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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미래

산업과 세계를 뒤흔드는 국제 유가 이야기

2026-06-16

산업과 세계를 뒤흔드는 국제 유가 이야기

2026년 2월 말,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군사 충돌이 본격화되며 전 세계는 또 한 번의 에너지 위기를 맞았습니다. 최근 미국과 이란이 종전 합의에 이르며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이 가시화되었고, 국제 유가는 배럴당 80달러 초반대로 하락하며 급한 불을 껐습니다. 하지만 안심하기엔 이릅니다. 그동안 파괴된 일부 원유 시설을 복구하고, 엉켜버린 글로벌 물류 및 공급망이 완전히 정상화되기까지는 앞으로 60~90일이 더 소요될 것으로 전망되어 전쟁 이전 수준으로의 즉각적인 회복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서아시아에서 발발한 분쟁이 멀게 느껴지지만, 그 여파는 생각보다 우리 일상 가까이 닿아 있습니다. 주유소 가격판이 바뀌고, 건설 현장의 자재값이 오르며, 공장의 생산 원가가 올라갔습니다. 유가라는 숫자 하나가 세계와 산업을 어떻게 흔드는지, 그리고 현재의 불확실성이 우리에게 어떤 과제를 던지는지 살펴봅니다.

세계 유가의 지표가 되는 벤치마크 오일

전 세계에는 수천 종의 원유가 존재하지만, 국제 유가를 결정짓는 핵심 원유는 세 가지입니다. 이를 ‘벤치마크 오일(Benchmark Oil)’이라 부르며, 각 원유는 특정 시장의 기준 가격으로 기능합니다.

벤치마크 오일의 차이를 이해하려면 원유 품질을 결정하는 두 가지 요소를 알아야 합니다. 첫째, API 비중은 미국석유협회(API)가 제정한 석유 비중 표시 방법으로, 수치가 높을수록 가볍고 맑아 휘발유·경유 등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에 유리하고, 낮을수록 무겁고 끈적여 저부가가치 제품에 주로 쓰입니다. 둘째, 황 함유량은 정제 용이성을 결정합니다. 황이 적을수록 정제가 쉽고 고급 석유제품 생산에 유리하며, 황이 많으면 탈황 처리 비용이 추가됩니다. 이 두 기준으로 WTI가 최고급, 브렌트유가 중간급, 두바이유가 그 아래에 위치합니다.

브렌트유 (Brent)는 가장 넓은 영향력을 가진 원유입니다. 전 세계 원유 거래 계약의 3분의 2가 브렌트유 가격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북해에서 생산되어 해상 수출이 가능해 유럽, 아프리카, 중동 등 다양한 지역과 활발히 거래되며 글로벌 공급망 변화를 가장 민감하게 반영합니다. WTI (텍사스유) 품질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가장 가볍고 황이 적음)이지만, 미국 내륙 시장에 특화된 지역 가격 지표라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 최대 석유 소비국이자 생산국인 미국의 수급 트렌드를 직접적으로 반영하며, 한국 정유사의 수익성을 가늠하는 ‘정제마진’ 비교 지표로 자주 활용됩니다. 마지막으로 두바이유 (Dubai)는  한국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중동산 원유의 아시아 수출 가격 기준으로, 한국 원유 수입의 약 70%를 차지합니다. 최근 중동 분쟁으로 일부 유종의 선적과 거래가 어려워지면서 벤치마크 산정 기준이 조정되기도 했으며, 급등락하는 두바이유 가격은 한국 산업에 직격탄이 되고 있습니다.

수요와 공급을 넘어, 지정학과 금융에 흔들리는 가격

국제 유가는 계절별 수요, 대체 에너지 공급, OPEC의 생산 전략(공급 조절) 등에 의해 기본적으로 움직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지정학적 변수와 금융시장 변수가 더해지면 변동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집니다. 특히 전쟁이나 주요 물류 통로 봉쇄 같은 지정학적 긴장감이 고조되면, 실제 공급이 줄지 않더라도 위험성을 미리 가격에 반영하는 ‘리스크 프리미엄(Risk Premium)’이 발생합니다. 2026년 2월 말 공습 이후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결의하자 유가는 불과 2주 만에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약 20%(하루 약 2,100만 배럴)가 통과하며, 이 중 90% 이상이 아시아로 향하는 핵심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현재(6월 중순), 외교적 합의로 해협의 빗장이 풀리며 ‘리스크 프리미엄’은 상당 부분 걷혔습니다. 그러나 시장 전문가들은 원유 수급이 다소 완화되더라도 전쟁 이전의 60~70달러대 수준으로 곧바로 되돌아가기는 쉽지 않다고 분석합니다. 중단되었던 선박 운항 스케줄을 재조정하고 물류망의 균형을 맞추는 데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원유 의존도가 높은 대한민국의 딜레마

이러한 상황은 원유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 뼈아픈 충격입니다. 한국은 GDP 1만 달러당 원유 소비량 기준 OECD 37개국 중 1위 국가이며, 수입 원유의 70% 이상을 중동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산업연구원(KIET) 분석에 따르면 국제 유가가 10% 상승할 경우 국내 제조업 전체 생산 비용은 평균 0.71% 오릅니다. 특히 에너지 투입 비중이 높은 석유화학 제품 산업이 6.3%로 가장 큰 타격을 입고, 화학제품은 1.59%, 고무 및 플라스틱 0.46%, 시멘트·콘크리트 제품은 0.21% 상승하는 등 비용 부담이 높아지며 기업의 수익성 악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 3월 중동 전쟁 여파에 대응해 사상 최대 규모인 약 4억 배럴의 전략비축유 긴급 방출을 결정했습니다. 이에 발맞춰 한국 정부도 1990년 걸프전 이후 최대 규모인 2,246만 배럴의 전략비축유를 방출하며 국내 에너지 수급 안정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유가 파동으로 멈춰 서는 건설 산업 현장

유가 상승의 충격은 국내 시멘트·건설 현장까지 깊숙이 파고들고 있습니다. 단순히 원자재 가격이 오르는 문제가 아닙니다. 원재료 공급부터 에너지, 운송까지 충격이 산업 전반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시멘트 산업의 원가 구조를 살펴보면, 유연탄을 중심으로 한 연료비가 약 25%, 전기료와 운송비가 각각 약 20%를 차지합니다. 원가의 절반 이상이 유가와 직간접으로 연결되어 있는 구조입니다.

콘크리트의 강도를 높이는 ‘혼화제’는 나프타에서 파생된 석유화학 원료로 만듭니다. 고성능 콘크리트를 위한 나프타 가격은 연초 톤당 500달러를 밑돌다 4월 초 1,000달러까지 치솟았으며, 최근 유가 하락이 일부 반영되었음에도 여전히 800~900달러 선을 맴돌고 있습니다. 물류망이 정상화되기 전까지는 물량 확보 자체가 쉽지 않아 공정 지연 우려가 여전합니다. 시멘트 생산 비용(유연탄)도 급등했습니다. 석회석을 1,400~1,500°C로 굽는 공정에는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유연탄’이 쓰입니다. 시멘트 원가의 약 25%를 차지하는 유연탄 수입 가격은 유가 상승과 환율 변동이 겹치며 연초 대비 약 30% 상승했습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유연탄 가격이 10% 오르면 시멘트 생산원가는 3~4% 높아집니다. 운송비 부담도 함께 커지고 있습니다. 벌크시멘트트레일러(BCT)와 레미콘 믹서트럭 등 대량 운송 차량은 모두 경유를 씁니다. 최근 유가 하락으로 경유 가격 오름세가 주춤하긴 했으나, 이미 높아진 단가는 제조사와 지입차주 모두에게 감당하기 힘든 원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산업을 위한 근본적 체질 개선

지금의 위기는 처음이 아닙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도, 그 이전에도 유가는 출렁였고 산업은 흔들렸습니다. 그때마다 수입선 다변화와 비축량 방출로 임시방편을 마련했지만, 화석연료에 묶인 경제 구조 자체는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지정학적 갈등이 합의에 이르렀음에도 엉킨 공급망이 풀리기를 숨죽여 기다려야 하는 작금의 현실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집니다. 특정 지역에 편중된 에너지 의존도가 국가 산업 전체의 목줄을 쥘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에너지 수입 경로 다변화와 친환경 공정으로의 전환은 더 이상 이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대한민국 산업의 생존과 직결된 최우선 과제가 되었습니다.

국제유가, 나프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