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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로 건축의 본질을 말하다, 마리오 보타&리처드 마이어

2025-05-27

색채로 건축의 본질을 말하다, 마리오 보타&리처드 마이어

마리오 보타와 리처드 마이어는 각각 현대의 유럽과 현대의 미국을 대표하는 건축가입니다. 모더니즘 건축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발전시켜온 두 사람은 한가지의 색채를 통해 건축 철학을 드러낸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죠. 건축물의 존재감과 정서적 측면을 가치 있게 여기는 마리오 보타는 붉은색의 벽돌을, 건축의 구조적 논리와 단순성을 강조한 디자인을 선호하는 마이어는 백색을 주로 사용하며 건축물에 고유의 신념을 불어넣습니다. 색채를 이용해 공간의 정서와 의미를 더욱 풍부하게 재창조해내는 두 거장의 대표작들을 통해 그들의 건축 세계를 살펴봅니다.

 

붉은 벽돌의 마에스트로, 마리오 보타

지역의 정체성을 반영하고, 공간에 대한 진지한 고민으로 건축을 풍부하게 완성 시켜온 건축가, 마리오 보타. 우리나라에는 리움미술관을 비롯해 강남 교보타워 등을 설계한 작가로 이름을 알린 그는 작품에 붉은 벽돌을 즐겨 사용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는 1970년대부터 고향인 스위스 루가노 주변에 설계한 개인주택을 통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각 지역마다 기후적 특징과 자연환경을 적용한 특색 있는 형태의 지역주의 건축이 유행했는데, 마리오 보타 또한 지역의 독창적인 특징들을 살리는 설계를 토대로,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건축물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벽돌, 목재 등 자연의 풍부한 자원 재료를 사용해 건축의 친밀성을 부가시키며, 대중적 호응과 친밀감을 이끌어냈죠.

“벽돌은 흙과 불에서 탄생합니다. 자연의 일부이죠. 저는 그런 벽돌의 감성이 좋으면서 매우 경제적인 건축 자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에너지 문제, 환경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는 착한 자재입니다. 또한 어떤 재료든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하면 대리석이나 금 못지않은 품위를 지닐 수 있다고 믿습니다.”

출처: 마리오 보타 공식 홈페이지

유럽 전통 건축에서 흔히 사용된 붉은 벽돌은 인공적인 마감 없이 풍부한 질감과 따듯함을 가지고 있고, 작은 반복을 통해 다양한 패턴과 조형미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마리오 보타는 자신의 건축적 신념을 표현하는 도구로서 붉은 벽돌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후 붉은 벽돌은 그를 나타내는 시그니처가 되었습니다.

또 한 가지 그의 작품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는 이유는 바로 고전적인 건축요소에서 비롯된 기하학적인 도형을 다른 도형과 유기적으로 조합해 형태와 공간을 만들어낸 점에 있습니다. 대부분의 작품을 사각형, 원형, 삼각형 등 기하학적 도형을 중심으로 설계했으며, 원초적 형태에 대한 예찬은 여전히 지속적으로 작품에 나타나고 있죠.

스위스와 이탈리아에서 주로 소규모 주택이나 교육시설을 선보이던 그는 80년대 이후 종교시설 및 공공시설 등의 작품을 맡으며 스케일이 확대되면서 스위스를 넘어 뉴욕, 도쿄, 서울 등 세계로 무대를 옮겨 활동하고 있습니다. 건축을 통해 지역주민들의 정서적 욕구를 만족시키고, 시대의 감성을 표현하는데 중점을 둔 마리오 보타는 차갑고 매끄러운 재료를 사용하고, 상자모양을 한 획일적인 형태의 건조한 현대적 건축에 대비되는 과거의 건축에 관심을 두게 됩니다. 그 땅의 역사와 정서적 측면을 담고 있는 옛 건축물들의 상징적 가치에 주목한 마리오 보타는 전통적 건축의 축조법을 존중하면서도 상징성이 강하고 현대성을 내포하고 있는 자신만의 새로운 건축을 선보입니다. 건축을 통해 현대인의 시각으로 과거의 것을 재해석해내는 작업을 말이죠.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출처: 마리오보타 공식 홈페이지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은 공공건축에 대한 그의 건축관이 집약적으로 나타난 대표적 작품입니다. 그는 건축과 미술이 서로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신념을 설계를 진행했고, 공간 구성과 자연광의 유입, 전통적 재료 선택 등에 신중을 기했습니다. 그로인해 벽돌로 지어진 육중한 사각형 볼륨과 채광을 위한 중앙부의 비스듬한 원통형 구조, 다양한 벽돌쌓기 기법 등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잘 녹아든 건물로 탄생했죠. 따듯한 느낌의 붉은 벽돌로 외관을 마감하며 벽돌이 갖고 있는 표현성을 충분히 표현한 이 건물은 샌프란시스코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기하학적 조형의 새로운 외형으로 새로운 건축적 랜드마크가 되었고, 마리오 보타는 미국건축가협회 캘리포니아지부 최우수 디자인상을 수상했습니다. 미국에서의 최초 프로젝트이자, 최초의 미술관 설계이기도 한 현대미술관은 주변 환경과도 훌륭한 조화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으며 미술관 설계 전문가로서 발돋움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습니다.

 

산타마리아 델리 안젤리 대성당, 심발리스타 유대교 회당

출처: 마리오보타 공식 홈페이지

마리오 보타를 이야기할 때 종교시설 관련 건축물들을 빼놓을 수 없는데요. 그가 종교 건축을 통해 철학적 깊이와 감성을 가장 강하게 드러내는 건축가 중 한명이기 때문입니다.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형태의 기하학적 디자인을 추구하며, 지역적 맥락의 조화를 중시하는 건축철학을 가진 그에게 종교 건축은 그야말로 자신의 건축 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무대였던 셈입니다. 또 벽돌이라는 전통적인 재료를 활용해 현대적 공간을 창조하는 마리오 보타만큼 종교시설에 어울리는 건축가도 없을 겁니다. “건축은 인간의 삶과 영혼을 담는 그릇이며, 물질적인 것을 넘어 인간의 영적인 요구에 부응하는 건물을 짓고 싶다”고 말한 마리오 보타는 스의스 몬뇨의 산 지오반니 바티스타 교회, 중국 이슬람교 나자후 모스크 사원, 이스라엘 텔 아비브의 심발리스타 유대교 회당 등 종교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성지 건축물들로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프랑스 이브리 성당

출처: 마리오보타 공식 홈페이지

프랑스 에브리(Evry)에 위치한 이브리 성당(Cathedral in Evry)은 직경 38m, 높이 34m에 달하는 크고 높은 원통형 건물로, 외관을 붉은 벽돌로 마감해 예배당의 무게감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그는 원통형 형태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원통형에서 무질서 속의 명확성과 질서에 대한 부름을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전했습니다. 마리오 보타는 지역성과 맥락을 중요시하는 건축가로, 현지 재료 사용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있는데, 이 성당 또한 프랑스 남부 뚜루스(Toulouse)지역에서 생산되는 벽돌을 내외부에 모두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죠. 원통형 상부에는 신성한 권위와 생명의 축복을 상징하는 왕관형태의 24그루는 영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중요한 건축적 요소로 쓰이고 있습니다. 독특한 디자인으로 고정관념을 깬 그의 건축물은 강력한 상징성과 중심성을 부여하며 도시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습니다.

 

마리오 보타는 흙과 불을 상징하는 테라코타 벽돌을 사용해 우리나라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형상화한 리움미술관 M1, 주민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평화를 상징하는 공간인 매향리평화기념관 등을 설계하며 20년 동안 한국과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데요. 그가 우리나라에서 진행한 첫 프로젝트가 바로 교보타워입니다.

강남 교보문고

출처: 마리오보타 공식 홈페이지

강남 한복판에 지어진 교보타워는 순수 기학적 형태이자 고전 건축에서 많이 쓰이는 좌우대칭으로 지어져 강렬하면서도 명료한 이미지를 전달합니다. 무려 10년 동안 17번의 수정을 거쳐 1996년 완성된 25층 높이의 교보타워 건물 외벽에는 붉은 벽돌 타일이 무려 400만 장 쓰였다고 하죠. 유리 건축물과 달리 붉은 벽돌이 주는 무게감을 통해 시각적인 강렬함을 뿜어내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교보타워는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강남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습니다.

 

남양성모성지 대성당

출처: 김용관 작가

도심 속 안식처 같은 남양성모성지 대성당은 종교 건축의 핵심에 충실하며 많은 은유와 상징을 녹여낸 예술적 가치가 높은 건축으로 손꼽힙니다. 1991년 한국의 첫 성모성지로 선포된 남양성모성지는 교황청에서 선정한 세게 30곳의 성모성지 중 하나이자 10만 평에 달하는 거대한 공원입니다. 마리오 보타는 대성당 설계 의뢰를 받자마자 바로 승낙했고, 10년 후인 2020년에 이르러 본당 건축이 완성됩니다. 약 60만장의 붉은 벽돌로 쌓아올린 본당은 멀리서 봐도 마리오 보타의 건물임을 짐작케 하는데요. 이곳은 마리오 보타 외에도 페터 춤토르, 승효상, 한만원 등의 건축가와 조각가 줄리아노 반지, 정영선 조경가 등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힘을 모아 누구나 편히 와서 쉴 수 있는 ‘문화의 성지’로 다듬어지고 있습니다.

 

백색 건축의 대가, 리처드 마이어

세계 전역에 품격 있는 공공시설물을 설계하고, 사상 최연소로 프리츠커상을 수상하는 등 가장 성공한 스타 건축가로 손꼽히는 리처드 마이어. 그를 표현하는 여러 수식어 중 가장 대표적인 표현은 ‘The White Meister’, 백색 건축의 대가입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현대 건축의 거장인 리처드 마이어는 The White Meister란 말 그대로 오로지 백색을 통해 자신의 건축세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백색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색이며, 항상 빛에 의해 전달되고 변화된다. 흰색은 항상 바뀌는 하늘, 구름, 태양, 달 등과 같이 계속 변화되는 것”이라 말한 그는 상대적 가치를 지닌 다른 색과 달리 절대적이며 명백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얘기하죠. 그 때문에 흰색을 통해 차분하면서도 질서 있고 절제된 작품을 선보이는 리차드 마이어의 작품들은 명료하면서도 복합적이며 세련되고 힘이 넘치고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백색 건축의 시작점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시절 그는 피터 아이젠만, 마이클 그레이브스, 찰스 과스메이, 존 헤이덕과 함께 모더니즘 건축을 이어가며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인지도를 높여갔습니다. 뉴욕5(the new york five)라고 불리는 젊은 건축가 그룹은 정통 흰색을 건축물 외관의 기본이 되는 색채로 주로 썼기 때문에 하얀 것들(the whites)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죠. 본질로의 회귀를 주장했던 백색 예찬론자인 르코르뷔지에의 영향을 받아 초기에는 백색을 주제로 한 건축물들을 주로 설계했는데, 다섯 명 중에서도 백색 건축을 연구하고 발전시키며 확고하게 유지해온 사람은 리처드 마이어뿐입니다.

리처드 마이어의 작품은 크게 시대에 따라 주거건축(1960년대), 공공건축(1970년대), 뮤지엄 및 박물관 설계(1980년대)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그는 1967년 뉴욕에 사무실을 개업한 이후 독창적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그중에서 ‘숲 속의 하얀 집’으로 통하는 더글라스 하우스(Douglas House)는 미국 근대 건축의 새 지평을 연 작품이자 그의 철학을 잘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스미스 하우스와 함께 그의 초기 역작으로 손꼽힙니다.

 

더글라스 하우스

출처: 마이어 파트너스 공식 홈페이지

미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모더니즘 주택 중 하나인 더글라스 하우스는 백색으로 디자인된 4층짜리 목조 건축물로, 미시간 호수를 바라보는 절벽에 위치해 있습니다. 울창한 침엽수로 에워싸인 대지에 위치한 백색의 주택은 주변의 조경과 어우러져 새로운 고급 주거의 기준으로 꼽히기도 했죠. 가파른 경사지에 자리하고 있다 보니 다리를 건너 맨 위층인 루프 테라스를 통해 진입하도록 계획되었습니다. 현관을 들어서 아래로 내려가다 보면 그제서야 한 폭의 그림 같은 아름다운 미시간 호의 전경이 한눈에 펼쳐졌습니다. 리처드 마이어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집이었는데, 사람들은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가면 더 바깥으로 나가는 느낌이 나는 이상한 집이라고들 했다”고 할 만큼 특이한 구조였죠.

스미스 하우스와 똑같은 집을 지어달라는 의뢰를 통해 시작된 더글라스 하우스는 단순함과 우아함을 자랑하는 스미스 하우스와 공간 구성은 같지만, 미시간 호수가 집 앞에 펼쳐져 있는 만큼 유감선의 가파른 계단을 떠올리게 하는 돌출된 옥외 철제계단, 연통모양의 굴뚝, 선상갑판을 떠올리게 하는 루프데크 등 크루즈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을 많이 차용했습니다.

실제로 리처드 마이어는 매 작품마다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가장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그는 모든 프로젝트에 7가지 설계 원칙을 고수하며 작품에 적용하고 있는데요. 대지와의 관계를 포함한 구조의 독립성, 선명한 동선, 대칭적이고 수직적인 동선 처리, 명확한 프로그램, 형상과 배경 고려, 솔리드와 보이드의 대비는 그의 건축적 특성이자 높은 완성도를 가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게티 센터

출처: 마이어 파트너스 공식 홈페이지

모더니즘의 미학과 테크놀로지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 자신만의 설계를 보여준 리처드 마이어는 고급 주거 건축 전문가라는 명성을 얻게 된 이후 백색 건축에 잘 어울리는 관공서, 미술관, 박물관 등의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하게 되었는데요. 이 시기에 다양한 전 세계 미술관 공모전을 휩쓸게 되었고, 20세기 최고의 건축 설계비를 기록한 게티 센터(The Getty Center) 또한 공모전에 당선되어 설계를 맡게 됩니다.

13년에 걸쳐 약 10만 제곱미터 규모에 1조원을 들여 지어진 게티 센터는 미국의 석유 사업가이자 대부호인 폴 게티(Jean Paul Getty)의 예술에 대한 열망과 문화적 유산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곳으로, 다양한 미술품 전시와 함께 인상적인 건축물로 LA를 대표하는 박물관입니다.

건축에 오직 흰색만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리처드마이어이지만 단 두 채만은 흰색을 사용하지 않았는데요. 그중 하나가 바로 게티 센터입니다. 센터의 내외부를 모두 깨끗한 흰색으로 통일하려고 했던 마이어의 고집과 달리 오랜 논의 끝에 따뜻한 색조와 독특한 질감의 트래버틴 석회암을 사용해 미색 계열의 외관을 완성했고, 내부 디자인을 맡은 디자이너들이 전시장마다 다른 테마에 맞는 색채로 꾸미게 되면서 내부 또한 각기 다른 색깔로 입혀지게 되었죠. 마이어가 이곳을 방문해도 내부로는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는 우스개 일화도 있습니다.

 

쥬빌리 교회

출처: 마이어 파트너스 공식 홈페이지

로마 중심에서 동쪽으로 약 10㎞ 떨어진 외곽 또르 뜨레 떼스데 지역떼(tor tre teste)에 위치한 쥬빌리 교회(Chiesa Parrocchiale di Dio Padre Misericordios,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의 교회)는 예수그리스도의 탄생 2,000년을 기념하여 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진행한 프로젝트로 지어졌습니다. 1996년 안도 다다오, 군터 베니쉬, 프랭크 게리 등 전 세계 대표적인 건축가 6명을 초대해 국제 지명 공모전을 열었고, 치열한 경쟁 끝에 전통적인 교회 건축과는 전혀 다른 독창적 디자인을 제안한 리처드 마이어가 당선자로 확정되었죠. 그는 이 교회를 종교 행사 외에도 문화적, 레크레이션 및 사회적 활동을 수용하는 개방적인 공간으로 설계했습니다.

가장 역사적인 도시인 로마에 있는 현대적인 건축물로 불리는 쥬빌리 교회는 북쪽으로 수직 벽을 세웠고, 나머지 삼면은 구의 일부처럼 둥근 벽으로 둘러싸인 형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동일한 반경의 세 개의 각기 다른 높이의 3차원 곡면 벽체(17~26.8m사이)는 종교적 의미인 성삼위일체를 암시하고 있기도 하죠. 곡선형 셸은 각각 12톤에 달하는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블록(공장에서 사전 제작된 콘크리트로 현장에서 바로 조립이 가능함) 256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채광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은 시간, 날씨, 계절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며 본당에 신비로움과 활기를 부여합니다.

백색 건축의 매력이 일품인 그의 작품은 한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대비한 지역 재개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15년 설계된 강릉의 씨마크 호텔, 작년 2월에 개관한 솔올미술관이 대표적입니다. 그중 가장 최근작인 솔올미술관은 4년간의 시간을 거쳐 완공되었습니다. 미술관이 자리한 지역의 옛 이름인 솔올은 소나무가 많은 고을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데, 그 이름에 걸맞게 미술관 주변으로 소나무가 우거진 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솔올미술관

출처: 마이어 파트너스 공식 홈페이지

은퇴한 마이어가 미술관 설계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지만 그의 건축철학을 계승한 마이어 파트너스가 설계를 담당하며 개관 전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요. 이곳은 리처드 마이어의 건축 철학인 백색 미학이 완벽히 구현된 건축물이자, 한국적 정서와 전통 건축(중앙 마당을 중심으로 세 개의 파빌리온이 감싸도록 설계)을 수용한 건축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또한 그의 전매특허인 기하학적 형태와 내부로 쏟아지는 정교한 빛의 유입 등 그의 독창적인 건축 철학을 고스란히 반영하며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담당자는 “건물 그 자체로 완벽한 조형인 동시에 예술작품과 상호작용하는 디자인을 구현하는 게 목표였으며, 미술관을 지을 때 전시 작품과 주변 조경을 방해해서 안 된다는 점을 원칙 삼아 미니멀리즘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전했죠. 백색 콘크리트와 유리 등 단순한 재료와 구성을 통해 지어진 미술관은 벽을 대형 유리로 마감해 자연광을 최대한 내부로 끌어들이며, 마치 외부공간과 이어지는 듯한 개방감을 선사합니다. 주변 자연과의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한 만큼 예술과 자연, 건축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하나로 어우러지는 모습을 느낄 수 있습니다.

 

리처드 마이어는 유명 건축가보다는 마스터 빌더로 인정받기를 원했습니다. 단지 유명한 건축가로서 시각적 조형을 만들어내면서 소비되는 것이 아닌 건축 전체를 통합적으로 통제하고 구현하는 전인적 건축가로 기억되길 바란 것이죠. 프로젝트 과정 중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로 건물이 위치한 지역, 마감 재료, 건물 용도에 따라 세심하게 어떤 백색을 고르느냐, 또 실제 시공에서 원하는 흰색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라고 할 만큼 백색에 대한 남다른 철학을 가진 리처드 마이어이게 백색은 단순한 색의 아니라 자신을 순수하게 드러내는 건축적 언어였습니다.

오직 하나의 색으로도 건축의 감정과 철학을 충분히 담아낼 수 있음을 보여준 마리오 보타와 리처드 마이어. 색채를 통해 깊고 강렬한 건축적 메시지를 전하는 그들의 건축물은 시대를 넘어 작품에 선 이들로 하여금 잊지 못할 감동과 여운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리처드마이어, 마리오보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