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성장은 오늘도 멈추지 않고 진화하고 있습니다. UN DESA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82억 인구 중 약 57%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1950년대 약 7억 5천만 명이 도시에 살던 과거와 비교하면 도시 인구는 약 6배 이상 증가한 셈이며, 2050년까지 전 세계 인구 증가의 3분의 2 이상이 도시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처럼 빠르게 증가하는 도시 인구를 수용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도시를 외곽으로 확장하는 도시 스프롤(Urban Sprawl)과, 밀도를 높여 내부에서 해결하는 콤팩트 성장입니다. 그동안 많은 도시가 수평적 확장을 선택해 왔지만, 인프라 비용 증가와 환경 부담이라는 한계에 직면하면서 최근에는 고밀도 복합 개발을 기반으로 한 ‘수직도시’가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세계자원연구소(WRI)와 New Climate Economy의 연구에 따르면 콤팩트 도시 성장은 2050년까지 17조 달러를 절감하는 경제적 효과를 가져온다고 합니다. 또한 IPCC 제6차 평가보고서(AR6 WG3, Chapter 8)에서는 수직·콤팩트 도시 개발을 기후변화 감축의 핵심 전략으로 제시하며, 복합 토지이용과 대중교통 중심 개발(TOD)을 실현할 때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BAU(추가 조치 없는 기존 추세) 대비 23~26% 감축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수직도시는 이제 나라마다, 도시마다 저마다의 색을 입히며 진화 중입니다.
수직도시의 기원을 찾으면 19세기 말 미국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885년 시카고의 홈 인슈어런스 빌딩은 철골 구조로 건물 높이의 한계를 극복한 최초의 마천루로 평가 받으며, 엘리샤 오티스의 엘리베이터 발명과 결합해 시카고와 뉴욕을 중심으로 마천루 시대를 열었습니다.

출처: 위키피디아
이러한 흐름이 집약된 대표 도시는 뉴욕 맨해튼입니다. 초기 개발이 ‘얼마나 높이 지을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면, 1990년대 이후에는 도시의 지속성과 복합 단지로 방향이 이동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허드슨야드(Hudson Yards) 개발입니다. 1960년대 제조·유통업의 쇠퇴로 버려졌던 맨해튼 서쪽의 유일한 미개발지였던 이 부지는, 철도 차량기지를 그대로 유지한 채 그 위에 인공 지반을 형성해 주거·업무·상업·문화 시설을 집약한 8개의 복합 단지로 탈바꿈했습니다. 총 250억 달러(현재 가치 약 34조 원 이상)의 재원은 채권 발행·세제 인센티브·용적률 보너스 등을 통한 공공-민간 협력 방식으로 조달했으며, 지하철 7호선 연장으로 교통 편의성도 높였습니다.
맨해튼에서 또 하나 주목 받는 건물은 스타인웨이 타워입니다. 가로세로 비율이 24:1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얇은 이 ‘펜슬 빌딩’은 비싼 도심 땅값과 좁은 부지 안에서 건물을 올려야 하는 도시 수직화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최근 맨해튼은 팬데믹 이후 늘어난 사무실 공실을 주거 공간으로 전환하고, 워터프론트를 따라 공원과 보행·자전거 네트워크를 구축한 워터프론트 그린웨이를 통해 기후변화 대응과 생태적 회복성 확보에도 집중하고 있습니다.
도쿄는 뉴욕과 달리 저층 건물들이 낮고 빼곡하게 들어선 채 유지되어 왔습니다. 주거와 업무 지역이 분리된 탓에 출퇴근 소모가 컸고, 좁은 골목과 목조 건축물은 화재·지진에 취약했습니다. 이 구조를 바꾸기 위해 세계적인 디벨로퍼 모리빌딩의 모리 미노루 회장은 르코르뷔지에의 이론을 재해석, 도시의 수직적 확장과 녹지 통합을 연계한 고밀도 복합 개발 ‘수직 정원 도시(Vertical Garden City)’ 철학을 확립했습니다.

출처: 위키피디아, 아자부다이힐즈
힐즈 프로젝트의 시초인 아크힐즈는 업무·주거·문화·호텔을 한곳에 모아 24시간 복합도시를 지향했습니다. 이어 롯폰기힐스는 지식과 예술의 문화허브로, 도라노몬힐즈는 국제 업무 허브로 자리 잡았습니다. 가장 최근 완성된 아자부다이힐스는 ‘그린 퍼스트(Green First)’ 철학 아래 중앙광장의 녹지를 먼저 설계한 뒤 타워 위치를 결정해 주목 받기도 했는데, 녹지가 전체 면적의 30%를 차지하며 LEED·WELL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습니다. 특히 롯폰기힐스의 경우 권리자의 80% 이상을 사업에 참여시키는 드문 합의를 이끌어냈으며, 민간이 운영까지 책임지는 ‘타운 매니지먼트’ 체계는 도시를 하나의 장기적인 시스템으로 바라보는 선진적 접근으로 평가받습니다.
방콕은 평균 해발고도 1.5~2m의 초저지대 삼각주 위에 있어 지반 침하와 홍수 위험이 큽니다. OECD는 2070년까지 방콕 인구의 절반인 500만 명이 홍수 위험에 노출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2011년 대홍수를 계기로 방콕은 저지대 외곽 확산을 억제하고 도심 고밀도 개발로 인프라 효율을 높이는 정책을 채택했습니다.
대표 사례인 킹 파워 마하나콘은 픽셀 큐브로 깎아낸 나선형 파사드가 특징이며, 2016년 완공 당시 태국 최고층에 올랐습니다. 최근 전면 개장한 원 방콕(One Bangkok)은 약 4조 3,000억 원이 투자된 초고층 복합 단지입니다. 시그니처 타워는 436m로 태국 최고층이며, 전체 부지의 절반인 8헥타르를 공공녹지로 조성해 룸피니 공원과 연결한 도심 최대의 녹지 벨트를 형성한 점이 특징입니다.
싱가포르에서 수직도시는 생존의 문제였습니다. 2001년 도시재개발청은 향후 인구 수용을 위해 80만 호의 추가 주택이 필요하다고 추정했고, 그 해답을 수직화에서 찾았습니다. 피너클앳덕스턴은 50층 규모의 공공 분양 주거단지로, 초고층 생활이 일반 시민에게도 여유 공간을 제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민간 개발인 탄종파가 센터는 지상 15m 높이의 유리 캐노피 아래 공공광장인 ‘시티룸(City Room)’을 구현했고, 마리나 원은 열대 우림의 수직 레이어를 통해 자연통풍과 에너지 효율을 높였습니다. 이러한 배경에는 1967년 ‘가든 시티’ 선언과 2009년 도입된 LUSH(Landscaping for Urban Spaces and High-Rises)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모든 개발자가 사라지는 지상 녹지를 건물 옥상과 파사드에 의무적으로 대체하도록 한 이 제도는, 싱가포르를 수직 건축과 자연이 공존하는 세계적 모델로 만들었습니다.
이제 수직도시는 단순히 높이의 경쟁을 넘어, 누구를 위해 어떻게 쌓아 올리는지가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뉴욕의 용도 전환, 도쿄의 주민 합의, 싱가포르의 녹지 의무화처럼 각 도시가 찾아낸 해답들은, 수직도시의 다음 진화가 ‘높이’보다 ‘삶의 밀도’를 설계하는 방향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