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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표셀렉트

명화로 보는 기차의 탄생, 그리고 삶

2023-10-05

명화로 보는 기차의 탄생, 그리고 삶

1760년 영국에서 촉발된 산업혁명은 유럽인의 삶을 180도 바꿨습니다. 지방에서 농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도시로 이동해 공장에서 일하고, 손으로 만들던 것들을 기계와 동력을 이용해 대량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철도의 등장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덕분에 대량 운송 시대가 열리고 사람과 물건이 국경을 더욱 쉽게 넘을 수 있게 됐죠.

처음 보는 이 운송수단, 엄청난 석탄을 싣고 하얀색 증기를 내뿜으며 빠르게 달리는 신문물에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화가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곤 캔버스에 열차를 담기 시작했는데요. 철도를 처음 본 화가들은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요?

 

자연을 돌파하는 열차가 만든 찰나, 윌리엄 터너 <비, 증기, 그리고 속도- 대 서부 철도> (1844)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Rain, Steam, and Speed – The Great Western Railway (1844), 91cm x 122 cm, The National Gallery, London

1830년 세계 첫 장기 철도인 리버풀-맨체스터 철도 설립 이후인 1840년대 영국은 철도가 폭발적으로 확장하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모든 사람이 열차에 감탄하듯 윌리엄 터너도 열차의 기술력에 매료되었습니다. 1843년 안개가 자욱하게 낀 습한 어느 날, 윌리엄 터너는 그레이트웨스턴철도(GWR)의 기차 일등석에 탔습니다. 그리고 기차의 속도를 체험하기 위해 달리는 열차의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10여분 간 풍경을 살피고 기차를 온몸으로 관찰했던 그는 그 순간을 그림에 담습니다.

바로, 그의 대표작 <비, 증기, 그리고 속도 – 대 서부 철도>입니다. 뭉개진 듯 어슴푸레하게 그려진 그림을 잘 주목하면, 모든 자연 배경을 뒤로 한 채 뚫고 나오는 듯한 묵직하고도 검은 기차가 인상적입니다. 그 주변을 자세히 살피면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사람도 있고, 기차를 보며 손을 흔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 편에는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이죠. 거대한 열차와 아주 작은 사람들의 모습이 대비된 원근법과 마치 날아가듯 흐리게 표현된 주변과 인물을 통해 열차의 속도를 느낄 수 있습니다.

윌리엄 터너는 14세기 영국 왕립미술원인 로열 아카데미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걷습니다. 17세기 네덜란드 풍경 화가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주로 초기엔 영국을 여행하며 본 풍경을 그림의 소재로 삼았습니다. 그는 낭만주의에 속하는 화가이지만, 빛을 잘 묘사하는 것으로 유명했고요. 그가 자연 현상과 대기의 변화를 직접 체험하고 남긴 생생한 풍경화는 이후 모네 등 프랑스 화가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며 인상파 탄생에 기여했습니다. 오늘날 영국 미술관 테이트 갤러리가 매해 뛰어난 활동을 보인 젊은 미술가에게 수여하는 ‘터너상’이 바로 윌리엄 터너의 이름으로부터 시작된 상이기도 합니다.

 

근대적 삶을 이룬 기차와 기차역의 풍경, 클로드 모네의 연작 시리즈 <생 라자르 역> (1876~1877)

당시 유럽의 대표 기차역 중 하나는 프랑스 파리의 생 라자르 역입니다. 생 라자르 역은 파리와 교외를 이어주는 기차들로 늘 붐비는 곳이었는데요.  열차가 내뿜는 엄청난 수증기와 석탄 연료를 태운 연기가 뒤섞인 모습은 당시 사람들에겐 마치 꿈처럼 보여졌다고 합니다. 기차는 빠르게 다른 공간으로 움직일 수 있는 시간 이동 장치와도 같았고요. 열차 덕에 여행이 활성화되었는데, 인상파 화가들은 기차를 타고 교외 지역으로 나가 그 풍경을 화폭에 담곤 했습니다.

Claude Monet: The Saint-Lazare Station (1877), 104 cm × 75 cm, Musée d’Orsay

모네 역시 다른 화가들처럼 교외 풍경을 그렸지만, 무엇보다 기차와 기차역을 화폭에 담고 싶단 열망이 강했습니다. 특히 그는 막 출발하려는 기차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역장을 만나러 갑니다. 당시 유럽 내에서 ‘화가’라는 직업은 유명인으로 인식되었는데요. 모네는 역장에게 자신을 화가라고 소개하며, 철을 사용해 더욱 특색 있는 생 라자르 역을 그리고 싶다고 말합니다. 미술 분야를 전혀 모르던 역장은 얼떨결에 인사를 받고 모네의 요구에 흔쾌히 응해줬습니다. 플랫폼을 폐쇄하고 기차를 멈춘 채 석탄을 가득 때워 플랫폼을 연기로 가득 채웠지요. 모네는 그 덕분에 생 라자르 역의 분위기를 그림에 담아냅니다. 그리고 그의 대표 연작으로 꼽히는 1876년부터 1877년까지 생 라자르 역을 소재로 12점의 작품을 그려냅니다.

Claude Monet: Arrival of the Normandy Train, Gare Saint-Lazare (1877), 60.3 cm × 80.2 cm, Art Institute of Chicago

모네의 생 라자르 역 연작은 1877년 인상파 전시회에서 공개되었는데요. 전시회를 방문했던 소설가 에밀 졸라는 그의 작품에 크게 감동하고, 그 기차 그림에서 인간의 폭주하는 동물적 본능을 느끼고 영감을 얻어 추리소설 <인간짐승>을 쓰기도 합니다.

클로드 모네는 ‘빛은 곧 색채’라는 인상주의 원칙을 끝까지 고수한 인상파 양식의 창시자 중 한 사람입니다. 빛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네의 능력을 같은 화가인 폴 세잔이 감탄했는데요. 그가 감탄할 만큼 모네는 매시간, 매분, 매초 빛의 변화를 느꼈고, 태양이 뜨고 질 때까지 캔버스를 바꾸며 하나의 소재를 그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역동적이고 활기찬 플랫폼 위의 군중들, 윌리엄 파웰 프리스 <기차역> (1862)

앞서 윌리엄 터너의 <비, 증기, 그리고 속도-대 서부 철도>와 클로드 모네의 생 라자르 역 연작 시리즈는 열차의 웅장함과 기술력, 기차역이라는 공간에 주목했다면, 윌리엄 파웰 프리스는 기차역에 모인 사람들에게 주목했습니다.

William Powell Frith: The Railway Station(1862), 54.1 cm × 114 cm, National Maritime Museum, London

그의 작품 <기차역>은 런던 북서부에 있는 패딩턴 역을 묘사한 그림인데요. 철골 구조의 기차역과 군중들을 표현했습니다. 기차 출발 전인 플랫폼엔 다양한 목적으로 방문한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그림에는 아이를 안아 들고 작별 인사 중인 군인, 범죄자를 체포하려는 사복 경찰, 어수룩한 외국인 부부에게 마차 삯을 바가지 씌우는 마부, 서둘러 아이와 함께 뛰어 들어오는 부부 등이 있습니다.

프리스는 이 그림 한 가운데 본인과 가족을 그려 넣었는데요. 갈색 외투에 모자를 착용한 사람이 프리스 자신이며, 프리스의 아내는 학교로 떠나는 작은 아들에게 입맞춤하는 장면이라고 합니다. 그 옆 나비넥타이에 회중시계를 차고 의젓하게 서 있는 큰아들도 보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같은 열차를 타기 위해 모였는데, 큰아들의 회중시계, 아이와 서둘러 들어오는 부부 등을 통해 시간표에 따라 움직이는 기차로 인해 시간관념이 생기고, 사회적 규범이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윌리엄 파웰 프리스는 영국 왕립미술원 소속의 빅토리아 시대 대표 화가입니다. 호가드 이후 영국 사회의 모습을 가장 잘 묘사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많은 그림이 파노라마식의 구도로 여러 모습을 포착했으며, 영국 중산층 가족의 모습 등 당시 일상의 순간을 그림에 담았습니다.

 

산업화의 한 부분을 담아내는 열차의 풍경 오노레 도미에, <삼등열차> (1862)

기술에 대한 찬양, 감탄, 영광, 기쁨과 역동의 순간이 아닌 사회적 현실을 담아내고자 했던 화가도 있습니다. 바로 오노레 도미에입니다.

Honoré Daumier: The Third-Class Carriage (1862-1864), 65.4 cm × 90.2 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그는 <삼등열차>를 통해 석양이 비추는 기차 안의 시민들을 그렸습니다.  산업화 시기는 사회적 계층이 등장한 시기로, 열차의 객실에도 1, 2, 3등급이 매겨졌는데요. 이 그림에서는 몰락한 부자나 2등실에 들어갈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인 비좁은 3등급 객실을 담았습니다.

그림 속에는 어두컴컴한 열차 내에 노파,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젊은 여성, 졸고 있는 아이가 보입니다. 이들은 가족으로 보이고, 노파는 차분한 표정으로 두 손을 꼭 잡고 기도 중입니다. 그림은 어둡고 침묵이 가득한 느낌이지요. 차장 밖의 풍경을 즐길 여유도 없이 고돼 보이는 사람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지요. 아마도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로 보입니다.

오노레 도미에는 프랑스의 사실주의 화가입니다. 시각적 사실성보다 현상의 사실성에 주목하고 예술로 현실을 개선하려고 하는 화가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위선, 불합리함을 풍자한 석판화 4천여 점을 그려 답답한 민중의 심정을 풀어주려고 했습니다. <삼등열차>는 그가 그린 유채화의 대표작으로, 가장 낮은 사회적 계층의 애환과 삶을 보여주고, 이들에게 인간적 공감을 표함으로써 부패한 권력, 특권에 사로잡힌 부르주아 계층에 대한 반감을 간접적으로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그림을 통해 우리에게는 익숙한 열차의 모습과 속도, 그리고 열차가 바꾼 세상이 당시로서는 얼마나 놀라운 일이었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열차는 어떤 의미일까요? 그림 속 열차 이야기를 기억하며, 여행이나 출장을 떠나는 기차에 몸을 실어 보세요. 무심결에 타고 내리던 기차 안에서 새로운 영감, 에너지를 발견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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