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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원리가 깃든 우리 전통 가옥, 한옥

2024-11-14

과학 원리가 깃든 우리 전통 가옥, 한옥

대한민국 전통 가옥을 뜻하는 ‘한옥’이라는 단어는 역사가 오래된 말이 아닙니다. 국어사전에 처음으로 ‘한옥’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은 1975년경으로, 한민족, 한국을 뜻하는 ‘한(韓)’과 건물을 뜻하는 ‘옥(屋)’을 합해 개항 이후 들어온 서양 근대 건축 양식과 다르게 오랜 역사 동안 우리 민족이 생활한 모든 건축물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중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한옥’의 형태는 나무와 흙으로 지어진 전통 건축물인데요. 제도적으로도 이 기준을 한옥이라고 합니다. 법에서는 ‘한옥이란 주요 구조가 기둥, 보 및 한식 지붕틀로 된 목구조로, 우리나라 전통양식이 반영된 건축물 및 부속건축물’, 한옥건축역사학회에서는 ‘온돌과 마루와 부엌과 마당 등으로 구성된 공간조직을 바탕으로 하며, 한국의 전통적인 목구조 방식을 기본으로 구축된 건축물’로 언급하고 있어 좁은 의미의 한옥은 나무를 주재료로 만든 전통 가옥으로 정의됩니다. 자연의 재료인 나무와 흙을 이용하고, 자연의 원리와 조화를 고민해 반영한 한옥은 오늘날 독특하고 아름다운 디자인뿐만 아니라 과학적인 설계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손상을 막고 햇빛을 조절하는 지붕과 처마

지붕 없이 직육면체의 형태로 된 현대 건축물과 달리 한옥에는 사다리꼴 모양의 지붕이 건물을 덮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붕에는 벽보다 길게 솟은 돌출 부위인 ‘처마’가 존재하는데요. 이 처마는 한국 건축의 조형미를 나타내는 상징이자 사상적 의미를 뜻하기도 하지만,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조절하는 기능적인 역할을 합니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태양의 고도를 기준으로 처마의 위치를 정해 햇빛의 양을 조절하는 것인데요. 여름 햇빛은 수직에 가깝게 내리 꽂히고, 겨울 햇빛은 낮은 각도로 완만하게 비추다가 지는 지구과학의 원리를 기반으로 합니다. 처마는 여름 태양이 뜨는 각도와 겨울 태양이 뜨는 각도 사이에 위치하도록 설계하는데요. 여름에는 처마가 햇빛을 막아 방이 달궈지는 것을 막아주고, 겨울에는 실내로 햇빛이 들어오게 해 방을 비교적 따뜻하게 유지시켜 줍니다. 처마의 길이는 지역에 따라 달라집니다. 태양의 고도가 높은 지역은 더 길게, 태양의 고도가 낮은 지역은 상대적으로 겨울이 추워 햇빛이 더 잘 들어올 수 있도록 처마를 짧게 만든다고 합니다.

한편, 한옥은 나무와 흙을 재료로 해 비가 들이치면 손상되기 쉬운데요. 지붕이 눈, 비로 인한 건축물의 손상을 막아 줍니다. 또, 한옥 지붕을 자세히 보면 깊은 곡선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사이클로이드 곡선’이라는 과학적 원리가 적용되어 있습니다. 사이클로이드 곡선은 원에 한 점을 찍고 직선 위를 굴렸을 때 나오는 곡선으로, 직선으로 만들어진 경사보다 강하속도를 더 빠르게 만듭니다. 사이클로이드 곡선의 지붕은 빗물이 고이지 않고 최대한 빠르게 흘러내려 나무로 된 한옥의 지붕이 썩는 것을 방지합니다.

 

빛이 스며들기 좋고, 외풍은 차단할 수 있는 적절한 창과 방의 크기 

실내 온도를 조절하는 요소로 한옥에서 창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여름에 창을 통해 들어오는 해가 길면 너무 더울 수 있고, 창을 너무 크게 내면 겨울 찬 공기가 스며들고 외부로 사생활이 노출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적절한 위치와 크기를 설정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는데요. 선조들은 겨울 해를 최대한 받아들일 수 있는 위치를 상한선으로, 여름 해를 튕겨내고 겨울에 찬 공기의 유입을 막을 수 있는 지점을 하한선으로 설정하고 그 사이에 창을 냈습니다. 사람이 드나드는 문의 역할을 겸하는 창무의 경우에는 바닥까지 창이 내려오게 되는데요. 이때는 문지방을 설치해 찬 기운과 열기를 막았습니다. 또, 창호지를 두세 겹 사용해 공기층을 형성해 겨울 외풍을 막았습니다.

한편, 한옥의 방의 크기 또한 온도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한옥의 방은 오늘날 거주 환경을 비교하면 아주 작게 느껴집니다. 이렇게 크기가 아담한 이유는 겨울철 햇빛이 방 안에 드는 깊이를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인데요. 동짓날 햇빛이 지붕 처마 끝에 걸렸을 때 방안으로 스며드는 깊이만큼 방의 크기를 설정함으로써 방 전체에 햇빛이 닿도록 해 온기를 유지했습니다. 한옥은 천장도 매우 낮은 편입니다. 천장이 높으면 위쪽으로 햇빛이 닿지 못하는 음영 구역이 발생하고, 이런 공간은 어둡고 찬 기운이 조성되어 대류-복사 방식의 원리를 이용한 온돌의 난방 효율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천장을 낮게 설계했다고 합니다.

 

열 보존이 우수한 대한민국 고유 난방 방식, 온돌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는 한옥의 과학적 설계 요소는 바로 온돌입니다. 온돌은 순 우리말로 ‘구들’, 구운 돌이라는 말입니다. 즉, 바닥을 돌로 깔고 그 밑으로 열기를 지나가게 해 바닥을 데우는 한국 고유의 난방법입니다. 온돌은 열의 전도와 복사, 대류를 동시에 활용하는 아주 뛰어난 방식인데요. 아궁이에서 불을 지펴 열을 만들고, 그 열로 돌을 달궈 난방을 합니다. 그리고 따뜻하게 데워진 바닥은 열을 방출하며 방의 공기를 따뜻하게 만듭니다. 이후 찬 공기는 아래로 내려가고, 따뜻한 공기는 위로 올라가며 방의 온기가 유지시킵니다.

한편, 방바닥의 재료인 돌과 진흙은 열 보존력이 우수한 물질인데요. 특히 한옥에 사용한 돌은 열을 한꺼번에 방출하지 않고 서서히 전달하는 운모(화강암의 한 종류)를 사용해 난방 유지 능력을 높였다고 합니다. 또 주목해야 하는 점은 아랫목과 윗목의 구들장 두께입니다. 아궁이와 가까운 아랫목은 너무 뜨거워지는 것을 방지하는 동시에 열을 더욱 많이 저장할 수 있도록 두꺼운 돌을 사용하고, 진흙도 도톰하게 발랐습니다. 반면, 윗목은 얇은 돌을 사용해 빨리 가열되도록 했는데요. 이는 아랫목과 윗목의 온도 차이를 빠르게 줄여 실내 온기를 더 잘 유지시키도록 도와줍니다. 봄과 가을 정도의 외기에 온돌의 열기가 10일이나 지속되었다는 옛 실험 기록만 보아도, 탁월한 열 보존 능력이 있는 경제적인 난방 방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름철 통풍을 극대화하고, 겨울철 북풍은 막는 ‘바람길’

한옥에는 쾌적한 여름과 겨울을 만드는 바람길이 존재합니다. 첫번째로 한옥의 창문인데요. 한옥의 창문은 남동풍이 부는 방향을 향해 일직선상으로 만들어 여름 바람이 막히지 않고 시원하게 실내를 통과하도록 유도합니다. 한편, 대청마루 앞쪽으로 마당이, 뒤로는 나무가 가득한 뒤뜰이 형성되어 있는데요. 마당은 여백 덕분에 운치 있는 풍경을 연출하기도 하지만, 기능적으로는 여름 냉방을 유도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대류현상을 이용하는 것인데요. 빈 마당의 공기가 열을 받아 상승하면, 무성한 나무로 그늘져 시원해진 뒤뜰의 공기가 이 공간을 채우며 여름의 열기를 식혀준다고 합니다.

한편, 한옥의 건물 사이 간격을 자세히 살펴보면 앞과 뒤가 다릅니다. 남쪽으로 향하는 곳은 그 간격을 넓게, 북쪽으로 향하는 곳은 좁게 나 있는데요. 이렇게 건물 사이 간격을 다르게 만든 이유는 더위와 추위를 막기 위한 목적 때문입니다. 여름에는 남쪽에서 들어온 바람이 좁아진 북쪽 길을 빠져나가며 속도가 빨라지며 바람이 더욱 시원해집니다. 반대로 겨울에 부는 차가운 북풍은 좁은 길로 들어와 상대적으로 넓은 간격의 남쪽 공간으로 천천히 퍼지며 한기를 순하게 만듭니다. 여기에는 유체가 좁은 통로를 흐를 대 속력이 증가하고 넓은 통로를 흐를 때 속력이 감소하는 ‘베르누이 원리’라는 과학이 숨어 있습니다.

사계절이라는 한반도 기후를 견뎌내며 쾌적하게 살 수 있도록 자연을 탐구하고 지혜롭게 이를 반영한 역사적 산물, 한옥. 깊어 가는 가을 나들이 중 한옥을 발견하면 창문, 지붕, 처마 하나하나에 깃든 선조들의 뛰어난 지혜를 살펴보면 어떨까요? 가을의 나들이가 더욱 풍부해질지도 모릅니다.

과학, 삼표셀렉트, 한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