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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표셀렉트

공간과 환경에 따라 움직이는 키네틱 건축

2025-07-01

공간과 환경에 따라 움직이는 키네틱 건축

키네틱(Kinetic)이라는 개념, 한번쯤 접해 보셨을텐데요. 운동, 움직임 등을 나타내는 그리스어 ‘kinesis’에서 유래한 영어 단어로, 움직임 자체를 의미합니다. 20세기 초,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을 비롯한 예술가들이 움직임을 미술의 요소로 실험하면서 키네틱 아트(Kinetic Art) 개념이 탄생했고, 이후 알렉산더 콜더(Alexander Calder) 등의 작가들이 실제로 움직이는 조각 작품 등을 선보이면서 키네틱 아트가 본격화 되었습니다.

출처: 위키피디아, Mobile by Alexander Calder, Tate Modern

예술의 움직임에 대한 탐구가 점차 기술과 구조, 디자인과 환경 반응성으로 이어지며 건축 분야로도 확장되었는데요. 건물의 일부 또는 전체가 물리적으로 움직이도록 설계된 건축을 ‘키네틱 건축(Kinetic Architecture)’이라고 부릅니다.

 

상황에 따라 능동적으로 변모하는 건축

키네틱 건축의 특징은 적응성과 능동성입니다. 주변 환경에 대한 반응을 통해 그 형태를 변화하도록 설계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예를 들어 햇빛의 방향에 따라 회전해 채광을 조절하거나, 개폐를 통해 통한 환기가 가능한 개방형 창호나 벽면이나 지붕이 변형되는 구조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에너지 효율도 높이고, 보다 쾌적한 환경을 이용자에게 제공할 수 있죠.

키네틱 건축은 기능적 효율성과 예술적 표현을 동시에 추구하는데요. 움직이는 구조체가 시각적인 즐거움과 인상을 남겨 도시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사실 키네틱 건축의 등장 배경에는 첨단 재료 기술과 정보 기술, 로봇공학, 컴퓨팅 등이 존재합니다. 기술 발전이 현대 건축의 외연을 확장하고,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게 했죠. 최근 들어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면서, 키네틱 건축의 특징을 활용한 스마트 빌딩 등을 더 많이 찾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채광을 조절하는 기하학 패턴, 프랑스 아랍 세계 연구소

키네틱 건축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작품 중 하나는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아랍 세계 연구소(Institut du Monde Arabe)’ 입니다. 이 건물은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의 초기 대표작으로, 그를 세계적으로 알린 계기가 되었습니다.

건축의 핵심은 남측 파사드에 설치된 마슈라비야(Mashrabiya) 패턴입니다. 아랍 전통 건축에서 차용한 기하학적 문양을 금속과 유리로 재해석한 이 패널은 단순 장식에 머물지 않고, 햇빛의 세기에 따라 조리개처럼 구멍을 여닫습니다.

이처럼 변화하는 파사드는 태양의 각도와 밝기에 따라 내부로 유입되는 자연광을 조절해주는 역할을 하며, 마치 건물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내부 공간은 콘크리트 바닥의 반사, 투명 계단 및 엘리베이터를 통해 빛이 공간을 가득 채우는 시각적 경험을 유도합니다.

서유럽은 사계절이 존재하고, 하루에도 날씨 변화가 심한 편이라 고정된 차양으로 햇빛을 조절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는데요. 장 누벨은 마슈라비야 패턴의 금속 모듈 240개에 광센서와 전동 모터를 장착해 이를 해결했습니다. 이 혁신적인 건물은 1989년 완공 당시 건물이 살아서 움직인다는 인상을 주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내부 공간에도 콘크리트 바닥, 투명 계단, 엘리베이터 등을 적용, 빛의 반사, 투과 등을 적절히 활용해 빛으로 공간을 가득 채우는 시각적인 경험을 유도합니다.

 

태양의 각도와 강도를 측정하는 반응형 파사드 건축물, 알 바하르 타워

UAE 아부다비에 위치한 ‘알 바하르 타워(Al Bahar Towers)’ 역시 아랍 전통 문양인 마슈라비야 패턴을 바탕으로 한 키네틱 파사드 기술을 한층 더 발전시킨 사례입니다. 2012년 완공된 이 쌍둥이 빌딩은 각 타워의 동쪽과 서쪽 파사드에 2,098개의 입체 삼각형 모듈을 설치했으며, 이들은 태양의 각도와 강도를 감지하는 센서에 의해 자동으로 열리고 닫힙니다. 한낮에는 햇빛을 차단하고, 일몰 후에는 열리며 시야를 확보합니다. 야간에는 모두 접혀 유리 커튼월만 드러납니다. 이 반응형 시스템은 태양열 유입을 약 50%까지 줄이는 동시에 자연 채광을 극대화하며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건물 외관에도 역동적인 인상을 부여합니다.

밤낮으로 바뀌는 파사드의 변화는 건물의 외관을 극적으로 만드는데도 한몫 합니다. 낮에는 빛을 받은 패널들이 건물에 그림자를 만들고, 저녁이면 실내 조명이 유리를 통해 반짝이며 아부다비의 스카이라인을 완성합니다. 알 바하르 타워는 지속가능한 설계로 LEED 골드 인증, CTBUH상 등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친환경 키네틱 건축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거대한 날개가 움직이는 미술관, 밀위키 아트 뮤지엄

미국 위스콘신주의 ‘밀워키 아트 뮤지엄(Milwaukee Art Museum)’은 마치 거대한 새가 날개를 펼치는 듯한 역동적인 외관으로 유명합니다. 날개로 보이는 구조물은 스페인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Santiago Calatrava)가 설계한 ‘콰드라치 파빌리온(Quadracci Pavilion)’입니다. 백색 노출 콘크리트와 유리를 주로 사용해 투명하고 날렵한 느낌을 낸 콰드라치 파빌리온은 정해진 시간마다 날개가 펼쳐지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이 움직이는 루버 시스템 부분을 ‘버크 브리즈 솔레이(Burke Brise Soleil)’라고 부릅니다. 총 72개의 날개는 중심 회전축을 기준으로 설치된 11개 유압실린더를 구동해 여닫습니다. 낮에는 햇빛을 받아 루버가 완전히 열리면서 건물 내부의 채광을 극대화하고, 바람이 강하게 불면 초음파 센서가 이를 감지해 자동으로 접히죠. 단순히 장식이 아니라 자연 채광과 온도 조절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며, 관람객에게 빛과 공간이 변화하는 극적인 경험을 제공합니다. 이 파빌리온은 타임지의 ‘2001년 최고의 디자인’으로 선정될 정도로 건축 당시 큰 화제를 모았을 뿐만 아니라 2004년 미국 토목 학회(ASCE)로부터 Outstanding Structure Award를 수상하며 구조적 우수성도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전통 건축과 현대기술을 조합한 대한민국 최초 키네틱 건축물, 목연리

국내 최초 키네틱 건축물은 인천 목재 문화 테마관 ‘목연리’입니다. 2017년 산림청 공모로 소프트아키텍처랩 한은주 대표가 설계했으며, 목연리라는 서로 다른 나무들이 맞닿아 하나로 어우러진다는 의미로, 자연과 건축의 조화를 상징합니다. 건물의 핵심은 1층 대문과 2층 외벽에 설치된 ‘키네틱 앰비언스 월(Kinetic Ambience Wall)’입니다.

전통 한옥의 격자 문살을 닮은 ∧자 목재 모듈 240개를 높이 4m, 길이 30m로 쌓은 이 벽은 날씨나 온도, 사람의 밀도, 구조물을 둘러싼 숲 등의 움직임 등을 감지해 자동으로 넓혔다 좁혔다 모양을 움직입니다. 자연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것이죠. 이를 위해 설계와 시공 과정에서 수차례의 기술 자문과 목업 실험을 거쳤습니다. 완공 이후 WAC 세계건축상 톱5, 2017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본상 등을 수상하며 국제적으로도 주목 받았습니다.

현대 기술과 전통 목재 건축을 결합해 공간 경험을 만들기 위해 스무 차례 이상 기술 전문가의 자문과 열 번 이상 정식 목업을 통해 메커니즘과 부품을 직접 디자인하고 최적의 시공 방식을 찾았다고 할 정도로 큰 노력과 고민이 깃들었는데요. 완공 직후 세계 건축상(WAC) 25주차 수상작 톱5에 선정되었으며, 2017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본상을 수상하는 등 국제적으로도 그 디자인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기술의 발전과 함께 키네틱 건축은 점점 더 정교하고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기후 변화 대응, 에너지 절감, 환경 적응형 구조물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키네틱 건축은 단순히 ‘움직이는 건축’을 넘어 지속가능한 건축의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창의적 형태와 기술이 결합된 키네틱 건축이 등장할지 기대해 볼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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