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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표셀렉트

뮤지엄에서 경험하는 건축과의 깊은 교감

2023-07-04

뮤지엄에서 경험하는 건축과의 깊은 교감

우리가 건축을 만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길 위에서 건축물을 직접 마주하고 교감하는 일만큼 멋지고 근사한 방법으로 건축과 조우하고 싶다면, 발걸음을 뮤지엄으로 옮겨보는 건 어떨까요. 유명 화가의 미술작품이나 오래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을 법한 미술관 혹은 전시관에서 건축 그리고 건축가의 삶과 신념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이해하는 특별한 순간을 경험하게 될 테니까요. 지금 강원도 원주와 제주도, 경남 김해 등 세 곳의 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건축을 주제로 한 전시를 통해 우리는 건축이라는 무한한 세계와, 그것을 창조해낸 위대한 건축가들의 생각을 경험하고, 비로소 감응하게 될 것입니다. 

 

자연을 겸허히 수용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담은 건축 – 유동룡 미술관 개관전 <바람의 건축가, 이타미 준>

유동룡 미술관 외관, 출처: https://itamijunmuseum.com/

지난해 12월 제주시 한림읍에 새롭게 문을 연 유동룡 미술관은 우리에겐 ‘이타미 준’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한 재일 한국인 건축가의 인생과 철학을 담은 공간입니다. 유동룡의 딸이자 건축가이기도 한 유이화가 직접 설계했는데, 그 모습이 생전에 아버지가 남긴 작품들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자연과의 조화, 지역의 풍토와 역사를 고민하며 아날로그 건축을 고집했던 유동룡의 40년 업적을 회고하고 정리하는 아카이브 전시가 올 가을까지 이어질 예정인데요. 1970년대 초기작부터 말년의 제주도 프로젝트까지 그 모든 여정을 <바람의 건축가, 이타미 준>전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유동룡의 초기 작품이 원시적이고 원초적인 자연의 힘을 담았다면, 2000년대 이후 제주도를 만나면서부터는 제주의 풍토와 완전히 동화되어 한결 따스하고 평온한 건축 세계를 선보입니다. 그가 제주 곳곳에 설계한 작품들은 건축이 자연에서 홀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가진 고유의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것이어야 한다는 그의 강한 믿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매번 자연을 향한 존경의 마음으로 임했을 유동룡의 고민과 작업의 흔적들이 건축 모형과 사진, 글, 드로잉, 영상 등의 형태로 미술관 1층, 2층에 걸쳐 소개됩니다.

먼저 1층 라이브러리에는 화가와 시인으로도 활동한 유동룡의 저서와 작품집을 모아 놓은 아카이브와 함께 도쿄 롯폰기에 위치해 있었던 그의 아틀리에 ‘먹의 집’을 연상하게 만드는 ‘먹의 공간(Hermitage of Ink)’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이곳에 사용된 현무암, 나무, 패브릭 등의 재료들은 모두 먹색으로 채워졌습니다. 그리고 그의 첫 작품이자 그가 어머니를 위해 완성한 현대식 주택도 감상할 수 있는데요. 사각형과 원형 공간이 맞물린 독특한 형태의 구조로, 당시 일본 최고의 건축 사진가였던 무라이 오사무가 촬영한 사진자료들과 함께 공개하고 있습니다.

풍 미술관, 2006 출처: https://itamijunmuseum.com/

2층 전시실에서는 본격적으로 그의 건축 세계에 빠져볼 수 있는데요. 유동룡의 서재를 재현한 특별 공간을 별도로 구성했고, 이어서 포도호텔, 방주교회, 수·풍·석 뮤지엄, 롱섀도우 미술관, 핀크스 퍼블릭 골프 클럽하우스, 두손미술관, 비오토피아 등 유동룡과 제주의 오랜 인연을 보여주는 작품들에 관한 기록물이 나란히 전시 및 상영되고 있습니다. 제주도 이외에도 그가 설계한 국내 첫 작품인 충남 아산의 온양미술관(현 구정아트센터), 경북 영천의 오펠 골프 클럽하우스, 서울 오보에힐스 타운하우스 등의 프로젝트들을 두루 만나볼 수 있습니다. 2층에 마련된 작은 영상실에서는 40여 년에 걸친 유동룡의 건축 여정을 촘촘히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와 다양한 영상 콘텐츠들이 관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합니다. 문소리, 정우성 등 배우들과 가수 에스파가 참여한 오디오 도슨트도 또다른 즐길거리를 선사합니다.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공간을 가득 채운 거장의 청춘 – 뮤지엄 산 개관 10주년 기념전 <안도 타다오- 청춘>

강원도 원주시 산자락에 위치한 뮤지엄 산은 2013년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설계로 탄생한 문화예술공간입니다. ‘SAN’이라는 이름도 공간(Space), 예술(Art), 자연(Nature)을 결합해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요. 지난 4월 1일부터 이곳에서는 반세기에 걸친 안도 타다오의 건축 세계를 총망라한 대규모 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안도가 처음 오사카에 건축연구소를 설립한 1969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를 대표하는 작품들에 관한 원본 드로잉과 스케치, 모형 등 총 250여 점의 기록물과 관련 영상들을 함께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청춘(Youth)’입니다. 전시관 입구에서부터 청춘을 상징하는 커다랗고 푸른 사과가 관객들을 맞이하는데요. 80을 넘긴 그에게 청춘은 사무엘 울만의 시처럼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의미하는 것이며,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 그 탁월한 정신력’일 것입니다. 언제나 새로운 건축을 향한 강한 신념과 끊임 없는 도전을 이어온 안도 타다오의 삶을 하나의 단어로 명료하게 정의하는 가운데, 전시는 다시 네 개의 섹션으로 나뉘어집니다.

1부 ‘공간의 원형’에서는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초기 대표작, 스미요시 주택을 비롯해 고베의 소규모 아파트 단지인 롯코 집합주택 등의 도시게릴라 주택 설계 관련 자료들과 함께 그가 설계한 종교 건축물인 빛의 교회, 물의 절 등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2부 ‘풍경의 창조’에서는 지역 공동체와의 협업으로 완성한 창의적인 공간들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그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은 30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완성하고 있는 예술의 섬, 나오시마 프로젝트(Naoshima Project)입니다. 이에 더해 미국의 포트워스 현대미술관, 일본 나카노시마 어린이 책 숲 도서관, 붓다의 언덕 등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3부 ‘도시에 대한 도전’ 섹션에 다다르면 도시화와 산업화에 따른 시대 변화 속에서 건축의 공공성 회복을 위한 그의 노력과 고민들을 엿볼 수 있습니다. 여기엔 상하이 폴리 대극장이나 퓰리처재단 미술관과 같은 완성작도 있지만 영원한 미실행작으로 남게 된 뉴욕 그라운드 제로 프로젝트 계획안도 함께 공개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4부 ‘역사와의 대화’에서는 전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던 역사적 건축물의 새로운 변신 혹은 재탄생의 과정을 목격할 수 있는데요. 파리의 오래된 곡물거래소를 미술관으로 과감하게 바꾼 부르스 드 코메르스(Bourse de Commerce), 17세기 베네치아의 세관 건물을 개조한 푼타 델라 도가나 미술관(Punta Della Dogana Contemporary Art Center)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 밖에도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안도 타다오의 첫 번째 개인전인 만큼 그가 설계한 국내 작품들을 소개하는 공간도 별도로 마련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완공된 그의 최신작 LG아트센터를 포함해 제주 본태박물관, 여주 마음의교회 설계 도면을 안도가 제공하고, 이를 국내 건축학도들이 모형으로 제작한 결과물을 함께 전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또다른 대표작인 오사카의 ‘빛의 교회’를 축소한 파빌리온 ‘빛의 공간’도 뮤지엄 산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도시 건축의 미래 그리고 새로운 농촌 주택의 가능성 – 클레이아크 김해 미술관 파빌리온 시리즈 <건축가 민성진, 기능과 감각의 레이어링>

언제나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시도들을 통해 새로운 건축적 가치를 창조해온 건축가 민성진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주목받는 건축가 중 한 명입니다. 그가 설계한 힐튼 남해 스파&골프 리조트, 아난티 클럽하우스&펜트하우스 서울, 금강산 골프&온천 리조트, 아난티 코브 부산 등의 대표작들은 우리나라 리조트 건축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으며 대단한 반응을 일으켰는데요. 국내 최초 건축 및 도자 전문 미술관인 경남 김해의 클레이아크 미술관이 지난해부터 시작한 ‘파빌리온 시리즈’의 첫 번째 주인공으로 민성진을 선택한 것도 그가 지난 28년 동안 보여준 도시와 건축의 새로운 가치 창출에 대한 성과를 인정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출처: https://www.clayarch.org/

동시대 아시아 건축가의 건축적인 시도와 아카이브를 선보이고자 시작된 이번 전시는 <건축가 민성진, 기능과 감각의 레이어링>이라는 주제로 열리고 있습니다. 그간 현대 도시 건축이 안고 있는 복합적인 문제들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며 다양한 시도를 해왔던 그가 이번에는 그 폭을 넓혀 다가오는 미래의 농촌 주택에 대한 새로운 주거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동시에 도시와 자연, 공공과 민간을 오가며 지역의 특수성이나 사회적 이슈를 건축적으로 고민해온 그가 어떻게 그 문제들을 풀어왔는지 살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클레이아크 미술관의 메인 전시관인 돔하우스 중앙홀에 들어서면 실제 크기로 만들어진 ‘메타 팜 유닛(Meta-Farm Units)’을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됩니다. 유리 온실 재배 시스템과 미래형 농촌 주택을 결합시킨 새로운 주거 디자인을 제시한 것인데요. 100% 유기농 재배가 가능한 첨단 온실 농업기술(아쿠아 포닉스)을 적용한 모델로, 온실은 균일한 상품을 생산하는 것은 물론 거주를 위한 온·습도 조절과 단열, 방수까지 원활하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택은 2개의 동으로 분리해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으로 기능을 나누고, 다시 두 영역을 외부 공간과 연결하는 공간이 거실(대청마루)이 되는 형태입니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유닛을 추가하거나 조합해 집의 규모를 확장할 수도 있는, 매우 혁신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농촌의 라이프 스타일을 담은 건축을 경험하게 됩니다.

출처: https://www.clayarch.org/

바로 옆 갤러리 1에서는 그가 이끄는 SKM 건축사사무소가 한국 사회의 시의적 주제를 탐구해온 그동안의 수많은 프로젝트들 가운데 15개를 선별한 대표 작업 아카이브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개별 건축물의 디자인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이들 프로젝트에 그가 어떻게 대응하고, 또 어떤 과정을 거쳐 결과물을 완성했는지 짚어보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고 합니다. 그의 대표작 아난티 시리즈를 비롯해 동탄 메타폴리스, 세스코 아카데미, 그리고 2026년에 완공 예정인 한국일보 용산사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프로젝트 안에서 발견하는 ‘기능과 감각의 복합화’ 과정을 살펴보는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7월전시, 민성진, 안도타다오, 이타미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