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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예술로 채워진 새로운 섬 풍경, 세계의 예술섬 프로젝트

2026-01-27

문화와 예술로 채워진 새로운 섬 풍경, 세계의 예술섬 프로젝트

한때 버려지고, 떠나간 사람들의 흔적만이 고요하게 남아있는 섬들이 ‘문화예술’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얻고 있습니다. 캐나다 서부의 그랜빌 아일랜드, 일본 카가와현 세토 내해의 나오시마, 그리고 우리나라 전남 신안에 이르기까지 이 섬들은 인구 감소와 환경오염 등으로 소멸 위기에 놓였지만,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예술가들의 협력을 통해 자연과 건축, 현대미술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으로 변화했습니다. 점차 섬에 드나드는 발걸음이 많아지면서 잠든 이야기가 깨어나기 시작하고,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레 이어지면서 새로운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장소가 되었죠.

아름다운 자연 풍경 속에 예술을 채워 독특한 매력을 품게 된 세 개의 섬들은 이제 관광지 이상의 가치를 지니며, 자유로운 창작의 공간으로서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예술적 창작의 중심지로 거듭난 그랜빌 아일랜드

출처: granville island

캐나다 밴쿠버의 남동쪽에 위치한 그랜빌 아일랜드는 과거 원주민들의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1916년 캐나다 정부는 항만 산업 확장을 위해 인공섬을 조성하고 이곳에 제재소, 금속 가공 등의 중공업 시설들이 들어서게 되었죠. 이후 이곳은 밴쿠버 산업 성장의 한 축을 담당했지만, 1960년 대공황과 산업 노후화로 인해 공장들이 떠나기 시작하고, 그랜빌 아일랜드는 급격히 쇠퇴하게 되었습니다.

그랜빌 섬이 다시 빛을 보기 시작한 건 1970년대 이후 상업지구로 되살리는 재생계획 덕분이었는데요. 이 계획의 핵심은 기존 공장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재활용하여 예술과 문화 중심의 공간으로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후 기존의 건물을 리모델링한 공방, 극장을 비롯해 소규모의 상점들이 생겨났고, 1978년 배를 만들던 조선소였던 곳을 리모델링한 퍼블릭 마켓이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이후 퍼블릭 마켓과 다양한 레스토랑, 카페 등 식문화 공간은 매년 1,200만 명의 관광객들이 찾는 밴쿠버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이자 그랜빌 아일랜드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출처: granville island

 

섬의 정체성을 견고히 다진 디자인 미술대학

1980년, 캐나다 여성화가인 에밀리 카의 이름을 딴 에밀리 카 디자인미술대학 (Emily Carr University of Art + Design)이 이곳으로 캠퍼스를 옮기며 그랜빌 아일랜드의 예술적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만들어주었습니다. 공장이었던 이곳에서 학생들은 예술과 문화가 집중된 환경 속에서 다양한 창작활동과 전시경험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으며, 자연스레 주변 인프라를 이용한 실습 및 협업 기회가 확대되기도 했죠. 북미에서 가장 인정받는 대학이자 높은 입학경쟁률을 보이는 디자인 대학으로 꼽히고 있는 에밀리카 디자인미술대학은 2017년 새로운 캠퍼스로 이전하기까지 오랜 시간 동안 이곳에서 수천 명의 예술인들을 양성했고, 재학생들은 학교와 지역 문화가 긴밀하게 연결된 환경 속에서 실무 경험을 쌓고 창의적 영감을 얻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방문객들에게 영감을 선사하는 섬

출처: granville island

Net Loft와 Rail Spur Alley는 그랜빌 아일랜드에서 예술의 심장이라 불리는 곳입니다. 이곳은 공예가들과 디자이너들의 작업실 및 상점 등이 모여 있는 창작 공간으로 쓰이고 있는데요. 유리, 금속, 목재 등 다양한 재료를 다루는 예술가들의 공방을 거닐다 보면 방문객들은 창문 너머로 작업하는 예술가들의 창작의 현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2014년, 그랜빌 아일랜드는 세계 각지의 방문객들에게 다시금 주목받는 명소로 떠올랐습니다. 그 이유는 브라질 아티스트 듀오인 오스제메오스가 제작한 초대형 자이언트 벽화덕분이었죠. 원래 임시 설치물이었지만, 시민들의 폭발적인 반응으로 영구보존이 결정되어 현재도 가동되고 있는 시멘트 공장 현장에는 수시로 레미콘과 지게차가 분주하게 오고 가고 있는데요. 오스제메오스는 공장 한 켠에 설치된 21m 높이의 사일로(Silo, 시멘트나 곡물 등을 저장하는 건물)에 익살스러운 표정의 거인들을 그려 넣었습니다. 벽화 제목은 ‘GIANTS’로 관람객이 360도 모든 각도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며, 무려 1,400개의 스프레이 페인트를 사용해 제작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제3회 밴쿠버 비엔날레에 초청되어 공개되었고, 그 규모와 독창성 덕분에 많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원래 시멘트 공장이었던 이 장소는 이제 단순한 산업 공간을 넘어, 지역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즐길 수 있는 독특한 포토스팟으로 변신했습니다.

 

현대 미술의 성지가 된 예술의 섬, 나오시마

 

일본 세토 내해 위치한 8㎢ 남짓한 작은 섬 나오시마는 한때 지도에서조차 잊힐 뻔한 곳이었습니다. 과거 금속제련소를 중심으로 번성했지만 산업 쇠퇴와 함께 자연 또한 황폐해지며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죠. 조용히 사라져가던 나오시마의 운명을 바꾼 것은 바로 ‘예술’이었습니다. 1987년 일본의 교육출판기업 베네세 그룹이 이곳에 ‘아트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나오시마는 새로운 활력을 얻게 됩니다. 후쿠다케 소이치로 회장은 ‘문화로 지속가능한 섬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안도 타다오를 찾아갔고, 자연을 품는 그의 건축 철학이 나오시마에 뿌리내리며 섬은 전시하는 장소를 넘어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미술관으로 재탄생하게 되었습니다. 1992년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을 시작으로 2004년 서양 미술의 거장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지중 미술관, 2010년 이우환 미술관, 데시마 미술관, 2022년 쿠사마 야요이의 밸리 갤러리 등 세계적인 예술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미술관들이 차례로 들어서며 마치 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미술관으로 변신하게 되었습니다.

 

세계 최초의 체류형 미술관,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

이곳에 가장 중요한 공간은 호텔이자 박물관인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인데요. 세토 내해를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자리한 이 건축물은 외관은 노출 콘크리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벽체 장식 또한 철저히 배제해 절제되고 단단한 인상을 풍깁니다. 파크 동, 비치동, 뮤지엄 동, 오발 동 등 총 4개의 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남쪽 언덕 지형을 따라 낮게 퍼지듯이 배치되어 있고, 내부 어디에서든지 바깥을 내다볼 수 있도록 대부분 통창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관람객들은 작품을 감상하다가 언제든지 시선을 돌려 프레임처럼 의도된 창을 통해 세토 내해의 수평선을 바라볼 수도 있죠. 또한 건물 곳곳에 천창이 뚫려있어 자연광이 직접 전시공간으로 깊숙이 스며들도록 설계되어 있는데요. 지하 전시실 상부에도 천창이 설치되어 있어, 관람객들은 같은 공간이지만 시간대와 날씨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상을 받게 됩니다.

호텔 숙박객들은 이곳에 머무르며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직접 경험할 수 있고, 오발동에 머문다면 일반 관람객이 빠진 이후 밤 11시까지 천천히 여유롭게 작품을 오롯이 마주할
수 있습니다.

출처: benesse-artsite

지하 1층부터 2층까지 이어지는 전시공간에는 인상주의의 거장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을 비롯해 빛과 공간의 예술사로 불리는 제임스 터렐, 미니멀리즘 설치미술의 거장인 월터 드 마리아, 추상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잭슨 폴록 등 20세기 미술사의 핵심을 이루는 세계적 작가들의 작품이 상설 전시되어 있습니다. 건물 밖으로 나오면 쿠사마 야요이의 노란 호박을 만날 수 있는데, 바다를 향해 놓여 있는 이 작품은 자연과 현대미술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여주며 그 자체로 나오시마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었습니다. 건물과 자연, 작품과 관람객,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허물며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낸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은 나오시마 아트 프로젝트의 시작점이자 기준점이 되어, 방문객들에게 특별한 체험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골목 사이사이에서 예술을 만나다, 이에(家) 프로젝트

이에 프로젝트는 미술관 건물을 새로 짓는 대신 섬마을에 있던 100년 안팎의 오래된 빈집이나 창고 등을 활용해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 시킨 프로젝트입니다.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 이후 두 번째로 시작한 이에 프로젝트는 전시를 보러 가는 게 아니라, 마을을 걷다가 예술을 만나는 하나의 큰 콘셉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평범한 일본 전통 가옥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현대미술 작품이 자리하고 있는데요. 이렇게 변신한 가옥은 총 6채로, 일본 미디어 아티스트 미야지마 다쓰오의 LED 설치 작품이나, 센주 히로시의 작품 등 각기 다른 작가의 작품들을 품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곳은 제임스 터렐의 작품을 설치한 ‘미나미데라’입니다. 어둠과 빛이 만들어낸 공간을 직접 체험하며 명상의 시간을 선사해주는데요. 과거 신사가 있던 자리를 개조해 만든 이 공간은 실내에 들어서는 순간 외부의 빛은 완전히 차단되고, 관람객은 의도적으로 설계된 어둠속으로 천천히 들어서게 됩니다. 관람객들은 벽을 더듬으며 ‘ㄹ’자로 구부러진 미로같이 좁은 복도를 따라 이동한 뒤, 안내에 따라 자리에 앉아 5분~8분 정도 정면을 응시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둠에 익숙해진 시야 속으로 점차 빛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관람객들은 빛을 시각적 대상이 아닌 감각으로 인식하며, 어둠
속에서 점차적으로 빛을 발견해나가는 신비로움을 경험합니다.

출처: benesse-artsite

이 전시공간들은 한 곳에 모여 있지 않고 마을 곳곳에 흩어져있어, 골목을 걸으면서 전시공간을 찾아 다니는 흥미로운 관람 동선을 만들어냅니다. 베네세는 주민들과 설명회와 긴 대화를 통해 가옥을 기증받거나 임대했고, 관련 사업에 지역 주민들을 적극적으로 고용하며 지역 재생을 넘어 지속적인 생태계 구축에 전념했습니다. 이에 프로젝트는 화려한 미술관이 아닌 낡은 집과 예술을 접합시켜 예술이 삶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새로운 감상방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나오시마의 예술이 집약된 공간, 신미술관

출처: benesse-artsite지난 5월 31일, 나오시마에 열 번째 미술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베네세는 신이라는 명칭에는 더 넓은 예술적 시야와 나오시마의 지속적인 혁신 의지가 담겨있으며, 지난 35년간의 활동을 집약한 공간이 될 것이라며 밝혀 개관을 기다리고 있는 방문객들의 기대를 높이기도 했습니다.

나오시마 신미술관신미술관(Naoshima New Museum of Art)은 주요 미술관들이 서쪽에 자리한 것과 달리 섬의 동쪽에 들어서 있습니다. 언덕 위에 자리한 이 건물은 지하 2층부터 1층까지 3개 층으로 설계되어 있으며 완만한 경사의 지붕을 얹은 구조로, 오래된 마을 풍경을 해치지 않도록 낮게 설계되었죠.

외관 디자인은 섬 동쪽에 위치한 혼무라 지역의 전통 목조건축에서 착안한 검은색 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는데요. 이는 삼나무를 불에 그을려 마감하는 야키스기(焼杉) 기법에서 연상되는 색감과 질감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담장과 일부 외부 벽체에는 자갈을 쌓은 듯한 질감의 디자인을 적용했습니다. 이 또한 마을 민가에서 볼 수 있는 돌쌓기 기법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인공적인 조형미보다는 지역의 일상적인 풍경과 재료 감각을 담아내고자 했죠.

출처: benesse-artsite

신미술관은 기존 나오시마 미술관들이 서구 거장 중심의 컬렉션을 선보인 것과 달리,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현대미술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개관 기념 첫 전시 또한 일본, 중국, 한국, 인도네시아, 태국 등 총 12명의 아시아 지역 출신의 아티스트들이 회화, 조각, 설치 등 다양한 장르를 통해 이 장소에 특화된 새로운 상징적인 작품들을 전시했습니다.

출처: benesse-artsite(Kenryou Gu, Takeru Koroda

나오시마 아트 프로젝트는 기존 마을의 구조와 삶의 방식을 존중하며 예술과 건축이 지역 재생에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과는 나오시마에 머물지 않고, 인근의 이누지마와 데시마로 이어지며 한때 쇠퇴했던 작은 섬들을 새로운 문화의 장으로 변화시켰죠. 자연 안에 예술과 사람이 더해지면서 단순히 ‘보는 관광지’를 넘어 머무르고 경험하는 장소로 자리 잡은 나오시마는 현재 연평균 약 65만 명의 방문객이 찾는 섬으로 성장하며 예술이 지역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계적 거장들이 신안에 모이다! 예술섬 프로젝트

 전남 신안군에 위치한 신안 섬들이 ‘예술섬 프로젝트’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경관으로 2021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한 신안군이지만 국내 인구소멸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되며 지역활성화 모색필요성이 있었죠. 이에 최근 몇 년간 지역 문화와 예술을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신안군은 그동안 문화에서 소외됐던 섬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소통할 수 있는 문화공간을 마련함은 물론, 관광객에게는 자연의 아름다움 및 문화자원을 활용한 관광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해 2018년부터 각 섬에 미술관, 박물관을 설치하는 ‘1도(島) 1뮤지엄’ 아트 프로젝트를 추진했습니다. 섬마다의 고유한 자연과 지역의 정체성(역사)를 담는 이 프로젝트는 신안의 여러 섬들을 문화와 예술의 거점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박물관 11개, 미술관 13개, 전시관 2개 등 총 26곳을 조성할 예정인 예술섬 프로젝트는 대부분 폐교나 소금창고, 오래된 마을회관 등의 기존 시설을 활용해 문화시설로 탈바꿈시켰으며, 지역 작가의 전시를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문화재단 설립 등을 통해 섬의 일상 속에 예술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주민이 참여하는 문화 환경을 만들어왔습니다. 사업의 요지로 꼽히는 작은 단위의 마을 미술관들은 단발성 전시가 아닌, 각 섬에 상시 운영이 가능한 문화 공간과 콘텐츠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기존 지역 예술 프로젝트와 차별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 올라퍼 엘리아슨(Ólafur Elíasson),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 등 세계적 거장들도 예술섬 프로젝트에 참여했는데요. 최근 이들의 작품들이 섬 곳곳에 설치되면서 예술적 가치와 국제적 주목도가 함께 높아지고 있습니다. 방문객들은 섬의 일부가 된 작품들을 따라 이동하며 자연스럽게 예술을 마주하고 공간 전체를 입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죠. 전국에서 가장 많은 섬을 보유한 신안은 지금 세계적 예술가들의 손길을 통해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도초도가 품은 새로운 감각의 작은 지구

출처: 신안군

지난해 11월 55.28㎢ 면적에 2, 300여명이 사는 작은 섬인 도초도에 덴마크 출신의 세계적인 설치 미술가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의 작품이 공개되며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가 신안 섬에 직접 와서 작업한 숨결의 지구(Breathing earth sphere)’는 신안 예술섬 프로젝트의 첫 작품으로, 과거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도초도의 독특한 지형에 영감을 받아 자연의 생명력과 에너지를 체험할 수 있도록 구현된 작품입니다. 도초도 풍경에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도초수국정원 언덕에 세워진 구형의 이 구조물은 작가가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신안과 도초도를 오가면서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죠. 빛과 물, 기후 등 자연 요소를 작품에 적극적으로 활용해 감각적 경험과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전해온 올라퍼 엘리아슨은, 마찬가지로 이번 작업을 통해 도초도의 고유한 자연성을 예술로 확장시켰습니다.

출처:PKM 갤러리

이 작품은 밖에서 보면 반구 형태이지만, 특이하게 내부로 들어가서 살펴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지구의 자전축(23.5도)로 기울어진 천장의 구멍을 통과해 들어온 빛들이 각각의 타일에 반사되면서 환상적인 공간을 만들어내고, 날씨에 따라 비, 눈도 그대로 볼 수 있으며, 곡선형 타일 표면에 의해 모든 소리가 독특하게 울리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작가는 “바닥도, 벽도, 지평선도 없는 공간으로, 안에 들어오면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며 “작은 지구에 들어온 것처럼 지구의 숨결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라 말했죠. 1,100여개 용암석 타일로 만들어진 직경 8m의 이 작품은 붉은 색에서 시작해서 올라갈수록 녹색으로 변화하는데 이는 대지와 토양, 식물의 푸르름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색색의 타일을 통해 들어오는 빛의 변화나 주변 풍경에 따라 모습과 느낌 또한 달라집니다.

도초도에 새로움을 더한 이 프로젝트는 예술을 ‘특별한 장소’에만 두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과 자연 속에서 계속 예술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려는 신안 예술섬 프로젝트의 생각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안좌도 물 위에 떠있는 특별한 미술관, 플로팅 뮤지엄

출처: yanagistudio

안좌도에 세계 최초로 수면 위에 떠 있는 수상 미술관, 플로팅 뮤지엄(Floating Museum)도 최근 문을 열었는데요. 일본 출신의 작가 야나기 유키노리가 설계한 이 미술관은 물 위라는 독특한 입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예술과 건축, 자연환경이 하나의 풍경으로 어우러지도록 구상되었습니다.

플로팅 뮤지엄은 수면 위에 떠 있는 7개의 큐브형 전시 공간으로 구성되며, 이 큐브들은 길게 이어진 콘크리트 다리로 연결됩니다. 신안의 특산물인 하얗고 네모난 천일염의 결정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으로, 서로 크기가 다른 이 일곱 개의 큐브는 전라남도 서부 지역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섬들을 상징하는 동시에, 지구를 이루는 일곱 대륙의 수를 의미합니다. 내부 공간 구성 역시 큐브의 개별성을 살리는 방식으로 계획되었는데요. 전체 일곱 개 전시 공간 가운데 다섯 개는 상설 전시, 하나는 기획 전시, 나머지 하나는 리셉션과 편의시설로 활용될 예정입니다.

외장에는 스테인리스스틸이 사용되어 시간대와 날씨에 따라 주변 풍경을 다르게 반사합니다. 햇빛의 각도나 물결의 움직임 등 시시각각 달라지는 환경이 건축물 표면에 반사되는데, 관람객들은 전시장 안팎을 자유롭게 거닐며 물과 빛, 하늘과 섬의 풍경이 만들어내는 이러한 변화를 자연스럽게 경험하게 됩니다. 플로팅 뮤지엄은 내부 전시에만 집중하기보다는, 물과 빛, 공간이 어우러진 환경 전체를 따라 이동하며 감상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특히 플로팅 뮤지엄은 김환기 화백의 생가가 위치한 저수지 인근에 조성돼, 안좌도의 자연 환경과 예술적 맥락, 지역의 역사적 배경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시키는 거점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하반기에는 영국 출신의 조각가 안토니 곰리가 원평해변에 초대형 조형 작품인 ‘엘리멘탈Elemental)’ 설치를 준비하고 있으며, 제임스 터렐 역시 무인도 노대도에 대표작을 포함한 다수의 작품들을 전시할 예정입니다. 자은도에는 건축가 마리오 보타와 이탈리아 피에트라산타를 중심으로 활동해온 조각가 박은선이 함께 참여한 인피니또(무한) 조각미술관이 조성될 계획이며, 제임스 터렐의 미술관 역시 노대도를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압해도에서는 위대한 낙서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그래피티 작가인 존 원(JonOne), 스페인의 덜크(Dulk), 포르투갈의 빌스(Vhils) 등 해외 작가들이 참여해 섬의 공간을 캔버스로 활용하며 독특한 매력의 그래피티 아일랜드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과거의 흔적들을 보존하면서도 예술을 통해 현대적 가치를 더한 세 개의 섬. 버려진 듯했던 공간들이 예술가들의 영감과 지역 주민의 활발한 참여로 새로운 숨결을 얻으며, 이 섬들은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자연과 건축, 현대미술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살아있는 전시장’으로 거듭났습니다. 지속 가능한 지역 재생의 모델이자 문화예술이 지닌 치유의 힘을 보여주는 이 섬들을 통해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는 잠들어 있는 또 다른 섬들 또한 새로운 가능성과 이야기를 품게 되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