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1일부터 서울숲을 거점으로 도심 전역에서 열리고 있는 2026 서울국제정원박람회에서는 167개에 달하는 다양한 형태의 정원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180일간 이어질 이번 행사에서 삼표그룹 역시 기업정원으로 참여하고 있는데요. 그 중심에는 정원 설계부터 조성까지 모든 과정에 걸쳐 자연주의적 관점을 잃지 않고 ‘진짜 숲’을 만드는데 집중한 ‘더가든’의 김봉찬 대표가 있었습니다.
도심 속에 존재하지만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공간, 계절의 변화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정원을 설계한 ‘더가든’의 김봉찬 대표를 만나, 그 진심에 대해 들어보았습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생태학을 공부하고, 20대 초반 제주 여미지 식물원에 입사하며 식물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생태학 전공자다보니 조경보다는 자연의 식물이 어떻게 살아가고 왜 그곳에 있는지에 관심이 많았죠. 10년 정도 유럽의 생태정원 철학을 공부하다 보니, ‘왜 한국에는 아파트 단지나 공원 안의 관행적인 정원만 존재할까’ 하는 아쉬움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35세에 직접 식물원 설계(평강식물원)를 총괄하며 정원가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이후 제주 수풍석 박물관 생태공원, 화담숲 암석원, 그리고 도심 속 작은 우주를 표현한 아모레 성수, 제주의 생태정원 베케(VEKE) 등 인간의 시각적 만족을 위해 다듬어진 공간이 아니라, 생태계가 스스로 순환하고 자연의 본질을 담아내는 ‘자연주의 정원’을 주로 만들어오고 있습니다.
평소 이런 일회성 프로젝트는 잘 하지 않는 편이지만, 삼표그룹과는 특별한 공감대가 있었습니다. 삼표는 ‘자연과 사람의 공존’을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고, 현재 진행중인 수색 신사옥이나 성수 레미콘 공장 부지 조경 프로젝트를 통해 꾸준히 교감해 오고 있었죠.
서울숲은 삼표에게는 의미가 깊은 땅입니다. 길 건너에는 성수 레미콘 공장 부지가 있고, 그 부지를 포함해 지금 서울숲의 서쪽은 삼표가 직접 매립을 통해 만든 땅이라는 역사성이 있죠. 미래로 가면, 향후 성수 부지와 연결되어 그 앞마당처럼 기능할 핵심 공간이기 때문에 이번 정원박람회에 참여 의지가 컸고, 저도 함께하게 됐습니다.
사실 저는 자연주의 정원을 하는 사람이라 이번 박람회의 성격과 맞을까 걱정이 앞서긴 했습니다. 저와 삼표는 이번 행사를 위해 일시적으로 만든 정원이 아니라, 진짜 사람들이 도심 속에서 자연을 만날 수 있는 ‘진짜 숲’을 만들고자 했기 때문에 그 목표로 정원을 완성했습니다.
삼표 정원이 조성된 위치가 호수와 숲 주변 잔디광장 사이인데, 원래 이 호수 주변에 길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편한 길, 좋은 풍경을 찾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길이 생겨나게 된 거죠. 그 지형적인 특성에 착안해 정원을 만들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숲’은 생태적 자생력을 갖춘 진정한 의미의 자연을 뜻하고, ‘길’은 도시와 자연을 연결하는 매개체입니다. 인공적인 길이지만 도시에서 자연을 만나러 가는 길이자,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인공의 도시에서도 얼마든지 자연과 함께할 수 있고, 자연과 만날 수 있는 길이 존재할 수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이번 삼표 정원 프로젝트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겸손함’입니다. 기업의 이름을 건 정원이니 얼마나 돋보이고 싶습니까. 그런데 막상 부지에 가보니 이미 울창한 숲이 그 자리를 빽빽하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욕심을 내서 무언가를 더하면 땅이 가진 본래의 가치만 반감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택한 것이 더하기보다 덜어내는 ‘마이너스 디자인’입니다. 원래 있던 나무들을 주인공으로 두고, 그 아래로 낮은 초목과 시선보다 낮은 데크를 깔았습니다. 정원 자체가 시선을 독점하는 게 아니라, 서울숲 전체를 바라보는 하나의 창이 되길 바랐습니다. 우리 정원을 통해 원래 있던 호수가 더 아름다워 보이고, 먼 숲이 더 신비롭게 느껴진다면 그것이 가장 겸손하고도 성공적인 완성이라고 믿습니다. 화려한 꽃들을 중앙이 아닌 가장자리로 배치한 것도, 요란한 색들이 전망을 방해하지 않게 하려는 의도였습니다.
많은 분이 자연과 인공을 대비되는 것으로 보지만, 저는 그 둘이 본질적으로 같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도, 돌도, 콘크리트 건물도 천년 만년 후에는 결국 모두 ‘흙’으로 돌아갑니다. 인공을 만드는 기업이라고 해서 자연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니죠. 모두 자연을 기반으로 만들어 지는 것들이기 때문에 더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삼표와 여러 프로젝트를 함께 하고 있고요.
삼표의 기업 정체성이 가장 잘 반영된 부분은 눈에는 잘 안보입니다. 삼표가 건물과 도시의 기초가 되는 소재를 만들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죠. 숲의 생명력은 땅에서 시작됩니다. 서울숲은 많은 사람들이 오래 오가면서 땅의 힘을 조금씩 잃어버렸습니다. 그 생명력을 복원하기 위해 정원의 흙을 깊게 갈아 엎고, 최상급 부엽토를 섞어 땅의 힘을 회복하는 기초 작업에 가장 공을 들였습니다. 비용과 공력이 만만치 않았지만, 기초를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삼표의 철학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정원은 제가 만들었지만 자연이 하고 싶은 대로 자랄 것입니다. 그 질서와 순리대로, 도심 속의 진짜 숲이 되길 바랍니다.

도시가 만들어지기 전에 이곳은 원래 야생의 집이었습니다. 새들도 살고, 벌레도 살고, 초원도 있고, 숲도 있었겠죠. 그런데 도시가 점점 확장되면서 그 공간을 잠식해가고, 자연은 야생성을 잃어갑니다. 잃은 것이 그립기 때문에, 야생과 함께 더불어 사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인간다운 현상이고요. 이 정원을 통해 자연과 사람이 공생하는 법을 배우고, 새가 날아오고, 나비가 날아와서 자연과 인간 모두 회복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
제가 먼저 삼표 측에 제안했고, 기업에서도 흔쾌히 수락해 주신 뜻깊은 작업이었습니다. 조경은 책상머리가 아니라 자연과 부대끼며 도제식으로 배워야 하는 분야입니다. 청년들에게 나의 기술과 지혜를 나누다 보면 제 안의 그릇이 비워지고, 저는 또 다른 배움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성장하게 됩니다.

출처: 김봉찬 정원가 인스타그램
저는 청년들에게 ‘우리는 모두 지구 여행자’라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세상에서 무언가를 많이 가지려 하기보다, 길가의 이름 모를 풀꽃에게 말을 걸고 호기심을 가졌던 다섯 살 무렵의 순수함을 간직한 채 살아갔으면 합니다. 삼표가 앞으로도 이런 미래 조경가 육성에도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줬으면 합니다.
늦은 오후 석양이 지기 직전이나 아침빛이 스며들 때가 가장 좋습니다. 빛이 측면에서 들어올 때 미세한 잎사귀들이 마치 눈이나 야경의 불빛처럼 반짝이는데, 이 작은 점들이 사람을 참 행복하게 만듭니다. 특히 해 질 녘 호수에 비치는 윤슬이 일품입니다.
정원은 계절마다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여러 수종을 심었습니다. 장마철이 지나면 더욱 풍성한 생명력을 발산하게 될 것입니다. 박람회가 끝나고 난 다음이겠지만, 저는 겨울의 풍경도 기대가 됩니다. 겨울정원은 운치가 있거든요. 잎이 다 떨어지고 난 뒤, 콘크리트 도시를 가장 부드럽게 만드는 것은 나무가 그려내는 ‘선’과 파란 하늘과 맞닿은 ‘텅 빈 공간(여백)’이 됩니다. 계절의 다양한 매력을 느끼며 오래 지켜봐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반세기 동안 삼표그룹이 추구해 온 자연과의 조화로운 공존을 정원이라는 매개체로 풀어낸 공간입니다.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잠시 잊혀졌던 성수동 고유의 자연적 기억을 복원하고 이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자연주의 정원으로, 도심 한복판에서도 깊은 숲 속에 온 듯한 고요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