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시대와 지역을 담는 그릇’이라는 말이 있는데요. 음식에 담긴 재료, 조리법 등을 살펴보면 지역과 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읽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래도록 향토 음식과 노포를 관찰하고 기록해 작가로 데뷔한 삼표인이 있습니다. 삼표시멘트 물류팀 권오찬 팀장은 올해 6월, 10년간 기록한 글 중 일부를 엄선해 <한국인의 오래된 밥집을 찾아서>라는 책으로 출판했습니다. 음식 이야기를 쓰며 배움을 쌓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인생의 기쁨을 얻고 있는 그를 만나 음식과 책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한국인의 오래된 밥집을 찾아서>는 지역의 향토 음식에 대한 역사, 문화를 쉽게 풀어 쓴 책입니다. 저는 1970년대 중반에 시골 집성촌 농촌마을에서 태어나 성장했습니다. 정지용 시인의 ‘향수’에 나오는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실개천이 회돌아나가는 목가적이고 정겨운 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느 세대나 어린 시절 맛본 음식이나 추억은 아름답고 오래 기억될텐데, 새마을 운동에서 4차 산업혁명까지 급변하는 세상을 경험한 저에게 유년시절의 음식은 언제나 그리움의 대상입니다. 제가 그리워하는, 그리고 누군가가 그리워하는 그 맛을 간직한, 오래된 밥집을 찾아다니며 기록한 글을 엮어 출간했습니다.
전국의 노포를 소개하거나 향토 음식 조리법을 소개한 책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두 가지 소재를 엮어 역사 인문학적 관점에서 향토음식의 유래를 조명하고, 향토음식을 하는 노포를 추천하는 책은 제가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출간한 것 같아 뿌듯합니다. 교보문고 여행분야 1위에 오르기도 하고, 코엑스 스타필드 별마당 도서관에서 ‘전국 별미 여행’이라는 주제로 강연도 했습니다. 불특정 대중을 상대로 한 강연이라 떨렸지만 우리가 미처 알지 못 했던 이 땅의 향토음식 이야기를 해줄 수 있어서 매우 보람되었습니다.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10년 전, 2014년부터였습니다. 아이가 어려서부터 역사를 특히 좋아했는데, 전국을 여행하며 박물관에서 지역에서 나고 자란 위인들을 간접적으로나마 만나게 하고, 기후와 지형, 역사와 문화 등을 살펴 본 후 향토음식을 직접 경험하는 방식으로 여행을 꾸준히 이어갔습니다. 제가 식도락에 취미가 있다보니 우리 가족 입장에서는 지역의 생활상과 문화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게 음식과 재료, 조리 방법이더라고요. 이러한 경험들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지방의 향토 음식을 다루는 노포식당을 주제로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모든 샐러리맨의 고민 중 하나가 ‘직장’이라는 사회적 방패가 거둬졌을 때 “난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는가?”일겁니다. 대한민국 직장인이 대략 2천만명 가량 될텐데, 여기에 ‘작가’라는 타이틀을 더하면 제가 좀 더 특별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작가라는 타이틀은 제게 영구적인 자산으로 남아 최고의 명함이 될 거란 확신이 있었습니다.
10여년간 기록한 음식에 관한 기록이 약 1,400여개 가량 되는데, 이 중 출간의 가치가 있는 글을 추려 카카오에서 운영하는 작가들의 플랫폼인 ‘브런치’에 향토음식, 노포, 짜장면이라는 테마로 올리고 있었는데 이 글을 엮어 출간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3년 전쯤이었습니다. 전업작가가 아니고, 본업이 직장인인지라 업무에 집중하며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작가가 제작 비용을 전액 부담하는 ‘자비출판’으로 올해 6월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제 비결은 ‘꾸준함’과 ‘읽고 쓰는 습관’입니다. 저는 어느 날 문득 회사 보고서가 아닌 나를 위한 내 글을 써보자고 마음먹었어요. 처음엔 식당을 ‘맛있다’, ‘맛없다’라는 단편적인 리뷰만 기록하다가 ‘왜 이 지역에는 이 음식을 파는 식당이 많을까?’, ‘지역마다 조리법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등 의문이 생기는 거예요. 이에 대해 답을 찾아 글로 남겼죠.
그리고 글쓰기는 평생 함께 하고 싶은 취미라 남들과는 다르게, 더 잘 쓰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요. 그렇게 최소 일주일에 2편 이상 글을 썼어요. 점차 문장력도 좋아졌고요. 이 외에도 음식, 역사 분야의 서적을 계속해서 읽습니다. 일관된 꾸준함이 제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식은 대한민국 남녀노소 모두 통할 수 있는 이야기 소재입니다. 인간의 기본 생활 요소인 의식주 중 ‘식(食)’은 가장 평등한 것 같습니다. 먹는 음식은 서로 다를지라도 모두 공평하게 하루 두세 끼를 꼭 챙기죠.
회사 생활 23년을 하면서 얻은 지혜 중 하나가 모든 빅 토크는 스몰 토크에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 스몰토크로 가장 좋은 주제가 음식이예요. 특히 본인의 고향을 대표할만한 향토 음식과 노포 등에 관한 이야기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흥미있을 법한 이야깃거리이지요.
2004년 입사 2년 차 영업 업무를 담당했을 때, 연배가 많은 건설사 차장님들과 연령이나 성향에 관계없이 대화하기 좋은 주제 거리가 음식이었어요. 내비게이션도 없던 시절, 지역 음식에 관해 묻고 이야기 나누며 친밀감을 더했습니다. 오늘날 MZ세대들과도 마찬가지예요. 예나 지금이나 K-직장인에게 있어 음식은 조직의 단합 수단으로, 스트레스 해소 수단으로 가성비가 월등한 특효약입니다.
모든 향토음식은 다 인상 깊은데 그중 부산의 돼지국밥이 떠올라요. 돼지국밥은 일본의 돈코츠 라멘, 이북 실향민들이 고기를 우리는 곰탕 문화, 경남 지역의 뼛국 문화 등이 어우러져 만든 음식입니다. 독특하죠. 그리고 부산 사람들의 문화가 뭐랄까? ‘오지랖’ 문화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혼밥’이 일반적인 점도 타 지역과는 다른 점입니다. 평야로 농경생활을 이어온 토착민으로 꾸려진 전라도와 다르게 부산은 바다를 매립해 만든 지역이라 오래 산 사람은 있지만 토박이라고 부르기 어렵죠. 그래서 부산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을 잘 살피며 삶을 꾸려왔어요. 그런 성향에서 비롯되어 오래 전부터 혼밥에 관대했고, 혼자 돼지국밥을 먹으러 가면 친절하게 잘 챙겨주세요. 2017~2018년 부산에 발령받아 혼자 지냈는데, 돼지국밥과 오지랖이 담긴 부산 사람들의 친절이 퇴근 후 기러기 아빠의 허한 마음을 달래줬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노포’라는 개념이 사회적으로 완전히 합의되지 않은 것 같아요. 일본은 오래된 가게라고 하면 100년이 넘어야 하거든요. 한국은 일제 강점기, 한국 전쟁과 한강의 기적이라고까지 불리는 경제 부흥기 등 사회가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되었기 때문에 노포 문화가 숙성될 수 있는 토양이 몹시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노포라 하면 일본에 비해 짧은 30년을 기준으로 합니다.
무조건 오래되었다고 노포가 아닙니다. 진짜 노포는 ‘올드’하지 않고 노신사처럼 ‘클래식’합니다. 철학이 있고, 관리도 잘하고, 자부심도 느껴집니다. ‘원조 격’인 집 중 이런 기준이 느껴지는 집을 노포로 생각하며 선정하고 있어요.
종로나 광화문에서 방문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식당은 4곳 정도 있을 것 같아요. 서울에 유일하게 남은 서울식 추어탕을 맛볼 수 있는 무교동 ‘용금옥’은 사라지기 전에 꼭 가봐야할 곳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1904년 개업해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노포인 견지동 ‘이문설농탕’도 회사 근처에 있고, 육개장과 양무침을 잘 만드는 ‘부민옥’도 아주 좋습니다. 그리고 노포는 아니지만 고려의 개성음식을 맛볼 수 있는 삼청동 ‘개성철렵’도 권해드려요.
저는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 선후배와 함께 업무를 책임감 있게 수행하고, 집에서도 좋은 남편, 좋은 아빠로 잔잔하고 성실하게 살아가고 싶어요. 또 제가 좋아하는 글을 꾸준히 쓰는 게 목표고요. 이번에 소개하지 못한 향토 음식 이야기를 더 많이 모아서 출간하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삼표인들에게는 ‘맛있는 경험이 행복한 인생을 만듭니다’라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맛있는 음식으로 늘 행복에 행복을 더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