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대의 건축가들은 그 시대의 모습을 도시에 남겨둬야 할 책임을 지닌다’라는 자크 시라크의 말처럼, 오늘날의 현대 건축은 당대의 시대상과 문화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날의 건축은 단순히 시각적인 미적 가치를 넘어 지속가능성, 지역성, 공공성 등을 포괄하는 복합적인 가치를 구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졌습니다.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여 2015년, 세계 최고의 아름다운 건축물에 수여하는 상이 탄생했는데, 그것이 바로 ‘베르사유 건축상(Prix Versailles)’입니다.
베르사유 건축상은 프랑스의 기업가이자 건축 애호가인 제롬 구아뎅이 유네스코(UNESCO)와 프랑스 문화부의 후원을 받아 창설한 국제 건축상입니다. 현대 건축에 수여하는 상에 ‘베르사유’라는 명칭이 붙은 이유는 18세기 루이 14세가 건설한 베르사유 궁전이 건축, 미술, 정원 설계가 총체적으로 결합된 ‘절대적 아름다움’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이 상은 궁전의 예술적 정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외적인 미학뿐만 아니라 문화, 사회, 생태 분야의 내적 가치까지 겸비한 오늘날의 건축물에 수여됩니다.

이 상의 가장 독독한 특징은 심사위원단의 구성에 있습니다. 건축가뿐만 아니라 발레리나, 패션 디자이너, 셰프, 영화감독 등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들이 참여하여 ‘아름다움’을 다층적인 시각에서 평가합니다. 실제로 건축가 데이비드 아자예, 셰프 안 소피 픽, 패션 디자이너 엘리 사브 등이 심사에 참여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심사 기준은 혁신성과 창의성, 지역 문화유산의 반영, 생태적 효율성, 사회적 상호작용과 공공성, 그리고 종합적 조화라는 다섯 가지 핵심 요소로 구성됩니다. 특히 ‘생태적, 사회적, 문화적, 미학적 관점에서 지속가능한 접근을 취한 프로젝트에 특별히 주목한다’는 심사 규정은 베르사유 건축상이 단순한 시각적 유희를 넘어 ‘책임 있는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창설 당시 매장, 호텔, 레스토랑 3개 부문으로 시작한 베르사유 건축상은 2017년 쇼핑센터를 시작으로 대학 캠퍼스, 여객 터미널, 스포츠 시설을 거쳐 2024년 박물관 부문까지 추가하며 현재 총 8개 부문에서 24개의 세계 타이틀을 수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상 분야의 확장은 베르사유 건축상이 현대인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모든 공공 건축물을 평가 대상으로 삼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국내에서도 베르사유 건축상의 최고 영예인 세계 1위(대상)를 차지한 작품들이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주인공은 갤러리아 광교입니다. 이곳은 아제르바이잔의 데니즈 몰, 인도의 피닉스 팔라시오 등을 제치고 2021년 베르사유 건축상 쇼핑몰 부문 세계 1위(Prix Versailles)에 선정되었습니다.
네덜란드의 세계적인 건축사무소 OMA의 건축가 렘 콜하스가 설계한 갤러리아 광교는 ‘창문 없는 상자’라는 백화점의 전형적인 틀을 완전히 깨뜨렸습니다. 거대한 암석을 연상시키는 건물 외관은 약 12만 5,000장의 삼각형 석재와 1,451개의 삼각형 유리로 구성되어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이 유리는 낮에는 자연광을 내부로 끌어들여 개방감을 주고, 밤에는 내부의 조명이 밖으로 새어 나와 암석 속에 박힌 보석처럼 빛나는 효과를 냅니다.
특히 이 유리는 단순한 외관 디자인을 넘어 내부 동선을 형성하는데, 이를 ‘갤러리아 루프(Public Loop)’라고 부릅니다. 입구에서 옥상까지 540m에 이르는 이 유리 통로는 건물 전체를 하나의 ‘건축적 산책로’로 만듭니다. OMA의 파트너 크리스 판 듀인은 “상업 공간도 공공의 광장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갤러리아 루프는 쇼핑객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도 도시를 조망하며 산책할 수 있는 공공 보행로 역할을 수행하며, 백화점이라는 상업 시설을 시민과 연결되는 문화적 플랫폼으로 재정의했다는 점에서 현대 한국 건축의 중요한 성취로 평가받습니다.
2024년에는 한국 전통 가옥의 미학이 세계를 매료시켰습니다. 강원도 영월의 ‘더한옥헤리티지하우스’가 2024 베르사유 건축상 호텔 부문 세계 1위(Prix Versailles)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이는 한국인이 설계한 건축물 중 최초로 해당 부문에서 세계 정상에 오른 쾌거입니다.

출처: 더한옥헤리티지하우스
더한옥헤리티지하우스는 IT 기업 코나아이의 조정일 대표가 24명의 대목장과 함께 4년간 협업하여 완성한 공간입니다. 전통 건축의 원리와 고유한 미학을 온전히 유지하면서도, 첨단 소재와 과학적 설계를 결합해 현대적 생활에 적합한 편의성을 더했습니다. 자연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색이 변하는 변색 기와를 얹어 운치를 더했으며, 각 동의 높낮이를 달리해 리듬감 있는 마을 풍경을 조성했습니다.

내부는 기존 한옥보다 긴 들보를 사용해 층고를 높임으로써 개방감을 확보했고, 동마다 구조 설계를 달리해 창 너머의 사계절 풍광이 마치 액자 속 그림처럼 걸리도록 유도했습니다. 또한 최고급 목재와 100% 친환경 마감재를 사용하여 지속가능성까지 높였습니다. 자연과의 조화, 섬세한 디테일, 그리고 실용성까지 갖춘 이곳은 2028년까지 총 18개 동의 한옥 문화 공간으로 확장되어 세계 최대 규모의 한옥 호텔로 거듭날 예정입니다.
2025년에도 한국 건축의 위상은 이어졌습니다. 2023년 개관한 오디움(Audeum)이 베르사유 건축상 박물관 부문에서 ‘실내 특별상(Special Prize Interior)’을 받으며 주목받았습니다.
오디움은 세계 최초의 오디오 전문 박물관으로, 일본의 거장 쿠마 겐고와 디자이너 하라 켄야가 참여해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쿠마 겐고는 ‘소리와 빛, 바람과 향기가 겹겹이 포개지는 감각적 경험의 장소’라는 건축 철학을 바탕으로 이 건물을 설계했습니다. 외관을 장식한 20,000개의 알루미늄 파이프는 빛과 그림자의 변화에 따라 매 순간 다른 표정을 만들어냅니다.
이번 수상의 핵심은 미적 완성도와 기능적 설계를 두루 갖춘 실내 공간에 있습니다. 수직으로 배열된 파이프와 자연광, 목재의 질감이 조화를 이룬 내부는 관람객이 소리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선사합니다. 특히 벽과 바닥에 사용된 알래스카 편백나무는 특유의 향기와 최적의 음향 효과를 제공하며, 전시실의 직물 마감은 음향 전도성을 극대화합니다. 이러한 구성은 시각, 청각, 촉각, 후각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총체적인 예술적 경험을 관람객에게 선사하며, 박물관 건축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