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을 비트는 물건, 콘크리트의 변신

‘콘크리트’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무엇이 생각나시나요?

아마 아파트, 혹은 다양한 형태의 건물이 떠오를 겁니다. 콘크리트는 건축사에서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소재이며, 아마 이 재료가 없었다면 인간은 여전히 나뭇잎으로 머리 위를 가리며 떨어지는 빗방울을 그대로 맞으며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콘크리트는 비단 건물이나 교량과 같이 매크로적인 구조물에 활용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날 것의 미학

콘크리트란 원래 가려야 하는 존재였습니다. 인체에 비교하자면 뼈를 감싸고 있는 근육, 지방과 같은 역할을 하는 콘크리트는 인체가 피부에 싸여 보호되듯이 그대로 노출되어서는 안 되는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벽에는 벽지를 발랐고, 바닥에는 장판을 깔았지요. 날 것은 반드시 가공되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우리에게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당연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감춰져 있던 것을 오히려 드러내려는 시도가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콘크리트를 활용한 시도들이고요. 콘크리트를 소재로 이용해 소품을 만들고, 아예 벽지를 뜯어내고 콘크리트를 노출시키거나 몰탈을 부어 바닥을 콘크리트 느낌으로 시공하는 사례가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오래된 공장 시설을 그대로 재활용하여 목조 뼈대나 콘크리트 벽면을 노출시켜 인더스트리얼한 느낌을 내는 카페도 전국 곳곳에 하나둘씩 늘어 가고 있죠.

콘크리트는 솔직한 소재입니다. 꾸밈이 없고 날 것의 느낌이 강합니다. 그렇기에 이 소재를 노출시켰을 때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투명한 느낌을 받으며, 특유의 미니멀함은 우리의 상상력을 극적으로 자극합니다.

 

상식의 파괴

주변을 한 번 둘러보세요. 컴퓨터, 책상, 컵, 의류, 책 등 우리는 다양한 소재로 만든 수많은 물건에 둘러싸여 살아갑니다. 하지만 모두 소비자의 구매욕을 불러일으키고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극적으로 가공된 제품들이죠. 소재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물건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만약,

콘크리트로 귀걸이를 만든다면 어떨까요?  만년필을 만든다면요?  손목시계를 만든다면?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의 소위 ‘상식’은 이러한 가정들을 거부하겠죠. 창의성은 상식의 파괴에서 나옵니다. 상식은 우리가 이미 아는 지식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대만의 수공예 디자인 소품 공방 ‘22STUDIO은 창의적인 소재로 손목시계와 문구, 주얼리를 만듭니다. 바로 콘크리트입니다.

콘크리트로 만든 시계 페이스부터 프레임, 스트랩까지, “원재료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디자인되었습니다”는 22STUDIO의 시계는 소재가 주는 모던함과 디자인이 주는 클래식함을 모두 느낄 수 있는 흥미로운 외관을 자랑합니다. 무게도 약 70g으로 아주 가볍죠. 특히 Ups & Downs와 4D Automatic 모델의 페이스는 뫼비우스의 띠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디자인이 무척이나 인상적입니다.

(왼쪽) Ups & Downs 모델 // (오른쪽) 4D Automatic 모델 ©22STUDIO

뿐만 아니라 일견 기하학적 모형처럼 보이는 탁상시계나, 드로잉 펜, 만년필을 비롯한 문구류, 꽃병과 같은 생활 소품은 집 전체의 인테리어를 소품에 맞추고 싶을 정도로 간결하고 깔끔하면서도 동시에 미적 센스를 놓치지 않습니다.

투박하다고 생각해 온 소재가 이렇게까지 변신할 수 있다니, 그야말로 콘크리트의 변신은 무죄네요.

©22STUDIO

조금 더 전문적이고 아티스틱한 사례도 살펴보죠. 인도 뭄바이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MIM Studio는 콘크리트 체스 세트 ‘아레나(Arena)’, 수천 년 역사를 지닌 인도 델리의 우물식 계단 ‘아그라센 키 바올리(Agrasen ki Baoli)’를 콘크리트로 세밀하게 재현한 축소 모형 등의 작품을 선보이는 등  22STUDIO 보다는 소재 본연의 거친 느낌을 살린 소품을 제작합니다.

©Material Immaterial Studio

체스를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제작했다는 아레나는 인더스트리얼한 형태의 말들이 마치 콜로세움을 연상시키는 체스판 위에서 결투를 벌이는 듯한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아그라센 키 바올리 모형은 특히 폭이 약 5.6cm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계단과 창문, 벽 등의 디테일이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조그마한 미니어처에서 느껴지는 현장감은 경이로울 정도죠.

©Material Immaterial Studio

 

미니멀한 소재, 미니멀한 디자인

뱅앤올룹슨의 제품 디자이너로 유명한 데이비드 루이스(David Lewis)는 한 인터뷰에서 “(제품이) 단순해질수록 사람들은 더 관심을 보인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데이비드 루이스의 디자인 철학에 정확히 들어맞는 사례가 국내 디자인 스튜디오 비믹스(Bmix Studio)의 제품이 아닐까 싶네요. “소재 본질에 집중한 담백한 형태를 추구하며 일상의 사물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제품 제작을 표방하는 비믹스 스튜디오는 세라믹, 우드, 콘크리트 등 자연 소재를 활용해 시계, 조명 등의 소품을 제작합니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제품은 바로 콘크리트로 만든 탁상시계, 오클락입니다.

약 600g의 무게로 묵직한 이 무소음 탁상시계의 구성 요소는 콘크리트로 만든 바디, 그리고 시곗바늘이 전부입니다. (물론 후면에 무브먼트와 건전지가 삽입되어 있지만, 디자인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논외로 합니다). 디자인과 구성 요소를 최소화하여 소재 본연이 내뿜는 느낌을 아낌없이 표출합니다.

숫자 하나 쓰여 있지 않은 공간(空間)으로 꽉 찬 외관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시각적으로나 심적으로나 여유를 갖게 만듭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도리어 마음에 여유가 생긴달까요. 또한 양산품과 달리 오클락은 모든 제품이 조금씩 다르게 생겼습니다. 어떤 제품에는 공기 기포가 더 많고, 어떤 제품에는 자연스러운 미세한 크랙이 들어가 있죠. 의도적이지 않은, 소재 자체가 부여하는 제품의 특성입니다.

©Bmix Studio

콘크리트는 가장 전형적이면서도 상식을 파괴하는 소재입니다. 원하는 어떤 형태든 제작이 가능하며, 어떻게 다듬느냐에 따라 촉감이 거칠 수도, 매끄러울 수도 있습니다. 소재 자체에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갇혀 있는 것은 사람의 창의성일 뿐이죠. 비록 콘크리트는 틀에 부어 성형해야 하겠지만, 우리의 창의성은 그 틀을 깨고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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