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허파’라고 하면 흔히 아마존 열대우림을 떠올리지만, 진정한 지구의 허파는 바다라는 사실을 아시나요? 지구 면적의 70%를 차지하는 바다는, 지구의 산소 절반 이상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또, 해양과 연안 생태계는 탄소를 흡수하고 저장하는 역할을 하는데요. 이렇게 해양 생태계가 흡수하는 탄소를 ‘블루카본’이라 칭합니다.
블루카본은 2009년 국제자연연맹(IUCN)보고서에서 처음으로 언급되었으며, 2013년 IPCC는 국가 온실가스 인벤토리 가이드라인에서는 3가지 유형의 해양습지 생태계를 공식적인 온실가스 감축원으로 인정했습니다. 조석간만의 차로 인해 바닷물이 드나들어 염분 변화가 큰 습지인 염습지, 바다속에서 꽃을 피우는 거머리말과 새우말 등 현화식물의 군락지인 잘피림(해초대), 그리고 오늘 소개해드릴 맹그로브 숲이 대표적인 바다의 탄소흡수원입니다.
맹그로브 숲은 아열대나 열대의 해변과 하구 습지에 맹그로브라 부르는 식물들이 있는 녹지를 뜻합니다. ‘맹그로브’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식물이면서 염분이 있는 물과 파도에 적응해 바닷가에 서식하는 독특한 존재인데요. 현재 100여 종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염도가 높아 몇 시간도 버티지 못하는 여느 식물과 달리 해안선에 적응해 숲을 이루는 특징으로 ‘적응의 귀재’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맹그로브종은 오래된 잎과 나무껍질에 염분을 축적한 후 소금기를 배출하는 염분 여과 시스템을 갖추고 있거나 수분을 흡수하지 않는 뿌리로 염분을 차단합니다. 또한 물이나 진흙 속에서 발생하기 쉬운 낮은 산소도나 무산소 상태에서도 견딜 수 있도록 복잡하고 단단하게 얽힌 뿌리가 땅 위로 솟아 있는 게 특징입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전 세계 맹그로브숲의 면적은 1,480만ha(헥타르), 그중 아시아가 555만ha로 가장 넓은 맹그로브숲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맹그로브의 보존을 강조하는 이유는 탄소를 흡수해 저장하기 때문인데요. 육상의 식물보다 최대 5배 빠르게 탄소를 흡수하고, 일반 산림과 비교해 3~10배가량 더 많은 탄소를 가둡니다. 맹그로브의 퇴적물에는 열대 우림 토양보다 3~5배 많은 탄소가 함유되어 있으며, 전 세계 맹그로브숲이 저장하고 있는 탄소의 총량은 40~200억 톤으로 추정합니다. 한편, 25년 동안 성장한 맹그로브 숲 1ha를 기준으로 탄소 840톤을 흡수할 수 있어 오늘날 기후변화에 반드시 보존해야 하는 지역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맹그로브 숲은 20세기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경제, 산업 발전을 위해 양식장을 개발하는 등 무분별하게 개간하거나 파괴되어 왔습니다. 가장 넓은 맹그로브 숲을 보유한 인도네시아의 경우, 2015년 맹그로브숲의 40%를, 태국은 맹그로브 숲의 3분의 1을 소실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2024년 5월 생물다양성의 날을 맞아 국제자연보존연맹(IUCN)이 조사한 글로벌 맹그로브 평가에서 맹그로브 생태계의 50%가 취약, 멸종 위기, 심각한 멸종 위기로 분류하며, 전체의 20%는 멸종 고위험 지역으로 맹그로브숲의 심각한 붕괴 위험에 처해 있다고 합니다.
맹그로브숲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건강한 자연 생태계를 조성하고, 여러 재해로부터 동식물을 보호할 수 있다는 점인데요. 먼저 맹그로브 나무의 뿌리는 수중에 있는 질산염, 인산염 등 각종 오염 물질을 걸러낼 수 있습니다. 강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수질을 개선하는 천연 필터 역할을 하며, 떠내려온 낙엽에서 유기물만 선택적으로 발굴해 바다 생태계에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합니다.
필터 역할을 하는 뿌리는 또 해양 생명의 피난처가 되기도 합니다. 바닷물고기들은 얽히고 설킨 맹그로브 뿌리 사이에 숨어 알을 낳고 포식자로부터 새끼들을 보호하는 보금자리 공간으로 활용합니다. 해양의 먹이사슬 시스템 보존의 기능을 수행합니다. 또, UNEP(유엔환경계획)의 <2023년 맹그로브 숲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맹그로브숲에만 서식하는 조류는 790마리, 포유류는 40마리, 파충류는 20마리, 양서류는 3종이 있으며, IUCN(세계자연보전연맹)에서는 203종의 식물과 1,079종의 조류가 맹그로브 생태계에서 살아가 생물다양성도 증대시키는 데도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맹그로브 숲은 현지, 토착민들에게 경제적 이점을 제공하는데요. 맹그로브숲이 존재하는 바닷가는 그렇지 않은 지역에 비해 어획량이 많습니다. 어업 활동의 14%는 맹그로브 숲에서 이뤄지며, 뿐만 아니라 각종 목재, 숯의 원료, 식물 소재 등을 제공해 삶과 생계의 기반이 되어줍니다.
무엇보다도 맹그로브 숲은 지역의 안전도 지켜줍니다. 맹그로브의 뿌리는 서로 빽빽하게 엉켜 최대 10m까지도 파고 들어갈 정도로 땅속 깊이 자리하고 땅과도 매우 안정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키도 사람 신장에서부터 물 위로 40m까지 자랄 정도로 높게 자랄 수 있는데요. 단단한 뿌리와 높이 솟은 가지 덕분에 파도를 완화하고 분산시키는 자연 제방의 역할을 합니다. 맹그로브 지역 100m를 지나며 파도의 높이가 13~66% 감소하고, 500m를 지나면 무려 50~100m 감소하기 때문에 태풍, 쓰나미, 폭풍 해일 등 강력한 자연재해로부터 피해를 줄이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기후변화와 생태계 보전, 그리고 인간의 안전과 삶까지 지키는 맹그로브 숲의 역할을 인식하면서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는 맹그로브숲의 보존과 복원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요. 2015년 유네스코(UNESCO)는 국제 맹그로브 생태계 보존의 날을 지정하고, 맹그로브가 있는 86개 지역을 ‘세계 생물권 보전 네트워크’에 포함해 관리•감독 중입니다. 또, 세계에서 가장 크고 파괴되지 않은 맹그로브숲인 방글라데시 순다르반스 국립공원을 세계 유산 목록에 포함해 지키는 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또, 세계 최대 규모의 환경보호 국제기구인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을 중심으로 2018년 국제보호협회, 국제습지연합, 세계자연기금 등이 힘을 합쳐 글로벌맹그로브연맹(GMA)을 결성하고, 맹그로브와 관련된 연구, 변호,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한편, 세계자연기금(WWF)의 경우, 직접적인 맹그로브 숲 복원에 나섰는데요. 2018년 파키스탄 정부와 협약을 맺고 맹그로브에 씨앗 20만 개를 심기로 협약해 추진한 결과, 2021년 기준 약 8,700ha 규모의 맹그로브 숲을 복원했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아랍에미리트연합, 인도네시아, 독일, 일본 등 42개국이 참여한 다자협의체인 맹그로브연합(MAC)도 결성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데요. 우리나라도 지난 2024년 5월 42번째로 맹그로브연합에 가입했습니다. 그동안 베트남, 가이아나, 태평양 도서국 등에서 맹그로브 복원 사업을 꾸준히 추진하며 쌓은 노하우를 전하는 동시에 맹그로브 보존, 조성을 위한 단단한 네트워크를 쌓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블루카본이 존재하는데요. 바로 국내의 염습지와 잘피림(해초대)입니다. 국가 블루카본 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대한민국은 36.8k㎡의 염습지와 69.3k㎡의 잘피림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순천만, 낙동강 하구, 강화 남부 갯벌 등이 해당됩니다. 2023년 해양수산부는 국제사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염습지와 잘피림(해초대)의 서식지를 통계화하고 식재를 통해 2030년까지 염생식물은 220%, 해초류는 85%까지 증대해 탄소흡수를 강화하겠다는 블루카본 추진전략을 발표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국내 연안습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비식생 갯벌이 탄소 흡수 기능을 한다는 점을 토대로, 국제적인 공식 탄소 흡수원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선제적으로 보호 및 복원할 것이라고도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한편, 아열대, 열대에서만 조성되는 맹그로브를 찾아볼 수 있는 곳이 제주도에 있는데요. 제주의 준맹그로브 자생지입니다. 맹그로브는 크게 진정맹그로브(Tru-mangrove tree)와 준맹그로브(semi-mangrove tree)로 구분되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맹그로브는 진정맹그로브를 뜻하며, 준맹그로브는 바다에 잠시 잠겨도 죽지 않고 염도에 잘 견디고 추위와 건조한 환경에서도 잘 버티는 식물들을 칭합니다. 제주지역을 중심으로 자생하고 있는 준맹그로브는 황근, 갯대추가 있는데요. 진정맹그로브만큼은 아니지만, 탄소 흡수능력 및 산소발생의 가치를 인정받아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를 중심으로 자생지의 생태조사, 연구, 보존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반도에 맹그로브 숲을 조성하기 위한 연구와 실험도 시행 중인데요. 해양수산부는 ‘블루카본 실증연구센터’를 설립하고 해양생물자원관 등과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세계 최대 맹그로브 군락지인 인도네시아와 협력해 맹그로브 서식지를 관찰하는 중입니다. 또,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는 맹그로브의 북방한계선이 제주도 남해안 일대와 위도가 겹치는 북위 33도 38분까지 올라온 것을 밝히며, 조만간 제주도를 넘어 남해안까지 맹그로브가 자생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2024년 7월 전남 신안군의 한 갯벌에서는 일본산 맹그로브 종자 120개체, 베트남산 400개체 등 총 520개체를 심으면서 본격적인 시험 재배를 시작했습니다. 앞서 2009년에 완도 등 남해안에 시험재배를 했다 실패한 적이 있는데요. 이번 시험 재배는 그동안 적합한 수종, 적응 환경 등에 대한 지식을 쌓고 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해 이전 시험재배와는 다를 것으로 예측합니다.
2024년 여름 스콜성 기후와 무더위, 그리고 오곡이 익어간다는 가을의 대표 명절 추석을 ‘하석’이라고 바꿔야 한다는 신조어까지 탄생할 정도로 지구의 기후변화는 우리가 체감할 정도로 극변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를 막는 방법으로 탄소배출권, 탄소감축정책 등 제도적 제한을 두는 것도 필요하지만, 온난화를 막는 대표적인 탄소 저장고인 맹그로브숲과 같은 자연의 보존과 복원을 통한 해결 방법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