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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APEC 정상회의 개최도시, 천년고도 경주를 대표하는 건축물

2025-10-23

2025년 APEC 정상회의 개최도시, 천년고도 경주를 대표하는 건축물

이번 가을, 우리나라에서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대규모 국제행사가 열릴 예정입니다. 바로 오는 10월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경북 경주시에서 개최되는 2025 APEC(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인데요. 2005년 부산에서 개최된 이후 약 20년 만에 다시 대한민국에서 열리는 정상회의인 만큼 우리의 위상과 역량을 알릴 수 있는 중요한 기회로 큰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특히 신라의 오랜 수도로 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도시, 경주가 APEC 정상회의의 주 무대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김지호

경주는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불릴 만큼 불국사와 석굴암, 양동마을, 옥산서원 등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역사적인 도시지만 알고 보면 건축적으로도 볼거리가 매우 풍부한 도시입니다. 특히, 독창적이면서도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현대적 감각의 건축물들이 도시의 수많은 역사 유적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천년고도 경주만의 독특한 건축 풍경을 완성하고 있는데요. 이번 2025년 APEC 정상회의의 주회의장으로 사용될 예정인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를 시작으로, 경주의 정체성과 전통의 미를 구현해낸 대표적인 현대 건축물들과 도심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세계적인 건축 거장들의 작품을 함께 만나보겠습니다.

 

오랜 역사의 흔적이 새로운 천 년을 향한 역동적인 공간으로, 경주화백컨벤션센터

경주 보문관광단지 내에 위치한 경주화백컨벤션센터는 2015년 완공된 이후 다양한 국제행사와 박람회 등을 개최해왔습니다. ‘화백(和白)’이라는 명칭은 만장일치에 의한 의결을 원칙으로 하던 신라의 귀족 회의 제도에서 가져온 것으로, 가장 좋은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모이고, 나누고, 소통하는 ‘컨벤션(Convention)’의 본질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신라의 오랜 역사를 모티브로 하고 있는 경주화백컨벤션센터는 경주의 새로운 천 년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고 있는데요. 전체 42,774㎡ 규모의 부지에 연면적은 31,872㎡에 달하며, 컨벤션홀을 포함한 총 13개 회의실과 1개의 전시장을 갖추고 있습니다.

또한 신라시대 누각에서 영감을 받은 건물 외관은 매우 역동적인 곡선 형태를 띠고 있는데, 여기에 천마총(天馬塚) 형상을 그려 넣어 이곳의 정체성을 전면에 드러내고 있습니다. 건물 외부에는 경주의 대표적인 유적 중 하나인 동궁과 월지를 형상화한 야외연못도 별도로 조성되어 있으며, 경주의 깨끗한 자연을 상징하는 신재생에너지와 친환경 요소를 곳곳에 접목시켜 그린 컨벤션을 구현하고자 했습니다. 건물 내부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1층 전시실을 T자형 콘코스(Concourse: 여러 개의 길이 만나는 넓은 개방형 공간)로 설계해 접근성을 향상시켰다는 점과, 스윙 도어를 사용해 내부와 외부 공간을 하나로 연계함으로써 공간을 확장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천년고도 경주 역사의 흔적이 새로운 미래의 유산이 된다’는 의미를 담아 해안건축이 설계한 이곳은 2022년 경주화백컨벤션센터와 보문관광단지 일원 178만㎡가 국제회의 복합지구로 지정되면서 한 차례 증축 공사를 거치게 되었고, 이번 2025년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다시 한번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마친 상황입니다. 주로 기존 실내 시설을 철거하고 정상회의에 걸맞게 무대를 설치하거나 공간을 분리하는 작업과 함께 ‘종이 없는 회의’를 구현하기 위한 첨단 장비 도입 등의 공사를 진행했다고 하는데요. 이처럼 경주의 찬란한 역사와 새로운 미래를 담은 공간인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머지 않아 각국의 정상들과 전 세계 수많은 기업인들이 모여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게 된다니,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가미된 2025년 APEC 정상회의의 순간들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대표 건축가들이 완성한 우아함과 소박함, 우양미술관 & 솔거미술관

한편, 신라 천 년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경주는 대한민국 건축을 대표하는 1세대 건축가 김종성과 2세대 건축가 승효상의 대표작을 동시에 만나볼 수 있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두 사람은 모두 이곳 경주에서 한국 건축 역사에 매우 큰 의미를 가지는 미술관을 완성했는데요. 바로 경주시 최초의 미술관으로 건립된 우양미술관(1991년 완공: 옛 선재미술관)과, 경주엑스포대공원 내에 위치한 경주 최초의 공립미술관인 솔거미술관(2014년 완공)입니다. 두 개의 미술관은 서로 다른 건축 철학을 가진 설계자의 의도와 성향에 따라 각기 다른 구조적, 미학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습니다.

출처: 우양미술관 https://wooyangmuseum.org/introduction

 

먼저 20세기 모더니즘 건축의 3대 거장인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이기도 한 건축가 김종성이 설계를 맡은 우양미술관은 단순한 직사각형 건물(전시관)과 둥근 돔을 끼고 있는 또 다른 직사각형 건물(업무동)을 살포시 포갠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수평으로 길게 이어진 구조에 건물 내부는 빛과 기둥, 비율이라는 주제를 충실히 구현하고 있으며, 전시관 지붕에 올려진 8개의 사분원((四分圓)은 외관의 우아함을 고조시키는 것은 물론, 건물 내부까지 충분한 자연광이 유입되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다만, 직사광선이 미술 작품의 색을 변형시키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사분원의 남쪽 둥근 면은 납으로, 간접적인 빛을 받는 북쪽 직선 면은 유리로 마감되었습니다.

우양미술관의 내부 공간은 주로 참나무와 돌, 금속 등을 사용했는데요. 그 중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올리는 한국 전통 건축 방식을 계승하고자 9.6m 간격으로 철골 기둥을 세웠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힙니다. 이는 작품을 최우선으로 하는 미술관 설계에서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경주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는 건축가의 확고한 신념에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우양미술관은 근대 건축의 기본 평면 단위(7.2m×7.2m)를 기준으로, 크고 작은 평면이 정확한 배수와 비율로 쪼개지고 더해지며 정확한 비례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안정적이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 공간으로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네모와 원이라는 단순한 형태의 조합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건축 유산이라 하겠습니다.

출처: 솔거미술관 https://gjsam.or.kr/ko/

철저한 구조의 합리성과 단순 명료하면서도 우아한 공간 구성이 특징인 우양미술관과는 달리 ‘빈자(貧者)의 미학’을 실천하는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한 솔거미술관은 겉으로는 전혀 그 위용이 드러나지 않으면서 언덕 위에 고요하게 숨어있는 듯 소박한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총 14,880㎡의 부지에 연면적은 1,500㎡,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완공되었는데요. 총 830점에 달하는 소산(小山) 박대성 화백의 수묵화 작품들로 채워져 있으며, 특히 미술관이 위치한 경주엑스포대공원 남측 아평지 연못 인근의 경사 지형에 순응하기 위한 배치와 자연 환경을 거스르지 않는 설계가 매우 인상적입니다.

진입로에서 마주하게 되는 미술관의 외관은 수직으로 포개어진 각각의 층과 돌출 벽,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우고 있는 격자 모양의 목재 루버(Louver)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친환경 재료이기도 한 목재 루버는 나무의 질감과 색이 그대로 살아있어 주변 환경과 미술관 건물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도록 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또한, 9개의 공간 매스(mass)와 5개의 수직 벽(layer)으로 나뉘어진 독특한 공간 구조와 함께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각각의 수직 벽은 전시공간을 나누거나 공간의 레벨을 조절하는 장치 역할을 합니다. 총 5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는 내부는 미로처럼 다양한 크기와 높이의 공간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대로 끌어들이려는 듯 제3전시실에 거대한 통유리창을 설치해 하나의 작품처럼 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시대와 유물이 만나는 새로운 방식의 공간 연출과 재해석, 국립경주박물관 & 신라천년서고

경주는 서울 용산에 위치한 국립중앙박물관 다음으로 큰 규모와 많은 유물을 보유하고 있는 국립경주박물관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남산 국립극장, 혜화동성당 등을 설계한 2세대 건축가 이희태의 작품으로, 거대한 불탑을 연상케 하는 외관이나 신라의 기와를 본뜬 지붕, 경복궁 경회루에서 영감을 받아 외부의 기둥들을 일정한 간격으로 세운 정방형의 누각 형태 등은 전통적 요소를 현대건축에 어떻게 변형시켜 적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국립경주박물관은 오래된 유물과 공간을 동시대적으로 새롭게 재해석하는 리노베이션 작업을 연이어 진행해왔는데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신라역사관과 신라미술관 로비, 신라천년서고 등이 감각적 공간 연출로 새롭게 재탄생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먼저, 2020년 환경개선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신라역사관과 신라미술관 로비 리노베이션은 로컬 문화와 오랜 역사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브랜딩 및 공간 작업을 주로 하고 있는 ‘태오양 스튜디오(Teoyang Studio)’가 설계를 진행했습니다. 신라역사관 로비가 기존의 이동 통로 역할에서 벗어나 감상의 연결과 감성적 휴식, 유물과의 새로운 만남에 초점을 맞췄다면, 신라미술관 로비는 박물관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하고자 신라 불상 특유의 멋을 간직한 약사여래불과 송화산 반가사유상을 로비에 서로 마주보는 형태로 배치했습니다. 두 곳 모두 오래된 유물이 유리관을 벗어나 좀 더 친근한 방식으로 관람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감성적 접근법을 활용한 공간 연출을 적극 도입하며 예술을 경험하는 공간이나 방식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뒤이어 2022년 12월 새롭게 문을 연 국립경주박물관의 신라천년서고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박물관 도서관이지만 학습보다는 휴식의 기능에 방점을 두고 있는 매우 특별한 공간입니다. 건축가마저도 미상인 채 오랜 기간 방치된 옛 수장고(서별관) 건물의 새로운 용도를 두고 깊은 고민을 이어가던 중 관람객들을 위한 휴식 공간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휴식을 위한 도서관’ 건립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습니다. 신라천년서고의 건축과 설계는 건축디자인연구소 ‘텍토닉스 랩(Tectonics Lab)’이 맡아 진행했는데요. 기존의 1970년대 한옥 구조와 현대건축이 혼재되어 있는 외관은 그대로 유지하고, 총 면적 510㎡ 정도에 불과한 내부 공간은 도서관이 가진 기본적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하되 좁은 공간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거울을 활용해 공간의 이미지를 확장하고, 실내와 바깥 풍경을 연결하는 여러 개의 창을 설치했습니다.

특히, 고려시대 8만여 장의 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경남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의 서가 구조와 함께 기둥과 보, 도리로 구성된 우리나라 한옥의 목가구조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신라천년서고의 천장 디자인은 기존의 박물관이나 도서관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여기에 내부로 들어서면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는 석등의 존재감 또한 굉장한데요. 이는 신라 천년의 지식을 담은 공간에서 ‘진리를 밝히는 빛’이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천년서고라는 이름처럼 도서관 내부에는 경주와 신라 그 천년 역사의 토대가 된 불교문화에 대한 서적과 박물관 전시 도록, 각종 유물 관련 기록 및 관사 자료 등 약 2만여 권의 서적이 보관되어 있어 언제든 자유로운 열람이 가능합니다.

 

세계적인 거장들이 경주에 남긴 위대한 건축 유산, 경주타워 & 세계문화엑스포기념관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이나 다름 없는 경주에는 세계적인 건축 거장들에 의해 설계된 특별하고 아름다운 작품들도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중 1988년 개최된 경주세계문화엑스포를 시작으로, 현재는 다양한 전시와 체험, 공연 등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난 경주엑스포대공원 내에 위치한 이타미 준(Itami Jun)의 경주타워와 쿠마 켄고(Kuma Kengo)의 세계문화엑스포기념관이 대표적입니다. 축구장 80개를 합친 것만큼의 어마어마한 면적을 자랑하는 대공원 내에서도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 두 사람의 작품은 경주엑스포대공원의 상징처럼 여겨지며 지역 주민은 물론 관광객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유동룡’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재일교포 건축가 이타미 준(1937~2011)이 설계한 경주타워는 선덕여왕 때인 7세기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목조 건축물이었으나 이제는 흔적조차 사라지고 없는 황룡사 9층 목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만들어졌습니다. 직육면체 형태에 높이는 82m에 달하고, 건물 중심부가 텅 비어있는 파격적인 음각 디자인으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데요. 말 그대로 건물 중심에 거대한 탑을 품은 것처럼 보입니다. 또한 외관은 유리와 철골 구조로 만들어졌는데, 이는 신라시대 무덤에서 출토된 유리 그릇과 장신구 등에 널리 사용된 로만 글라스((Roman Glass)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낮에는 외관 전체에 비치는 햇살로 반짝이고, 밤에는 화려한 조명을 밝히며 웅장함을 자랑하는 경주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입니다.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이범수

경주타워가 황룡사 9층 목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탄생했다면, 경주엑스포대공원 정문 왼편에 위치한 경주세계문화엑스포기념관은 경주 주상절리의 부드러운 곡선을 형상화한 돔과 함께 화려한 황금문화를 꽃피운 신라의 뛰어난 세공 기술로 제작된 금관의 구조와 장식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된 건축물입니다. ‘약한 건축’의 대가이자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 쿠마 켄고는 대릉원을 비롯해 도심 한가운데 무수히 솟아있는 고분들의 풍경이 경주만이 가지는 독특한 도시 경관이라는 점에 착안해 그 전통을 잇고자 하는 마음으로 2018년 기념관을 완성했습니다. 현무암을 이어서 붙이듯 쌓아 올린 독특한 외관과 건물 전체를 덮고 있는 황금빛의 격자무늬 틀, 그리고 그 위에 설치된 3개의 언덕 등이 이러한 디자인적 의도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 중 건물 외부를 사방으로 뒤덮고 있는 황금색 격자무늬 틀은 회랑 형태의 오픈형 구조로 되어있는데, 조형적 요소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공간의 영역을 나누거나 관람객의 동선을 안내하는 역할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지하 1층, 지상 1층 규모의 기념관 내부는 외부의 돔 프레임을 따라 내부에서도 그 기하학적 형태를 느낄 수 있도록 했으며, 전시 영역과 공공 영역의 투명한 경계를 통해 모든 공간이 하나의 일체감으로 어우러질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쿠마 켄고는 기둥의 수를 최소화한 무주공간(無柱空間)을 구현함으로써 개방감을 한층 더 확보하고, 향후 발생할 수 있는 공간 변화에도 얼마든지 대처할 수 있는 유연한 설계를 추구했는데요. 이처럼 건축가의 도시를 향한 깊은 영감으로부터 탄생한 경주세계문화엑스포기념관은 신라의 천년 유산을 품은 채 관람객과 자유롭게 교감하는 아름답고 뜻 깊은 문화공간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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