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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와 서울, 두 도시의 건축 비엔날레

2023-10-24

베니스와 서울, 두 도시의 건축 비엔날레

흔히 ‘물의 도시’라 불리는 이탈리아 베니스에서는 2년에 한번 세계 각국의 건축가와 실무자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건축 비엔날레가 열립니다. 올해는 아프리카 가나 출신의 건축가이자 소설가 레슬리 로코((Lesley Lokko)를 총감독으로 선정, ‘미래의 실험실(The Laboratory of the Future)’이라는 주제로 총 64개국이 참여해 다양한 형태의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는데요. 얼마 전엔 머나먼 베니스가 아닌 서울에서도 건축의 시선으로 서울의 100년 후를 그려보는 서울도시건축 비엔날레가 시작되었습니다. 비슷한 시기, 두 도시에서 열리는 건축 비엔날레는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새로운 건축적 화두를 던지고 있을까요.

평등하고 지속가능한 건축을 위한 다채로운 실험의 장, 제18회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주제: ‘미래의 실험실(The Laboratory of the Future)’
총감독: 레슬리 로코((Lesley Lokko)
기간: 5월 20일~11월 26일까지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의 역사적인 시작은 19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사실 이는 1895년부터 열린 베니스 미술 비엔날레와 비교하면 90여 년이나 늦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첫 회부터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일찌감치 건축계를 대표하는 행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는데요. 이는 프랭크 게리(Frank Gehry), 렘 콜하스(Rem Koolhaas), 한스 홀라인(Hans Hollein) 등 이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연이어 수상한 최고의 건축가들이 당시 모두 한 자리에 모여 포스트 모더니즘 건축 양식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모았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5월 20일부터 11월 26일까지 베니스 자르디니와 아르세날레 일대에서 6개월 동안 진행되는데요. ‘미래의 실험실’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건축의 미래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는 전시들이 도시 곳곳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특히,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이라는 인류의 생존을 뒤흔드는 가장 큰 문제에 대해 건축이 어떻게 접근하고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지 매우 폭넓고 다양한 관점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전시는 크게 그 해의 주제에 부합하는 내용으로 채워진 본전시와 참여국들이 저마다 자유롭게 기획한 내셔널 파빌리온에서의 전시로 나뉩니다.

95개 팀이 참여한 본전시는 비엔날레 역사상 처음으로 선정된 아프리카계 예술감독의 아이덴티티를 느낄 수 있는 기획전시들로 가득합니다. 올해는 참여 팀의 절반 이상이 아프리카계로 분류되는 만큼, 이전의 비엔날레와는 전혀 다른 작품과 새로운 접근들이 눈길을 끕니다. 실제 건축 모형보다는 영상이나 사진, 일러스트 등의 이미지, 설치미술 등을 통해 건축이라는 개념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 대부분입니다. 또, 오랜 시간 인정받지 못했던 아프리카 또는 비서구권의 건축 양식과 소재들에 주목하고 있는 것 역시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데요. 그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흑인 최초로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서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 출신의 프란시스 케레(Francis Kéré)입니다. 그는 콘크리트가 부족한 아프리카의 열악한 상황을 감안해 현지에서 쉽게 수급이 가능한 진흙으로 만든 점토 벽돌이나 나무 등으로 건물을 짓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건축을 통해 공동체의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노력해온 그가 고향에 설계한 건축물의 일부도 이번 비엔날레에서 실물 크기의 모형으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KÉRÉ ARCHITECTURE, COUNTERACT, Photograph by Matteo de Mayda. Courtesy of La Biennale di Venezia.

이 밖에 나이지리아 출신의 아티스트 올랄레칸 제이포스(Olalekan Jeyifous)가 1970년대 아프리카 연안에 건설된 무탄소 여행 터미널과 라운지의 존재를 상상하며 그려낸 ‘ACE/AAP’도 본전시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OLALEKAN JEYIFOUS, ACE/AAP, Photograph by Matteo de Mayda. Courtesy of La Biennale di Venezia.

이번에도 어김 없이 내셔널 파빌리온에 참여한 우리나라의 전시 주제는 ‘2086: 우리는 어떻게?’입니다. 세계 인구가 정점에 달하는 2086년을 미래의 시작으로 설정하고, 지금 우리의 크고 작은 선택들이 미래를 어떻게 바꾸고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채워졌습니다. 동인천 배다리와 전북 군산, 경기도 안산의 커뮤니티에 관한 사례연구와 함께 관람객들의 능동적인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게임 ‘Together How’를 통해 2086년의 미래를 다양한 수치로 예측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결국 현재 지구 환경의 위기는 줄곧 산업화, 도시화, 현대화를 추앙해온 우리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죠.

The Game of Together How a.k.a The Game of Crime Against Nature. Installation view, Korean Pavilion at the 18th International Venice Biennale, 2023 Photo by Kyong Park. Courtesy of the Korean Pavilion. ⓒ Kyong Park

탈탄소화와 탈식민화라는 이번 비엔날레의 두 가지 핵심 키워드를 표현하기 위한 전시는 각 나라의 파빌리온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중 올해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브라질관은 ‘Terra(땅)’를 주제로 브라질의 정체성과 디아스포라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요. 전시장 전체 면적을 모두 흙으로 채워 넣어 독창적인 분위기를 완성했습니다.

Brazil pavilion, Terra [Earth]. Photograph by Matteo de Mayda. Courtesy of La Biennale di Venezia.

또, 노르웨이와 핀란드, 스웨덴이 공동으로 참여한 북유럽관의 경우에는 북유럽 전체에 약 10만 명 정도가 남아있는 토착민들의 삶을 보여주고자 사슴 가죽과 책 등을 가득 전시해 놓았습니다. 특히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독일관은 지난해 전시작품들을 그대로 쌓아놓고 품목별로 인덱스를 달아놓기까지 했습니다. 이미 전시에서 사용된 가죽을 이용해 관람객이 직접 가방을 만들어 가져가게 하는 등 비엔날레 현장에서 폐기물의 새로운 용도와 쓰임을 찾는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영국의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이끄는 노먼 포스터 재단(Norman Foster Foundation)이 건축 자재 제조사인 홀심(Holcim)과 함께 만든 ‘본질적인 집(Essential Homes)’은 난민을 위한 임시 거주지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습니다. 전쟁이나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날 수밖에 없는 난민들에게 보다 안정적인 주거를 누릴 수 있도록 제안하고 있는 것이죠. 저탄소 콘크리트 캔버스를 격자 프레임 구조 위에 아치형으로 배치하는 방식인데, 이 콘크리트 캔버스에 물을 뿌려 말리기만 하면 내구성까지 높아진다고 합니다. 시공 역시 3~4일이면 충분하고, 20년의 수명을 거뜬히 견딜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합니다. 내부는 임시 거주지로 보이지 않을 만큼 편안하고 안락한 구조이며, 천장에 원형 창문을 두어 자연 채광도 가능합니다. 무엇보다 친환경 소재의 단열재를 사용하고, 건설 폐기물을 재활용한 골재를 활용하는 등 탄소배출량을 70%나 줄인 집이라고 하니 향후 다양한 현장에서 응용 및 활용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서울의 100년 후를 상상하며 거대도시 서울을 탐구하다, 제4회 서울도시건축 비엔날레

주제: 땅의 도시, 땅의 건축
총감독: 조병수
기간: 9월 1일~10월 29일까지

2017년 ‘공유도시’라는 주제로 처음 시작된 우리나라의 서울도시건축 비엔날레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도시건축에 대한 다양하고 폭넓은 고민과 새로운 실험들을 거듭하며 성장해 왔습니다. 올해는 땅과 물과 바람이 관통하는 환경적, 생태적 건축의 관점에서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를 함께 들여다보고, 서울의 100년 후를 상상하며 새로운 마스터플랜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600년 전 풍수와 자연환경적 관점에서 선조들에 의해 선택된 땅 서울이 이후 현대 도시로 변화를 거듭하는 과정 속에서 원래의 정체성은 훼손당하고, 자연과 도시의 흐름 또한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는 100년 후의 서울을 어떻게 준비해 나가야 할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하는 것이 2023 서울도시건축 비엔날레의 가장 큰 목적이자 역할일 텐데요. 이를 위해 주제전과 서울 100년 마스터플랜전, 게스트시티전, 글로벌 스튜디오, 현장 프로젝트 등 총 5개의 섹션을 구성해 국내외 수많은 참가자들과 함께 탐구의 대상지인 서울에 대해 다양한 논의를 벌이는 장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먼저 ‘땅의 건축’이라는 핵심 주제를 관통하는 주제전은 생태와 지형, 조망을 키워드로 한 다양한 담론과 프로젝트를 소개합니다. 아가 칸 건축상을 수상한 리즈비 하산 등 국내외 작가 19인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요. 특히, 열린송현 녹지광장에 조성한 12m 높이의 거대한 계단식 전망대 ‘하늘소(Sky Pavilion)’와 몸을 낮추어 땅의 기운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된 ‘땅소(Earth Pavilion)’는 이와 같은 주제를 가장 잘 담아내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세종대로에 위치한 서울도시건축전시관에서 만나볼 수 있는 서울 100년 마스터플랜전은 서울 그린 네트워크를 조성하는 다양한 주제들로 채워졌는데요. 국제 공모를 통해 선정된 40개 팀이 협력한 유형별 전시와, 초청작가 13팀의 연구 성과들이 함께 전시되고 있습니다. 서울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를 뒤덮는 새로운 한강공원, 최대 폭이 2km에 달하고 주거와 상업이 모두 가능한 한강 위 브릿지 건축 등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아이디어들로 채워져 관람객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합니다. 또한, 첨단 기술과 데이터를 적극 활용해 새로운 도시 기반시설을 계획하고, 여기에 도심의 자연 요소들을 촘촘히 연결해 친환경 고밀도시 서울의 미래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Type A ⓒ홍승표, 황사운, 출처: https://blog.naver.com/seoulbiennale2017/223180785386

전시관 지하 3층과 서울시청 시민청에서는 ‘패러럴 그라운즈(Parallel Grounds)’라는 주제의 게스트시티전을 감상할 수 있는데요. 주로 땅의 의미를 확장하고 재구성한 세계 도시의 사례들을 모아 소개하고 있습니다. 독일 함부르크, 스위스 바젤, 스페인 세비야, 일본 도쿄 등 34개 도시와 함께 도시의 밀도를 다루면서 공공성을 늘리는 방법에 대한 다양한 고민을 나눠보는 섹션입니다. 그리고 공간을 이동해 열린송현 녹지광장에 설치된 하늘소 전망대 아래 내부로 들어가보면, ‘메가시티의 연결(Bridging the Megacity)’을 주제로 아시아와 유럽, 아메리카 등 13개국 24개 도시 31개 대학이 참여한 건축 모형과 드로잉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요. 이곳은 각 나라의 젊은 건축학도들에게 지속가능한 건축의 중요성과 함께 메가시티의 미래에 대해 함께 논의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올해 비엔날레에서 가장 많은 시민들과 대면하게 될 현장 프로젝트전은 서울의 산길, 물길, 바람길을 관람객들이 직접 체험해보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를 위해 총 6개의 파빌리온을 설치한 열린송현 녹지광장은 지난해 100년 만에 개방되어 서울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곳이기에 그 의미를 더합니다. 그 중 수천여 개의 렌즈와 AI 이미지를 활용해 서울의 100년 후 모습을 모자이크 방식으로 보여주는 ‘리월드(Reworld)’와 심플한 삼각형 구조물처럼 보이지만 내부의 좁고 긴 공간을 통해 타인과 마주할 수밖에 없게끔 설계된 ‘페어 파빌리온(Pair Pavilion)’, 23개의 목재 유닛을 선형 대열로 배치해 각각의 개별공간이면서 긴 터널의 일부이기도 한 ‘사운드 오브 아키텍처(Sound of Architecture)’ 등은 이번 비엔날레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입니다.

올해 현장 프로젝트전에 출품된 작품들은 파빌리온의 한시적인 설치와 폐기에서 벗어나 모두 비엔날레가 종료되는 대로 전남 해남과 경기도 등 각각 다른 장소에 재배치되어 새로운 역할을 하게 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번 행사에 사용된 대부분의 집기들 역시 재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데요. 이는 건축을 통해 인간과 도시, 나아가 인류의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는 서울도시건축 비엔날레가 전 세계적인 화두로 떠오른 지속가능성에 화답하는 꾸준한 방식이 될 것입니다.

 

베니스건축비엔날레,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