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삼표셀렉트

개최 도시의 역사와 문화, 미래를 담다, ‘올림픽 스타디움 건축’

2024-07-25

개최 도시의 역사와 문화, 미래를 담다, ‘올림픽 스타디움 건축’

스타디움(Stadium)은 고대 그리스에서 600피트(약 180m)를 나타내는 단위인 ‘스타디온(Stadion)’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당시 도시국가마다 1스타디온의 거리를 달리는 경기가 열렸는데, 해당 길이를 가리키던 스타디온의 의미가 점차 확대되어 ‘경주가 벌어지는 장소’로 쓰이게 된 것이죠. 현재는 큰 행사를 치를 수 있는 중앙 공간과 이를 둘러싼 관람석으로 구성된, 규모가 큰 경기장을 통틀어 스타디움이라 칭하고 있습니다. 특히,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 스타디움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이 되곤 하는데요. 올림픽의 주요 경기는 물론, 개·폐막식과 성화 점화, 참가 선수단 입장 등이 모두 이루어지는 핵심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에펠탑부터 베르사유 궁전까지, 도시 전체가 올림픽 경기장이 된 파리

그런 면에서 오는 7월 26일 시작되는 2024 파리올림픽은 여러모로 파격적인 선택을 감행했습니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혁신적인 올림픽을 개최하는 동시에 더 많은 사람들이 올림픽이라는 축제에 함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경기장 밖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형식의 개막식을 선언한 것이죠. 하계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경기장 내부가 아닌 파리 센강을 따라 6km 구간에 걸쳐 열릴 예정인 이번 개막식은 파리 시민은 물론, 올림픽 기간을 맞아 파리를 찾은 전 세계 방문객 모두에게 개막식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하고, 무료로 관람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요 경기가 열리게 될 경기장 역시 파리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와 문화유적 등을 적극 활용할 예정입니다. 에펠탑 바로 앞에 위치한 마르스 광장에서는 비치 발리볼, 나폴레옹 무덤이 있는 군사박물관 앵발리드에서는 양궁, 베르사유 궁전에서는 승마와 근대 5종 경기가 열리게 됩니다. 또, 우리에겐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처형된 장소로 더 유명한 콩코드 광장에서는 스케이트 보드와 3X3농구, 브레이킹 경기가,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중인 파리 만국박람회의 상징 그랑 팔레에서는 펜싱과 태권도 경기가 치러집니다. 대회가 종료되면 임시 관중석, 스탠드 등을 비롯한 대부분의 시설들은 모두 철거되어 다시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했는데요. 역사상 가장 지속 가능한 올림픽 개최를 위해 파리는, 쓰임을 다하고 사라지는 임시 경기장 또는 이미 지어진 경기장을 재활용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경우와는 달리 그동안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의 세계적인 스포츠 축제들이 열렸던 도시에는 어김없이 대규모의 경기장들이 새롭게 건설되어 메인 스타디움으로서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 왔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건축가 김수근이 조선백자의 우아한 곡선미를 모티브로 설계한 잠실 주경기장을, 2002 FIFA 월드컵 공동 개최 당시에는 한국의 전통적인 연과 방패를 형상화한 66,000석 규모의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을 건설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스포츠 경기만큼이나 큰 주목을 받으며, 개최 도시가 품고 있는 오랜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건설되어 도시를 상징하는 새로운 얼굴로 자리매김한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스타디움들이 세계 곳곳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지상에 내려앉은 거대한 새 둥지, 2008 베이징 올림픽 스타디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은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올림픽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디자인을 선보인 스타디움으로 꼽힙니다. 경기장의 너비는 무려 280m, 높이는 333m에 달하고, 총 4만 톤의 강철과 11만 톤의 콘크리트를 사용해 건립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철근 구조 건축물로 기록되었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합니다. 특이하게도 ‘베이징 국가체육장(Beijing National Stadium)’이라는 정식 명칭보다 새 둥지를 의미하는 ‘냐오차오(鸟巢)’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려지고 있는데요. 이는 경기장 외관의 모습이 마치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엮어놓은 거대한 새 둥지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2008년 하계올림픽 당시 개·폐막식과 육상 경기, 남자축구 결승전이 바로 이곳에서 열렸는데요. 총 10만 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냐오차오의 설계는 스위스 출신의 건축가 듀오이자 2001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바 있는 헤르조그 & 드 뫼롱(Herzog & de Meuron)이 맡아 진행했습니다. 이들은 2006년 독일월드컵 당시에도 ETFE 에어패널(현재는 LED 패널로 모두 교체)이라는 생소한 건축 재료를 사용해 경기장 외부의 색채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도록 설계한 독일 뮌헨의 알리안츠 아레나(Allianz Arena)로 놀라움을 선사한 바 있습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By Arne Müseler

베이징 올림픽의 메인 스타디움 역할을 하게 될 냐오차오를 설계할 당시 헤르조그 & 드 뫼롱은 고대 중국 도자기의 둥근 형태와 갈라진 패턴에서 건축적 영감을 얻었다고 하는데요. 경기장의 몸통을 구성하는 뼈대는 외부로 과감하게 노출시켜 강력한 구조미를 표현했고, 견고한 벽체를 만드는 대신 울창한 숲처럼 길게 늘어선 기둥들이 내부 공간을 구성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또한, 경기장 내부에서 조명을 밝히면 은회색의 철재 기둥 사이로 중국을 상징하는 붉은 빛이 바깥으로 새어 나와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도록 하는 등 오랜 시간 구조의 영역에 머물러있던 경기장 건축을 미학적인 측면으로 한 단계 더 끌어올렸다는 극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냐오차오의 개폐가 가능한 지붕 구조 역시 빼놓을 수 없는데요. 이는 첨단 테크놀로지 기술의 집약을 보여주는 것으로, 경기장 내부 기류와 온도를 조절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냐오차오는 베이징이 2008년에 하계올림픽에 이어 2022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면서 14년 만에 다시 한번 메인 스타디움으로서의 역할을 해내며 세계 최초로 동·하계 올림픽 개·폐막식이 모두 열린 유일무이한 경기장이 되었는데요. ‘로마의 콜로세움 이래 가장 독창적이고, 아름다우며, 독특한 경기장’이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을 만큼 여전히 베이징 시민들의 가장 큰 자부심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100년의 시간을 이어온 역사적인 경기장, LA 메모리얼 콜리세움

올림픽 스타디움 건축의 역사를 언급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공간 중 하나인 LA 메모리얼 콜리세움(Los Angeles Memorial Coliseum)은 1923년 개장한 이후 지금까지 100년 동안이나 미국을 대표하는 경기장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건축가 듀오인 존 파킨슨(John Parkinson)과 그의 아들 도널드 파킨슨(Donald Parkinson)이 설계를 맡아 진행했고, 개장할 당시 7만5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LA 최대 규모의 경기장으로 지어져 줄곧 USC 트로전스 미식축구팀의 홈 구장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한때는 미국 메이저리그의 인기 구단인 LA 다저스도 이곳을 임시 개조해 홈 구장으로 사용하며 경기당 최대 10만 명 이상의 관중을 동원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LA 메모리얼 콜리세움은 1932년과 1984년 LA에서 열린 두 번의 하계올림픽에서 모두 메인 스타디움으로 사용되었는데요. 1932년에는 육상과 미식축구, 승마, 필드하키, 체조 등 다양한 경기가 이곳에서 열렸고, 1984년에는 육상 종목 경기가 펼쳐졌습니다. 그리고 2028년 세 번째 올림픽을 준비하게 된 LA는 미국의 역사기념물로 지정된 이곳 LA 메모리얼 콜리세움을 폐막식과 육상 경기가 열리는 주요 공간으로 다시 한번 소환해 과거 화려했던 올림픽 시대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킬 예정입니다.

무엇보다 LA 메모리얼 콜리세움은 단층으로 만들어진 스탠드와, 고대 로마의 원형 경기장(콜로세움) 혹은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 경기장을 떠오르게 하는 건축 스타일이 인상적인데요. 2019년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거쳤지만 이러한 형태는 유지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길다란 타원형으로 지어진 초대형 경기장임에도 불구하고, 관중석 어디에 앉아도 시야를 방해하는 요소 없이 경기를 관람할 수 있으며, 지면에서 깊게 파고들어간 그릇(Bowl) 모양을 하고 있어 관중들의 응원과 함성이 그라운드 안으로 모여 증폭되는 효과를 발휘한다고 합니다.

 

목조 건축이 보여준 무한한 가능성, 2020 도쿄올림픽 신국립경기장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2021년에야 열릴 수 있었던 2020 도쿄올림픽은 주경기장 건립 문제로 시작 전부터 커다란 난항을 겪은 바 있습니다. 2014년 진행한 주경기장 설계 공모를 통해 이라크 출신의 영국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안을 선정했지만, 천문학적인 건축 비용 문제에 부딪혀 재공모를 실시, 결국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 쿠마 켄고(Kengo Kuma)가 신국립경기장(Japan National Stadium)의 메인 설계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는 1964년 같은 자리에서 열린 도쿄올림픽의 역사적 공간을 과감히 허물고 재건축을 하기로 결정된 만큼, 현대적인 건축 기술과 일본의 전통건축 기법이 함께 어우러진 새로운 디자인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무엇보다 쿠마 켄고의 설계안은 전체 스타디움을 구성하는 주재료로 삼나무와 소나무, 낙엽송 등의 목재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평소 생명력과 미래 가치를 강조해온 쿠마 켄고의 신념대로 ‘약한 나무가 강한 콘크리트를 대신할 수 있다’는 목조 건축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죠. 이러한 특징은 일본식 목조건물의 돌출된 처마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경기장 각 층마다 설치한 삼나무 패널의 타원형 처마에서 가장 잘 드러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처마는 햇빛과 비를 차단하고, 경기장 내부까지 바람이 잘 통하게 하여 열기와 습도를 조절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또, 삼나무와 낙엽송 집성재가 사용된 경기장 지붕과 각 층의 좌석 뒤편에 47,000여 그루의 식물들을 식재한 녹지순환구역, 일본 내 47개 토도부현에서 조달해온 목재로 제작된 관중석도 신국립경기장의 빼놓을 수 없는 특징들인데요. 쿠마 켄고의 이러한 선택은 올림픽이 끝난 이후에도 신국립경기장이 주변 도심의 녹지 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자연스럽게 순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인근 마을 풍경을 압도하지 않도록 비교적 낮은 높이의 스타디움을 설계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쿠마 켄고는 68,000석에 달하는 관중석을 한 가지 색으로 칠하지 않고 땅과 하늘, 숲의 이미지에서 연상되는 다섯 가지 색을 그라데이션과 모자이크 기법으로 채워나갔습니다. 이러한 방식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쿠마 켄고는 올림픽 기간이 끝나고 많은 사람이 찾지 않게 되더라도 ‘쓸쓸함이 느껴지지 않는 디자인’을 하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는데요. 이 선택은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로 인해 무관중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던 많은 경기에서 마치 관중들이 함께하고 있는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키며 공간의 허전함을 채우는 뜻밖의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팬데믹 속에 진행된 2020 도쿄올림픽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전통과 미래가 마주하는 풍경, 2022 카타르월드컵 스타디움 974 & 알 자누브

기후 위기의 시대를 맞아 자연친화적이고 탄소중립적이며, 재활용이 가능한 스타디움 건축에 대한 고민이 점차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이와 같은 변화는 지속가능한 스포츠 이벤트 개최를 위한 전 세계적인 흐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문제에 대해 제대로 화답한 사례가 있다면, 가장 최근에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일 것입니다. 동·하계 올림픽만큼이나 대규모로 진행되는 FIFA월드컵 개최국의 메인 스타디움 디자인은 축구팬뿐만 아니라 모두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는데요. 중동 지역 최초로 월드컵 유치에 성공한 카타르는 수용인원 4만 명 규모의 대형 경기장 전체를 해체와 조립, 분리 및 재활용이 가능한 새로운 방식의 스타디움을 선보이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By Adnen1985

스페인의 스포츠 건축 전문회사 펜윅 이리바렌 아키텍츠(Fenwick Iribarren Architects)의 설계로 탄생한 ‘스타디움 974(Stadium 974)’는 월드컵 역사상 최초의 조립식 경기장입니다. 강철 폐기물을 일부 활용해 만든 모듈식 골조 위에 화물 컨테이너 974개를 조립해 완성했는데요. ‘974’라는 숫자는 카타르의 국제전화 코드 번호이기도 합니다. 커다란 원형으로 둘러싸인 컨테이너들은 각각 경기장 내 사무실과 매점, 화장실 등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설계했고, 에어컨이 없는 유일한 월드컵 경기장이었던 만큼 통풍과 환기를 적극 고려한 구조 설계로 적정 온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필요하면 언제든 철거와 분해가 가능한 스타디움 974는 활용성 측면에서 조금 더 나은 소규모 경기장이나 기타 다른 용도의 시설로도 손쉽게 재조립이 가능하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요. 실제로 카타르는 월드컵이 끝난 직후인 2022년 12월부터 스타디움 974의 해체 작업을 진행했고, 이렇게 분리된 컨테이너들은 국제축구연맹과의 논의를 거쳐 2030 월드컵 개최국 일부를 포함한 다른 국가와 지역으로 옮겨져 새로운 용도로 쓰이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원래 경기장이 있던 자리에는 인근 지역주민을 위한 수변 녹지 시설이 건립되고 있습니다.

팬윅 이리바렌 아키텍츠는 스타디움 974 외에도 아랍 소년들이 성인이 되기 전까지 쓰는 전통모자인 가피야(Gahfiya)의 문양에서 영감을 얻어 카타르 출신 건축가 아이브라함 자이다와 공동 설계한 알 투마마 스타디움(Al Thumama Stadium), 기하학적 패턴의 패널들이 외벽을 감싸고 있는 모양 때문에 ‘사막의 다이아몬드’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한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Education City Stadium)의 설계에도 참여하며 2022 카타르월드컵 스타디움 건축에서 빛나는 존재감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카타르와 같은 중동 지역 이라크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세상을 떠나기 전 남긴 디자인 그대로 완성된 알 자누브 스타디움(Al Janoub Stadium)을 빼놓고 카타르월드컵을 이야기하기란 어렵습니다. 유려하고 섬세한 곡선미를 자랑하는 알 자누브 스타디움의 외형은 언뜻 보기에는 미래의 우주선을 닮은 듯 하지만 사실은 아랍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기잡이 배인 ‘도우(Dhow)’의 돛이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경기장이 위치한 알 와크라 지역이 어업으로 유명한 항구도시였다는 점에서 착안한 것이죠. 외벽과 지붕을 가득 채우고 있는 기하학적인 곡선은 돛의 주름 같기도, 혹은 바다의 물결 같기도 한데요. 아름다운 외관 디자인뿐만 아니라 빗물 재활용 시스템, 태양열 패널, 친환경 냉방시스템 등을 두루 갖춘 것은 물론, 중동지역의 친환경 평가 시스템인 GSAS 4등급과 LEED 인증을 모두 획득한 지속가능한 경기장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삼표셀렉트, 스타디움, 올림픽스타디움, 파리올림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