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다시 그 건축이 우리를 만든다_ 윈스턴 처칠
건축은 우리의 삶을 담는 그릇입니다. 여행으로 어떤 도시를 방문하면, 우리는 잊지 않고 그곳의 대표 건축물을 감상하게 되는데요. 그 건축 안에 담긴 도시와 문화, 삶에 주목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멀리 떠나지 않아도 삶과 건축의 이야기를 듣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넷플릭스, 티빙, 왓챠 등 OTT 속 건축 다큐멘터리를 통해서인데요. 다양한 건축 다큐멘터리에서는 세계적인 건축가의 작품과 건축 철학부터 우리가 일상을 보내는 집의 건축과 의미까지 어려운 건축 세계를 쉽고, 흥미진진하게 풀어냅니다. 따분한 휴일, 예능이나 드라마 말고 건축과 문화, 건축과 사람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낸 다큐멘터리를 감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첫 번째로 소개할 콘텐츠는 2019년 제16회 EBS국제다큐영화제에서 상영한 스페인의 다큐멘터리 영화<빛의 건축가: 렌조 피아노>입니다. 광화문 사거리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유리 건물로 유명한 KT 광화문빌딩 East를 마주하게 되는데요. 이 건축물을 설계한 사람이 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 세계적인 건축가 ‘렌조 피아노(Renzo Piano)’입니다.
렌조 피아노는 영국 리처드 로저스, 노르만 포스터와 함께 하이테크 건축의 선구자로 불립니다. 하이테크 건축은 건물이 어떻게 지어졌는지를 그대로 드러내는 건축 방식입니다. 차갑고 정밀한 금속재료와 투명하고 밝은 분위기의 유리를 사용해 세우고, 이를 드러냄으로써 첨단 기술을 사용한 듯한 느낌을 연출합니다. 구조주의와 비슷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요. 건물의 구조 외에도 상하수도, 공조 등이 설비를 그대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렌조 피아노가 리처드 로저스와 함께 지은 프랑스 ‘퐁피두 센터’가 있습니다.
<빛의 건축가: 렌조 피아노>는 스페인 북부 도시 산탄데르에서 산텐데르 은행 일가인 보틴 재단이 운영하는 예술센터 겸 바다전망대인 ‘센트로 보틴’을 설계하고 완공하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렌조 피아노는 빛은 살아서 진동하는 소재고, 물은 모든 것을 비추는 아름다움을 가졌다고 말하며, 산텐데르의 빛과 물을 살린 건축물을 설계합니다. 아름다운 해안이라는 위치적 장점을 살려 장엄한 바다뷰를 넓게 조망할 수 있게 디자인하고, 건물 하단부 공간까지 빛이 잘 스며들도록 사선의 건물로 만듭니다. 한편, ‘건축은 도시 예술이다. 건물은 지역사회의 일부가 되어야 하며 산텐데르 시를 더 흥미롭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시민들이 행복하게 이 건물을 받아들이고 사랑해야 한다’라는 철학으로 설계 과정에서 시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좋은 아이디어는 최대한 반영하려 노력했습니다. 이외에도 ‘트램펄린’ 공간 등으로 물과 하늘 사이에 떠 있는 듯한 새로운 경험을 창조했습니다.
다큐멘터리는 렌조 피아노와 스페인 유명 영화감독 카를로스 사우라가 서로 의견을 나누며 센트로보틴의 건축 과정을 보여줍니다. 영화 시작 초반에 자연과 어우러지며 렌조 피아노의 건축관을 드러내는 그의 건축 스튜디오가 등장하는데,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또한 도시예술로서 시민과 어우어져야 한다는 그의 건축 철학이 산텐데르 시민에게 통했는지 마지막까지 살펴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감상 가능한 플랫폼: 왓챠
두 번째 소개할 콘텐츠의 주인공도 대한민국에서 유명한 건축가인데요. 스위스 출신의 마리오 보타입니다. 마리오 보타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을 지었고, 국내에서는 리움미술관과 강남교보타워를 설계한 건축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상업적인 건축물, 뮤지엄 등도 많이 설계한 그지만, 2020년 개봉한 스위스의 다큐멘터리 영화 <마리오 보타: 영혼을 위한 건축>은 보타의 종교 건축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경기도 화성시 남양 성모마리아 대성당의 설계로 시작합니다. 남양 성모마리아 대성당은 1866년 병인박해로 많은 사람이 순교한 자리입니다. 이상각 신부가 이들의 묵주 기도가 배어 있는 이 땅에 대성당을 짓고 싶다는 마음에 2011년 마리오 보타에게 설계를 의뢰합니다. 이 신부의 요청사항은 ‘빛으로 충만하고, 소리가 좋으며, 관리비가 많이 안 드는 대성당’이라는 비교적 간단했습니다. 하지만 보타는 종교 건축물인 만큼 넉넉한 시간을 요구했고, 그가 성당을 설계하는 데만 5년의 세월이 걸렸으며, 수정도 12번이나 거쳤다고 합니다.
성당의 앞쪽은 52m 높이의 원통형 타워 두 동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원통형 천장을 통해 내부로 빛이 쏟아지는 구조로, 해의 위치에 따라 제대에 비치는 천사의 날개 모양이 시시각각 변합니다. 보타는 20세기 미켈란젤로라 불리는 이탈리아 조각가 줄리아노 반지에게 제단의 십자가 조각, 성화 2점을 직접 의뢰했고, 작은 안내판, 의자, 파이프 오르간 디자인까지 이곳의 모든 것 하나하나는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습니다. 그 결과, 2020년 10년 만에 남양 성모마리오 대성당이 완공합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남양 성모마리아 대성당의 건축 과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사이 사이에 이스라엘 텔 아비브의 심발리스타 유대교 회당, 중국 이슬람교 나자후 모스크 사원, 스위스 몬뇨 산 지오반니 바티스타 교회 등 그가 설계하고 지은 다양한 종교 건축물을 소개합니다. 다양한 종교 건축물을 소개하는 과정에 종교가 세속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면에 평안을 가져다준다는 그의 생각을 직•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는 건축가로서 자신이 믿는 가톨릭에 한정 짓지 않고, 유대교, 이슬람교 등 다양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위해 건축물을 지어 그들의 평안을 기여합니다. 이 과정에서 각 종교의 특성, 지역사회와 종교의 관계를 주목해 건축에 반영하려는 그의 노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종교 건축물의 웅장함과 아름다움, 종교를 넘어 사람의 평안을 생각하는 건축가의 마음이 느껴져 종교에 대한 믿음이 없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됩니다.
감상 가능한 플랫폼: 왓차, 티빙, 웨이브, 시리즈온
여행을 떠났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집이 제일 최고야!’라는 말을 한 적 있으신가요? 매일 먹고, 자고, 쉬는 집만큼 우리에게 중요한 공간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 집이 필요한 사람,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집을 찾는 사람들을 소개한 두 개의 다큐멘터리가 있습니다. 바로, <도전, 협소주택>과 <건축탐구 집>입니다. 두 다큐멘터리는 시리즈물로,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한 사람 혹은 한 가족의 인생을 비추는 다양한 집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도전, 협소주택>은 3040세대 이상이면 알고 있을 2000년대 예능 프로그램 <일밤-러브하우스>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미국의 다큐멘터리 시리즈인데요. 사연 있는 사람들을 위해 협소주택을 만들어 주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큰 오븐이 들어가야 한다’, ‘아이들을 위한 3개의 침대를 넣어달라’ 등 협소주택에는 다소 어려운 요구사항에도, 이를 반영하기 위해 주거 전문가가 낸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가 실현되는 과정이 재미있습니다. 또한 <도전, 협소주택>을 통해 15평 이하의 바닥면적에 2~4층으로 연면적 58m2인 주택 건물을 의미하는 우리의 협소주택과 달리, 11.2평 이하의 초소형 주택으로 이동이 가능한 작은 집이라는 미국의 협소주택 ‘타이니하우스’ 개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시즌1과 시즌2로 구성되어 있지만, 영상의 길이가 짧고 리얼리티 쇼의 느낌이라 가볍게 보기 좋습니다.
<건축탐구, 집>은 대한민국의 다양한 집을 주제로 2019년부터 현재까지 방영 중인 EBS 다큐멘터리 시리즈입니다. 콘크리트 양옥집과 한옥이 어우러진 어느 전통 건축 전공 교수님의 집, 숲의 치유와 위로가 좋아 파주 외딴 숲을 365일 누릴 수 있게 지은 목수 남편과 디자이너 아내의 집,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하는 공기순환장치와 지열을 이용한 히트펌프 등을 설치하고 조립해 만든 프리패브 패시브 하우스 등 각자 라이프스타일과 가치관을 담은 집을 보여줍니다. 아파트나 빌라 등의 여느 거주방식과 다르게 각자만의 삶이 담겨 있어 진정한 집의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감상 가능한 플랫폼: <도전 협소주택> – 넷플릭스 / <건축탐구, 집> – 넷플릭스, 왓차, 티빙, 유튜브
마지막으로 소개할 일본의 다큐멘터리 영화 <인생 후르츠>는 앞서 소개한 건축 다큐멘터리와는 결이 사뭇 다른 콘텐츠인데요. 90세 건축가 할아버지 ‘츠바타 슈이치’와 87세 그의 아내 ‘츠바타 히데코’가 생각하는 집이라는 건축물의 의미와 삶을 이야기합니다.
츠바타 슈이치는 일본 주택공단의 에이스였습니다. 주택공단은 저지대 마을이 태풍으로 수몰되자 구릉지대였던 고조지에 뉴타운을 만들고자 했는데요. 이때 츠바타 슈이치는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산을 최대한 살려 숲이 산으로 들어오는 도시를 제안했습니다. 경제 발전을 위한 대규모 단지화가 이뤄지던 당시라 그가 바란 대로 설계될 순 없었습니다. 그는 그곳을 떠나는 대신 뉴타운에 숲을 만들기 위해 300평의 땅을 사고, 작은 숲을 조성해 자신부터 자연과 어우러진 집을 짓고 살아갑니다. 밀어버린 땅을 산으로 돌려놓기 위해 뜻이 같은 사람들과 함께 민둥산에 10,000그루의 묘목을 심어 도토리나무 산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존경하는 건축가 안토닌 레이몬드의 집을 흉내 낸 15평의 방 1개짜리 단층집을 메인 무대로 합니다. 특히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밥을 먹는 거실 겸 식사 장소 이마(居間)의 풍경, 그와 그의 아내가 심은 각종 나무와 과실수, 채소 등의 자연풍경과 변화하는 집의 계절을 감상하기에 좋습니다. 또한 다음 세대가 풍요로울 수 있도록 자연과 함께하는 건축, 삶이 되길 바라는 그의 꿈이 사후에 현실화됩니다. 경제 중심의 일본 사회에서 시달려 자신을 잃고 병을 얻은 사람들을 위한 치유의 공간인 병원에 츠바타 슈이치의 디자인이 고스란히 반영되고, 그의 뜻을 담은 이곳의 건축 과정을 비춰줍니다.
‘집은 삶의 보석상자여야 한다’, ‘모든 해답은 위대한 자연 속에 있다’ 등 유명 건축가들의 명언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갈 때 그 의미를 곱씹어 보는 맛도 있으며, 소박하지만 모든 것 하나하나에 담은 노부부의 슬로우 라이프를 통해 노년의 지혜로움도 배울 수 있습니다. 자연과의 공존하는 건축과 삶을 보고 싶다면 2018년 개봉작 <인생 후르츠>를 열어 보시길 추천합니다.
감상 가능한 플랫폼: 네이버 시리즈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