러운 곡선에서 영감을 얻어 원통형의 매끈한 곡선 형태의 타워를 탄생시켰습니다.
또한 장 누벨은 빛의 건축가라 불리는 만큼 아그바르 타워도 그의 철학을 잘 반영하고 있는데요. 약 4,500개의 유리 패널과 60,000개의 알루미늄 패널로 덮어 낮과 밤에 따라 다채로운 색을 발산하도록 했습니다. 전통과 혁신, 도시와 자연, 건축과 빛이 어우러진 현대적인 건축물로 아름다움뿐 아니라 최첨단 냉각시스템 도입과 태양열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고 채광을 극대화하는 이중구조로 설계되어 친환경적인 면에서도 뛰어난 건축물로 손꼽힙니다.
2020년, 2023년, 그리고 2026년까지 선정된 세 곳의 세계건축수도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건축적 실험의 중심지이자, 지속 가능하고 창의적인 도시 디자인이 실현되는 무대입니다. 세계건축수도는 단순한 명예를 넘어, 건축과 도시 디자인의 혁신을 선도하며 도시의 정체성을 더욱 강화해 나가고 있는데요. 이러한 변화는 건축 산업뿐만 아니라 관광과 경제 발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사람과 자연, 문화가 조화를 이루는 풍요로운 환경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미래 건축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세계건축수도는 지속 가능한 도시의 방향을 제시하며, 전 세계에 깊은 영감을 불어넣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