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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과 서비스의 전 주기 탄소 배출량을 잡아라! ‘회피된 배출’의 의미와 중요성

2025-07-08

제품과 서비스의 전 주기 탄소 배출량을 잡아라!  ‘회피된 배출’의 의미와 중요성

기존 온실가스 배출량은 배출원에 따라 스코프 1, 2, 3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분류는 주로 기업 차원의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요. 기업 활동이 직접 생산 뿐 아니라 복잡한 공급망과 가치 사슬에 걸쳐 이루어지기 때문에, 스코프 1(직접 배출)과 스코프 2(구매한 전기·열 등으로 인한 간접 배출)에 대한 관리가 상대적으로 활발한 편입니다. 반면, 스코프 3(공급망 등 외부 활동으로 인한 간접 배출)은 측정과 관리가 어렵고 복잡해 효과적인 통제가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출처: WRI/WBCSD Corporate Value Chain (Scope 3) Accounting and Reporting Standard (pdf), page 5.

스코프 3 관리의 한계와 기후위기 대응의 실효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최근에는 가치사슬 외부에서 발생하는 ‘회피된 배출(Avoided Emissions)’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이를 ‘스코프 4’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회피된 배출’에 모두가 주목하는 이유  

‘회피된 배출(Avoided Emissions)’은 제품의 수명 주기나 가치사슬 외부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 기여한 효과를 정량화한 개념입니다. 즉, 소비자가 제품이나 서비스를 선택할 때,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것 대산 덜 배출하는 것을 사용하면서 저감하게 된 온실가스 감축량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연료 소비를 줄여주는 타이어, 물을 데우지 않고도 사용할 수 있는 저온 세제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 개념은 세계자원연구소(WRI)와 세계경제포럼(WEF), 세계지속가능발전위원회(WBCSD) 등 주요 글로벌 기관들이 정의를 정립하고 논의의 틀을 마련하며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국제 탄소회계 표준에 공식적으로 포함되지 않았고, 보고 의무도 없는 만큼 보편적인 기준이나 합의는 형성되지 않은 상태지만, 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스코프 4(Scope 4)’ 또는 ‘탄소 손자국(Carbon Handprint)’ 등의 용어로 불리며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회피된 배출’에 주목하는 이유는 현재의 기후변화 대응 전략만으로는 온실가스 감축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관리되고 있는 스코프 1, 2, 3 배출량만으로는 급격한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에 부족하다는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제품이나 서비스의 사용단계에서 기여하는 감축 효과까지 적극적으로 고려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도 회피된 배출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개념입니다. 친환경 상품·서비스 개발에 대한 투자를 유도하고, 고객에게 자사의 제품이 어떻게 기후 위기에 대응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지속가능성 관점에서 경쟁사와 차별화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회피된 배출’ 측정 방법

그렇다면 ‘회피된 배출’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요? 세계자원연구소(WRI)는 회피된 배출을 정량화하기 위해 두 가지 대표적인 접근 방식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바로 귀인적 접근법(Attributional Approach)과 결과적 접근법(Consequential Approach)입니다.

출처: Guidance on Avoided Emissions from WBCSD

먼저 귀인적 접근법은 제품의 전체 수명 주기(Life Cycle Assessment, LCA)를 기준으로, 기존 제품과 비교했을 때 저탄소 제품이 얼마나 온실가스를 덜 배출하는지를 정량화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전기차의 회피된 배출량을 계산하려면, 전기차와 내연기관차 각각의 생산, 운행, 폐기 등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평균 온실가스 배출량을 비교해 그 차이를 회피된 배출로 간주합니다.

반면, 결과적 접근법은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의 사용이 시스템 전반에 어떤 변화를 유발하는지를 분석하는 방식입니다. 단일 제품의 비교를 넘어, 해당 기술이나 서비스의 도입이 시장 구조, 에너지 믹스, 정책 환경 등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포괄적으로 평가합니다. 예를 들어,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했을 경우, 설치하지 않았다면 기존의 화석연료 기반 발전이 얼마나 더 가동됐을지를 가정하고, 그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 차이를 회피된 배출로 계산합니다. 이 접근법은 정책, 수요, 기술 변화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하므로 더 복잡하고 폭넓은 분석이 요구됩니다.

회피된 배출의 정량적 측정은 일반적으로 세 단계를 거쳐 이루어집니다. 친환경 제품이나 서비스가 없었다면 사용됐을 것으로 예상되는 기존 제품 또는 서비스를 기준 시나리오로 설정합니다. 성능이 유사한 일반 제품이 그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다음, 기업의 친환경 제품, 서비스 또는 기술을 적용한 뒤, 생산부터 사용, 폐기까지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제 온실가스 배출량을 측정합니다. 기준 시나리오에서의 배출량에서 실제 배출량을 차감하여 회피된 배출량을 산출합니다.

 

회피된 배출’ 정량화를 위한 노력

이처럼 회피된 배출은 단순한 탄소 감축 수단을 넘어, 정책·산업·금융 전반에서 넷제로 전략을 실현하기 위한 핵심 개념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이를 정확히 측정하고 인정하기 위한 국제적 기준 마련 논의도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세계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WBCSD)는 2017년부터 회피된 배출 개념에 대한 논의를 이어오고 있으며, 2023년에는 넷제로 이니셔티브(Net-Zero Initiative)와 함께 ‘회피된 배출 산정 지침(Guidance on Avoided Emissions)’을 발표했습니다. 이 지침은 기업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통해 글로벌 탄소중립(Net Zero)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정량화할 수 있는 기준을 공식화한 것입니다.

출처: WBCSD

정책 차원에서도 회피된 배출에 대한 논의는 확대되고 있는데요. 2023년 4월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G7 기후·에너지·환경장관 회의에서는 회피된 배출의 가치에 대한 공감이 형성되었고, 이를 장려하는 방향의 공동성명이 발표되었습니다. 이는 국제 정책 논의에서도 회피된 배출을 정식 아젠다로 다루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금융 분야에서도 회피된 배출은 중요한 이슈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탄소회계금융협의체(PCAF)는 금융기관이 대출 및 투자활동과 관련해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측정·공시할 수 있도록 글로벌 표준을 개발 중이며, 최근에는 회피된 배출을 포함한 새로운 측정 프레임워크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는 기업의 저탄소 기술이나 프로젝트가 고탄소 활동을 대체함으로써 발생하는 감축 효과를 평가하고, 금융기관이 산업의 탈탄소화를 지원하면서 새로운 투자 기회를 확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입니다.

또한, 2050년 넷제로 달성을 목표로 한 세계 금융기관 연합체인 글래스고금융연합(GFANZ)은 2023년 기후 금융 활성화를 위한 새로운 지표인 ‘배출 노출량 감소치(Emissions Exposure Reduction, EER)’를 발표하기도 했는데요. 이 지표는 아무런 조치가 없었을 경우의 예상 배출량과, 금융기관이 지원한 기업이 전환 계획을 실행하거나 고탄소 자산을 폐쇄함으로써 발생하는 실제 배출량 간의 차이를 측정합니다. 이는 금융기관의 간접적인 탄소 감축 기여를 평가하려는 지표로, 회피된 배출과 유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회피된 배출을 ESG 지표로 활용하는 기업들

회피된 배출 감축을 위해 노력하는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슈나이더 일렉트릭을 꼽을 수 있습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과 글로벌 통계조사기관 스태티스타(Statista)가 공동 발표한 ‘2025년 세계에서 가장 지속가능한 기업’ 1위에 선정되기도 했는데요. 2030년까지 전체 가치사슬에서 절대 탄소배출량을 25% 감축하고, 2050년까지 넷제로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지속가능경영 프로그램인 ‘Schneider Sustainability Impact(SSI) 2021-2025’를 수립, 고객의 에너지 효율 향상과 탈탄소 전환을 적극 지원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배전 시스템이 아닌 에너지 효율이 높은 속도 가변 드라이브를 도입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약 1억 8천만 톤의 온실가스 배출을 방지했으며, 고객의 탈탄소화를 지원하는 다양한 솔루션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2025년 보도에 따르면,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지금까지 고객이 총 6억 9,700만 톤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도록 지원했다고 전해집니다.

이처럼 최근에는 회피된 배출을 측정해 ESG 지표로 활용하는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테슬라, SK이노베이션, 지멘스 등 일부 선도 기업들은 회피된 배출량을 자발적으로 산출해 공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테슬라는 동급 내연기관 차량과 자사 전기차의 주행 중 탄소배출량을 비교해 회피된 배출량을 계산했으며, 2023년 한 해 동안 약 2,00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줄였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회피된 배출은 아직 국제적으로 통일된 산정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기업이 임의로 유리한 방식으로 수치를 설정할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이에 따라 실제 감축 효과와 괴리가 있을 수 있으며, 자칫하면 ‘그린워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회피된 배출’을 주목하는 이유는, 이 개념이 기후 대응의 핵심 요소로 점점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 UN글로벌콤팩트, 세계자원연구소(WRI), 세계자연기금(WWF) 등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과학기반 감축목표 이니셔티브(SBTi)는 2024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기업의 직접적인 운영을 넘어 원자재 조달, 운송, 제품 사용 및 폐기 등 전 가치사슬에 걸친 배출량 완화(BVCM: Beyond Value Chain Mitigation)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Scope 1, 2, 3을 넘어서 외부에서 발생한 탄소배출까지 줄이는 데 기업이 기여해야 한다는 의미인데요. 이런 경향 하에 ‘회피된 배출’은 단순한 ESG 보고 지표를 넘어 기후변화 대응 전략의 핵심 성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스코프4, 탄소중립, 회피된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