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지속가능성을 가늠하는 척도이자 공공 인프라 중 하나가 공중화장실입니다. 공중화장실은 위생, 안전, 접근성, 성 감수성, 문화까지 아우를 정도로 모든 것이 응축된 공간으로 해석됩니다. ‘한 나라의 문화와 교육 수준을 알아보려면 그 나라의 화장실을 보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공중화장실은 나라의 문화와 도덕적 의식을 담고 있기도 한데요. 특히 20세기 이후 세계 여러 도시에서는 화장실을 숨겨야 할 시설이 아니라 보여주는 문화 건축물 이자 도시 문제를 해결을 위한 새로운 인프라 등으로 해석해 선보이고 있습니다.
더 도쿄 토일렛(The Tokyo Toilet) 프로젝트는 시부야구의 낡고 어두운 공공화장실을 완전히 새롭게 바꾼 프로젝트로 유명합니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며 일본은 ‘손님을 극진히 모신다’라는 뜻의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를 접객 문화의 상징으로 내세웠는데요. 막상 공중화장실은 이와 달랐습니다. 성별, 나이, 장애 유무에 따라 접근조차 어려운 시설이 많았고, 일본어로 냄새(Kusai), 어두움(Kurai), 무서움(Kowai), 더러움(Kitanai)의 앞 글자를 딴 ‘4K’ 라는 단어가 존재할 정도로 열악했죠. 이에 안도 타다오, 쿠마 켄고, 반 시게루를 비롯해 애플 출신 디자이너 마크 뉴슨 등 각 분야의 거장들이 힘을 모았습니다.

출처: 더 도쿄 토일렛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 등장한 반 시게루의 투명 유리 화장실은 프로젝트의 대표작인데요. 색색의 통유리로 감싸인 이 화장실은 밖에서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입니다. 이는 “안에 누군가 숨어 있지는 않을까?”, “불결하지는 않을까?”라는 불안을 해소해줍니다. 문을 잠그면, 전기 신호를 통해 유리가 불투명해지며 프라이버시가 확보되는 구조입니다. 요요기하치만 공중화장실은 이토 도요오가 버섯을 모티브로 설계한 공간인데요. 3개 동으로 나뉘어 사방이 트인 구조는 방범 효과를 높이는 동시에, 뒤편 신사의 숲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집니다.

출처: 더 도쿄 토일렛
더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를 통해 공개된 17개의 화장실은 저마다 개성이 뚜렷하지만, 하나의 통일된 프로젝트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는데요. 유니클로 로고를 디자인한 카시와 사토가 전체 브랜딩과 픽토그램을 맡아 일관된 시각 언어를 부여했기 때문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화장실을 예쁘게 만드는 것을 넘어, 공공 공간에 대한 인식 전환을 이끌어 세계적인 공공 인프라 사례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노르웨이에는 화장실 자체가 뷰 포인트가 된 공간들이 있습니다.
건축가 토드 손더스와 토미 빌헬름센이 설계한 스테가스테인(Stegastein) 전망대는 산비탈에서 30m 돌출된 구조물로 허공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출처: https://www.nasjonaleturistveger.no/en/routes/aurlandsfjellet/stegastein/
이곳 화장실은 전망대와 대조적으로 검정 콘크리트로 마감되어 묵직한 인상을 주는데요. 전략적인 창문 배치와 각도 설계를 통해, 외부에서는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지만 안에서는 통유리를 통해 아우를란즈 피오르드의 풍경을 파노라마처럼 감상할 수 있습니다. 가장 은밀한 곳에서 마주하는 독보적인 경험을 선사합니다.
한편, 노르웨이 공공도로 관리국은 다양한 건축가와 협업해 주요 관광지 곳곳에 편의 시설을 조성해왔는데요. 그 중 손꼽히는 곳이 2018년 완공된 우레드플라센(Ureddplassen) 휴게소 화장실입니다. 오슬로 건축 사무소 하우겐/조하르가 설계한 이곳은, 바닥에서 자연스럽게 솟아올라 파도처럼 휘어지는 콘크리트 지붕이 인상적입니다. 반투명 유리 벽면은 낮에는 프라이버시를 지키고 밤에는 내부 조명이 밖으로 스며 나와 야경을 만듭니다. 주변에는 노르웨이 장미 대리석 벤치와 테라스가 펼쳐져 있어 북극광과 백야를 감상하기 위한 관광객들의 명소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중시한 예술가 훈데르트바서는 뉴질랜드 카와카와 마을에 특별한 유산을 남겼습니다. 쇠락해가던 탄광 마을이었던 카와카와는 그에게 예술적 활력을 불어넣을 설계를 요청했는데요.

출처: 위키피디아
1999년 완공된 이 공중화장실은 세라믹 조각, 재활용 유리병, 옛 은행의 벽돌 등 버려진 재료들로 디자인되었습니다. 색색의 기둥과 불규칙한 타일, 색유리 창문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지역 주민들이 직접 시공에 참여해 의미를 더했습니다. 나무를 ‘건물의 세입자’라 부를 만큼 자연과의 공존을 철학으로 삼은 그는, 지붕 위에는 나무가 자라는 생태 지붕을 올리고 황금빛 구체 환기구를 설치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바람처럼 이 화장실은 연간 25만 명이 찾는 랜드마크가 되었으며,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20년 뉴질랜드 문화유산 최고 등급(Category 1)으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영국 런던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유흥가에는 밤에만 나타나는 유리리프트(Urilift) 팝업 화장실이 있습니다. 낮에는 지하 콘크리트 피트 안에 숨어 일반 인도처럼 보이다가, 밤이 되면 유압장치를 통해 지상으로 올라옵니다. 낮에는 카페, 상점, 식당 등의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것과 달리, 밤이 되면 이를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노상방뇨 등의 문제가 심각해졌는데요.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도입된 것이죠.
내부 기둥 안에 소변기, 개수다, 휴지 디스펜서 등이 마련되어 있으며, 스테인리스 재질로 만들어져 위생 관리가 용이한 것이 장점입니다. 암스테르담은 남성 전용 소변기 위주에서 벗어나 여성용 칸을 포함한 ‘콤비(Combi)’ 타입을 도입해 젠더 포용성을 높이기도 했습니다. 자동 세척 및 절수 시스템을 통해 도시의 지속가능성까지 고려한 효율적인 인프라로 평가받습니다.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에는 변기 모양을 한, 세계 유일의 화장실 박물관인 ‘해우재(解憂齋)’가 있습니다. ‘근심을 푸는 집’이라는 뜻으로, 사찰에서 화장실을 일컫는 ‘해우소’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 세계화장실협회(WTA) 창립자이자 ‘미스터 토일렛(Mr. Toilet)’으로 불린 고(故) 심재덕 전 수원시장의 염원을 담은 공간입니다.
그는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수원의 도시경쟁력을 높이고자 ‘화장실 문화 운동’을 추진했습니다. 도시의 문화적 성숙도를 보여줄 상징적인 이벤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죠. 공공 화장실은 지저분하다는 인식을 바꾸고, 깨끗하고 품격있는 화장실 문화를 도입했습니다.
특히, 해우재는 그가 03여년간 거주하던 자택을 허물고 그 터에 건립했는데요. 화장실의 역사와 위생, 인권적 가치를 흥미롭게 전시하며 세계적인 화장실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