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은 ‘스포츠의 해’라고 불러도 무방할 만큼 일년 내내 세계적인 규모의 초대형 스포츠 이벤트가 연이어 펼쳐집니다. 동계올림픽과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FIFA 월드컵, 그리고 아시안게임까지 4개의 대회가 모두 올해로 예정되어 있는데요. 그 시작은 2월 6일부터 22일까지 이탈리아의 두 도시, 밀라노-코르티나 담페초(Milano–Cortina d’Ampezzo)에서 공동 개최되는 2026 동계올림픽입니다. 빙상 종목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경제 및 패션 도시인 밀라노에서, 설상 종목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돌로미티(Dolomites) 산맥에 위치한 코르티나 담페초(1956년 이미 한 차례의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바 있음)에서 나뉘어 열리고 있습니다.
이들 도시는 사실 건축의 관점에서 보아도 매우 흥미로운데요. 오랜 기간 패션과 디자인의 중심으로 불렸던 밀라노는 현대 도시 건축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실험적 행보를 계속하고 있고, 유럽인들의 겨울철 휴양지로 유명한 코르티나 담페초는 알프스 지역의 전통적인 목조 건축 양식인 샬레(Chalet)와 유럽풍 석조 건축물이 함께 어우러져 고전적이면서도 세련된 도시 풍경을 완성하고 있습니다. 그럼 2026 동계올림픽 경기만큼이나 흥미로운 두 도시의 건축 풍경과 함께, 과감하면서도 단호하게 이어지고 있는 올림픽 전후의 건축적 실험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처음 방문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도시의 유산처럼 남아있는 수많은 건축물의 위용에 가장 먼저 압도당할 정도로, 밀라노 도심에서는 르네상스와 고딕 양식을 대표하는 건축 걸작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 중 600년 가까운 시간에 걸쳐 완성된 밀라노 대성당(Duomo di Milano)은 건물 전체 길이가 158m, 가장 높은 첨탑이 108m에 이르는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성당으로, 밀라노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데요. 성당 전체가 흰 대리석으로 둘러싸여 있고, 건물의 외관을 장식하는 소첨탑의 수만 해도 무려 135개나 됩니다. 특히, 1774년 이후 줄곧 가장 높은 첨탑 위를 지켜온 황금빛 성모 마리아상 ‘마돈니나(Madonnina)’의 존재는 오랜 기간 밀라노 시민들의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밀라노 대성당 바로 옆에 위치한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Galleria Vittorio Emanuele II) 역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건축 유산입니다. 이탈리아의 건축가 주세페 멘고니(Giuseppe Mengoni)의 설계로 1877년 완공되었으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쇼핑 아케이드 중 하나로 역사적 가치가 높은 곳입니다. 특히 두오모 광장에서 스칼라 광장까지 200m 길이에 걸쳐 이어지는 화려한 유리 지붕과 둥근 천장의 프레스코화, 그리고 12궁도를 표현한 모자이크 바닥이 인상적인 공간으로, 고풍스러운 돔과 벽면 장식은 네오 르네상스 양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또, 세계 3대 오페라 극장으로 권위와 명성을 떨치고 있는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Teatro alla Scala)은 전 세계 오페라 가수들에게 꿈의 무대로 불리는 곳입니다. 1778년 건축가 주세페 피에르마리니(Giuseppe Piermarini)에 의해 완공된 이후 로시니와 베르디, 푸치니 등의 오페라 명작들이 초연된 무대이자, 세계적인 성악가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 등을 배출한 극장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검소한 외관에 비해 극장 내부는 매우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는데요. 2002년 스위스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Mario Botta)가 대대적인 개보수를 담당하면서 보다 현대적인 무대와 수준 높은 공연 환경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 곳은 지휘자 정명훈이 명예 지휘자로 위촉된 곳이기도 합니다.
이 밖에도 건축 연대는 다르지만 영화 <아이 엠 러브>, <하우스 오브 구찌>의 촬영지이자 이번 동계올림픽 기간 동안 코리아 하우스로 운영될 예정인 밀라노의 빌라 네키 캄필리오(Villa Necchi Campiglio)가 있습니다. 1930년대 이탈리아 최상위 부유층의 우아하고 세련된 라이프 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는 숨은 보석 같은 공간으로, 주방부터 욕실, 바닥에 깔린 카펫까지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이탈리아 인테리어와 장식 예술의 정수로 꼽히는 이곳이 대한민국 선수단을 지원하기 위한 공간으로 운영된다고 하는데요. 우리 국가대표 선수단의 단복 전시는 물론, 팀 코리아 포토존 운영, 국립박물관 상품 판매, 주요 경기 단체 응원전이 펼쳐지는 빌라 네키 캄필리오의 한시적 변신이 벌써부터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이처럼 역사적인 가치를 자랑하는 고풍스럽고 웅장한 건축물들이 오랜 시간 도시의 중심을 지키고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 밀라노는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미래 도시를 향한 꿈을 일찌감치 선보인 매우 진취적인 도시이기도 합니다. 그 시작은 과거 무역 박람회장으로 사용되다 버려진 36.6헥타르(약 11만 평)의 부지를 재개발해 대규모 주거 및 상업단지로 조성한 시티라이프(CityLife) 프로젝트였습니다. 당대 최고의 건축가인 이소자키 아라타(Isozaki Arata),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 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마스터플랜에 참여했고, 이들은 밀라노를 대표할 새로운 마천루 건설과 함께 밀라노가 지속가능하고 현대적인 친환경 도시로 거듭날 수 있는 새로운 설계 방안을 모색했습니다.
시티라이프 지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미래지향적이고 실험적인 디자인의 주거 단지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총 307세대 규모로 2013년에 완공된 다니엘 리베스킨트의 주거 단지(리베스킨트 레지던스)는 5개 동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해체주의 건축의 거장답게 각 동은 서로 다른 입면과 비대칭적인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개방형 안뜰을 중심으로 완만한 곡선을 그리고 있는 조형적인 볼륨감, 사선형의 발코니 디자인 등 파격적인 주거 공간을 구현하면서도 친환경 자재 사용과 고효율의 에너지 시스템을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이와 반대편인 시티라이프 남동쪽에 위치한 자하 하디드의 주거 단지(하디드 레지던스)는 조금 더 부드러운 곡선형의 외관을 자랑하는 7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잔잔한 물결이 일렁이듯 편안한 느낌을 주는 지붕과 발코니는 주변 풍경과 어우러져 역동적이면서도 우아한 무드를 연출하고 있으며, 화이트와 우드 컬러를 전면에 사용해 자연의 따뜻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현재 밀라노에서 가장 고급스럽고 현대적인 주거 공간으로 꼽히고 있는 두 개의 주거 단지 사이에는 상업 및 오피스 시설을 갖춘 초고층 빌딩들이 시티라이프의 중심부에 자리하도록 배치되어 있습니다.

출처: https://www.city-life.it/en
일명 시티라이프의 ‘마천루 3인방’이라 불리는 알리안츠 타워(Torre Allianz)와 제네랄리 타워(Torre Generali), 리베스킨트 타워(Torre Libeskind)는 마스터플랜에 참여한 세 사람의 건축가들이 각각의 설계를 맡아 순차적으로 완공되었으며, 오늘날 시티라이프 지구의 스카이라인을 완성하는 상징적인 빌딩들이기도 합니다. 각 건물은 세 명의 건축가들이 추구하는 건축 철학과 개성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으면서도 시티라이프의 중심부에 위치한 대규모 녹지 공간과 조화를 이루며 배치되도록 함으로써 밀라노에서 가장 압도적인 시티 뷰를 선사하고 있습니다.
밀라노가 건축과 디자인을 통해 미래도시로 방향을 전환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지역은 아마도 포르타 누오바(Porta Nuova) 지구일 것입니다. 이는 약 29만㎡에 달하는 유휴 철도 및 산업 부지를 재개발해 친환경 첨단 복합도시로 탄생시키고자 추진된 유럽 최대 규모의 도시 재생 프로젝트가이룬 성과라 할 수 있는데요. 이탈리아의 건축가 지오 폰티(Giò Ponti)가 설계한 피렐리 타워((Pirelli Tower)를 비롯해 세자르 펠리의 유니크레딧 타워(UniCredit Tower), 콘 페더슨 폭스(Kohn Pedersen Fox: KPF)의 다이아몬드 타워(Torre Diamante) 등 20여 개가 넘는 고층 빌딩들이 대거 들어서며 말 그대로 천지개벽 수준의 변화를 경험한 지역입니다.
특히, 지름 100m의 원형으로 설계된 가에 아울렌티 광장(Piazza Gae Aulenti)을 중심으로 분수와 카페, 조형물 등이 주변의 고층 건물들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도시의 활기를 더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 건축의 창의성과 도시 공간의 통일성을 극대화한 밀라노의 전략을 엿볼 수 있습니다. 또한, 수백 그루의 나무와 다양한 식물 등을 활용한 테마 정원으로 조성되어 있는 포르타 누오바 지구의 도서관 공원(Biblioteca degli Alberi Milano: BAM)은 밀라노 시민들이 도심에서 온전히 자연을 즐길 수 있는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음은 물론,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그 책임을 강조하는 역할 또한 함께 수행하고 있습니다.

출처: https://www.stefanoboeriarchitetti.net/
이처럼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실현하고 이미 우리 앞에 놓인 기후 위기와 환경 문제를 도시적 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밀라노는 도심 한가운데 거대한 수직 숲을 건설하기에 이릅니다. ‘보스코 베르티칼레(Piazza Gae Aulenti(Bosco Verticale)’라는 이름의 이 건물은 각각 112m, 80m 높이로 이루어진 2개의 주거용 고층 아파트로 지어졌는데요. 건물 외벽 전체를 포함한 모든 발코니에 나무와 식물을 빼곡하게 심어 미세먼지 저감 및 도심의 열섬 현상 완화, 산소 공급 등의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인간이 거주하는 나무들의 집’이라고 불리는 보스코 베르티칼레는 2014년 이탈리아 출신의 건축가 스테파노 보에리(Stefano Boeri)에 의해 완공되었습니다. 건물이 그 자체로 완벽한 숲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약 8백여 그루의 나무와 5천여 그루의 관목, 1만5천여 식물들을 활용했다고 합니다. 이를 위해 발코니는 나무 뿌리를 견딜 수 있도록 구조 보강이 이루어졌고, 빗물을 재활용한 자동 관수 시스템을 두어 모든 식물에 적절한 수분을 공급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독창적이고 획기적인 건축물을 통해 밀라노는 자연을 그대로 품은 새로운 도시 생태계의 가능성을 보여준 첫 번째 도시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출처: davidchipperfield.com ©Onirism Studio
밀라노와 코르티나 담페초의 놀라운 건축적 변신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도시의 확고한 건축 철학이 동계올림픽 관련 시설에까지 이어지고 있는 건데요. 두 도시 모두 이번 2026 동계올림픽에서 사용될 95% 이상의 경기장은 기존 시설을 이용하거나 부분 리모델링을 통해 친환경 올림픽으로 거듭나겠다는 목표를 실현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대회를 위해 새롭게 건설된 밀라노의 산타줄리아 아레나(Arena Milano Santa Giulia)와 포르타 로마나 올림픽 선수촌(Porta Romana Olympic Village)마저도 아예 설계 단계부터 올림픽이 끝난 이후의 지속가능한 활용을 전제로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영국의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가 설계에 참여한 산타줄리아 아레나(아레나 밀라노라고도 불림)는 고대 로마의 원형 경기장(Amphitheater)을 연상케 하는 타원형의 금속 링 3개가 서로 겹친 채로 부유하는 듯한 외관이 인상적입니다. 낮에는 알루미늄 튜브가 빛을 반사하고, 밤에는 LED 스트립을 통해 미디어 파사드의 효과를 내기도 하는데요. 지붕에는 4천여 개의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어 있어 에너지 자립을 실천하는 친환경 경기장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올림픽 기간 동안 산타 줄리아 아레나는 총 1만6천 석 규모의 아이스하키 경기장으로 사용되다가 올림픽이 끝난 이후에는 대규모 콘서트와 문화 행사, 스포츠 이벤트 등을 수용하는 다목적 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세계적인 건축회사 SOM(Skidmore, Owings & Merrill)이 참여한 포르타 로마나 올림픽 선수촌이 새로운 도시 재생의 방식을 제시하며 단순한 대회 시설을 넘어 도시 유산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새로운 건축 모델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약 4만㎡(약 1만2천 평) 규모의 부지에 6개의 신축 주거동과 기존의 철도산업 유산을 보존 및 재생하는 방식으로 설계된 별도의 건축물 2동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곳은 1,400명의 선수들이 머무는 숙소로 사용되다가 이번 대회가 끝난 이후에는 약 1,7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학생 주거 단지, 사회주택 등으로 전환될 예정입니다.
이러한 선택은 심각한 주거난을 겪고 있는 밀라노의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올림픽 시설이 장기적인 사회적 인프라로서 기능할 수 있는 새로운 접근 방식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이를 위해 선수촌은 밀라노의 전통적인 중정과 테라스를 모두 갖춘 구조로 설계됐고, 하부층에는 다양한 공공 커뮤니티 공간과 스포츠 시설, 편의시설 등이 빠짐 없이 배치되었습니다. 선수촌의 건설 방식 또한 구조체와 주요 부재를 공장에서 미리 제작해 현장에서 조립하는 프리패브 모듈러 공법을 채택함으로써 공사 기간을 대폭 단축하고, 탄소 배출 또한 크게 줄이는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이와 달리 코르티나 담페초의 경우에는 봅슬레이, 루지, 스켈레톤 경기가 펼쳐질 코르티나 슬라이딩 센터(Cortina Sliding Centre) 신축을 제외하곤 대부분 1956년 동계올림픽 당시 사용된 경기장의 목조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최신 시설을 추가하는 리모델링 방식을 택했습니다. 역사적 유산과 가치 위에 지속가능성을 더하는 두 도시의 건축 활용법이야말로 앞으로의 올림픽은 대회 자체를 위해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개최 도시의 환경에 맞게 적응하고 순응하는 올림픽이 되어야 한다는 새로운 원칙을 정립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