칫솔, 물통, 볼펜, 스웨터, 비옷, 쇼핑봉투, 스마트폰, 컴퓨터, 자동차 보닛 등 눈을 뜬 아침부터 다시 잠들 때까지 우리의 하루는 온통 이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바로 플라스틱입니다. 플라스틱은 다양한 합성물질로 만들어진 만큼 튼튼하지만 매우 질겨 쉽게 썩거나 타서 없어지지 않죠.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보고서에 의하면 전 세계 연간 플라스틱 생산량은 3억 6,700만 톤에 이르지만, 플라스틱 폐기물 재활용률은 고작 9%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이 말은 곧 나머지 90% 이상의 플라스틱들은 매립 또는 소각되거나 우리가 사는 지구 어딘가에 버려진다는 뜻입니다.
지난 4월 캐나다 오타와에서 200여 명의 환경단체 활동가 및 기후 운동가 등이 모여 “LESS PLASTIC, MORE LIFE(플라스틱은 줄이고, 생명을 살리고)”를 외치며 플라스틱 시대를 끝내기 위한 행진을 진행했습니다. 그날 오타와에서 플라스틱 협약문을 성안하기 위한 제4차 정부간협상위원회) 회의가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요. 플라스틱 협약이란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는 국제 협약입니다. 사상 최초로 법적 구속력이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2022년 2월 28일 제5차 유엔환경총회 2차 회의에서 175개국 만장일치로 통과된 이후 현재까지 4차까지 회의가 진행되었고, 올 11월 25일부터 12월 1일까지 부산에서 마지막 5차 회의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래서 2024년은 플라스틱의 지속적인 사용과 오염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절호의 해로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국제 사회는 플라스틱으로 인한 전 지구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플라스틱 협약뿐만 아니라 플라스틱 제품 사용을 줄이기 위한 플라스틱세 도입 및 사용제한 등의 다양한 규제와 지원책을 도입하며 환경오염 방지를 위해 힘을 모으고 있는데요. 현재 영국, 포르투갈, 스페인은 플라스틱세를 시행 중이며, 미국은 캘리포니아, 코네티컷, 델라웨어, 하와이, 메인, 뉴욕 등 주별로 플라스틱 및 일회용품 사용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법률을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독일은 2019년 최초로 포장재를 유통하는 자가 폐기처분을 책임지는 신포장재법을 도입했으며, 일본 또한 2019년에 플라스틱 자원순환전략(2030년까지 일회용플라스틱 누적 25% 배출 억제, 용기 포장의 60%를 재사용, 재활용, 2030년까지 바이오매스 플라스틱 약 200만 톤 도입 등)을 수립했습니다. 이처럼 현재 많은 나라들이 적극적으로 국가 차원에서 플라스틱 저감 정책을 펼치며 플라스틱 오염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생각해보면 이는 플라스틱으로 인한 환경 문제가 전 지구적으로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놓여있는지에 대한 반증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겁니다.
인류가 지난 60년간 생산하고 써온 플라스틱 누적량은 약 84억 톤. 2019년과 2020년 사이에는 플라스틱 생산량이 2배 증가해 한해에만 무려 4억 6천만 톤이 생산되기도 했습니다. 플라스틱 없이 살 수 없는 신인류를 뜻하는 ‘호모플라스티쿠스’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플라스틱은 우리 삶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데요. 그동안 우리가 쉽게 사용하고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이제는 환경오염의 주범이 되어 삶과 생태계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99% 이상 화석연료로 만들어지는 플라스틱은 매립이나 소각 시 온실가스 배출로 토양과 대기를 오염시킵니다. 재활용되지 못한 대량의 플라스틱 쓰레기들은 바다로 흘러 들어가게 되는데, 이중 2/3는 해저에 가라앉지만 일부는 물리적으로 부서지거나 생물 분해로 인해 미세플라스틱(5㎜미만의 작은 플라스틱으로 플라스틱 제품이 부서지면서 생성)이 되죠. 작은 해양생물들이 먹이로 착각해 미세플라스틱을 삼키게 되고, 미세플라스틱은 먹이사슬을 타고 작은 해양생물에서 큰 해양생물 그리고 결국 인간에게까지 전이가 됩니다. 실제로 사람의 혈액과 분변, 모유 등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되기도 했는데요. 세계자연기금 자료에 따르면 1인당 일주일에 섭취하는 미세플라스틱 양은 신용카드 1장의 무게와 맞먹는 5g정도라고 합니다.
분해되는데 최소 500년에서 최대 1000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는 플라스틱. 만들어진 이래 플라스틱의 소멸을 본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고, 앞으로 남은 시간동안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신의 선물이라 추앙받던 플라스틱은 이 세상에 탄생한 지 150여 년이 지난 현재 인류를 위협하는 최악의 발명품으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다시 플라스틱이 없는 ‘플라스틱 제로’의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많은 도전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일은 인간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 나아가 미래 세대를 지키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한 필수 여정이 되었습니다.
현재 전 세계는 생태계를 보호하며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뤄나가기 위해 순환경제(자원절약과 재활용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친환경 경제모델)로의 전환을 도모하고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폐플라스틱 재활용을 통한 플라스틱의 순환’은 순환경제의 새로운 장을 여는 중요한 자원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플라스틱을 재활용하기 위해서는 생산단계부터 변화가 필요합니다. 불필요한 플라스틱 사용을 줄인 제품을 만들어야 그 다음 단계에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을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산 시에 순환이용이 쉽도록 재생원료를 사용한 제품을 만들고, 손쉬운 분리배출을 위해 구조 및 색상을 지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소비단계에서는 제품 재사용을 통해 제품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재사용은 원래의 기능을 수행한 후에 동일하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으로, 재활용과 달리 제품의 형태를 변형하지 않기 때문에 환경에 전혀 해를 끼치지 않죠.
<우리나라 플라스틱 순환 관련 단계별 제도>
생산단계 |
폐기물부담금제도: 폐플라스틱 절감을 위해 제조업체나 수입업체에게 제조한 물품이나 수입한 물품에 대한 폐기물 처리 비용을 부담 |
포장재재질구조평가제도 : 포장재 재질, 구조 재활용 가능성을 평가해 제품을 설계, 생산단계부터 재활용 용이성을 고려하도록 유도 | |
소비, 유통단계 | 과대포장검사제도 : 과대포장으로 인한 폐기물 발생 억제 및 한 재활용 촉진 |
플라스틱 재생연료 사용표시제: 폐플라스틱으로 생산한 재생 원료를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한 경우, 제품·용기에 재생 원료 사용 비율을 표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 |
폐기 단계 |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 생산업체가 제품 생산 시부터 재활용이 가능한 제품을 생산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시 부과금 부과 |
플라스틱을 순환이 주목을 받으면서 폐기 단계에서 플라스틱을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과 기술 또한 함께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플라스틱 재활용 기술은 크게 물질 재활용과 화학적 재활용 방식으로 나눠집니다. 물질 재활용은 폐플라스틱 선별, 세척, 압축 등의 기계적 공정을 거쳐 재생원료(펠릿)를 만드는 방식으로, 화학적 재활용보다 탄소배출량 저감효과가 크지만, 플라스틱 종류나 불순물 유무에 따라 재활용이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화학적 재활용은 열분해, 해중합, 가스화 3가지 중 한가지 화학공정을 통해 폐플라스틱을 원료 형태로 전환하는 방법입니다. 물질 재활용에 비해 처리 불가능한 오염, 혼합재질 폐플라스틱의 재활용이 가능하지만, 높은 기술력을 요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 떠오르고 있는 열분해유는 폐비닐이나 폐플라스틱 등을 화학적 재활용 방법 중 하나인 열분해를 통해 만든 원유입니다. 플라스틱이 석유에서 추출한 물질로 만든 제품인 만큼 열을 가하면 다시 이전의 상태인 기름으로 되돌아오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열분해유는 난방시설이나, 발전시설의 연료로 사용할 수 있으며, 열분해 과정에서 나온 가스는 여러 단계 세정과정을 거쳐 플라스틱을 만드는 연료로 재활용할 수 있어서 특히 정유, 석화업계 기업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정부도 폐플라스틱 재생이용 확대를 위해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데요. 2030년까지 플라스틱 재생원료 사용비율 30% 확대 및 폐플라스틱 열분해 처리 비중 10% 확대(이전까지 주로 연로로 활용된 열분해유를 석유, 화학제품 원료로 재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완료하고 소각시설에서 재활용시설로 열분해시설 분류 변경) 계획을 발표하며 폐플라스틱 순환 관련 정책들을 강화해가고 있습니다.
건설업계도 탈플라스틱 시대를 맞아 친환경적인 대안을 찾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플라스틱을 재활용하여 제작되는 플라스틱 콘크리트는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혁신적인 건설 재료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건설자재이자 콘크리트의 주요 구성 재료인 시멘트가 생산 및 사용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많이 발생(1톤 생산 시 약 0.8~0.9톤의 이산화탄소 배출)시켜 지구온난화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기 때문이죠. 일반적인 콘크리트와 달리 폐플라스틱이 들어간 플라스틱 콘크리트는 내구성이 좋을 뿐 아니라 생산과정에서 탄소배출량이 줄어들고, 자원 절약에도 도움이 되어 현재 연구와 개발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미국 기업 바이퓨전은 플라스틱 폐기물로 건축 자재를 만드는 재활용 소재 제조업체로, 재활용 플라스틱 건축 자재인 ‘바이블록’을 만듭니다. 해양 정화작업 기관과 협력해 바다에 흘러들어간 플라스틱을 수거하고, 플라스틱을 작은 조각으로 분쇄한 후 고온의 증기를 이용해 조각을 녹여 크기 40cm x 20cm x 20cm, 무게는 10kg 정도 되는 블록을 만들죠. 화학물이나 충전물을 첨가하지 않아 일반 콘크리트 벽돌에 비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41% 정도 낮습니다. 밀도를 원하는 대로 설정할 수 있고, 콘크리트 블록과 달리 접착제를 쓰지 않아도 깨지거나 부서지지 않는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이블록은 콘크리트 블록에 비해 프로젝트 비용을 약 54% 절감할 수 있고 설치 시간을 약 65% 단축할 수 있으며, 울타리, 방음벽, 창고, 테라스 및 조경, 가구 등에 사용이 가능합니다.
네덜란드 오베레이셀(overijssel) 지역에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자전거 도로가 있습니다. 21만 8천개 이상의 폐플라스틱 병을 활용해 자전거 도로를 만들며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는데요. KWL사가 만든 이 도로는 100% 재활용되는 폐플라스틱을 주원료로 사용해 원가가 거의 들지 않았고, 아스팔트 도로보다 3배 더 견고합니다. 또한 탄소 배출량은 최대 70%까지 줄였죠. 플라스틱 도로를 만들 때 생기는 공간은 하수처리나 빗물 배수 용도로 활용할 수 있고, 조립식 패널은 속이 비어 가볍고 운반이 쉬워 설치비용이나 소음 등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세계경제포럼(WEF)도 이러한 플라스틱 도로가 비용적인 면에서 효율적이며, 친환경적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전 세계가 국제적인 협약을 통해 정책과 규제를 강화하고, 대체 소재 및 새로운 기술들을 개발하는 등의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바로 ‘플라스틱의 습격으로부터 지구를 지키기위해서’입니다. 인류가 플라스틱을 완전히 지구에서 없애기에는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릴지도, 어쩌면 그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플라스틱을 줄이고, 재활용하며 플라스틱으로 인한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시도는 필연적으로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지구에서 삶을 영위해야 하고, 그러한 지구를 건강하게 지키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죠.
우리 삶에 무한한 편리함을 선사해주었지만, 오랜 시간 사람들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인해 생태계를 위협하는 지구 오염의 대명사가 된 플라스틱. 더 늦기 전에 이제 그런 플라스틱을 어떻게 사용하고, 어떻게 폐기하고, 어떻게 처리해나갈 것인지 정부와 기업뿐만 아니라 우리 개개인 모두가 깊이 고민하며 적극적인 대처를 해나가야 할 시점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