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성수개발프로젝트

오랜 역사를 간직한 성수의 공간들

2023-11-09

오랜 역사를 간직한 성수의 공간들

성수동을 비롯해 자양동, 구의동 일대의 범람원 지대를 부르는 말 ‘뚝섬’. 중랑천과 한강, 그리고 낮은 지대가 마치 섬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곳은 조선시대 한양 도성과 지방을 이어주는 주요 길목이자 도성의 식수원이었습니다. 1930년대 경성 도심과 동남부를 연결하는 기동차가 탄생하며 교통의 요지가 되자 자연스럽게 유원지가 형성되었고 1970년때까지 서울 시민들의 나들이 장소로 각광받기도 했습니다.

성수동은1960년대를 기점으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는데요. 1963년 모나미 공장을 비롯해 다양한 공장들이 들어서며 공업 도시로 꾸준히 성장합니다. 한편, 1980년대 한강종합개발사업이 진행되면서 유원지가 사라지고 뚝섬에 있던 모래들은 강남을 비롯한 서울 주요 건축물의 골재로 공급되며 오늘날 한강공원의 면모를 가지게 됩니다.

출처:서울역사아카이브

성수동은 역사 속에서 꾸준히 성장하고 변화해왔습니다. 수많은 변화를 겪어온 성수와 뚝섬 곳곳에도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는데요. 오늘은 과거를 반추할 수 있는 성수의 역사 현장을 살펴봅니다.

 

조선 시대 왕들이 행차한 돌다리, 살곶이다리  

성수에도 조선시대의 역사와 건축이 깃든 공간이 존재합니다. 바로, 살곶이다리입니다. ‘살곶이’라는 이름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와 아들 이방원의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는데요. 태조 이성계는 두 차례 왕자의 난을 일으켜 태종으로 등극한 아들 이방원을 보고 싶지 않아 함흥으로 떠납니다. 그런데 신하들이 계속해 돌아오라고 청하자 마지못해 한양으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는데요.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 아버지를 마중 나온 이방원을 보자 화가 났던 이성계는 아들을 향해 활을 쏩니다. 그런데 명궁이었던 그의 화살이 빗나간 것입니다. 이후 아들이 왕이 된 것을 ‘천명’이라 여기며 용서했고, 이곳은 화살이 꽂인 곳이라는 뜻의 ‘살곶이’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출처: 서울역사아카이브

살곶이다리는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가장 큰 규모의 돌다리로, 조선시대 한양과 한반도 남동부를 이어주는 주요 길목이었습니다. 조선의 임금은 이곳을 건너 광나루에서 강원도로, 송파에서 충주로, 남쪽으로 가서 배를 타고 태종과 순조의 능인 헌릉, 인릉과 성종과 중종의 능인 선릉, 정릉으로 향했습니다. 또한 벌판이 기름져 뚝섬은 조선 초기부터 사냥터, 말 목장, 군대를 사열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는데요. 임금이 군사훈련 참관을 위해 이 다리를 건넜다고 합니다.

대청마루를 깔 듯 3줄로 이뤄진 너른 다리가 굉장히 인상적이지만 한때 각종 풍파를 겪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다리에 콘크리트를 덧칠하고 1925년 서울 을축년 대홍수로 다리 일부가 물에 떠내려가기도 했습니다. 이후 차츰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이 다리는 1972년 서울시가 무너진 곳을 원래 모습으로 복원하며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2009년 발굴조사를 통해 2011년 보물 제1,738호로 선정되며 6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채 지금까지도 많은 시민들의 보행로와 산책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아리수의 시작과 역사를 담은 수도박물관

뚝섬은 경성 시절부터 가장 중요한 식수원을 공급하던 곳으로, 이곳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정수장인 뚝도수원지 제1정수장이 있습니다. 뚝도수원지는 1903년 12월 미국 기업 콜브란과 보스트위크가 고종황제로부터 상수도 시설과 경영에 관한 특허권을 받으며 그 역사가 시작됩니다. 1905년 8월 대한수도회사가 이들로부터 특허권을 양도받고 공사를 시작해 1908년 8월 제1정수장을 완성했는데요. 그때부터 완속 여과 방식으로 생산한 수돗물이 사대문 안과 용산 일대 주민 125,000명에게 공급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 근대 상수도의 시작입니다. 특히 뚝섬은 20세기 초 평안도, 강원도 등 전국에서 물자를 실어 보낸 뗏목이 모이던 곳이라 땔감을 판매하는 제재소가 많았습니다. 땔감이 많아 정수 펌프를 작동시킬 전기를 만들기에 수월해 이곳에 처음 상수도 시설이 들어선 것으로 보입니다.

출처: 서울특별시 상수도사업본부 https://arisu.seoul.go.kr/arisumuseum/intrcn/sub1.jsp

이후 뚝도수원지 일부는 고도정수처리 시설을 갖춘 뚝도아리수정수센터가 되어 지금도 24시간 수돗물을 공급하고 있으며, 남은 공간에 2008년 수돗물 공급 100주년을 기념하는 수도박물관을 세웠습니다. 다양한 모터 펌프, 수돗물의 역사, 수돗물의 정수 과정 등을 만날 수 있는데요. 이곳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제1정수장 완속 여과지입니다. 완속 여과지는 모래층과 자갈층에 한강 물을 통과시켜 불순물을 걸러내던 친환경 방식의 정수 시설인데요. 이 시설은 1908년부터 1990년까지 사용되었습니다. 현재는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이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72호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습니다.

출처: 서울특별시 상수도사업본부 https://arisu.seoul.go.kr/arisumuseum/intrcn/sub1.jsp

 

명성 높은 전통과 청춘이 만나는 새 공간으로, 뚝도시장

성수동의 카페거리를 지나 성수2가1동의 주거 지역으로 진입하면 시장 하나가 있는데요. 바로 ‘뚝또청춘시장’입니다. 1962년 개장한 시장으로 본래 이름은 ‘뚝도시장’이었습니다. 한때 동대문시장, 남대문 시장과 3대 시장으로 불릴 만큼 명성 높았다고 합니다.

뚝도시장의 원형은 18세기로 올라갑니다. 당시 한양 도성 밖에서는 이전과 달리 물자를 거래하는 ‘장시’가 열렸습니다. 도성 안팎으로 각종 물자가 거래되며 뚝섬에서도 장시가 열렸습니다. 성수동 일대 역시 너른 채소밭, 포도밭 등에서 수확한 물자를 도성 안으로도 보냈다고 합니다. 또한 이곳은 한강 이남과 연결하는 나룻배가 오가는 길목이라 땔감 가게인 ‘시목전’이 많았고, 목재와 숯도 활발히 거래되며 상권이 발달했는데요. 본격적으로 뚝도시장이 전통시장이라는 이름으로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은 1962년입니다.

뚝도시장은 2000년대 대형마트가 들어서고 침체기에 접어들며 2017년에는 기존 400개였던 가게가 130여 개만 남았는데요. 2014년 뚝도기획단을 구성해 특색 있는 먹거리로 전통 시장 활성화에 나섰습니다. 특히 한강에서 불과 250m 떨어진 위치를 활용해 서해의 활어를 실은 배가 뚝섬나루까지 들어와 싱싱한 활어를 공급하는 ‘활어시장’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입히기도 했으며, ‘뚝도청춘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바꾸며 청년 소상공인들을 모집해 새로운 먹거리를 도입하고, 오랜 시간 시장을 지킨 상인들과 함께 새로운 상권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한강 이남으로 향하는 나룻배의 요지, 뚝섬나루

출처: 서울역사아카이브

뚝섬나루는 우리에게 봄, 가을 날씨 좋을 때 나들이로 가는 한강공원으로 익숙합니다. 그런데 이곳은 한때 한강 이남으로 내려가려면 거쳐야 하는 관문으로, 영동대교가 준공되기 전까지 시민들은 나룻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다녔다고 합니다. 1973년 11월, 영동대교가 나룻배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1964년 신문 기사를 보면 뚝섬나루는 현재 청담동에 해당하는 청숫골나루로 가는 배편을 운행했는데요. 일일 평균 500명이 이 노선을 이용했다고 합니다. 배편은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운행했으며, 나룻배에는 사람뿐만 아니라 각종 채소와 가축은 물론 자동차까지 실었습니다. 때로는 이용객이 많아 정원을 초과해 운행하기도 했고, 이로 인한 사고도 빈번했다고도 전해집니다.

아쉽게도 지금은 나루터의 흔적이 사라졌습니다. 대신 영동대교 북측 교각 아래에 ‘뚝섬나루터’가 있었음을 표시하는 표식을 마련해 그 역사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대신 사진작가 박옥수의 사진집 ‘뚝섬 1967-1967’을 보면 당시의 한강의 나룻배 풍경을 기록으로 만나 볼 수 있습니다.

 

구두의 발전사를 만날 수 있는 곳, 수제화거리

성수동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장소는 바로 ‘수제화거리’입니다. 1967년 금강제화가 금호동으로 이전하면서부터 1970년대는 성수동에는 수많은 협력업체, 부품 업체, 기술자들이 이곳으로 몰려들며 디자인부터 완제품 출고까지 모든 시스템을 갖춘 국내 최대 수제화 산업 지역으로 성장했습니다. 2000년대 중국 공장으로 인해 몇몇 가게가 겨우 명맥만 유지하던 이곳은 2010년 직업 구두를 만들어 파는 수제화 가게들이 활성화를 주도하며 그 역사를 오늘날까지 이어가고 있습니다.

성수의 구두공장과 수제화 역사를 알려주는 공간도 마련했는데요. 성수역의 역사 안에 마련한 작은 전시관인 ‘헤리티지SS’입니다. 전시장에는 성수동 수제화의 역사와 함께 구두 디자인, 패턴 메이킹, 재단, 조립 등 수제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스크린, 다양한 종류의 구두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18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며 변화하는 구두의 변천사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한편 수제화거리에는 수제화 제1호 명장인 유홍식 명장의 가게를 비롯해 다양한 수제화 브랜드를 접할 수 있으며, 여러 구두 조형물이 어우러진 구두테마공원과 공장을 개조한 핫한 카페들이 있어 보고 경험하는 나들이 공간으로도 좋습니다.

 

모든 도시와 길에는 오랜 시간을 걸쳐 쌓인 역사들이 있는데요. 그 역사를 잊지 않고 함께 기억할 때 도시는 더욱 풍부한 매력을 뽐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성수와 뚝섬이 더 다채롭고 매력적인 공간이 되도록 현대적인 공간을 넘어 옛 이야기와 공간들에 귀 기울여 보길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