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뉴욕시 NYC, CoolRoofs 프로그램 현장/The Epoch Times
처서가 지나도, 밤이 되어도 도심의 열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습니다. 해가 지고 나면 조금 나아질 법도 한데, 좀처럼 식지 않죠. 실제로 도시 지역은 주변 교외와 농촌 지역보다 기온이 최대 약 6°C 높게 나타나는 경우(NASA Earth Observatory)도 있습니다. 도시가 주변 지역보다 더 뜨거워지는 데에는 도시만의 구조가 영향을 미칩니다. 낮 동안 뜨거워진 도로와 건물,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로 인해 열이 쉽게 빠져나가지 않는 환경, 자동차와 냉‧난방설비에서 발생하는 열까지 복합적인 요소들이 도시를 더욱 뜨겁게 만듭니다.
폭염이 길어질수록 도시의 열환경을 어떻게 개선할지가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데요. 사람들은 건물과 도로를 모두 바꾸는 대신,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해 온 재료의 특성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에서 해답을 찾고 있습니다. 뜨겁게 달궈진 도시의 열을 낮추기 위해 어떤 기술이 활용되고 있는지, 그 원리부터 적용사례까지 도시를 식히는 다양한 해법을 만나봅니다.
높은 건물이 가까이 밀집해 있는 도심에서는 건축물이 바람의 흐름을 방해하고, 건물과 도로에 햇빛이 닿으면서 주변에 열이 쌓이고 퍼집니다. 여기에 자동차, 냉방·난방 시스템 등 인간 활동에서 발생하는 인공열까지 더해지면서 도시 열섬 현상(도시가 주변 교외나 자연지역보다 더 높은 기온을 나타내는 현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기후변화로 폭염의 위험이 커지는 상황 속에서 이러한 도시 열섬 현상은 탈수와 열사병을 유발할 수 있고, 에어컨 등을 작동시키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하죠. 이는 여름철에 특히 전력 수요와 냉방 부담을 높이고, 전력망에 추가적인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도시의 구조 및 규모에 따라 달라지는 바람과 열의 흐름, 출처: Oke(1997), WMO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
도시 열섬을 이야기할 때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밤입니다. 낮 동안 햇빛을 받은 도시의 표면은 열을 저장하고, 해가 진 뒤에 그 열을 주변으로 방출합니다. 이 때문에 도시는 주변 지역보다 밤의 기온이 높게 유지됩니다. 콘크리트 건물, 아스팔트 도로, 어두운 지붕 등 도시를 구성하는 재료들은 태양에너지를 흡수하고 저장한 뒤 밤에 방출하면서 도시의 야간 기온을 높이는 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출처: IPCC 제6차 평가보고서 제1실무그룹
도시를 뜨겁게 만드는 것은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같은 ‘재료’ 그 자체일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같은 재료라도 어떤 환경과 조건에서 사용되느냐에 따라 열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도시를 구성하는 재료의 열적 특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요. 그중 대표적인 개념이 바로 ‘열용량’과 ‘알베도’입니다.
열용량은 물체의 온도를 일정한 정도 높이는 데 필요한 열의 양을 말합니다. 같은 양의 열을 받아도 어떤 재료는 온도가 빠르게 올라가고, 어떤 재료는 상대적으로 많은 열을 저장하면서 온도 변화가 느리게 나타날 수 있는 건데요. 열용량이 큰 재료는 같은 온도 변화를 일으키는 데 더 많은 열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온도 변화가 상대적으로 느리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콘크리트는 밀도가 높고 열을 저장하는 열적 질량을 지닌 재료로, 외부에서 들어온 열을 저장했다가 천천히 방출하면서 실내 온도의 급격한 변화를 줄이는 데 활용할 수 있습니다. 열을 무조건 많이 저장한다고 해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닌 거죠. 기후와 건물의 외피·단열, 온도 차가 큰 환경에서는 열적 질량이 실내 온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냉방이 가장 많이 필요한 시간대의 에너지 부담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다양한 표면의 알베도 값, 출처: NASA 자료를 바탕으로 Vivre en Ville 작성/ carrefour
콘크리트의 열적 특성을 이해할 때는 태양에너지를 얼마나 반사하는지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알베도는 표면에 들어온 태양복사 가운데 반사되는 비율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밝은 표면은 알베도가 높아 태양복사를 더 많이 반사하고, 어두운 표면은 상대적으로 더 많은 태양에너지를 흡수합니다. 위 자료를 보면 콘크리트의 알베도는 약 10~35%, 아스팔트는 약 5~20%이며, 지붕 역시 색상과 재료, 표면 상태 등에 따라 알베도가 달라집니다. 특히 반사 지붕은 약 60~70%의 높은 알베도를 보이고 있죠. 즉, 알베도가 높을수록 햇빛을 더 많이 반사해 표면에 흡수되는 열을 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콘크리트의 높은 열적 질량이나 상대적으로 낮은 알베도 등의 특성을 꼭 단점으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높은 열용량은 건축물에서 실내 온도 변화를 완화하고 냉난방 에너지 절감에 활용될 수 있으며, 알베도 역시 재료의 색상과 표면 상태, 주변 공간의 조건 등에 따라 열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를 ‘도시의 열을 높이는 재료’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닌 각 재료가 가진 열적 특성이 어떤 공간과 조건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살펴보고, 그 특성을 건축과 도시 환경에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이미 만들어진 도시의 도로와 지붕에 들어오는 태양에너지를 조금이라도 덜 흡수하도록 만들 방법은 없을까. 이 질문에서 출발한 대표적인 기술이 바로 쿨 페이브먼트(Cool Pavement)와 쿨 루프(Cool Roof)입니다.
쿨 페이브먼트는 태양에너지를 반사하거나, 물의 증발을 활용해 도로와 보행로의 표면 온도를 낮추는 포장 기술을 말합니다. 대표적으로 기존의 어두운 아스팔트에 밝은색 골재를 섞어 포장하거나, 반사성 코팅을 표면에 덧입혀 포장 표면이 태양에너지를 더 많이 반사하도록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반사성 코팅은 햇빛을 잘 반사하는 밝은색 안료나 특수 소재를 섞은 코팅재를 도로 표면에 얇게 입혀 포장 표면의 알베도를 높이고, 태양에너지의 흡수를 줄이는 데 활용됩니다. 쿨 페이브먼트는 각 도시의 기후와 환경에 맞춰 다양한 방식으로 적용되며, 기존 도로를 크게 바꾸지 않고도 포장재의 특성을 개선해 도시의 열을 낮추는 지속가능한 기술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2012년 그리스 아테네 플리스보스 공원에는 약 4,500㎡ 규모의 반사성 포장재가 적용됐는데요. 당시 연구진에 따르면 세계 최대 규모의 쿨 페이브먼트 적용 사례로, 적용 후 여름철 일반적인 하루의 최고 주변기온은 최대 1.9℃, 포장 표면온도는 최대 12℃ 낮아졌고, 열쾌적성도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Santamouris et al., 2012).
이와 함께 물을 활용해 포장 표면을 식히는 방법도 있죠. 투수성 포장은 빗물이 포장재를 통과해 땅으로 스며들 수 있도록 만든 포장 방식입니다. 투수성 포장을 사용하면 빗물이 일반적인 포장처럼 표면을 따라 배수구로 흘러가는 대신 땅으로 스며들고, 이 물이 더운 날 증발하면서 주변의 열을 가져가 포장 표면의 온도를 낮추는 데 도움을 줍니다.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시는 2021년 애리조나주립대학교(ASU)와 함께 쿨 페이브먼트 실증사업을 진행했습니다. 1차 연구 결과, 쿨 페이브먼트를 적용한 도로의 표면온도는 일반 아스팔트보다 정오와 오후 시간대에 평균 10.5~12°F(약 5.8~6.7℃) 낮게 나타났습니다.
도로와 함께 도시에서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표면이 있죠. 바로 건물의 지붕입니다. 지붕은 하루 종일 태양복사에 직접 노출되기 때문에 건물의 열환경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꼽힙니다. 쿨 루프 또한 지붕이 태양에너지를 덜 흡수하도록 표면의 반사율과 열방출 특성을 높이는 기술입니다. 반사율이 높은 도료나 마감재 등을 사용하면 지붕이 흡수하는 태양에너지를 줄일 수 있고, 건물 내부로 전달되는 열도 감소할 수 있습니다. 이는 건물의 냉방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되죠. 건물에서 사용하는 에너지가 줄어들면 전력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와 대기오염물질을 줄이는 데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또한 쿨 루프를 도시 규모로 확대할 경우 주변의 열환경을 개선해 도시 열섬 현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데요. 건물 내부의 온도를 낮추는 것뿐만 아니라, 폭염으로 인한 열 스트레스를 줄여 도시민의 건강과 쾌적성을 높이는 데도 활용될 수 있습니다.
도시의 열을 줄이는 방법은 도로와 지붕을 밝게 만드는 것만이 아닙니다. 열을 반사하는 것에서 나아가, 열을 저장하고 햇빛을 막고 자연의 냉각 기능을 활용하는 것까지 다양하죠. 상변화물질(PCM)은 열을 흡수했다가 다시 내놓는 성질을 가진 재료인데요. 건물 벽이나 천장 안쪽에 PCM을 넣어두면, 낮 동안 외부에서 들어오는 열을 PCM이 흡수하면서 실내 온도가 빠르게 올라가는 것을 늦출 수 있습니다.

출처: 위키미디어, 미국 워싱턴 주 피어스 보존구역에서 포장하는 사람들, 위노나 주립대학교 주차장에 있는 태양광 캐노피
반대로 디페이빙(Depaving)은 필요하지 않은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흙과 식물을 늘리는 방법입니다. 특히 녹지는 그늘을 제공하며, 뜨거워지는 인공 표면을 줄이고, 식물의 증발산을 통해 주변을 식히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가로수, 그늘막, 처마, 태양광 캐노피 등을 더하면 햇빛을 직접 막으면서 전기도 생산할 수 있죠.

출처: cbsnews, Los Angeles Cool Pavement
미국 LA에서는 2017년부터 쿨 페이브먼트의 실제 적용과 성능 평가를 이어왔는데요. 2021년에는 ‘Cool Neighborhoods’ 단계에서 8개 지역에 약 2,000그루의 나무를 심고, 도시 전체적으로 약 97km에 달하는 도로에 쿨 페이브먼트를 적용하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도로 표면 개선과 동시에 도시 녹지를 늘리며, 하나의 기술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여러 대책을 결합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습니다.

출처: 앤트워프 도심의 ‘De Dams’ 주거 프로젝트, Van Wellen Group
벨기에 앤트워프는 건축물의 지붕과 외부 공간을 녹지와 물순환 중심으로 바꾸는 방식을 함께 활용했습니다. 앤트워프는 2024년 건축법에 일정 규모 이상의 신축·신고·허가 대상 건축물 가운데 경사가 15도 미만이고 면적이 20㎡ 이상인 새로운 지붕은 원칙적으로 녹색 지붕(green roof)으로 조성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녹색 지붕으로 조성하지 않는 평지붕에는 밝은 색의 지붕 마감을 적용하도록 하고 있죠. 또한 지붕은 녹색 또는 밝은 표면으로, 주차장은 녹지와 투수성 포장으로 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출처: 한국주택금융공사, 부산 쿨 루프 시공/ 산림청, 인천 미추홀구 기후대응도시숲
도시열섬과 폭염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나라에서도 건축물과 도로, 녹지, 보행 공간을 대상으로 다양한 폭염저감 사업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건축물에는 태양열을 반사해 열의 유입을 줄이는 쿨 루프와 쿨 월, 도로와 광장에는 쿨 페이브먼트와 쿨링 로드, 보행 공간과 생활 공간에는 쿨링 포그(물을 미세한 안개로 분사해 주변의 열을 낮추는 시설)와 녹지·그늘시설 등이 적용되고 있죠. 환경부는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도시 기후변화 취약성 저감 사업을 통해 쿨 루프·쿨 페이브먼트·쿨링 로드·쿨링 포그 등 다양한 폭염저감 기술을 전국 90개소에 적용하고, 폭염 대응 기반시설의 설치를 지원해왔습니다. 녹지를 활용한 대응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데요. 산림청은 2019년부터 미세먼지 차단숲과 도시바람길숲 사업을 추진하며, 외곽의 시원한 공기를 도심으로 유입하고 도심의 더운 공기를 외부로 내보내는 대기순환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이어 2026년에는 기후대응 도시숲 90개소와 도시바람길숲 15개 도시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도시숲 조성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실제 서울을 비롯해 부산, 대구, 청주 등 많은 도시에서 건축물과 도로, 생활 공간의 특성에 맞는 폭염저감 기술을 적용하며 도심의 열섬현상과 대기 정체를 완화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많은 도시가 지역의 기후와 건축 환경에 맞춰 다양한 폭염저감 방안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도로에는 쿨 페이브먼트를, 건물에는 쿨 루프와 단열을 적용하고, 보행 공간에는 나무와 그늘을 늘리고 있습니다. 주차장과 외부 공간에는 투수성 포장과 녹지를 확대하는 방식을 활용하고 있죠. 중요한 것은 특정 재료를 무조건 배제하는 것이 아닌 각 재료가 가진 장점과 한계를 이해하고, 공간의 목적과 기후에 맞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같은 재료라도 햇빛을 얼마나 반사하고 열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물이 스며들 수 있는지 등에 따라 열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뜨거워진 도시를 식히는 일은 단순히 더위를 견디는 데서 그치지 않고, 도시가 열을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반사하고, 내보내는 방식 자체를 다시 설계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밝은 표면을 활용하고, 열을 저장하는 재료를 적용하고, 녹지와 물순환을 늘리는 등 공간 특성에 맞는 해법을 조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미 세계의 여러 도시에서 이러한 변화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뜨거워진 도시를 식히는 일은 도시를 이루는 재료와 공간을 다시 살펴보고, 더 나은 방식으로 조합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