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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를 풀어가는 과정의 건축, 제5차 광주폴리의 ‘순환’하는 집 짓기

2024-12-10

기후 위기를 풀어가는 과정의 건축, 제5차 광주폴리의 ‘순환’하는 집 짓기

1995년 <경계를 넘어(Beyond the Borders)>라는 주제로 아시아 최초로 문을 연 광주비엔날레가 올해로 30주년을 맞았습니다. 2년마다 수준 높은 기획전시를 선보이며 명실상부 아시아 최대 규모의 국제 미술전으로 성장해온 광주비엔날레는 15회째를 맞은 올해에도 <판소리, 모두의 울림(PANSORI: A Soundscape of the 21st Century)>이라는 타이틀로 열린 본 전시에 30개국 72명의 작가들이 참여하며 음악과 시각적 형식을 연결하는 다양한 작품들을 완성했습니다. 특히, 얼마 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본 전시의 소제목 작업과 개막 공연 낭송 시, 광주비엔날레 도록의 여는 글 작업에도 직접 참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 큰 관심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또한, 지난 30년의 시간을 기념하고자 역대 최대 규모의 파빌리온(총 31개)이 광주를 대표하는 역사적, 문화적 공간 곳곳에 설치되어 관객들을 만났는가 하면, 세계 3대 비엔날레가 열리는 곳이자 비엔날레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기도 한 이탈리아 베니스 현지에서 광주비엔날레 30주년 기념 아카이브 특별전 <마당: 우리가 되는 곳(Madang: Where we become us)>을 8개월 동안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광주비엔날레의 지난 역사를 조망하고 예술의 힘을 긍정하는 ‘마당’으로서의 역할과, 국제 미술의 관문으로서의 광주비엔날레의 동시대적 가치를 전 세계에 알리는 뜻 깊은 전시였습니다.

 

공공 건축과 도시재생에 기여해온 광주폴리의 역사

그런데, 이처럼 오랜 시간 이어져온 광주비엔날레가 다양한 형태의 동시대 미술을 포용하고 경험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문화적 힘을 바탕으로 광주를 비롯한 도심 속 공공건축에도 그 동안 깊이 관여해오고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일환으로 기획된 도시공공 시설물 디자인으로 시작되어 이제는 광주를 대표하는 독립적인 프로젝트이자 광주비엔날레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며 도시 공간을 새롭게 변화시키고 있는 ‘광주폴리(Gwangju Folly)’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폴리’의 건축학적 의미는 ‘원래의 기능을 잃고 장식적인 역할을 하는 건축물’을 의미합니다. 영국이나 프랑스 등 유럽의 대저택 정원에서 흔히 만나볼 수 있는, 기능은 없고 그저 장식적인 측면만 강조된 건축물을 상상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 같은데요. 그러다 건축가 베르나르 츄미(Bernard Tschumi)가 프랑스 파리 북동부에 위치한 라빌레뜨 공원(Parc de la Villette)을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새롭게 조성하는 과정에서 총 26개의 건축구조물을 설치하며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된 폴리의 개념이 새롭게 정립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라빌레뜨 공원에 조성된 폴리는 빨간색으로 칠해진 철재 금속으로 만들어졌는데요. 격자 형식으로 배치된 다양한 폴리들이 공원 안에서 새로운 경험과 상호작용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각각의 폴리는 레스토랑, 카페, 놀이터, 매표소, 전망대 등으로 활용되기도 하지만 공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에 의해 최대한 자유롭게 쓰일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출처: 광주폴리, ‘광주폴리5 – 숨쉬는 폴리’

즉, 공간과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을 이끈다는 점에서 기존의 폴리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셈이죠. 광주폴리 역시 이러한 방향성을 가지고 공공의 공간 속에서 장식적인 역할과 기능적인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폴리, 나아가 도시재생에 기여할 수 있는 폴리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광주 도심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폴리들은 구도심 지역을 중심으로 강력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2011년 이후 꾸준히 진행된 4번의 프로젝트를 통해 총 28개의 건축물을 선보였고, 올해 공개된 제5차 광주폴리에서 기후위기의 시대 속 건축의 미래를 제시하는 4개의 작품이 더해져 총 32개의 폴리들이 도심 속 새로운 문화풍경을 완성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대거 참여한 도심 속 폴리의 향연

출처: 광주폴리, ‘광주폴리1 – 열린공간’

그동안 광주폴리 프로젝트에 참여한 국내외 건축가와 예술가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국제적인 명성과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낯익은 이름들이 정말 많은데요. 먼저 <광주의 문화풍경>이라는 주제로 열린 제1차 광주폴리를 통해서는 우리나라 대표 건축가 승효상의 ‘푸른길 문화샘터(동구 동명동)’를 비롯해 해체주의 건축의 대표주자라 불리는 미국의 건축거장 피터 아이젠만(Peter Eisenman)이 설계한 ‘99칸(동구 충장로3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을 설계한 도미니크 페로(Dominique Perrault)의 ‘열린 공간(동구 광산동)’ 등 총 8개의 작품들이 완성되었습니다.

출처: 광주폴리. ‘광주폴리2 – 투표’

일상과 유토피아를 연결하는 공간을 활성화하고자 했던 제2차 광주폴리 역시 2000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네덜란드의 건축가 렘 콜하스(Remment Koolhaas)와 독일 출신 작가 잉고 니어만(Ingo Niermann)의 공동작업으로 탄생한 ‘투표(동구 황금동)’라는 이름의 작품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설치미술가 서도호의 아이디어로 완성된 도심 속 이동식 호텔 ‘틈새호텔(북구 비엔날레로)’ 등으로 대중들의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특히, 제3차 광주폴리에서는 네덜란드의 세계적인 건축가그룹, MVRDV의 위니 마스(Winy Maas)와 우리나라 조병수 건축가가 협업을 통해 광주시 동구 동명동 일대에 ‘꿈 집’과 ‘아이 러브 스트리트’ 등 새로운 폴리의 잠재성을 제시하는 의미 있는 작품들을 함께 완성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광주폴리. ‘광주폴리4 – 무등의 빛’

한편, 202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에 맞춰 완공된 제4차 광주폴리의 유일한 작품이었던 ‘무등의 빛’ 이후 4년 만인 올해 새로운 작품들을 선보인 제5차 광주폴리는 <순환폴리 Re:Folly>라는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기후 변화의 시대 건축의 역할과 시민들과 함께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풀어가는 건축의 모습, 그리고 그에 대한 해답을 순환경제에서 찾고자 했는데요. 재료와 디자인, 건축 공법, 시민활동 전반에 걸쳐 실험적이고 창조적인 방식으로 순환의 과정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서의 폴리를 제시하고 있는데요. 총 4개의 작품을 통해 보다 큰 세계와의 연결성을 고려한 집 짓기를 실천한 것입니다.

 

자원의 선순환과 생태적 건축의 해답을 찾기 위한 네 가지 실험

가장 먼저 살펴볼 우리나라 건축가 조남호의 작품 ‘숨 쉬는 폴리(Breathing Folly)’는 생태학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다공성 다발 목구조로 설계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하겠습니다. 미세한 공극이 많은 분자구조를 지닌 나무를 이용해 건물 역시 사람처럼 숨을 쉬며 주변 환경과 적극적으로 조응할 수 있도록 한 것이죠. 직사각형 평면에 박공 지붕을 얹은 이 작품은 지붕 일부를 변형해 에어포켓을 만들고, 여기에 모인 더운 공기를 전동창을 통해 배출하게 되는데요. 땅 속에 50m 길이로 매설된 쿨 튜브로 유입되는 공기를 활용해 실내 온도를 ±5°C 범위 내에서 조정할 수 있으며, 목재 틀에 일체형으로 내장된 태양광 패널(BIPV)을 통해 필요한 모든 전기를 생산합니다. 향후 소규모 공연이나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리는 공간으로 활용될 것으로 보입니다.

2013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일본의 건축가 이토 도요(Ito Toyo)는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등지에서 오랜 시간 사용된 전통 옻칠 방식을 건축에 접목시킨 새로운 작품 ‘옻칠 집’을 선보였습니다. 옻나무 수액에서 추출한 천연 도료이자 접착제로, 강도와 내구성이 뛰어나고 생산 가공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기 때문에 산림자원의 업사이클링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처럼 세계 최초로 옻칠을 건축의 구조재로 활용한 이토 도요의 작품은 ‘건칠 기법’이라 불리는 마른 옻칠을 현대화해 조립식 PVC판에 여러 겹 덧칠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시트를 다시 벌집 모양의 프레임에 입혀 총 195개의 패널을 만드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마치 이글루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는 옻칠 집은 광주 도심의 공용 주차장을 이용하는 시민들을 위한 작은 쉼터로 활용될 예정입니다.

출처: 광주폴리, ‘광주폴리5 – 에어폴리’

한편,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어린이문화원 로비에 설치되었다가 동구 산수동으로 자리를 옮긴 ‘에어 폴리’(Air Folly)’는 농가의 비닐하우스를 재해석한 일종의 이동식 휴게 돔으로, 해조류를 기반으로 한 생분해성 비닐과 플라스틱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조립과 해체, 이동이 자유로운 모듈 방식의 공간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다른 작품들과 달리 3년의 사용 기간이 지난 후에는 작품 전체를 분해해 토양 또는 해양 생태계로 되돌려 보낸다는 계획 하에 비닐과 플라스틱의 새로운 생애주기를 제시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지난 10년간 건축의 생산과 순환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이어오고 있는 건축 스튜디오 ‘바래(BARE—Bureau of Architecture Research & Environment)’가 디자인 및 연구 개발을 맡았고, 에어 폴리 제작에 사용된 미역 폐기물들은 국내 미역 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 전남 고흥에서 수거해 사용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동구 동명동의 버려진 한옥을 복구해 마을 주민들을 위한 공공의 마당으로 재탄생시킨 프로젝트도 있습니다.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영국의 건축 디자인 그룹 ‘어셈블 스튜디오(Assemble Studio)’와 벨기에의 건축연구소 ‘BC 아키텍츠(BC Architects)’, 그리고 프랑스의 디자인 리서치 연구소 ‘아틀리에 루마(Atelier Luma)’가 공동으로 작업한 ‘이코 한옥(Eco Hanok)’인데요. 이 작품은 지역 내 친환경 자원을 활용한 생태적 건축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굴 껍데기나 미역, 다시마, 볏집, 왕겨 등으로 만든 저탄소 소재를 현대적 건설 기법과 결합함으로써 순환과 수리, 재활용의 가치를 작품 안에 세심하게 구현해냈습니다.

이처럼 기후위기의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건축적 해법으로서, 또 지역 내에서 발견한 친환경 자원으로 시민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도심 속 공간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제5차 광주폴리 프로젝트의 가장 큰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올해 제5차 폴리를 기점으로 더 이상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않고, 기존의 폴리를 적극 활용하는 동시에 체계적인 유지보수 및 관리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전환된다고 합니다. 그간 광주의 구도심을 중심으로 비엔날레를 찾은 관람객들과 만나온 것은 물론, 광주 시민들의 일상 속 공간으로서 역할을 다해온 32개의 폴리는 앞으로도 광주라는 도시의 역사적, 문화적 토대 위에 건축과 예술의 힘을 키워나가고, 쇠락해가는 구도심에 활기를 불어넣는 중요한 존재로 남게 될 것입니다.

광주비엔날레, 광주폴리, 순환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