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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건축, 수영장의 안과 밖

2026-09-03

물의 건축, 수영장의 안과 밖

우리에게 목욕탕과 수영장은 서로 전혀 다른 공간으로 인식되는데요. 하나는 위생을 위한 곳이고, 다른 하나는 휴식과 운동을 위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둘이 명확히 구분된 것은 인류 역사 전체로 보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수영장은 어떤 연유로 시작되었고, 어떻게 오늘날의 독특한 문화 시설로 자리 잡았을까요? 수영장의 역사와 세계에서 가장 독창적인 수영장 4곳을 소개합니다.

 

의례와 훈련의 장에서 레저의 공간으로: 수영장의 역사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수영장으로 꼽히는 것은 약 4,500년 전 인더스 문명의 유적, 오늘날 파키스탄 신드주에 위치한 ‘모헨조다로 대욕장’입니다. 길이 12m, 너비 7m, 깊이 3m 규모의 이 대형 구조물은 고대 토목 공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방수와 배수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학계는 이곳을 스포츠 시설이 아닌, 소수 엘리트 계층이 종교적 의례나 영적 정화를 행하던 공간으로 해석합니다.

모헨조다로 대욕장, 출처: 위키피디아

그렇다고 고대인에게 헤엄치는 개념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철학자 플라톤이 “읽고 쓰기, 그리고 수영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은 교육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언급했을 만큼,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수영은 필수 덕목이었습니다. 당시 체력 단련장인 ‘팔라이스트라(Palaestra)’ 중앙에는 피스키나(Piscina)라는 수영장이 있었는데, 거친 강을 건너거나 적선에서 뛰어내려야 했던 고대 전사들에게 수영은 생존이 걸린 핵심 ‘군사 기술’이었습니다. 다만 이때까지도 씻는 목적과 헤엄치는 목적의 경계는 모호했습니다.

그 경계가 결정적으로 갈라진 것은 19세기 중엽 유럽의 산업화 바람을 타고서였습니다. 1820년 런던에 최초의 실내 바닷물 수영장인 ‘세인트 조지 배스’가 문을 열었고, 1837년에는 런던에만 실내 수영장 6곳이 잇따라 들어섰습니다. 프랑스 파리 역시 보건 정책에 따라 목욕탕과 구분되는 실내 수영장을 탄생시켰습니다. 도시의 위생을 국가가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씻는 물’과 ‘헤엄치는 물’의 분리가 일어난 것입니다. 결정적으로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에서 수영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규격화된 수영장이 늘어났고, 염소 소독과 여과 기술이 자리 잡으면서 호텔, 리조트, 개인 저택의 마당까지 파고들며 현대적인 시설로 자리 잡았습니다.

조선은행, 경성운동장 수영장, 화신백화점 中 경성운동장 수영장,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한국에 근대적 규격을 갖춘 야외 수영장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30년대 후반 경성수영장(길이 50m, 동대문 수영장)이었습니다. 국제 규격을 본떴으나 인파가 몰려 거대한 목욕탕에 가까웠다고 전해집니다. 계절과 상관없이 수영을 즐길 수 있는 실내 설비는 1967년, 서울 종로 YMCA에 25m 규모의 국내 최초 실내 수영장이 들어서며 본격화되었습니다. (비슷한 시기 1963년 개장한 워커힐 호텔 수영장은 외국인과 투숙객을 위한 야외 리조트 시설이었습니다.) 이후 1989년 7월 한강 종합개발사업과 함께 여과 시설을 갖춘 여의도, 잠실, 잠원 등 한강 공원 수영장들이 대거 조성되며 시민들의 휴식처로 발전했습니다.

 

POOL 1. 바다를 품은 거대한 인공 석호: 칠레 산 알폰소 델 마르

2007년 기네스북에 ‘세계 최대 인공 석호(Lagoon)’로 등재되며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수영장이 있습니다.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약 90~100km 떨어진 해안 리조트에 위치한 ‘산 알폰소 델 마르(San Alfonso del Mar)’입니다. 2006년 완공된 이 수영장은 하얀 모래사장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길이는 무려 1km, 면적은 8만 ㎡에 달해 마치 투명한 바다 하나를 통째로 옮겨놓은 듯한 압도감을 선사합니다. 수심은 최대 약 3.5m로, 잔잔하고 맑은 물 위에서 카약, 소형 범선, 카타마란 등 무동력 수상스포츠를 즐길 수 있습니다.

무려 2억 5,000만 리터에 달하는 바닷물을 채우는 이 거대 석호의 비결은 친환경 특허 기술인 ‘크리스탈 라군(Crystal Lagoons)’ 시스템입니다. 저에너지 여과 방식과 미량의 첨가물 제어로 기존 수영장 대비 화학물질 사용량은 100분의 1, 여과 에너지는 단 2% 수준으로 줄였습니다. 2015년 이집트 시티스타즈 리조트에 더 큰 인공 석호가 들어서며 세계 최대 타이틀은 내주었지만,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환상적인 인공 바다이자 대표적인 여행지로 여전히 손꼽힙니다.

 

POOL 2. 올림픽 유산의 지속가능한 진화: 런던 아쿼틱스 센터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설계한 ‘런던 아쿼틱스 센터’는 거대한 규모가 아닌, 건축의 ‘지속가능성’과 ‘가변성’으로 세계의 찬사를 받은 곳입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경기장으로 쓰인 이 건물은 파도처럼 유연하게 휘어지는 지붕과 3만 개의 목재 조각으로 완성한 천장 미학이 일품입니다.

위: 런던올림픽 당시 윙(Wing)을 추가한 아쿼틱스 센터, 아래: 현재 아쿼틱스 센터, 출처: 위키피디아

이 건축이 흥미로운 진짜 이유는 올림픽 이후를 내다본 ‘가변 구조’에 있습니다. 당초 지역사회용 시설로 구상되었다가 올림픽 유치가 확정되면서 관중석 대폭 증설이 필요해지자, 자하 하디드는 건물 좌우에 해체가 가능한 임시 관중석 구조체 ‘윙(Wing)’을 덧붙이는 묘수를 냈습니다. 대회 기간 총 17,500석(임시석 약 15,000석 포함) 규모로 운영한 뒤, 대회 종료 후 임시 관중석을 해체해 자재를 재활용하고 약 2,800석 규모의 아담한 시민 수영장으로 재탄생시켰습니다. 올림픽 시설이 폐허로 남는 문제를 완벽히 극복한 대표적 유산입니다.

 

POOL 3. 공중에 떠 있는 투명한 물의 다리: 런던 스카이풀

런던 나인 엘름스 주거단지(Embassy Gardens)에 위치한 ‘스카이풀(Sky Pool)’은 2021년 5월 문을 연 세계 최초의 공중 부양형(Suspended) 투명 아크릴 수영장입니다. 지상 약 35m(아파트 10층 높이) 공중에 두 아파트 동 사이를 이어 건너갈 수 있도록 다리 형태로 설계되었습니다.

출처: 위키피디아

수영장 아래에서는 공중을 헤엄치는 사람들을 올려다보고, 물속에서는 런던의 화려한 스카이라인을 내려다보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합니다. 바람과 온도 변화로 두 아파트 건물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오차까지 계산해 구조적 안전성을 확보했습니다. 약 150톤의 물을 공중에 띄우기 위해 두께 18cm의 벽체와 36cm에 달하는 튼튼한 특수 투명 아크릴을 바닥에 적용했습니다. 템스 강변 근처에 위치해 수심 1.2m 물속에서 도심 풍경을 조망할 수 있으며, 해당 아파트 입주민과 게스트 전용 공간으로 운영됩니다.

 

POOL 4. 사막 아래 잠겨진 디스토피아 도시: 딥다이브 두바이

2021년 7월 두바이 나드 알 셰바에 문을 연 ‘딥다이브 두바이(Deep Dive Dubai)’는 수심 60.02m를 자랑하는 세계에서 가장 깊은 수영장으로 기네스북에 올랐습니다. 진주 조개잡이가 생업이었던 두바이의 역사적 정체성을 살려 외관을 거대한 조개 모양으로 디자인했으며, 사막의 땅속을 파 내려간 독특한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공사 도중 터져 나온 지하수를 퍼내고 모래가 무너지지 않도록 단단한 벽체 공사를 거치는 등 완성까지 무려 4년이 걸렸습니다.

이곳에 들어가는 물은 올림픽 규격 수영장 6개 분량인 1,400만 리터에 달하며, 수온 30도를 유지하는 물은 6시간마다 특수 여과 설비를 거쳐 청정도를 유지합니다. 무엇보다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수심 깊은 물속에 ‘폐허가 된 수중 도시’를 정교하게 연출해 두었다는 점입니다. 다이버들은 물속에 매몰된 자동차, 오토바이, 공원 벤치, 전화부스, 오락실, 심지어 침실과 주방을 갖춘 아파트 사이를 헤엄치며 마치 디스토피아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온 듯한 초현실적 탐험을 즐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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