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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표셀렉트

건축, 바벨의 도서관을 짓다

2024-02-20

건축, 바벨의 도서관을 짓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는 “천국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도서관 같은 곳일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읽는 곳이 아니라 인간과 우주의 본질을 탐구하는 지식의 저장고였을 겁니다. 도서관에 대한 그의 각별한 사랑은 단편 소설집 <픽션들>에서도 잘 드러나는데요. 이 책에 실린 단편 중 하나인 ‘바벨의 도서관’은 육각형 구조의 방들이 상하좌우로 끝없이 연결되어 있는 구체 형태의 도서관을 배경으로, 지식의 무한함과 인간의 한계를 탐구하는 철학적 질문들로 가득한 작품입니다. 소설 속 바벨의 도서관은 가상의 건축물인 동시에 거대한 우주 그 자체인 셈이죠.

비단 보르헤스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도서관은 인류의 방대한 지식과 문화를 수집하고, 보존하고, 공유하며, 나아가 계승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이제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읽는 공간이라는 목적과 기능을 넘어 좀 더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장소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2010년대 이후 도서관을 설계하고 완성하는 과정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요. 현대 건축이 가진 놀라운 기술력과, 건축가의 무한한 상상력이 결합하여 만든 도서관의 새로운 풍경 속에서 우리는 공간이 선사하는 뜻밖의 감동을 경험하게 됩니다.

 

판테온을 품은 순백의 정육면체, 독일 슈투트가르트 시립 도서관(Stuttgart City Library)

2011년 독일 서남부 도시 슈투트가르트의 중심부인 마일랜더 광장에 자리한 슈투트가르트 시립 도서관의 외관은 일반적인 도서관의 모습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건물 전체는 흰색 타일로 장식된 정육면체 형태를 띠고 있는데, 네모난 큐브 형태의 작은 집들이 모여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주 재료인 흰색 타일은 모더니즘 건축을 대표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고대 그리스의 석조 기둥을 떠오르게 하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외관을 가득 채우고 있는 동일한 형태의 큐브들은 ‘지식의 그릇’이라는 도서관의 개념적 의미를 상징한다고 하는데요. 어찌 보면 지나치게 단순하고 삭막해 배타적인 느낌마저 들 수 있지만 밤이 되면 각각의 큐브에 강렬한 조명이 더해져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Source: Wikipedia Commons, Pjt56

슈투트가르트 도서관의 하얀 외관을 둘러싸고 있는 4개의 면 상단부에는 한국어를 포함한 4개의 언어(독일어, 한국어, 아랍어, 영어)로 ‘도서관’이라는 글자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는데요. 이는 도서관을 설계한 이은영 재독 건축가의 오랜 설득과 고집으로 이룬 결실이라고 합니다. CNN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7대 도서관’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기도 한 슈투트가르트 도서관의 진짜 매력은 내부 공간에 있습니다. 먼저, 건물 중앙에 1층부터 4층까지의 공간 전체를 새하얗게 비워두고 있는데요. 고대 로마의 판테온 신전을 연상케 하는 이곳이 바로 ‘심장’이라는 의미의 ‘Das Herz’라는 명상 공간입니다. 설계 당시 도서관 측에서 요구한 ‘자아성찰의 기능을 할 수 있는 공간’이자 슈투트가르트 도서관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죠. 아무 것도 없는 무(無)의 공간, 오직 천장에서 내려오는 한 줄기 빛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이곳에서 오롯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는 것입니다.

Source: Wikipedia Commons, GillyBerlin

슈투트가르트 도서관의 하이라이트는 5층부터 9층까지 역피라미드 모양의 점층 구조로 설계된 갤러리 홀을 물 흐르듯 잇고 있는 나선형 계단의 풍경입니다. 이 모든 공간이 개방형으로 이루어져 있어 효율적인 동선을 만들어내고 있음은 물론, 자연채광과 적절한 조명까지 더해져 도서관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꼭대기 층에서 내려다보이는 중앙 아트리움의 전경은 가히 압도적이라 할 만 합니다. 건축의 모든 장식과 컬러를 걷어낸 순백의 공간에서 오직 갤러리 홀을 채우는 책과 사람만이 색으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도서관을 이용하는 시민들에게도 놀라운 경험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빗물을 모아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빗물 집수 시스템을 도입하여 상수원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었고, 에너지 소비와 배출을 최소화하는 초효율 냉난방 시스템을 갖추는 등 지속 가능성 면에서도 뛰어난 기능과 역할을 해내고 있는 스마트한 도서관입니다.

 

누구나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 핀란드 오디 헬싱키 중앙 도서관(Oodi Helsinki Central Library)

세계행복지수 1위, 문자해독률 세계 1위를 자랑하는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는 ‘국민 서재’라 불리며 시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도서관이 있습니다. 2018년 독립 100주년을 맞이한 핀란드 정부의 주도로 헬싱키 중앙역 인근 칸살라스토리 광장에 지어진 오디 중앙도서관(이하 오디)이 바로 그 주인공인데요. 핀란드어로 ‘오디(Oodi)’는 ‘정열적이고 서정적인 시(詩) 또는 찬가(讚歌)’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100m 넘게 비정형으로 길게 뻗어있는 외관은 구부러진 다리 혹은 물결 모양의 지붕 같기도 하고, 항해를 떠나는 거대한 범선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유리를 사용한 건물의 상단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핀란드산 목재(가문비나무)로 마감함으로써 자연친화적인 핀란드의 문화적 특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Kuvio

오디를 설계한 핀란드의 건축설계회사 알라 아키텍트(ALA Architects)는 17,250㎡라는 전체 부지 면적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10만여 권의 장서만 3층 서가에 배치하도록 했습니다. 이곳이 단순히 책을 읽는 도서관이 아닌 배우고, 즐기고, 쉬고, 먹고, 심지어 누워서 놀 수도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신념에 따라 설계된 만큼 오디는 다른 도서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시설들로 가득합니다. 3층 규모로 지어진 오디의 1층에는 레스토랑과 함께 강연이나 공연 등을 위한 공공 이벤트 홀과 ‘Kino Regina’라는 이름의 영화관이 있습니다. 2층은 사람들의 다양한 활동과 만남을 위한 공간들로 채워져 있는데요. 스터디 룸, 컴퓨터실, 게임 룸, 오픈 키친, 각종 워크숍 공간, 사진 및 동영상 스튜디오 등을 누구나 이용할 수 있습니다. 3층은 분야별 서가와 함께 카페테리아와 아이들을 위한 쉼터 등이 마련되어 있고, 야외 테라스가 널찍하게 펼쳐져 있어 도시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휴식을 취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오디는 세계에서 가장 자유롭고 혁신적인 도서관의 면모를 갖추고 있습니다. 2019년 국제도서관협회연맹(IFLA)에서 선정한 ‘올해의 공공도서관’ 타이틀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도 어떠한 차별 없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도서관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오디의 지향점은 기둥이 없는 개방형 내부 디자인과 테마파크 같은 공간 구성을 통해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한편으론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다양한 형태의 지식 정보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다른 한편으론 핀란드 시민들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품어 안으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오디 중앙 도서관이야말로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가장 특별한 도서관의 전형일 것입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책의 풍경, 카타르 국립 도서관(Qatar National Library)

석유와 천연가스 등의 자원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카타르는 최근 중동의 문화예술 허브로 급부상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흐름은 건축 분야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수도 도하에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들의 작품을 연이어 선보이면서 도시의 풍경과 이미지를 완전히 바꾸는데 성공했는데요. 그 중 장 누벨(Jean Nouvel)의 카타르 국립 박물관과 이오 밍 페이(I.M. Pei)의 이슬람 예술 박물관과 함께 도하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꼽히는 것이 바로 렘 콜하스(Rem Koolhaas)가 이끄는 네덜란드 건축사무소 OMA가 설계한 카타르 국립 도서관입니다. 이미 2004년 개관한 미국 시애틀 중앙 도서관과 2017년 프랑스 알렉시스 드 토크빌 도서관을 통해 최고의 찬사를 받은 바 있는 OMA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도서관 디자인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2018년 카타르 도하에 또 하나의 문화적 랜드마크를 완성하게 됩니다.

ⓒIwan Baan

카타르재단이 조성한 도하 시내의 학술 지구 ‘Education City’ 내에 자리하고 있는 카타르 국립 도서관은 다이아몬드 혹은 우주선을 닮은 마름모꼴의 독특한 유리 외관이 눈길을 끄는 곳입니다. 전체 42,000㎡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부지 면적에 보유 장서만 1백만 권이 훌쩍 넘는 엄청난 스케일을 자랑하는데요. 특히, 내부 공간 전체가 단일 개방형 구조로 설계되어 계단식으로 놓여있는 하얀 대리석 책장들이 도미노 형태로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마치 도시에 존재하는 모든 책들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인데요. 이러한 구조에 대해 렘 콜하스는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특별한 노력 없이도 모든 책의 존재를 알 수 있고,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설계의 핵심”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한편, 카타르 국립 도서관이 보유하고 있는 수많은 장서들 중에는 아랍-이슬람 문명에 관한 귀중한 문헌과 자료들도 포함되어 있는데요. 이러한 국가적 문화유산들은 도서관 중앙에 지하 6m 깊이로 설계된 ‘헤리티지 콜렉션(Heritage Collection)’을 통해 별도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흡사 발굴 현장을 내려다보듯 도서관 상층에서도 베이지색 트래버틴으로 둘러싸인 헤리티지 콜렉션의 내부 모습을 누구나 감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독특한 구조 때문에 카타르 국립 도서관은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함께 흐르는 공간에 와있는 듯한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황홀한 책의 물결을 응시하는 빈하이의 눈, 텐진 빈하이 도서관(Tianjin Binhai Library)

중국 북동부에 위치한 해안 도시 텐진이 추진중인 빈하이 문화센터 마스터플랜의 일환으로 건설된 텐진 빈하이 도서관은 2017년 개관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으로 꼽히며 지역 주민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건축회사 MVRDV와 텐진의 지역 건축가 그룹인 TUPDI가 공동으로 설계를 담당했는데, 총 33,700㎡의 면적에 5층 높이로 지어져 최대 120만 권의 장서를 보관할 수 있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합니다. 설계부터 완공까지 겨우 3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빈하이 도서관의 미래지향적이면서도 예술적인 건축 디자인은 경이에 가까울 정도입니다.

먼저 직사각형의 도서관 건물 정면에는 사람의 눈을 닮은 거대한 타원형 입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는 건물 내부 아트리움의 중앙에 위치한 구체 형태의 조형물이 유리 외관을 통해 밖에서도 보일 수 있게끔 의도적으로 디자인한 것인데요. 이 하얗고 커다란 조형물이 바로 도서관 내 모든 공간 구성의 중심이 되는 ‘The Eye’입니다. 텐진 빈하이 도서관을 가리켜 ‘빈하이의 눈’이라는 별칭으로 부르는 이유 역시 The Eye의 압도적인 존재감 때문인데요. The Eye를 중심으로 설계된 아트리움의 모든 벽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물결 모양의 계단식 책장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끝없이 연결되어 있는 도서관 내부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대성당의 아치형 지붕 혹은 동굴의 형상을 떠올리게 합니다.

또한, 빈하이 도서관의 아트리움은 내부의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길목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상층부에 위치한 회의실, 사무실, 컴퓨터 및 오디오실, 비디오 감상실, 옥상 파티오 등과 같은 시설들은 모두 중앙의 아트리움을 통해서만 접근이 가능합니다. 텐진 빈하이 도서관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아트리움의 모든 층이 테라스 구조로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하얀 물결 모양의 책장은 그 자체로 계단인 동시에 의자로도 활용할 수 있어 건물 내부에 새로운 지형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도서관 이용자들은 어디든 걸터앉아 책을 읽을 수도 있고, 곡선으로 연결된 긴 책장을 따라 도서관 내부 곳곳을 산책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낯설고 새로운 시도들로 가득한 텐진 빈하이 도서관은 지역 주민들을 책의 세계로 끌어들이겠다는 목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BBC가 선정한 2017년 최고의 건축물로 선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