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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며 상상하고 성장하는 공간, 놀이터의 탄생과 진화

2026-01-08

놀며 상상하고 성장하는 공간, 놀이터의 탄생과 진화

네덜란드 철학자 요한 하위징아는 본인의 책 『호모 루덴스』에서 인간을 ‘놀이하는 존재’로 정의하며 놀이는 문명의 기원이자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모든 인간 활동의 근저에는 놀이 정신이 내재되어 있다는 주장인데요. 한편, 우리에게 익숙한 교육학자 프리드리히 프뢰벨도 ‘놀이’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는 1840년대부터 놀이가 어린이 발달의 핵심 도구라는 이론을 제시했고, 직접 만들고 탐색하는 활동을 통해 아이들은 창의성 문제 해결력, 공간 감각, 좋은 매너, 공정성 등을 자연스럽게 습득한다고 보았습니다.

이처럼 ‘놀이’는 인간의 발달과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며, 인간 문명의 근간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이 본능을 담아내는 물리적 공간인 ‘놀이터’는 언제부터 시작되었고, 어떻게 발전했을까요? 놀이터의 역사와 현대의 이색 놀이터를 만나봅니다.

 

산업화로 탄생한 놀이터

놀이터라는 개념은 의외로 근대에 등장했습니다. 19세기 산업혁명 이전만 해도 아이들은 들판, 자연, 거리에서 자유롭게 놀았습니다. 하지만 급격한 도시화로 공기의 질이 나빠지고, 자연 대신 주택과 산업 시설, 자동차가 들어서면서 거리 환경은 위험해졌습니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공간이 사라지자, 사회 개혁가들과 교육학자들은 인위적으로 설계된 놀이 공간의 필요성을 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최초의 놀이터를 구상한 사람은 미국 교육학자 헨리 바나드인데요. 커다란 차양이 드리워진 그늘 아래 아이들이 나무 블록과 장난감 수레를 가지고 놀거나 회전 그네를 타고 놀고, 교사가 아이들을 지켜보는 모습의 놀이터를 최초로 구상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모래밭 놀이터는 1850년대 프뢰벨의 아이디어였습니다. 아이들이 모래나 물 같은 자연 요소를 가까이 접하며 자유의 가치를 느껴야 한다고 믿었으며, 이에 따라 베를린 공원에 모래 무더기가 설치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세계 최초의 공공 놀이터는 어디였을까요? 1859년 영국 맨체스터의 필 파크(Peel Park)와 필립스 파크(Philips Park)에 조성된 놀이터가 최초로 꼽힙니다. 이는 산업 노동자의 자녀를 보호하고 공공 보건과 도덕 교육을 강화하려는 사회적 목적이 담긴 공간이었습니다. 또한 거리 범죄나 산업 재해로부터 도시 아이들을 보호하려는 사회적 의도도 있었죠.

1886년 미국에서도 놀이터의 개념이 등장했는데요. 독일 태생의 의사 마리 자르크브제브스카의 제안으로 보스턴에 최초의 ‘모래 정원’이 생겼고, 이후 샌프란시스코 골든게이트 공원 등으로 퍼져나가며 미국 전역에 ‘놀이터 운동’이 확산되었습니다. 당시 놀이터들은 모래, 철봉, 회전 기구만을 갖춘 매우 단순한 구성이었지만, 아이들의 신체 발달과 도덕적 교양을 공공의 책임으로 제도화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창의성에서 안전성으로, 놀이터의 진화

20세기 들어 놀이터는 도시 계획의 핵심 요소로 안착했는데요. 1906년 ‘미국놀이터협회(Playgroud Association of America, 이후 레크레이션협회로 변경)’가 설립되면서 놀이터 연령별 장비 지침과 디자인 표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1930~1940년대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놀이터의 발전은 좀 주춤했는데요.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아이들은 쓰레기와 파편을 활용해 놀이를 이어갔습니다. 이에 영감을 받은 덴마크의 칼 테오도르 쇠렌선은 1946년, 정형화된 기구 대신 폐목재와 타이어를 활용한 ‘정크 놀이터’를 선보였습니다.

영국에서는 레이디 앨런 오브 허트우드가 덴마크의 엠드럽 정크 놀이터를 방문한 후 이 개념을 런던에 도입했고, 1948년 캠버웰의 폭격으로 파괴된 교회 부지에 영국 최초의 정크 놀이터가 조성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버려진 재료들을 활용해 직접 만들고 부수며 놀이를 즐겼는데요. 이런 정크 놀이터는 향후 ‘모험 놀이터’라는 개념으로 발전하기도 했습니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는 창의적인 놀이터들이 등장했는데요. 로켓, 동물, 기차 등의 구조물이 놀이터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놀이터에서 놀이 도중 어린이들이 부상을 입는 일이 늘어나자 안전에 대한 이슈가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놀이터 기구에 대한 산업 규제가 마련되기 시작했고, 딱딱하고 날카로운 강철보다는 둥근 모서리를 갖춘 단단한 플라스틱을 활용했으며, 창의적인 디자인보다는 표준화된 기준으로 설계되었습니다. 1980년대 이후 현재까지는 안전 기준을 충족하면서도 색채, 테마, 창의성을 강조한 현대 놀이터가 발전했고, 이제는 전 지구적인 도시 인프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안전하면서도 창의적인 21세기 세계 놀이터

높은 하늘을 뛰어다니는 기분, 튀르키예 이스탄불 구름 놀이터

튀르키예의 최대 도시 이스탄불 바키르쾨이 지구에는 구름의 형상을 본뜬 놀이터가 있습니다. 마르마라 포룸 쇼핑센터 옥상의 놀이터입니다. 네덜란드 설계사무소 카브(CARVE)가 디자인한 이 놀이터는 아이들에게 구름을 만지고 그 속에 있는 듯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출처: https://www.carve.nl/en/item/213

쇼핑센터는 기존 옥상정원과 푸드 코트를 새롭게 단장하면서 옥상에 사람들의 이목을 끌 만한 놀이터를 설계해달라고 요청했는데요. 상업 건물 옥상에 이런 놀이 공간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을 만족해야 했습니다. 더위와 비를 피할 수 있고, 주말과 같은 혼잡한 시간대에 많은 인원을 수용해야 한다는 과제가 있었는데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크고 높으며 다인원이 뛰어놀 수 있는 대형 구조물을 설계했습니다. 또, 유아부터 10대 청소년까지 다양한 연령대를 수용할 수 있도록 연령대별 공간들도 만들었습니다. 그중 가장 높고 큰 8m의 클라이밍 타워는 아이들이 해먹을 통해 오르고 슬라이드를 타고 내려오는 체험 공간으로 디자인했습니다.

또, ‘물방울이 모여 구름이 된다’는 원리에 착안하여 외벽에 수많은 물방울 모양 창을 냈습니다. 특히 빛의 각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다이크로익(Dichroic) 필름’을 부착해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내부에서는 아이들이 창을 통해 바키르쾨이의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이 놀이터는 설계부터 엔지니어링까지 디자인하고 구체화하는 과정을 거치는 새로운 도전이었는데요. 다양한 기술적 도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6개월 만에 스케치부터 구현까지 완벽하게 해냄으로써 오늘날 이스탄불 바키르쾨이 아이들의 즐거운 공간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소인이 되어 보는 거인국 체험 공간, 스페인 발렌시아 걸리버 놀이터

스페인 발렌시아에는 거대한 걸리버가 바닥에 묶인 채 누워 있는 놀이터가 있습니다. 이 놀이터에 들어서면 소인이 되어 걸리버 위를 걷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되는데요. 걸리버 놀이터는 1990년 발렌시아 시의회가 예술가 마놀로 마틴, 건축가 라파엘 리베라, 디자이너 조셉 빈센트에게 의뢰해 조성한 곳입니다.

조나단 스위프트의 소설 『걸리버 여행기』에서 영감을 받았는데요. 키가 겨우 6cm인 소인국 릴리푸트의 사람들에 의해 바닥에 엎드린 채 묶인 걸리버의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걸리버의 신체 부위는 암벽과 미끄럼틀로 구성되어 있고, 걸리버 몸속으로 들어가면 슬라이드, 경사로, 터널, 비밀 은신처 등 다양한 공간들과 즐길거리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놀이터 자체 폭이 70m에 달하기 때문에 조각 전체를 탐험하려면 넓은 공간을 이동해야 합니다. 이 놀이터는 하나의 거대한 조형물이라 가까이에 서 있으면 처음에는 무엇인지 알아차리기 어려운데요. 워낙 거대한 규모 탓에 지상에서는 형체를 알아보기 어렵지만,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면 비로소 거대한 걸리버의 전체 형상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이 놀이터가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접근성’에 있는데요. 휠체어로 접근 가능한 경사로와 통로가 준비되어 있으며, 공원의 원형 배치 덕분에 부모들은 아이들을 쉽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관광객들에게는 발렌시아의 랜드마크로 인식되어, 관광 명소로도 손꼽히는 곳 중 하나입니다.

 

지역의 자연을 닮은 놀이공간, 미국 털사 리버 자이언츠 놀이터

미국 오클라호마주 털사의 ‘개더링 플레이스’ 공원에는 생태계를 모티브로 한 독특한 놀이터가 있습니다. 바로 리버 자이언츠 놀이터인데요. 이곳은 코펜하겐에 본사를 둔 몬스트럼(MONSTRUM)이 설계했습니다. 이 놀이터는 거대한 왜가리 두 마리와 긴 코 패들피쉬를 포함한 여러 생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주변 녹지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놀이터를 만드는 동시에 도시를 흐르는 아칸소 강에 대한 지식과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지역적인 색을 담았다고 합니다. 거대하게 우뚝 솟은 왜가리 아래에서 부리를 올려다보며 자연의 경외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출처: https://www.gatheringplace.org/attractions/attractions/chapman-adventure-playground

두 마리의 왜가리는 12피트(약 3.6미터) 높이의 미끄럼틀을 갖추고 있으며, 두 왜가리 사이는 강철 메시 터널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왜가리 안은 오르고 슬라이드를 이용해 내려오는 등 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패들피쉬는 유아용으로 낮은 입구로 들어가 기어다니며 탐험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이 놀이터는 ASTM(미국 재료 시험 협회)과 ADA(미국 장애인법) 승인을 받아 안전 및 접근성 기준을 충족하고 있습니다.

개더링 플레이스는 털사의 상징적인 랜드마크로 지역 사회를 위한 다기능 개방 공간을 제공하여 다양한 레크리에이션, 문화 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리버 자이언츠 놀이터 외에도 트리하우스, 로프다리, 미끄럼틀 등이 있는 모험놀이터, 스케이트 파크와 스포츠 코트 등 여러 즐길 공간이 조성되어 있는데요. 개장 후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 최고의 장소, USA 투데이가 선정한 미국 최고의 도시 공원 등으로 선정되며 큰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니트로 만든 그물 놀이 파빌리온, 하코네 네트의 숲(Woods of Net)

하코네 조각의 숲(Hakone Open-Air Museum)은 1969년 개관한 일본 최초의 야외 미술 전시관으로 로댕, 헨리 무어 등 근현대를 대표하는 조각가의 작품이 전시된 공간입니다. 조각을 감상하며 자연 속을 거닐다 보면 마치 새들이 나무 조각을 옮겨서 얼기설기 쌓은 듯한 둥지 형태의 목조 건물을 만날 수 있는데요. 그곳은 ‘네트의 숲’이라는 놀이터입니다.

출처: http://www.tezuka-arch.com/english/works/museum/choukoku-no-mori-net-no-mori/

네트의 숲 외관 구조물은 테즈카 건축가들의 설계로 2009년 미술관 40주년을 기념해 탄생했는데요. 금속 부품 없이 나무 빔으로만 구성했으며, 고대 사원 건축 기법을 이용해 589개 목재로만 지어졌습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거대하고 밝은 그물 해먹이 달려 있는데요. 예술가 토시코 호리우치 맥아담이 1년 동안 한 땀 한 땀 수작업으로 뜨개질해 제작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본인이 전시하고 있던 3차원 섬유 조각품을 타고 올라가는 아이들을 보고 섬유를 이용한 놀이 공간에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1971년 첫 놀이 작품을 만들고 도쿄 유치원에 기증하기도 했는데요. 네트의 숲에 설치한 그물 놀이터는 그녀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이들은 이 해먹을 기어오르기도 하고, 흔들며 경험하고, 누우며 자유롭게 즐길 수 있습니다. 또한 오르내리면서 나무 구조물 사이사이로 보이는 바깥의 자연 풍경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물 아래로는 뜨개질한 공들이 매달려 있어 아이들이 그네처럼 뜨개공을 활용해 공중에 매달려 보는 경험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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