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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건축의 오랜 자부심을 잇다! 루이스 바라간, 프리다 에스코베도

2026-06-11

멕시코 건축의 오랜 자부심을 잇다! 루이스 바라간과 프리다 에스코베도

1년 365일, 늘 태양의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 있을 것만 같은 멕시코. 곧 다가올 월드컵으로 인해 북중미로 시선이 모이면서 멕시코 또한 여러 기대감으로 도시의 분위기가 한층 더 풍성해지고 있습니다. 멕시코는 프리 콜롬비안(Pre-Columbian)의 거대한 피라미드와 사원,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화려한 바로크 건축, 그리고 현대적 건축 실험까지 서로 다른 독창적인 양식이 시대별로 공존해 ‘건축의 나라’로 불리는데요. 그 중에서도 빛과 색을 통해 멕시코 건축의 감각적 본질을 보여주는 루이스 바라간과, 멕시코 전통의 감각을 확장하는 프리다 에스코베도는 멕시코 건축이 시대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건축가로 손꼽힙니다. 멕시코 건축이 품고 있는 빛, 공간, 그리고 시간의 의미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두 건축가의 작품을 통해 가장 멕시코적이면서도 가장 현대적인 건축의 풍경을 만나봅니다.

 

건축은 감정을 위한 공간, 루이스 바라간

출처:Barragan Foundation, Cuadra San Cristóba

고요한 중정에 세워진 넓고 높은 분홍빛 벽. 선명한 색채는 공간에 강렬한 생동감을 불어넣지만, 그 벽 위로 천천히 기울어지는 빛과 그림자는 오히려 깊은 침묵을 만들어냅니다. 루이스 바라간이 빛과 색으로 빚어낸 침묵의 건축은 건물을 인간의 감정을 머물게 하는 공간으로 만듭니다.

 

출처:Barragan Foundation

멕시코를 대표하는 현대 건축가인 루이스 바라간은 20세기 건축사에서 가장 독창적인 건축 언어를 구축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새로운 형태의 건축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공간이 인간의 감정에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냈기 때문이죠. 루이스 바라간은 1902년 과달라하라에서 태어나 1988년 사망할 때까지 건축뿐 아니라 조경과 인테리어 분야에서도 영향력을 펼치며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바라간이 활동하던 당시 건축은 기능성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미니멀리즘이 세계적인 흐름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라간은 이러한 모더니즘 안에서도 전혀 다른 방향을 선택했습니다. 철골 구조와 콘크리트, 유리를 사용해 차가운 느낌을 주는 공간이 아닌 빛과 색채, 침묵과 자연이 깃든 건축, 즉 인간의 감정을 움직이는 예술로서의 건축을 보여주었습니다.

 

 

강렬한 색채와 빛으로 멕시코 건축의 정체성을 잇다!

루이스 바라간은 지역성과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멕시코의 기후와 풍경, 전통 색채 등 지역의 특징들을 적극적으로 건축에 반영하는 것이 그의 작업 방식이죠. 멕시코는 강한 햇빛과 더운 기후에 적응하기 위해 두꺼운 벽과 작은 창문, 안뜰 형태의 정원 구조를 많이 사용해 왔는데요. 바라간 역시 이러한 전통적 구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습니다. 직선적인 벽과 넓은 면을 활용해 단순하고 미니멀한 공간을 만들면서도 멕시코 특유의 분위기는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그는 당시 현대 건축가들이 큰 유리창으로 밝고 개방적인 공간을 만든 것에 반해, 오히려 창문의 크기를 줄이고 빛이 천천히 스며들도록 설계했습니다. 너무 밝고 강한 빛보다 부드럽고 조용한 빛이 사람의 마음을 더 편하게 만든다고 생각했죠.

출처:Barragan Foundation, capuchin convent chapel(왼쪽),Galvez house(오른쪽)

그의 건축이 단순히 밝고 화려하기보다 차분하고 고요한 분위기로 기억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Luis Barragán의 건축이 ‘침묵의 건축’이라 불리는 것은 바로 빛을 다루는 독창적인 방식에서 비롯됩니다. 그는 빛과 색이 만나며 공간의 분위기와 감정이 달라진다고 보았고, 시간에 따라 벽 위로 스며드는 햇빛과 그림자의 흐름 자체를 하나의 건축적 요소로 발전시켰습니다. 전통 건축의 구조뿐 아니라 강렬한 색채의 사용도 그의 건축 특징 중 하나입니다. 분홍색, 노란색 보라색 같은 과감한 색들을 벽면에 사용해 화려하면서도 동시에 미니멀한 느낌을 선사합니다.

출처:Barragan Foundation, prieto lopez house

침묵의 건축과 강렬한 색채의 사용은 겉으로 보면 서로 반대되는 특징인 것처럼 보이지만, 루이스 바라간의 건축에서는 오히려 두 요소가 함께 존재하기 때문에 더 특별하다고 평가됩니다. 실제로 과감한 색채의 사용은 활기차고 에너지 넘치는 생동감을 느끼게 하지만, 공간에 들어가 보면 놀라울 정도로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고 하죠. 색채가 있기 때문에 공간의 감정이 더 깊어진다고 생각한 그는 차가운 흰색 공간보다 따뜻한 색과 빛이 사람에게 더 인간적인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빛의 양을 조절해 색채의 느낌을 바꾸며 명상적이고 고요한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자연이 만드는 평온한 공간

그는 외부의 소음과 복잡함으로부터 벗어나 사람의 감정을 차분하게 만드는 공간을 추구했으며, 특히 정원 설계에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스스로 조경가라 불리기를 원할 만큼 바라간의 건축에서 정원은 매우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그의 건축 특징인 높은 벽과 단순한 구조, 강렬한 색채 속에서 정원은 공간에 평온함과 생명력을 더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가 조경과 정원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1931년 유럽 여행이었습니다. 당시 프랑스의 화가이자 정원사였던 페르디난드 바끄(Ferdinand Bac)를 만나면서 정원을 단순한 장식 공간이 아닌, 인간의 감정을 움직이는 예술적 공간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이후 바라간은 정원과 물, 나무 같은 자연 요소를 건축과 자연스럽게 연결하며 사람이 공간 안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그는 프리츠커 건축상 수상 연설에서 “정원의 영혼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평온함을 지켜준다”라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이처럼 바라간의 건축에서 정원은 단순한 조경 요소가 아니라, 신비로움과 평온함을 동시에 전달하는 중요한 공간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엘 페드레갈(El Pedregal) 정원

출처:Barragan Foundation

이 정원은 바라간의 건축 철학인 ‘빛과 색, 정원과 자연을 통해 인간의 감정을 담아내는 공간’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1945년경 멕시코시티 남부에 조성된 대규모 주거 단지 계획으로, 이곳은 원래 검은 화산암이 넓게 펼쳐진 지대였습니다. 바라간은 지형을 크게 훼손하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도로와 구획만을 계획하고, 건축물과 정원이 자연과 함께 공존하도록 구성했습니다. 각 주거 공간은 정원과 외부 공간을 중심으로 구성됐으며, 실내와 실외의 경계가 뚜렷하게 나뉘지 않도록 설계했습니다. 이를 통해 자연은 건물 밖의 배경이 아니라 일상 공간 안으로 들어오는 요소가 됐죠. 기존 환경을 유지하고 최소한의 개입으로 공간을 구성했다는 점에서 현대 도시 계획의 대안적 모델로도 평가되고 있습니다. 

 

루이스 바라간 하우스&스튜디오

출처: 유네스코 홈페이지

이곳은 루이스 바라간의 건축 철학이 가장 응축된 대표작으로, 1940년대 후반까지 실제 거주지이자 작업실로 사용되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이 집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공간을 기능별로 구분하는 대신 빛과 색, 동선의 흐름으로 감정을 설계했다는 점입니다.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올 때는 좁고 어두운 복도를 거치며 점차 공간이 전환되도록 구성해 바깥의 소음과 단절된 상태에서 실내의 고요함이 더 강조되도록 한 거죠. 거실 한쪽 배치한 정원을 향한 큰 창문은 바깥 풍경을 하나의 장면처럼 끌어들이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이 집에서 색과 빛의 사용이 매우 정교하게 계획되어 있는데요. 분홍, 노랑, 흰색 등 강한 색으로 칠해진 벽면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빛의 반사와 그림자를 통해 다른 분위기를 형성합니다. “내 집은 나의 안식처이며, 차가운 편의의 공간이 아니라 감정을 담은 건축이다”라는 바라간의 말처럼 결과적으로 이 주택은 바라간이 생각한 ‘침묵과 감정의 건축’을 가장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출처: 유네스코 홈페이지

 

경계를 허무는 공공건축가, 프리다 에스코베도

현재의 도시 건축은 바라간 시대처럼 독립된 오브제 중심이 아니라, 경험과 관계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프리다 에스코베도는 동시대 건축의 경향을 잘 보여주는 건축가로 평가되고 있는데요. 바로 그녀의 작업이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건축의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architectural record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을 설계할 당시 최연소 건축가이자,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역사상 현대미술관 확장 프로젝트를 맡은 첫 여성 건축가까지 여러 ‘최초’의 기록을 손에 쥔 프리다 에스코베도는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뒤 2006년, 스물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자신의 이름을 건 스튜디오를 설립하며 독립적인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에스코베도는 처음부터 건축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기보다, 현실의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점차 건축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고 회상합니다. 사회학자인 어머니의 영향 속에서 건축을 사회와 공동체의 관계 속에서 바라보게 되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죠. 그래서인지 그녀는 사람들 간의 긴밀한 협업을 기반으로 작업하는 방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작업물에서 또한 건물을 강하게 드러내기보다 주변 환경과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게 만드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그녀는 작은 리노베이션, 전시 디자인, 가구 작업 등 서로 다른 규모의 프로젝트를 오가며 경험을 쌓았고, 여러 조건 속에서 다양한 실험을 통해 그녀의 건축 철학을 쌓아가게 됩니다. “단순함이 가장 효과적이며, 값비싼 재료나 과장된 형태 없이도 충분히 공간의 감각과 분위기를 살릴 수 있다”는 철학은 실제 건축에 쓰이는 재료 선택에서도 나타납니다. 에스코베도는 콘크리트 블록, 천공 벽, 벽돌, 격자 구조(celosía), 테라초 같은 비교적 단순하고 익숙한 재료를 자주 사용하며, 최소한의 재료와 단순한 구조 안에서 얼마나 풍부한 감각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에 집중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공간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그녀의 스타일은 건축을 직접 느끼고 참여하는 공간으로 이해하게 합니다.

 

멕시코의 전통을 잇는 작업 철학

이러한 태도는 그녀가 성장한 멕시코의 도시 환경과도 연결됩니다. 대표적으로 그녀의 작업에 자주 등장하는 셀로시아(중남미 지역의 더운 기후에 대응하기 위해 발전한 전통 건축 요소로 강한 햇빛을 걸러주면서, 바람과 공기는 자연스럽게 통과시키는 구조)는 멕시코 전통 건축에서 사용되던 격자형 벽체입니다. 에스코베도는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공간의 경계를 부드럽게 연결하는 장치로 활용했죠. 그녀가 국제적인 주목을 받게 된 계기인 2018년 서펜타인 파빌리온에서도 이 구조를 사용해 시간과 날씨, 사람의 움직임에 따라 공간의 인상이 계속 달라지는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서펜타인 파빌리온에 이어 시빅 스테이지(열린 공공공간 프로젝트), 스탠퍼드대학교 프로젝트 등 그녀의 대표 작업들에서도 이러한 시도를 지속했습니다.

최근에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현대·동시대 미술관 확장 프로젝트인 ‘탕 윙(Tang Wing)’의 설계를 맡으며 더욱 큰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격자 구조의 외관과 센트럴파크를 향한 테라스를 통해, 미술관과 도시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풀어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라 탈레라(La Tallera)

출처: fridaescobedo studio

초기 대표 작업으로 꼽히는 파빌리온 프로젝트 이후, 그녀의 건축은 다공성이라는 단어로 설명됩니다. 공간을 완전히 닫거나 구분하기보다, 빛과 공기, 사람의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구조를 만들기 때문이죠. 에스코베도의 건축은 벽을 세우기보다 경계를 느슨하게 만드는 방식에 가깝고, 과거와 현재, 안과 밖, 사람과 도시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방식이 반복적으로 드러납니다. 콘크리트 블록, 천공된 벽, 격자 구조 같은 요소들 또한 빛이 통과하는 부분과 차단되는 부분이 동시에 존재하며, 가벼움과 묵직함 같은 상반된 감각도 한 공간 안에서 함께 드러납니다.

출처: fridaescobedo studio

라 탈레라(La Tallera)는 프리다 에스코베도가 2012년에 진행한 대표적인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로, 멕시코 벽화가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David Alfaro Siqueiros)의 작업 공간이었던 예술 시설을 재구성한 작업입니다. 에스코베도는 원래 구조를 유지한 채 공간의 관계를 다시 설계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는데요. 이 건물의 가장 큰 특징은 외벽에 더해진 콘크리트 격자 구조입니다. 완전히 닫힌 벽이 아니라 빛과 바람은 통과시키고 시선은 부분적으로 걸러내는 장치로,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부드럽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이로 인해 건물은 닫힌 공간이라기보다 거리와 지속적으로 연결된 열린 구조로 인식됩니다. 이 작업은 그녀의 건축 언어가 처음으로 뚜렷하게 드러난 사례로 사회적 관계와 도시의 흐름, 사람들의 움직임을 담아내는 에스코베도 건축의 출발점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마르 티레노 주거 프로젝트(Mar Tirreno Housing)

출처: fridaescobedo studio

 2018년 멕시코시티에 완공된 공동주택 프로젝트로, 전통적인 아파트 구조가 아닌 중정과 공유 공간을 중심으로 설계된 곳입니다. 건물 외벽에는 콘크리트 격자를 사용해 채광과 통풍을 확보하면서도 프라이버시를 지키고, 외부와의 연결감을 유지하도록 했죠. 반복되는 격자 패턴은 건물 전체에 리듬감을 만들고, 격자 사이로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빛과 그림자가 공간의 분위기를 끊임없이 바꿉니다. 멕시코 전통 공동주거 문화인 ‘베신다드(중정을 중심으로 여러 세대가 둘러싸여 거주하는 구조로 주민들이 함께 공용공간을 사용함)’의 개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도시 속 공동체성을 중요시하는 프리다 에스코베도의 대표 주거 건축 프로젝트로 꼽힙니다.

멕시코 전통문화의 색감과 자연환경을 현대 건축 속에 조화롭게 담아내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건축 세계를 완성한 루이스 바라간과 프리다 에스코베도. 침묵의 건축과 열린 경계의 건축,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것 같지만 멕시코라는 땅이 가진 매력을 고스란히 담아내며, 건축이 지역과 삶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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