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정부는 기존의 환경부를 ‘기후에너지환경부’로 확대 개편하면서 전력과 재생 에너지, 에너지 효율 등의 주요 기능을 통합해 이와 관련된 모든 정책을 총괄할 수 있도록 하는 대대적인 변화를 감행했습니다. 이번 조직 개편을 통해 현재 전 세계를 관통하는 흐름이라 할 수 있는 기후·에너지 정책을 강화함은 물론, 화석연료가 아닌 재생에너지 중심의 대전환 시대를 가속화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한 것인데요.

2025년 상반기 전 세계 전력 수요 증가율 대비 태양광 및 풍력 발전량 비교, 출처: 글로벌 기후·에너지 싱크탱크 엠버(Ember)의 ‘2025년 글로벌 전력 중간 분석’ 보고서
지난해 글로벌 기후·에너지 싱크탱크 ‘엠버(Ember)’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를 기점으로 전 세계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처음으로 석탄 발전량을 추월했습니다. 실제로 엠버의 분석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풍력과 태양광을 포함한 재생에너지원은 지난해 1월부터 6월까지 전 세계에서 5,072TWh(테라와트시)의 전력을 생산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같은 기간 전체 석탄 발전량 4,896TWh를 훌쩍 넘어서는 수치로, 전 세계 전력원의 33.1%를 기록한 석탄을 제치고 34.3%를 차지하면서 명실상부 최대 전력 공급원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오랜 기간 이어져 온 석탄 중심의 전력 구조를 벗어나게 되는 첫 번째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 것이죠.

2025년 상반기 재생에너지 발전과 기타 발전량 추이 비교, 출처: 글로벌 기후·에너지 싱크탱크 엠버(Ember)의 ‘2025년 글로벌 전력 중간 분석’ 보고서
반면, 우리나라는 국제 기후단체들이 발표한 2026년 기후변화대응지수(CCPI: Climate Change Performance Index 2026) 발표에서 온실가스 배출, 재생에너지 전환, 에너지 사용 등의 주요 항목에서 낮은 점수를 받으며 평가 대상 67개국 가운데 63위를 기록하는 등 기후위기 대응에 구조적인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적극적인 정책 변화와 이행이 시급하다는 공감대 하에 정부는 기후에너지환경부 신설을 시작으로, 기후 위기 대응과 지속 가능한 에너지 전환을 위한 다양하고 새로운 정책들을 시행하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에너지 정책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전국의 주요 산업 거점과 재생 에너지를 연결하는 ‘에너지 고속도로’입니다. 주로 해안가에 집중되어 있는 재생에너지 생산지에서 전력의 주요 소비처가 모여있는 수도권 지역이나 각 지역에 위치한 반도체, AI 관련 산업단지까지 전력 손실을 최소화하고 동시에 장거리 전송이 가능하게 하는 것인데요. 이를 통해 지역간 전력 공급 불균형과 에너지 병목 현상을 해소함은 물론, 급증하는 전력 수요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간 우리나라는 발전소가 있어도 지역 주민의 반대 등으로 송전망을 추가로 건설하지 못해 전력 생산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재생 에너지를 생산해도 전력 수요가 많은 수도권까지 이를 전달해줄 송전망이 확보되지 않아 에너지 활용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동해안 지역에 건설된 발전소들의 총 설비 용량인 17.9GW 중 송전망이 부족해 가동되지 못한 전력이 7.4GW에 달합니다. 호남 지역에도 재생 에너지 발전 설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생산된 전기를 대규모로 수송할 수 있는 154kV(킬로볼트) 송전 선로가 겨우 2개에 불과해 제대로 활용이 어려운 상황이죠. 실제 이 전력들을 모두 활용하기 위해서는 36개의 송전선로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AI와 반도체 산업의 성장, 전기자동차의 확산, 극단적인 기후 변화 등으로 인해 현재 우리나라의 전력 수요는 나날이 급증하고 있는 상황과, RE100 등 전세계적인 재생 에너지 사용 확대 트렌드에 부응하기 위해 재생 에너지 생산 및 사용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것은 이제 필수 불가결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대안이 ‘에너지 고속도로’인 것이죠.
에너지 고속도로를 성공적으로 구축하기 위해서는 ‘초고압직류송전(High Voltage Direct Current: 이하 HVDC)’이라고 하는 첨단 기술이 필수적인데요. 직류 송전은 기존의 교류 방식보다 전력 손실이 10분의 1 수준으로 현저히 적고, 대규모의 장거리 송전에도 유리합니다. 또, 전자파 발생이 적고 필요한 송전탑의 수가 대폭 줄어든다는 점에서 환경적인 영향 역시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변압 과정이 단순하고, 서로 다른 주파수 계통의 전력망 연계가 가능하기 때문에 재생 에너지를 송전 하는데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나라는 서남권 해상 풍력 20GW를 수도권으로 공급할 수 있는 수준의 HVDC망을 2030년까지 서해안 전역에 건설하는 1단계 에너지 고속도로 계획을 시작으로, 2단계 서해와 남해를 거쳐 3단계 동해와 제주까지를 모두 잇는 한반도 U자형 전력 인프라망을 2040년까지 구축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재생 에너지 송전 인프라 확대를 위한 장기 프로젝트에 돌입한 상황입니다.
최우선으로 추진되고 있는 1단계 에너지 고속도로는 신해남-태안-서인천(약 430km), 새만금-태안-영흥(약 190km) 등 서해안을 따라 약 593~627km에 달하는 구간에 걸쳐 건설될 예정으로, 총 사업비는 11~12조 원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이들 두 구간에 해저 케이블을 설치해 서해상의 풍력발전으로 생산된 전기를 수도권까지 직접 송전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현재 한국전력과 국내 민간기업들은 동해안-수도권 HVDC 사업 1단계 구간에 쓰일 525kV HVDC 해저 케이블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전체 에너지 고속도로 구간 중 약 250km 정도가 우선적으로 구축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 용량은 2025년 6월 기준 35.1GW에서 2030년엔 78GW 이상으로 확대되고, 주요 인프라인 송전 선로는 현재의 37,169C-km(서킷 킬로미터: 송전 선로의 회선 길이를 나타내는 단위로, 송전 선로의 길이에 회선 개수를 곱한 값) 수준에서 30% 이상 늘어나 2030년에는 48,592C-km까지 확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여기서 1GW는 우리나라 전남 영광에 위치한 한빛원전 1호기에서 1시간 동안 생산되는 전력량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단계별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 계획, 출처: 한국남부발전㈜
이처럼 총 3단계에 걸쳐 진행되는 단계별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 사업이 모두 성공적으로 수행될 경우, 호남권을 비롯한 서해안 지역에서 생산한 재생에너지를 수도권 등의 주요 전력 수요 지역으로 안전하게 송전할 수 있게 되어 전력 수급의 안정성을 대폭 높일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서남권을 비롯한 지역의 전력 자립과 고른 분배, 산업 활력을 동시에 높여줄 지역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 구축을 통해 송전으로 거둔 이익을 지역 주민들이 함께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전력망은 대규모 발전소에서 전력을 생산하고, 필요한 곳에 송전하는 중앙집중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여러 지역에서 소규모로 전기를 생산하는 재생 에너지 환경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재생에너지 생산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지역에서 생산한 에너지를 다양한 지역에 고르게 배분할 수 있는 지역 분산형 에너지 체계로의 전환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여기에는 단순한 송전의 의미를 넘어 공급자와 소비자가 양방향으로 실시간 정보를 주고받으며 에너지 효율을 최적화하는 지능형 차세대 전력망인 스마트 그리드(Smart Grid)와 에너지 저장장치(ESS), AI 제어기술 등을 포함한 통합형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가 담겨있습니다.
우리보다 앞서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과 이를 위한 송전망 구축에 집중해온 유럽은 어떨까요? 유럽은 일찌감치 국가간에 HVDC 전력망을 촘촘하게 연결해 에너지 시장을 하나로 통합하고, 재생 에너지 활용을 극대화하는 초국가적 에너지 인프라 프로젝트인 ‘유럽 슈퍼 그리드((European Super Grid)’ 계획을 추진해 왔습니다. 이러한 유럽의 에너지 전환 전략의 일환으로, 네덜란드 국영 전력회사 테네트(TenneT)의 주도로 북해 해상 풍력 단지에서 생산된 전력을 독일과 네덜란드 내륙으로 연결하는 대규모 HVDC망 설치 사업을 꼽을 수 있는데요. 현존하는 최고 전압인 525kV 수준의 HVDC 대규모 해저 케이블을 건설함으로써 유럽 전역의 전력 안정과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는데 기여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편, 2023년 과감하게 탈원전을 단행하며 2035년까지 재생에너지 100%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는 독일은 북부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풍력 및 태양광 발전 시설에서 생산된 전기를 남부의 공장 지역까지 빠르고 안정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일명 ‘전기 아우토반(Stromautobahn)’이라 불리는 독일 최대 규모의 송전망 확장 사업인 ‘쥐트링크(SuedLink)’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기존 송전탑 건설 방식로 인한 주민 반발을 줄이고, 환경 및 미관 문제 등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약 700km 길이의 HVDC망 전 구간을 땅 속에 건설하는 ‘지중화(地中化)’ 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눈에 들어오는데요. 이를 위해 지상 송전망보다 최대 10배나 많은 비용(약 16조 원)을 투입하고 있으며, 주민 참여와 투명한 정보 공개 등을 통해 주민 갈등을 해소하는 일에도 주력하고 있습니다.
영국과 덴마크 간에도 2023년 ‘바이킹 링크(Viking Link)’라는 이름의 세계에서 가장 긴 해저 HVDC 송전망이 연결되어 본격적인 가동을 시작했습니다. 총 765km 길이에 덜하는 이 해저 케이블은 덴마크의 국영 운영 기관인 에네르기넷(Energinet)과 영국의 내셔널 그리드(National Grid)가 합작 투자를 통해 4년에 걸쳐 건설한 것으로, 총 19억2천만 달러(한화 약 2조5,171억 원)가 소요됐습니다. 완전히 다른 전력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두 나라가 친환경 전력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위해 공동으로 인프라를 구축하고 발 빠르게 대응한 사례입니다. 이미 운영 첫 해에 약 50만 톤의 탄소 배출을 줄이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유럽의 에너지 안보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영국과 덴마크를 잇는 해저 HVDC 케이블 및 기타 전력망 인프라, 출처: 바이킹링크(viking-link.com)유럽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에서도 전력망 확충 사업은 빠른 속도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2024년 10월 미국 에너지부는 4개의 대형 전력망 구축 프로젝트에 총 15억 달러(한화 약 2조230억 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는데요. 이 중 텍사스(Texas)와 루이지애나(Louisiana), 미시시피(Mississippi) 주를 잇는 ‘서던 스피릿(Southern Spirit)’과, 오클라호마(Oklahoma) 주의 ‘시마론 링크(Cimarron Link)’가 HVDC 송전망을 건설하는 프로젝트들입니다. 미국의 이러한 계획은 6개 주에 걸쳐 약 1,000마일의 신규 송전선을 건설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약 7,100MW의 신규 발전 용량을 수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됩니다. 또한, 향후 미국의 전력망 확충과 현대화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의 대규모 투자 전력망 구축 프로젝트 분포도, 출처: 미국 에너지부(U.S. Department of Energy)
이처럼 HVDC 송전망으로 연결되는 전 세계의 에너지 고속도로 프로젝트는 재생에너지 사용의 확대와 통합, 연계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에너지 효율 증대와 전력 수급의 안정성을 향상시킨다는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이제,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을 위한 시작이 전력 흐름의 불균형 없이 모든 전력을 빠르고 안전하게 잇는 에너지 고속도로가 될 날도 머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