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히 건물의 뼈대가 되는 콘크리트의 물리적 수명은 약 100년 정도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콘크리트로 지어진 우리나라 주택들의 실질적인 수명은 대부분 30~40년에 불과합니다. 2024년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발간한 <주택 리모델링 시장의 현황과 정책과제>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아파트를 포함한 국내 공동 주택의 평균 수명은 약 27~30년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미국의 55~70년과 영국의 77년에 비해 절반 또는 3분의 1에 그친 낮은 수준인데요. 이보다 훨씬 이전에 발표된 국토교통부의 통계에서도 이러한 차이는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택의 수명이 짧다 보니 우리나라는 잦은 철거와 재건축, 재개발 등으로 인한 자원 낭비, 재건축을 진행할 때마다 발생하는 폐기물 등으로 인해 환경 부하 등 사회 경제적 비용이 크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주요 국가별 아파트 평균 수명(기준연도: 2002~2008년), 출처: 국토교통부
최근 들어 미래형 주거 정책의 일환으로 ‘장수명 주택(Long-Life Housing 또는 Long-Lasting Housing)’이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장수명 주택이란, 튼튼한 구조와 오랜 기간 유지 및 관리될 수 있는 내구성을 갖추고, 입주자의 필요에 따라 내부 구조를 쉽게 변경할 수 있는 가변성과 수리 용이성이 우수하여 100년 이상 사용 가능한 주택을 말합니다. 즉, 내구성과 가변성, 수리 용이성이 장수명 주택의 3대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콘크리트의 강도를 높이거나 피복 두께를 더 두껍게 하는 등 주재료인 콘크리트의 자체 품질을 높이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재건축이 아닌 유지보수 중심의 리모델링을 활성화하여 장수명 주택의 수를 늘리는 것이 지속가능한 주거 문화 정착을 위한 중요한 과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 주택의 수명이 유독 짧은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대부분의 주택이 철근에 콘크리트를 부어 일체형으로 짓는 ‘벽식 구조 (Bearing Wall Structure)’를 띠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무게를 지탱해줄 기둥 없이 벽체와 슬래브만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는 건축 구조를 적용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이러한 방식은 주택에 필요한 각종 배선이나 배관, 상하수도관 등이 모두 콘크리트 속에 묻혀있기 때문에 완공 후에는 사실상 수리가 불가능하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일부 배관에 문제가 발생해도 집 전체를 철거하고 재건축을 하는 상황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죠.

이와 다르게 ‘기둥식 구조(Frame Structure)’는 기둥(또는 기둥과 보)이 전체 하중을 지탱하는 건축 구조로, 천장과 바닥을 연결하는 벽체를 최소화하는 한편 배관이나 배선 등을 콘크리트 내부에 매립하지 않고 벽체 내부에 설치해 교체 및 수리가 용이하도록 설계된 방식입니다. 일반적으로 30년 이상 된 아파트의 거주자들이 가장 많이 고통을 호소하는 문제가 스틸 또는 동 파이프로 된 노후 배관의 부식으로 인해 나오는 녹물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기둥식 구조의 경우에는 경량 벽체 내부에 배관이 매립되어 있어 벽체를 철거하는 과정 없이도 노후 배관의 점검과 수리, 교체는 물론 배관의 구조나 배치를 변경하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해집니다.
또한, 기둥식 구조는 기존에 건물 전체의 기둥 역할을 하던 내력벽(Bearing Wall)이 없어져 더 이상 벽이 무게를 받치는 구조적 역할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거주자의 필요에 따라 가벽을 설치하고 철거하는 등의 실내 공간 구조 변경이 자유로워집니다. 이를 가리켜 평면 가변성이 높아진다고 표현하는데요. 이러한 공간 활용의 유연성을 기반으로 골조를 유지하며 진행되는 노후 아파트의 전면 리모델링은 물론, 세대 구성 변화에 따른 부분 리모델링 공사에도 적극 활용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둥과 보가 충격을 분산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되므로 층간 소음에도 강한 편입니다.
이처럼 기존의 벽식 구조와 달리 그간 까다로운 과제로 여겨졌던 주택의 유지보수 문제와 내부 구조 변경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점이 장수명 주택의 핵심 요건으로 기둥식 구조가 주목받게 된 결정적 이유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건축물 리모델링 시장에서 주택 리모델링의 비중은 3%에 불과하고, 그 중에서도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은 이보다 훨씬 더 낮은 0.5%에 그칠 정도로 매우 미미한 수준입니다. 아파트가 빠르게 고층화되면서 이제는 재건축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기둥식 구조의 도입은 탄소 배출량이 현저히 적은 리모델링보다 재건축을 선호하는 우리의 주택 문화를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 정부는 짧은 주택 수명으로 인한 재건축 및 철거에 따른 폐기물을 줄이고 주택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장수명 주택을 보다 적극적으로 장려하기 위해 2014년 12월부터 국토교통부 주관으로 장수명 주택 인증 제도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주택법 제38조 3항과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칙(제16조 내지 제22조)에 따라 사업계획승인 신청 기준 1,000세대 이상 규모의 공동주택은 이를 의무적으로 적용하도록 하고 있는데요. 운영을 맡은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지휘 하에 한국부동산원, 한국환경건축연구원 등을 포함해 국토교통부가 지정한 주요 녹색건축 인증기관에서 인증 절차에 필요한 구체적인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장수명 주택 인증 기준 및 등급을 결정하는 주요 평가 항목으로는 철근의 피복 두께와 콘크리트 품질 등을 평가하는 내구성, 구조 방식과 건식 벽체 비율, 내벽 이동 가능성 등을 평가하는 가변성, 개보수나 점검의 용이성, 공용 또는 전용 배관 분리 여부 등을 평가하는 수리 용이성 등을 꼽을 수 있는데요.
| 등급 | 기존 | 개선 | 인센티브 |
| 최우수 | 90점 이상 | 80점 이상 | 인센티브 |
| 우수 | 80점 이상 | 70점 이상 | 인센티브 |
| 양호 | 60점 이상 | 동일 | 해당없음 |
| 일반 | 50점 이상 | 동일 | 해당없음 |
이를 기준으로 최우수, 우수, 양호, 일반 등 4단계의 등급 체계를 운영하고 있으며, 우수 등급 이상을 취득하는 경우에는 용적률과 건축물 높이 제한 등을 10% 범위 내에서 완화해주는 인센티브를 제공합니다. 다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대부분의 건축물은 최소한의 기준(일반)만 충족하고 있습니다.
국내에 건설된 장수명 주택의 대표적인 예로는 국내 최초로 우수 등급을 획득한 세종 블루시티(LH)가 있습니다. 2019년 9월 준공된 이 단지는 세종시 다정동에 위치하고 있는데요. ‘비용 절감형 장수명 주택 보급 모델 개발 및 실증단지 구축’이라는 구체적인 목표 하에 설계를 진행한 결과 전체 1,080세대 중 일부인 116세대가 양호(58세대), 우수(30세대), 최우수(28세대) 등급을 받았습니다. 116세대 모두 철근 피복 두께와 콘크리트 강도를 강화하고, 내부 벽체를 경량 건식 벽체로 시공해 공간 구조 변경이 가능하게 한 것은 물론, 배관과 배선을 매립하지 않는 대신 외부로 노출해 언제든 교체가 가능하도록 시공되었습니다. 일반 주택 대비 약 3~6%의 추가 비용이 투입되었지만 이후 100년 사용시 재건축 대비 생애주기 비용(LCC)은 11~18% 절감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또, 민간 부문에서는 처음으로 양호 등급을 받으며 2021년 준공된 용인시 동백동의 신동백 두산위브더제니스(두산건설)는 전체 10개 동 1,187세대 모두가 장수명 주택으로 설계된 대규모 단지입니다. 콘크리트 무량판 구조를 사용하여 층간 소음 저감 및 공간 활용도를 극대화하는데 주력했고, 가변형 벽체와 배관 및 배선을 분리해 손쉬운 유지보수와 리모델링이 모두 가능한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서울시가 추진 중인 개포우성 7차 아파트 재건축의 시공사로 선정된 삼성물산이 래미안 루미원에 장수명 주택 우수 등급을 충족하는 설계를 적용한 사례가 있습니다. 기존 벽식 구조에 적용되는 내력벽의 수를 최대 40%까지 줄이고, 건식 벽체와 기둥 배치를 더한 ‘혼합식 구조’를 선택함으로써 내부 공간의 자유로운 평면 배치가 가능하고, 가족 구성원이나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에 따른 구조 변경에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또한, 고성능 바닥 시스템 등을 활용한 층간 소음 1등급(37dB 이하) 기준을 적용하여 주택의 수명 연장은 물론 입주민의 주거 쾌적성까지 향상시킬 수 있는 다양한 건축 기술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나라가 주택의 재건축 주기를 최대 100년까지 늘린다면, 철거 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은 17%, 건설 폐기물은 85% 가량을 줄일 수 있고, 각종 유지보수 비용 역시 약 18% 절감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됩니다.
한편, 1970년대부터 이미 장수명 주택의 개념을 도입한 영국, 프랑스 등의 유럽 국가들은 철저한 유지 보수와 구조적 유연성을 최우선으로 한 설계를 통해 평균 80~120년 이상의 주택 수명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는 견고한 자재와 단열 시스템을 사용하여 내구성을 강화하는 한편, 배관이나 배선 등의 내장재는 언제든 부품처럼 쉽게 교체할 수 있는 구조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이러한 주택 수명 관리 방식으로 인해 주기적인 개보수와 리모델링이 가능해져 주택의 성능을 오랜 기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일찌감치 주택의 수명을 중시하며 철거가 필수인 재건축보다는 주기적인 리모델링을 선호하는 문화가 유럽 전역에 보편적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차이를 만드는 부분입니다.
유럽에서도 가장 많은 장수명 주택을 짓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핀란드, 독일은 구조체와 내장재(설비)를 분리한 ‘오픈 하우징(Open Housing)’이라는 개념이 널리 확산되어 있습니다. 즉, 건물의 뼈대(Shell)와 내부 공간(Infill)을 분리한 이론인데요. 한 예로 오픈 하우징의 선구자라 불리는 네덜란드의 케옌버그(Keyenburg) 주택은 1960년대에 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거주자가 자신의 생활 방식에 맞춰 공간을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내장재도 쉽게 교체가 가능한 오픈 구조로 설계되어 화장실 세면대가 고장 나면 상점에서 세면대를 구입해 직접 교체하는 방식으로 관리합니다.

ⓒ Stijn Spoelstra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큰 공동주택 중 하나인 디플랫 클라이버그(De Flat Kleiburg) 역시 기존 노후 주택에서 뼈대만 남기고, 내부를 구성하는 벽체와 바닥, 설비 등은 모두 비운 상태에서 거주자가 원하는 대로 평면을 구성할 수 있는 DIY 방식의 공간 박스 개념을 도입한 새로운 형태의 오픈 하우징 사례로 꼽힙니다. 또, 1990년대 후반 이미 주택 보급률 100%를 달성한 독일에서는 주택의 양보다 질을 중시하는 문화가 정착되어 대다수의 국민들이 유지보수가 쉽고 오랜 기간 거주가 가능한 구조를 지향합니다. 특히, 전체 주택의 57% 이상이 장기 임대주택인 상황에서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을 의미하는 보눙(Wohnung)은 장수명 주택의 구조적 유연성과 더불어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패시브 하우스 기술까지 적용하고 있어 유럽 내에서도 최고 수준의 지속가능성과 주거 복지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한편,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장수명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은 1980년대 초반 CHS(Century Housing System)를 시작으로, 1990~2000년대 초반까지의 SI(Skeleton-Infill) 주택, 그리고 2000년대 후반부터 추진해온 장기우량 200년 주택에 이르기까지 장수명 주택의 흐름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기에 주택의 노후화를 막기 위해 30~50년 이상을 내다보는 장기수선계획을 자체적으로 수립하고, 고액의 장기수선 충당금을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부담하며 유지보수를 철저히 대비하고 있다는 점도 일본만의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일본에서는 오사카에 위치한 실험 주택 단지인 NEXT21을 비롯해 도쿄의 시노노메 캐널 코트 코단(Shinonome Canal Court CODAN)과 메구로 MARC 주택 단지까지 수많은 장수명 주택들이 꾸준히 건설되어 왔고, 모두 100년 이상의 사용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 중 도쿄 오다이바 인근에 위치한 공공주택 단지인 시노노메 캐널 코트 코단은 2024년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야마모토 리켄(Yamamoto Riken)을 중심으로 이토 도요, 쿠마 켄고 등 총 6명의 저명한 건축가들이 각각의 블록을 설계하며 개성 있고 혁신적인 복합 단지로 완성되었습니다. 기존의 획일적인 아파트 형태에서 벗어나 복층, 스튜디오, 소규모 홈 오피스 형태 등 100개가 넘는 다양한 평면과 디자인을 적용하고 있는 이 곳은 장수명 주택이 가지는 구조의 가변성과 함께 거주자의 아이덴티티를 중시하는 현대인의 생활 방식까지 적극 반영된 새로운 장수명 주거 모델로 평가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