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가 점점 더 가속화되면서 국제사회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공동의 목표를 세웠습니다. 하지만 경제 전반에 걸쳐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은 그 양이 방대하고 복잡해 각국의 감축 목표만으로는 탄소중립을 실현하기에 분명한 한계가 있죠. 단순한 규제를 넘어 자발적인 감축 노력이 필요한 상황 속에서 주목 받고 있는 것이 바로 탄소거래시장입니다. 배출량에 가격을 매기고, 기업과 조직들이 감축 노력을 서로 ‘거래’할 수 있게 만들어 감축 비용을 낮추고 효과를 극대화하는 이 시장은, 기후위기 대응의 핵심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민간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자발적 탄소시장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는데요. 자발적 탄소시장은 ESG 경영을 실천하거나 브랜드 가치를 높이려는 기업들이 탄소배출권을 구매하거나 감축 프로젝트 투자를 통해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필연적 도구이자, 앞으로 기업들이 기후위기에 대응하며 경쟁력을 높이고 지속가능성을 확보해 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자발적 탄소시장은, 정부의 규제를 넘어 다양한 민간 주체들이 주도적으로 넷제로(Net-Zero)목표를 실현하는 강력한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입니다.
탄소 시장은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권한을 탄소배출권이라는 상품으로 만들어 거래하는 시장입니다. 이 시장은 크게 정부주도의 규제적 탄소시장(Compliance Carbon Market, 이하 CCM)과 민간 주도의 자발적 탄소시장(Voluntary Carbon Market, 이하 VCM)으로 나뉩니다.
CCM은 국가가 온실가스 배출총량을 설정하고 기업들에게 배출권을 할당하며, 관리와 규제를 총괄하는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산업(철강, 시멘트, 화학 등), 에너지(화석 연료 발전소, 석유, 가스 회사 등), 항공사, 선박, 자동차 등 특정 기준 이상의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대형 배출 기업들이 참여 대상으로 선정되며, 이들은 의무적으로 CCM에 참여해야 하죠.
반면 VCM은 법적으로 감축 의무가 없는 개인이나 기업, 기관, 비영리단체 등의 다양한 주체들이 자발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이를 통해 발생한 감축실적을 탄소 크레딧(온실가스를 감축하거나 흡수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생성되는 배출 삭감, 흡수량을 가치화한 상품) 형태로 거래하는 시장입니다.
VCM의 핵심은 기후위기 대응 주체들이 자발적으로 책임을 지고, 변화를 만들어간다는 점입니다. VCM은 글로벌 차원의 자금, 기술, 노하우를 연결해 개별 정부 정책만으로는 해내기 어려운 국제적 협력 효과를 이끌어냅니다. 예컨대 한 기업이 다른 나라의 산림 복원, 재생에너지 확산, 블루카본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고, 빈곤을 감소시키며, 생태계를 보전해나가는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VCM은 책임, 참여, 연대의 메시지를 담은 혁신적 플랫폼이자, 지속가능한 미래로 가는 중요한 가교로 불리기도 합니다
출처: 키움증권 리서치센터
VCM은 2021년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파리협정 제6조의 구체적 이행 규칙이 제정되면서 큰 주목을 받게 되었는데요. 이 협정을 통해 바로 국제 탄소시장과 VCM, 두 시장의 연계로 VCM에서 발생한 탄소 크레딧이 국제 탄소시장에 통합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기 때문입니다. 국제탄소시장은 국제기관 주도하에 모든 국가들이 참여해 탄소 크레딧을 거래할 수 있는 시장인데요. 국제탄소시장이 시행되면 나라마다 개별적으로 운영해오던 탄소배출권 거래제도들을 이곳에 연계해 운영할 수 있게 되기 됩니다. VCM 시장이 커지고, 통합됨에 따라 개도국과 선진국 모두 필요한 만큼의 판매 및 감축 프로젝트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가 증가하게 되는 것이죠.
이에 VCM 시장도 급격히 성장하게 되었죠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까지 VCM 시장은 2020년 대비 약 15배 성장하며, 시장 규모는 5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2021년 VCM의 시장 가치는 2,100만 달러였고, 2023년 말까지 탄소시장의 총 거래량은 24억 톤 CO2eq에 달하며, 총 거래 금액은 108억 달러를 기록하였습니다. 이는 지난 10년 동안 각각 2.9배, 2.7배 증가한 수치입니다.
자발적 탄소시장에서의 거래는 주로 유럽과 북미에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영국, 독일, 프랑스 등에서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시장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미국, 캐나다를 비롯한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전 세계적으로 탄소 배출 상쇄 프로젝트가 확대되고 있습니다.
법적 감축 의무가 없는 많은 기업들은 VCM을 통해 탄소배출권을 구매하거나 감축 프로젝트에 투자하며 탄소 감축을 시행하고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구글은 2007년부터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재생 가능에너지 확대, 산림복원프로젝트 등을 통해 VCM에서 배출량을 상쇄해 왔습니다. 2030년까지 탄소 없는 전력 사용을 목표로 전 세계 데이터센터와 오피스를 100% 무탄소 에너지로 전환하겠다는 계획도 추진 중에 있죠. 마이크로소프트도 2030년까지 탄소 네거티브를 달성하겠다는 목표 아래 재생 에너지 구매, 블루카본 프로젝트 투자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역시 2030년까지 2019년 대비 내부 배출량을 45% 감축하고, 불가피한 배출량은 자연 기반 솔루션에 투자해 상쇄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했습니다.
이외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탄소중립 프로젝트에 투자하며 VCM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데요. 법적 의무가 없음에도 기업들이 VCM에 참여하는 이유는 단순히 비용을 지출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 유치, 브랜드 강화, 규제 대응, 신사업 기회 창출 등 다양한 측면에서 중장기적 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입니다. 탄소 배출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VCM 참여를 통해 감축 및 상쇄 활동을 진행하면 규제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으며, 경쟁사들보다 유리한 입장을 선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재생에너지, 블루카본, 산림 복원 등 탄소 감축 산업은 미래 유망한 성장 분야이기 때문에 기업들은 이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죠.
VCM 참여는 금융 및 투자 시장에서 신뢰를 확보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을 비롯한 글로벌 투자자들은 기업의 기후 리스크 관리와 ESG 활동을 투자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탄소 감축과 관련된 정보 공개에 잘 대처하지 못하면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친환경 브랜드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기업들은 VCM을 통해 탄소중립 목표를 실현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브랜드 가치를 강화하고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여러 이유로 VCM은 단순히 규제를 따르는 수준을 넘어, 스스로 기후위기 대응에 앞장서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는 기업들에게 매우 강력한 전략적 수단으로 손꼽히고 있는데요. 앞으로 더 많은 기업이 참여함에 따라 VCM 시장은 한층 더 활발히 성장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VCM 메커니즘은 온실가스 감축‧제거 프로젝트를 설계 및 이행한 후, 이를 국가 기관이나 제3의 기관이 승인하여 탄소 크레딧을 발급한 다음, 이를 최종 구매자에게 판매하는 시스템입니다. VCM 주요 참여주체는 탄소배출량을 감축‧제거하는 프로젝트를 실시하는 프로젝트 개발사, 프로젝트의 배출량 감축‧제거실적을 승인해주는 표준기관, 승인 프로젝트를 등록해 탄소상쇄권을 발행한 후 일련번호를 부여하는 등록소, 마지막으로 구매한 탄소상쇄권을 자체 배출량 상쇄 등에 활용하는 구매자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프로젝트 개발자들은 탄소 감축을 위해 다양한 분야의 프로젝트를 발굴하거나 설계하는데요. 대표적으로 태양광 풍력, 수력 발전 등을 통해 직접적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재생 에너지 프로젝트, 축산업과 폐기물 매립지 등에서 발생하는 메탄을 감축 하는 폐기물 프로젝트, 숲을 보호하고 복원해 탄소 흡수량을 늘리며 생태계 보전과 탄소 감축을 동시에 달성하는 산림보호 프로젝트 등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건물 단열 개선 및 고효율 설비 도입으로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에너지 효율 향상 프로젝트, 효율적이고 친환경적인 기기를 보급해서 탄소 감축을 달성하는 가정 및 지역사회 기기 프로젝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프로젝트가 개발되고 있습니다.
재생 에너지 분야에서 인도네시아 바이오가스 발전 프로젝트를 손꼽을 수 있는데요. 농업 폐기물을 활용해 메탄가스를 포집하고 전기를 생산하며 연간 약 50,000톤의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있죠. 싱가포르는 첨단 IoT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빌딩 프로젝트를 통해 최대 30%의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케냐는 음식물 쓰레기 바이오가스화 프로젝트(도시 폐기물을 활용해 바이오가스를 생산)를 통해 연간 약 25,000톤의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하고 있습니다.
출처: Ecosystem Marketplace, 에너지경제연구원, 키움증권 리서치센터
산림보호 프로젝트에서는 개발도상국의 산림을 활용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REDD+ 프로젝트가 가장 대표적입니다. 열대우림 보호를 통해 연간 100만 톤 이상의 탄소 배출을 방지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죠. 해외뿐 아니라 우리나라 기업들도 탄소시장 인증기관(Verra(미국), GS(스위스), ACR(영국), 대한상공회의소 탄소감축인증센터(한국) 등이 있음)중 하나인 베라(Verra)를 통해 REDD+ 프로젝트에서 발생한 탄소 크레딧을 구매(총 78건, 71만 2,556톤)해 배출량을 상쇄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2023년 1월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베라(Verra)가 인증한 REDD+ 프로젝트에서 발행된 탄소 크레딧의 94%가 실제로 기후에 기여하는 가치가 없다고 보도하며, VCM의 신뢰성과 투명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베라는 전 세계 자발적 탄소배출권의 3/4을 인증하고 있으며, 그 중 40%는 열대 우림 보존 프로젝트에서 발급된 것이었는데, 이 사건으로 VCM은 큰 타격을 입게 되었고 실제 거래량과 거래금액 또한 각각 64%, 70% 감소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표준화 되지 않은 크레딧 발행, 투명하지 않은 가격결정 매커니즘, 그린워싱 등 여러 논란이 재점화되며 VCM의 한계점이 드러나기도 했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VCM 관련 주요 이니셔티브가 발 벗고 나섰는데요. 자발적 탄소시장 무결성 위원회(ICVCM)는 전 세계 자발적 탄소시장에 공통으로 적용될 10대 원칙이 담길 핵심탄소원칙을 마련했으며, 탄소 시장 무결성 이니셔티브(VCMI)는 지난 4월 기업들이 배출량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기후 변화 대응에 실질적인 기여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실용적인 지침인 스코프3(기업의 소유‧통제 범위 외 기업의 가치사슬에서 발생하는 간접 배출량) 행동 강령을 공개 했습니다. 2024년 5월 미국 정부도 탄소 크레딧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자발적 탄소시장 무결성 원칙(공급 무결성, 수요 무결성, 시장 무결성)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관련업계는 다양한 제도적 개선방안들을 통해 위축된 자발적 탄소 시장이 다시 활기를 되찾고, 주춤했던 성장률도 점차 회복해나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출처: 자발적 탄소시장 동향, KDB미래전략연구소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2018년 대비 2억 9,100만 톤 줄이며 2050년까지 국내 순배출량 0(넷제로)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는데요. 우리나라는 구조적 측면에서 탄소배출 감축이 어려운 산업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국가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해외 감축 프로젝트 참여를 통해 간접적으로 달성하는 방안이 고려되고 있습니다.
국내 VCM은 현재 태동단계, 즉 시장 형성의 초기단계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2023년 1월, 대한상공회의소는 국제 탄소감축 인증관련 표준을 위해 탄소감축인증센터를 설치하고, 센테로라는 플랫폼을 통해 탄소감축 방법론 등록, 프로젝트 승인 및 제3자 검증을 수행하고 있으며, 인증위원회를 통해 탄소 크레딧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인증센터를 통해 삼성, SK, LG 등의 국내 기업들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2024년 10월 기준 17개 프로젝트로 120만 tCO2eq 규모의 탄소 크레딧이 발행되었죠.
이어 2024년 3월에는 자발적탄소시장연합회가 출범하고, 현재는 환경부가 한국형 녹색 분류 체계 개정 작업(환경 친화적 활동을 명확한 기준에 따라 분류하여 탄소 배출권이나 관련 제품들의 신뢰성을 높여 기업들의 탄소 배출 관련 투자 및 활동을 유도)을 진행하는 등 자발적 탄소시장의 활성 및 지원을 위한 인프라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기후위기 대응에서 금융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금융계 또한 탄소금융 전문팀을 신설하고, 외부 국제 감축 사업을 실시하는 등 탄소시장에 대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어 앞으로 국내 자발적 탄소시장 또한 지속적으로 확장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출처: 금융권 및 자발적 탄소시장 관련 언론·기관 발표 정리
지난 2024년 11월, 제29회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에서 2021년에 이어 국제 탄소시장이 활성화되는 구체적인 규칙이 확정되면서 자발적 탄소시장 또한 활성화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 몇 년 간 VCM의 탄소 크레딧의 품질과 신뢰성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베라, 골드 스탠다드와 같은 주요 인증기관들은 VCM의 품질 기준을 강화하며 거래의 투명성과 감축 실적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힘쓰고 있죠. 고품질의 탄소배출권 확보와 투명한 거래 시스템 구축이라는 과제들이 개선되면, 향후 VCM을 활용해 자사의 탄소 배출을 상쇄하며 탄소중립 목표를 실현하는 기업들의 수요 또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견인하는 핵심 수단이자, 글로벌 탄소중립 목표를 향한 든든한 축으로 자리잡을 VCM. 국제 탄소시장과의 연계 강화, 인증 시스템의 지속적인 개선, 그리고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신뢰성과 투명성을 갖춘 VCM은 기업과 시장의 변화를 이끌며 탄소중립 시대를 향한 전환을 가속화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