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최우선 과제로 손꼽히고 있는 기후변화. 그중에서도 대기권, 지권, 수권, 생물권, 빙권 환경을 품고 있어 소지구라고 불리는 세상의 끝 극지는 현재 전례 없는 기후변화를 겪으며 전 세계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지구의 미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 남극과 북극에서는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지난 9월 나사의 국립 눈 얼음데이터 센터(NSIDC)는 북극 해빙이 올여름 거의 역사적인 최저치로 떨어졌다고 밝혔습니다. 수십 년 동안 북극해의 얼음표면 두께가 줄어들었는데, 이러한 추세가 계속 이어질 전망이며 이 같은 해빙의 감소는 북극뿐 아니라 남극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전한 것이죠. 포스텍 연구팀은 2023년 국제 학술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현재와 같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지속될 경우 2030년대에 여름철 북극 해양에서 완전히 얼음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충격적인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보고서에 실린 예측시점보다 10년이나 앞당겨진 결과였습니다. 나사뿐 아니라 전 세계 수많은 과학자들은 인류 미래 문제 해결을 위해 극지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이처럼 전 세계가 남극과 북극이 겪고 있는 변화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구상에서 가장 위도가 높은 남극과 북극. 고위도에 있는 두 극지는 태양복사에너지가 가장 적어 세상에서 가장 추운 곳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새하얀 눈과 얼음, 빙하로 덮여있는 극지는 태양에너지의 70%를 반사해 햇빛을 막아주는 지구의 파라솔이자 에어컨으로 극지방의 찬 온도를 유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남극과 북극 모두 춥지만 이곳의 환경은 전혀 다릅니다. 지구의 최남단에 위치한 남극은 남빙양이라는 바다로 둘러싸인 거대한 대륙으로 한반도의 140배 정도 크기이며, 지구 육지 면적의 9.2%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북극은 대륙이 아닌 바다로 이루어져있는 곳으로, 북극의 얼음은 땅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닷물이 얼어서 생긴 얼음으로 덮여있는 상태입니다. 남극에 비해 상대적으로 온화해 2만 1,000여종이 넘는 동식물이 다양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죠. 남극해는 지구의 열과 탄소를 저장하는 대형 저장고로 연간 5억 5천만 톤의 탄소를 저장하고, 북극의 바다는 태양열을 흡수하고 저장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닮은 듯 다른 환경조건을 갖춘 이 두 곳은 다른 대륙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고, 지구 기후가 조금만 변해도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지구온난화 같은 기후변화를 모니터링 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사람도 살지 않고 전기 시설도 없는 극지에 산불이 자주 일어난다는 기사를 심심찮게 보게 됩니다. 추운 극지와 뜨거운 불은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불이 번지는 데는 사실 온도보다 건조함이 더 큰 영향을 끼칩니다. 건조한 극지에서는 번개로 인해 자연적으로 산불이 일어났다 소실되는데, 지구온난화로 인해 번개 활동이 증가하면서 더불어 극지 산불도 증가한 거죠.
극지 산불이 증가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빙하의 간접영향을 받은 지역인 주빙하지역은 여름에도 녹지 않고 일 년 내내 얼어있는 지층인 영구동토층(2년 이상 0℃이하로 유지된 토양층)이 분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영구동토층이 해빙되며 토양과 대기가 건조해지면서 산불 피해가 증가하는 상황입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기온이 상승하면 빙하와 눈이 녹고, 햇빛을 반사하지 못해 지표에 흡수되는 태양에너지 양이 급격하게 증가하게 됩니다. 그러면 또다시 기온이 높아져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죠. 이를 기후 되먹임(Climate Feedback)이라고 부르는데요. 하나의 기후현상이 또 다른 기후 현상을 야기하고, 이러한 상호작용의 결과가 연쇄적인 영향을 미치며 최초 기후 현상이 증폭되거나 감소하는 반응을 일컫습니다. 그 중에서도 양의 되먹임은 정상수준에서 벗어나게 하는 연쇄반응을 말하며, 음의 되먹임은 다시 정상 수준으로 돌아오게 하는 연쇄반응을 말하는데, 대표적 양의 되먹임 사례가 바로 이산화탄소 증가로 인한 지구온난화입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영구동토층의 해빙은 산불을 넘어 사람들의 생각보다 더 큰 재앙을 불러옵니다. 영구동토층 아래에는 약 1500~1만기가 톤의 메탄이 매장(지구 대기 중 메탄 초량의 약 10~70%에 해당)되어 있는데, 영구동토층이 녹으면 그 메탄이 공기 중으로 빠져나오고, 더 강력한 온난화 효과를 부추겨 연쇄적으로 더 많은 영구동토층이 녹아내리게 되죠. 메탄은 이산화탄소와 비교하면 지구온난화에 21배 영향을 끼치며, 약 80배 강력한 온실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기도 해 우려가 큰 상황입니다.
1980년 이후 북극 영구동토층의 표층 온도는 최대 3℃ 상승했고, 그 면적도 대폭 줄어들었습니다. 대신 얼음이 사라진 자리에는 식물이 자라나며 나무 군락지가 확대되고 있는데요. 고위도 툰드라 지역에 식물이 증가하는 ‘툰드라 그리닝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초원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마냥 반길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그리닝 현상으로 영구동토층이 더 빨리 녹게 되기 때문입니다. 따뜻해진 날씨로 인해 큰 나무들이 많이 자라나게 되면, 밀집도가 높아져 결국 공중에서 보면 검은 종이를 덮어놓은 것처럼 어두워 보이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이전과 달리 햇빛 반사율이 낮아져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빛의 80~90%를 흡수하게 되고, 지상은 전보다 더 뜨거워지게 되는 거죠. 기후 되먹임 현상이 심화됩니다.
또한 영구동토층에는 수천 년 동안 동결상태로 남아있던 고대 바이러스가 포함되어 있다는 연구결과가 2023년 3월 프랑스 엑스마르세유대 연구팀에 의해 밝혀지기도 했는데요. 연구팀은 시베리아 영구동토층에서 약 4만 8500년 동안 영구동토층에서 언 상태로 묻혀있던 13종의 바이러스를 발견했는데, 바이러스들은 대부분 세포를 감염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인류 공중 보건에 큰 위협을 끼칠 수 있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실제로 지난 2016년 시베리아의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탄저균에 감염된 동물사체가 그대로 노출되어 순록 2,000마리가 감염되고, 감염된 사슴고기를 먹은 사람들이 입원 및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북극점에 가장 가까운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에 있는 인류 최후의 금고인 세계 최대 규모의 스발바르 국제 종자 저장고(생물 다양성을 미래세대에 제공하기 위해 만든 식물 종자 저장 시설로 전 세계에서 수집한 90만 종의 씨앗이 저장되어 있음)가 침수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는데요. 영구동토층 암반에 130m 터널을 뚫고 지은 이곳은 해수면 상승이나 지진 등에 버틸 수 있도록 설계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구온난화로 인해 영구동토층이 녹아내리면서 입구에서 창고로 향하는 터널이 약 15m 높이까지 침수되어 생각지도 못한 피해복구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한번 녹은 영구동토층은 다시 그 예전의 상태로 되돌릴 수 없습니다. 과학자들은 영구동토층의 해빙을 억제하는 것이 곧 인간의 생존과 직결되는 과제이며 영구동토층 보호를 위해 토양을 덮어 태양복사를 차단하고, 식물의 증산작용(식물이 뿌리에서 흡수한 물을 증기로 배출하는 과정에서 열이 흡수되어 주변 환경 온도가 낮아짐)을 이용해 지표면의 온도를 낮추는 등의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북극 얼음이 다 녹으면 7m, 남극 해빙이 녹으면 60m 정도 해수면이 상승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는데, 해수면이 1m 상승하면 섬나라인 몰디브와 투발루는 물에 잠기게 됩니다. 투발루는 9개 산호섬으로 된 국가인데, 이미 2개의 섬이 바다에 잠겼고 2060년에는 국가 전체가 바다에 잠길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이런 위기는 비단 섬나라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전 세계 인구의 40%는 해안의 100km 이내 살고 있기 때문에 그 누구도 해수면 상승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죠. 뉴욕, 런던, 도쿄, 상하이, 서울, 인천 등 주요 대도시들도 침수 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해빙이 녹으면 해수면 상승이 가속화되어 해안지역이 침수될 뿐만 아니라 해양 온도와 바닷물 염분도 떨어져 해양순환시스템을 붕괴시키고 해양생물 다양성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밀도가 낮아져 심해로 가라앉는 현상이 일어나지 못하면 기후시스템이 갑작스럽게 교란되어 엄청난 기후 변화가 일어납니다. 해류순환시스템의 붕괴는 홍수 및 폭염, 가뭄 등을 유발하고, 더 나아가 건기가 우기가 되는 등 사람들이 예측할 수 없는 전 지구적인 재앙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이미 이러한 변화를 우리는 체감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최근 가을폭염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추석까지 이어진 더위와 극한 호우현상이 번갈아가며 나타나고 있고, 올 겨울에는 역대급 한파가 올 수 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기상학자들은 이러한 기록적인 한파의 원인을 북극해빙에서 찾았는데요. 이미 북극의 얼음이 많이 녹은 상태이기 때문에 남쪽과 온도차이가 커져 이로 인해 발달한 제트기류가 남쪽으로 이동하면 한반도에는 차가운 공기가 더 많이 내려오기 때문에 폭설과 한파가 이어질 것이라는 것이죠. 북극에 갇혀있어야 할 차가운 공기가 아래까지 내려오게 되면서 이러한 이상한파가 생겨나는 겁니다.
2021년 8월, 아이슬란드 최초의 빙하로 알려진 오크 빙하의 장례식이 열렸습니다. 레이캬비크(Reykjavik) 북동쪽에 있던 이 빙하는 면적과 두께가 서서히 줄어들면서 2014년 빙하 연구자들로부터 죽은 빙하 판정을 받고 700년 만에 지구에서 사라지게 되었는데요. 전 세계 기후 전문가들과 정치인, 작가 등 100여 명의 조문객들이 한자리에 모여 사라진 빙하를 추모했습니다. 빙하 장례식은 이후 스위스, 미국, 멕시코 등 세계 곳곳에서 열리며 빙하 소멸로 인한 환경위기의 심각성과 경각심을 일깨웠습니다.
과학자들은 멸종 위기의 동물들을 기록하는 것처럼 소멸하는 빙하들을 기록해나가고 있습니다. 불과 100여년 만에 지구 온도가 1.5℃ 가까이 올랐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빙하가 다시 생성될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입니다. 일부 학자들은 이미 이산화탄소 배출을 지금 즉시 중단하더라도 작은 빙하를 되살리기 힘들 것이라 말하지만 그럼에도 빙하 소멸을 늦추기 위해 신재생에너지 개발 및 온실가스 배출 감축 등 기후변화에 대한 노력을 필수로 해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빙하 변화에 대한 지속적인 관측과 연구도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
극지방 빙하를 구하기 위해 과학계에서는 다양한 기술이 논의되고 있는데요. 강한 태양광선에 빙하가 노출되지 않도록 고분자 특수섬유로 제작된 덮개를 덮거나, 해저 고정형 부유식 커튼을 이용해 빙하의 난류 접촉을 최소화하고, 펌프장이 해수를 끌어올려 얼리는 식으로 빙하 소실을 늦추는 방법 등이 제안되고 있지만 비용은 물론, 이러한 방안이 잠재적으로 주변 해양생태계에 어떤 환경 변화를 유발할지 알 수 없어 여러 논쟁이 오가는 상황입니다.
기후변화가 점점 가속화되는 현재, 지구온난 화로 인한 빙하 소멸은 더 이상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빙하가 소멸된다는 2035년은 앞으로 10여년 밖에 남지 않았고, 극지는 지금 이 시간에도 녹고 있기 때문입니다. 빙하의 손실은 해수면 상승, 기상이변, 생태계 파괴라는 결과를 낳으며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빙하의 운명이 걸린 지금, 어느 때보다 빙하 소멸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더불어 지속가능한 지구의 미래를 지키기 위한 우리 모두의 노력들이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빙하 장례식 동판에 새겨진 글귀>
미래에 보내는 편지
오크예퀴들은 최초로 빙하의 지위를 상실한 아이슬란드 빙하다.
앞으로 200년 사이에 아이슬란드의 주요 빙하가 같은 길을 걸어갈 것이다.
이 추모비를 통해 우리는 현재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음을 밝힌다.
우리가 실제로 해야 할 일을 했는지 여부는 미래의 당신만이 알 수 있다.
2019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