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계묘년(癸卯年) 검은 토끼의 해를 맞아 광화문광장에는 복주머니를 든 거대한 토끼 조형물이 설치되어 광장을 찾은 시민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는데요. 도심 한가운데서 엄청난 크기의 토끼를 만나는 이 낯선 즐거움은 많은 사람들에게 특별한 새해 선물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단순한 조형물이 아닌 실제 토끼를 꼭 닮은 건축물이 존재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 2010년 중국 상하이에서는 월드 엑스포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총 5백3십만㎡(약 160만 평)에 달하는 광활한 부지에 192개국, 50개 국제기구와 50개 도시, 그리고 18개의 기업관으로 채워졌는데요. 이는 여의도 면적의 3분의 2에 달하는 규모로, 엑스포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이기도 했습니다. 그 중 중국관 내에 설치된 ‘마카오관’은 빨간 귀와 눈, 꼬리가 인상적인 초대형 토끼 모양의 건축물로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고대 중국의 남부 지역에서 가을 축제의 밤을 환하게 밝혔던 토끼 등인 ‘옥토궁등(玉兎宮燈)’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안이 환하게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유리 벽이 수시로 색을 바꿀 수 있도록 설계되었고, 재활용 소재를 활용한 점과 태양광 패널 및 빗물 재활용 장치가 설치되었다는 점에서 환경 친화적인 건축물로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상하이 엑스포 마카오관은 지금까지도 엑스포 역사상 가장 귀엽고 이색적인 전시관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토끼 이외 다른 동물을 닮은 건축물은 없을까요? 인간의 상상력은 무궁무진하고 현대의 건축 또한 독특한 디자인으로 이를 증명하고 또 실현하고 있으니, 이미 많은 동물 모양의 건축물들이 전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반려동물인 강아지와 고양이부터 악어, 물고기, 코끼리까지. 두 눈을 의심할 정도로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하는 대표적인 동물 콘셉트의 건축물들이 존재합니다.
먼저, 인간과 가장 오랜 교감의 역사를 자랑하는 강아지부터 만나볼까요. 기원전 1만 2천년 전부터 인간과 인연을 맺으며 함께 생활해온 기록이 남아있는 강아지는 지금도 가장 사랑받는 동물임에 분명한데요. 뉴질랜드 북섬에 위치한 소도시 티라우(Tirau)에는 물결 무늬의 양철판으로 외관을 장식한 개 모양의 관광안내소 ‘티라우 아이 사이트(Tirau-i-SITE)‘가 있습니다. 마을의 상징과도 같은 이 건물은 뉴질랜드의 양치기 개를 모티브로 만들어졌으며, 건물에 사용된 양철판 역시 뉴질랜드에서 흔하게 사용하는 고전적인 재료라고 합니다. 귀엽게 내민 혀와 살짝 접힌 귀가 관광객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습니다.
뉴질랜드에 양치기 개가 있다면, 미국에는 비글이 있습니다. 미국 아이다호 주의 들판으로 가면 엄마로 보이는 대형 비글과 그와 꼭 닮은 아기 비글이 나란히 서있는 낯선 풍경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는 ‘독 바크 파크 인(Dog Bark Park Inn)’이라고 하는 실제 호텔 건물인데요. 엄마 비글은 총 2개의 객실을 보유하고 있는 2층 규모의 실제 건물이고, 아기 비글은 장식용입니다. 호텔의 전반적인 콘셉트에 맞게 내부 인테리어 역시 강아지 모양으로 꾸며졌으며, 1930년대 빈티지 스타일을 추구했다고 합니다.
이번엔 기원전 약 5천년 전부터 인간과 함께했다고 전해지는 고양이를 만나볼 차례입니다.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북서부에 위치한 도시 카를스루에. 이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유치원이 있는데요. 바로 고양이라는 의미의 ‘디 캇츠(Die Katze)’라고 불리는, 웅크린 고양이 모양의 ‘볼프아츠바이어 유치원(Kindergarten Wolfartsweier)’입니다.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동화작가 토미 웅거러가 디자인하고, 독일의 건축가 아일라 수잔 욘델이 공동 작업한 이 건물은 약 100명의 원생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지어졌습니다. 아이들은 고양이 입으로 드나들고, 고양이 다리 안에서는 놀이를 즐기며, 고양이 배에서 공부를 하는 상상 그 이상의 공간입니다. 특히, 꼬리 부분은 미끄럼틀로 되어있어 위급 시 대피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호수나 강, 바다에서 사는 동물들을 형상화한 건축물도 독일과 호주, 인도에서 만나볼 수 있는데요. 독일 북서부에 위치한 역사적인 도시 브레멘의 과학박물관(Universum Bremen)은 2000년 이 지역 출신의 건축가인 토마스 클룸프에 의해 설계되었습니다. 무려 4만여 장의 스테인리스 스틸 비늘을 사용하여 외관 전체를 덮은 모양은 마치 서서히 비상하는 고래의 옆모습 같습니다.
또 호주에는 원주민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카카두 국립공원((Kakadu National Park)이 있는데요. 이곳에 악어 모양을 한 ‘머큐어 카카두 크로커다일 호텔((Mercure Kakadu Crocodile Hotel)’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공중에서 보아야만 호텔의 온전한 모습을 가늠할 수 있을 만큼 규모가 상당한데요. 악어의 머리 부분이 리셉션, 몸통 부분은 객실, 그리고 심장 부분에는 드넓은 수영장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인도의 국립수산개발원(The National Fisheries Development Board) 건물은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물고기 형태를 띠고 있는데요. 총 4층 규모로 눈과 몸통 부분에는 창문이 여러 개 있고, 몸통에 난 지느러미는 건물로 들어오는 계단의 처마 역할을 합니다.
코끼리를 좋아한다면, 태국 방콕의 엘리펀트 타워(Elephant Tower)를 추천합니다. 코끼리는 태국의 역사와 문화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동물이기도 한데요. 이러한 이유로 엘리펀트 타워는 줄곧 태국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꼽히며 국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1997년에 완공된 이 건물은 대문자 M 모양의 외관이 마치 커다란 코끼리의 몸통과 다리처럼 보이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코끼리의 눈은 동그란 창문으로, 귀와 코 부분 역시 외관과 다른 소재를 길게 활용하는 방식으로 표현했습니다. 전체 높이는 102m로, 건물 내부는 쇼핑몰과 사무실, 최고급 스위트 룸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세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동물을 꼭 닮은 건축물’은 생각보다 다양하며, 우리에게 새롭고 즐거운 경험을 선사합니다. 언제든 여행을 계획하거나 떠나려 할 때, 한번쯤은 인간의 무한하고 즐거운 상상력으로 탄생한 동물 건축물들을 직접 만나는 여행 루트를 추가해보는 건 어떨까요. 익숙함을 벗어 던지고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의 의미가 한층 더 깊고 풍요로워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