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8억 마리 꿀벌이 사라졌다는 뉴스를 비롯해 매년 꿀벌의 개체수가 감소한다는 보도를 본 적 있으신가요? 영국은 2010년 이후 45%가량의 꿀벌이 사라졌으며, 2006년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 꿀과 꽃가루를 채집하러 나간 일벌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아 벌집에 남아있던 여왕벌과 애벌레가 먹을 것이 부족해 떼로 죽어 꿀벌 집단이 실종되는 ‘군집붕괴현상’을 처음 발견했습니다. 이후 유럽, 아시아 등 세계 곳곳에서 이와 유사한 현상이 계속해 반복되는 상황입니다.
꿀벌 개체수 감소는 비단 해외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린피스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6년 사이 국내 재래 꿀벌의 개체 수는 98% 감소했으며, 2022년 9월부터 11월까지 양봉 벌통 50만 개를 폐사해야 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벌통 1개당 약 2만 마리로, 석달 사이에 약 100억 마리의 꿀벌이 죽은 것인데요. 올해(2024년) 전남 화순의 한 양봉농가에서는 벌통 200개 중 단 한 통도 건지지 못했으며, 강원도 속초에서는 꿀벌의 월동률이 0%인 농가가 4곳이나 발생했습니다. 또한 꿀벌을 공격하는 외래종인 등검은말벌이 많이 발견되어 양봉농가의 근심이 크다고 합니다.
꿀벌이 사라지는 데에는 기후변화와 광범위한 환경 변화, 바이러스 확산 등을 이유로 꼽는데요. 대표적으로 꿀벌응애가 가장 큰 요인입니다. 꿀벌응애는 아시아에서 사는 벌에 존재했던 기생충인데요. 아시아에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응애가 가축화된 외래종 ‘유럽꿀벌’으로 옮겨가며 전 세계로 확산되었습니다. 꿀벌응애는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기형 등의 문제를 일으키며, 서양종 꿀벌의 집단붕괴현상과도 깊게 연관되어 있다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뉴스에 따르면 기존 약품에 내성이 생겨 약이 잘 듣지 않는 문제까지 발생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기후변화로 잦아진 기상 변동인데요. 정확하게는 기온의 등락 값이 너무 큰 것이 문제입니다. 꿀벌은 겨울에 벌통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바깥 온도가 15도 이상이 되는 따뜻해진 봄에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벌통은 햇볕을 계속 쬐는 데에 자리 잡고 있어, 바깥 온도가 10도만 되어도 금방 따뜻해지는데요. 1~2월 무렵에 따뜻한 날이 며칠간 지속되면 벌은 봄이 왔다고 착각하고 바깥 활동을 시작합니다. 실제 온도는 7~8도에 그치기 때문에 변온 곤충인 벌은 야외에서 잠시만 쉬어도 바로 몸이 식고 더는 날지 못한 채 죽게 됩니다. 또, 봄꽃의 개화 시기와 꿀벌 활동 시기가 맞지 않는 문제도 있습니다. 대부분 이른 봄에 꽃이 피어 벌의 활동 시기에 수확할 꿀이 없어, 먹을 것이 부족해 생존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꿀벌이 중요한 이유는 식물의 수분을 돕는 화분매개곤충이기 때문입니다. 꿀벌은 다양한 농작물의 꽃가루를 옮겨 종자를 형성하고 과실을 생산하도록 유도합니다.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주요 농작물 중 71종의 수분 작용을 돕습니다. 만약 꿀벌이 사라진다면, 농작물의 수분을 인간이 직접 해야 하고, 식물들의 서식지가 바뀌고 벌을 먹는 새들도 사라지면서 먹이사슬과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꿀벌이 만드는 경제적 가치는 전 세계적으로 연간 약2,350~5,770억 달러로 추정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채소의 49.2%, 과수 42.9%, 특용작물 35.9%, 곡류 0.2%가 꿀벌들의 화분 매개로 열매를 맺고 있는데요. 경제적으로 그 가치를 환산하면 연간 6조 8,500억 원에 이릅니다. 결국 꿀벌이 사라지면 농작물의 수확량이 줄어들게 되는데요. 사무엘 마이어 미국 하버드 공중보건대 교수 연구팀은 2015년 ‘꿀벌이 사라지면 식량난과 영양실조로 한 해 142만 명의 사람들이 사망할 것으로 예상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즉, 꿀벌의 실종은 UN의 지속가능개발목표(SDGs)의 17개 항목 중 11개 항목에 영향을 미치며 인류 생존과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실정입니다.
꿀벌 개체수 감소를 극복하기 위한 한 방안으로, 세계적으로 도시에서 벌을 키우는 ‘도시양봉’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요. 도시에서 양봉을 하면 생태계 회복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도시 양봉은 꽃의 발화율을 약 20% 상승시키고, 조류와 곤충에게 서식처, 먹이 등을 제공해 곤충 수 증가, 소형 새 유입 등을 유발하며 도시의 자연 환경을 자연스레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도시양봉은 제일 먼저 1990년대 후반 영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영국은 현재 포트넘앤메이슨 백화점 옥상, 버킹엄궁전, 런던증권거래소, 자연사박물관 등 우리가 잘 아는 랜드마크의 옥상을 활용해 벌을 키웁니다. 미국 뉴욕은 2010년 도시양봉을 합법화하며 뱅크오브아메리카타워를 비롯해 현재 총 400여 곳의 도시양봉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덴마크, 독일, 일본, 그리고 한국에서도 도시양봉장이 곳곳에서 생겨나는 추세입니다.
도시는 벌을 키우는 환경으로 농촌보다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도시는 꿀벌이 살기 좋은 환경입니다. 고온건조한 기후에 다양한 가로수가 많아 먹이의 다양성이 확보됩니다. 또, 도시의 가로수는 저독성 농약을 사용하기 때문에 벌이 농약에 중독되지 않고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습니다. 매연, 미세먼지가 꿀에 남지 않을까 우려하지만 2015년 국내 보건환경연구원의 연구 발표에 따르면 도시의 꿀과 농촌의 꿀 모두 중금속 등을 비롯한 유해 물질이 검출되지 않았으며, 전 세계적으로 도시의 꿀도 안전한 먹거리로 보고 있습니다.
일본의 긴자 꿀벌 프로젝트는 도시양봉의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힙니다. 긴자의 도시양봉 건물은 히비야 공원을 비롯해 밀원식물로 가득한 고층빌딩의 옥상정원과 가로수와 가깝습니다. 긴자 꿀벌 프로젝트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는 자원봉사자와 시민들의 참여로 시작되었다는 점인데요. 매년 100여 명의 자원봉사를 모집하고, 채밀 기간에는 일주일에 한 번 10명씩 모여 채밀 봉사 활동을 진행하며, 꿀벌 생육을 위해 백화점 옥상에서 기모노를 입은 게이샤들이 꽃을 심고 풀을 매기도 합니다. 긴자 꿀벌 프로젝트로 수확한 꿀은 마츠야 백화점의 스위트상품 기획전과 같은 팝업 스토어를 열어 판매하기도 하고, 분메이도 베이커리 카스텔라의 재료로 사용하기도 하며, 도큐핸즈의 벌꿀 비누, 지역성당의 밀랍 초 등의 상품으로 재창출되며 지역 경제의 활성화에도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도시 양봉을 위한 사회적 기업이 만들어지기도 하는데요. 꿀벌 개체수 감소율이 급격한 6개국 중 하나인 덴마크에는 ‘뷰비’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도시의 벌’이라는 뜻을 지닌 뷰비는 2009년 코펜하겐의 화장품 공장 유휴부지를 양봉장으로 조성하며 운영을 시작했습니다. 뷰비는 꿀벌의 분봉을 인위적으로 막고, 채밀량을 높이는 방식의 꿀벌 육종을 지양합니다. 많은 꿀을 수확하는 게 아닌 꿀벌을 매개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회복하며 지속가능성에 더욱 초점을 맞춥니다. 현재 뷰비는 연간 150여 개 벌통에서 5~6 톤가량의 꿀을 수확합니다.
한편, 세계적 기업에서도 꿀벌 보전을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그중 독일 자동차기업 포르쉐는 독일 라이프치히 오프로드 주행 시험장 내 132㎡ 부지에서 약 300만 마리의 꿀벌을 키우고 있습니다. 포르쉐는 오래 전부터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자연생태계 회복에 동참해왔는데요. ‘지속 가능한 방목’이라 콘셉트 하에, 주행장 부지에 연못, 습지, 목초지 등을 마련하고 동물들에게 자연 서식지를 제공합니다. 이곳에서는 한 해 400kg의 꿀을 생산합니다. 2021년 포르쉐코리아도 서울 대모산 자락에서 약 75평 규모의 꿀벌 정원을 조성하며 꿀벌 보존에 나섰는데요. 대모산에 꿀벌 정원을 만들고 꽃 사과, 복숭아, 단풍나무 등 총 50종의 나무 423그루를 심어 꿀벌이 생산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습니다. 현재 이 정원에는 약 20만 마리의 꿀벌이 서식하며, 한해 120kg가량의 꿀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오늘날 꿀벌의 실종은 점점 인류의 생존에 큰 위협 요인으로 다가오고 있는데요. 우리 인류가 존재하기 위해선 반드시 꿀벌의 생태계를 지켜줘야 합니다. 5월 20일은 UN이 지정한 ‘세계 꿀벌의 날’을 맞이해 꿀벌이라는 존재의 소중함을 깨닫고, 피크닉, 나들이 등에서 도시양봉이나 생태계 보전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발견하면 관심 있게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