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공학에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우리가 걸어 다니는 길, 지나다니는 터널, 건너는 다리 말이다. 우리는 이런 건축물들을 사용하고 보살피는 덕분에 삶을 더 쉽게 영위할 수 있다. 그 대가로, 건축물은 우리 존재의 일부, 결코 소리를 내지 않지만 핵심적인 일부가 된다.
책상이 줄지어 늘어선 초고층 유리 빌딩에 걸어 들어가면 뭔가 전문가가 된 기분이고 충만한 느낌도 받는다. 지하철 창문을 스쳐 지나가는 구속강관은 여행의 속도감을 배가시킨다. 모양이 똑같지 않은 벽돌벽과 자갈길은 과거, 즉 우리가 살던 시대 이전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건축물은 우리의 삶을 재단하고 지속시키며 우리가 존재할 수 있도록 캔버스를 제공한다. 우리는 자주 건축물의 존재를 무시하거나 잊는다. 하지만 건축물은 많은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 거대한 다리를 위에서 당기고 있는 장력 케이블, 높은 건물의 유리 표면 이면을 떠받치고 있는 철골 구조. 이런 것들이 건축물로 둘러싸인 우리 세계를 만들고 있다. 이런 건축물은 인류가 지닌 창의력을 보여준다.
《빌트, 우리가 지어 올린 모든 것들의 과학》
도시에 대해 말하는 많은 책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도시들 각각의 매력이나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전하는 책들도 있고, 도시의 형성에 대해 역사학이나 지리학, 혹은 인류학, 경제학 등 여러 학문의 입장에서 파헤치는 책들도 있습니다. 또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읽기의 주요 공간으로 도시를 해석하는 시도도 있고, 국가에서 도시로 패권이 변해가는 지금의 트렌드를 예측하는 입장도 있습니다. 이처럼 건축의 눈으로 도시에 접근한 책들도 많은데요 도시의 멋진 건축물들을 소개하거나, ‘콘크리트 정글’ 같은 비유로 표현되는 삭막한 도시공간에 대한 보고서처럼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빌트, 우리가 지어 올린 모든 것들의 과학》(이하 《빌트》)은 기존의 모든 시도들과 조금 다른 출발점에 서서 도시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빌트》는 구조공학자의 입장에서 도시의 건축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앞의 인용문에서 이미 눈치를 챘을 수도 있겠지만, 어느 부분을 읽을 때까지는 건축가가 도시를 이야기하는 많은 책들과 비슷하게 보이지만, 몇몇 지점에서 묘하게 다릅니다. 구속강관이나 장력 케이블, 또 철골 구조 같은 용어를 끄집어 냅니다. 장력 케이블처럼 겉으로 보이거나 철골 구조처럼 안에 숨어 있거나, 건축물은 수많은 재료와 구조, 결정적으로 공학적 원리의 결과물입니다.
건축물에서 건축가와 구조공학자는 각각 다른 것을 상상하고 각각 다른 도전과제와 프로세스를 거쳐 마침내 한 결과물에 도달하는 데요, 《빌트》는 구조공학자의 눈으로 건축을 대하고 도시를 읽습니다. 구조공학의 요소들이 어떻게 도시 풍경 속에 숨어있는지 퍼즐을 푸는 것이죠.
세계적인 공학자로서 일상 속 사물들의 역사와 공학적 의미, 디자인의 유래를 치밀하게 추적한 《포크는 왜 네 갈퀴를 달게 되었나》의 저자 헨리 페트로스키는 《빌트》에 짧고 정확한 추천사를 써주기도 했습니다.
“로마 아그라왈의 《빌트》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공학자 중 한 명이 도시의 구조에 관해 쓴 가장 생생하고 역동적인 책이다.”
시간이 없다면 2장 ‘힘: 중력, 바람,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건물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와 3장 ‘화재: 수많은 재난으로부터 얻은 교훈’ 두 챕터만 먼저 읽어도 좋습니다. 여기서 아그라왈은 구조공학의 원리를 간결하게 설명합니다.
그녀는 1907년 8월, 캐나다 퀘벡시의 세인트로렌스강의 다리 건설현장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고(강철 1만9천톤으로 지어진 다리의 남쪽 부분이 강으로 내려앉고, 현장 인부 86명 가운데 75명이 희생되었다) 이야기에서 출발합니다.
왜 사고가 났을까. ‘힘’이라는 공학적 요소를 적절히 다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엔지니어의 주요 임무는 자기가 맡고 있는 건축물이 다양한 힘에 제대로 대응할지를 계산하는 것이다. “이 힘들은 건축물을 밀고 당기고 흔들고 뒤틀고 쥐어짜고 구부리고 가르고 찢고 부러뜨리고 쪼갠다.” 건축물을 계획할 때는 어떤 종류의 힘이 어디로 흘러가는가를 이해하고, 그 힘이 통과하는 부위가 그만큼 튼튼한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건축물에 미치는 힘 중에 가장 중요한 고려 요소는 중력입니다. 중력은 ‘압력’과 ‘장력’의 형태로 작용합니다. 건축과 공학은 이 중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스템적으로는 내력벽과 프레임 등을 발전시켜왔고, 재료로서는 철근과 콘크리트의 결합을 발견해냈습니다. 아그라왈은 건축물을 기둥(수직)과 보(수평), 가새(수직과 수평을 제외한 다른 각도)로 나누고 각각의 기능과 거기에 주어지는 도전을 간단한 스케치와 함께 설명합니다.
건축물이 견뎌야 할 힘이 중력만인 건 아닙니다. 바람과 지진은 건축물을 자주 흔들고 뒤틀고 쥐어짭니다. 그 힘에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다리와 건물들은 어느 임계점을 넘어선 순간 무너져내리거나 맥없이 쓰러질 것입니다.
구조공학자들은 수십 년간 측정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바람 지도를 이용하거나, 도시를 1/200 비율로 축소한 풍동실험장에서 선풍기를 계속 틀어가며 바람 영향을 계산합니다. 구조적으로 바람의 영향(중력도 포함한다)을 줄이기 위한 장치로는 코어 같은 내부 구조나 외부 가새골조 등이 있습니다.
외부 가새골조의 대표적인 예로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가 있습니다. 퐁피두센터는 일반적으로 건물 안에 배치하는 정수관, 오수관, 전기 케이블, 환기 통로,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 등을 건물 바깥으로 배치했어요. 그런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러한 배관 설비들, 이동 통로들 사이에 거대한 X자 모양의 강철 막대로 전체 건물을 그물망처럼 연결한 것입니다. 바람을 견디고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구조로서 채택된 외골격인 셈이지요.
바람과 지진에 대비하기 위한 구조공학의 또 다른 대응은 건물 내에 거대한 추를 설치하거나(타이완 타이베이의 타이베이101 빌딩) 진동감쇠장치(멕시코 멕시코시티의 토레 마요르 빌딩)를 만드는 것입니다.
타이베이101빌딩은 2015년 8월 태풍 사우델로르가 타이완을 초토화시켰을 때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당시 돌풍의 풍속은 시속 170km에 달했고, 건물의 87층에서 92층 사이에 걸려있는 거대한 강철 추는 건물이 흔들리는 것과 반대 방향으로 최대 1미터나 움직이며 건물의 움직임을 흡수했죠.
멕시코의 55층짜리 토레 마요르 빌딩은 96개의 유압식 진동감쇠장치 또는 충격흡수장치가 X자 모양으로 모든 층의 구석에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빌딩이 완공된 직후 규모 7.6의 지진이 멕시코시티를 강타해 많은 피해를 줬지만 토레 마요르는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습니다.
빌트(Built) – 공학은 도시 구조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해주나 (2편)으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