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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 건축물의 집결지, 가나자와에서 만난 ‘도시를 살린 건축’

2023-12-21

신흥 건축물의 집결지, 가나자와에서 만난 ‘도시를 살린 건축’

인구 46만 명의 일본 대표 소도시인 가나자와 시.
이곳에는 일본에서 최근 가장 뜨는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히는 이시카와현립도서관을 비롯해 일본에서 가장 방문객이 많이 찾는 미술관과,  일본 내 다양한 건축상을 수상한 도서관 등 내로라하는 신흥 건축물들이 자리하고 있는데요.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이곳을 새로운 문화예술의 도시로 탈바꿈시킨 ‘가나자와를 살린 건축물’들을 소개합니다.

 

공간을 압도하는 웅장한 북 콜로세움을 만나는 곳, 이시카와현립도서관

2022년 7월 가나자와 대학 공학부 부지에 지어진 이시카와현립도서관은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으로 꼽히며 세간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갖고 있던 룰을 깨는 새로운 형식을 만들고 싶었다”는 건축가 센다 미쓰루의 말처럼 이곳은 일반적인 도서관과 달리 그 외형이나 내부 디자인이 특이한데요. 외관은 책장을 넘기는 모양을 형상화해서 만들었으며, 내부는 1층부터 4층까지 뻥 뚫린 로마 원형극장 형태를 하고 있어 ‘북 콜로세움’이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곳은 일본 현립도서관 중 최대 규모(연면적 2만2,000㎡)로 지어졌는데요. 높이 15m, 둘레는 160m에 달하는 이 도서관에는 30만 권의 책이 채워져 있고, 서가 사이사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500여 개의 열람석 의자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시카와 현은 사람들이 오래 머물러도 편한 도서관, 가고 싶은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처음부터 좋은 가구를 써야한다’는 철칙을 가지고 유명 가구 디자이너인 가와카미 모토미에게 의뢰했고, 그는 도서관에 자신의 대표작인 세오토 의자, 임스체어 시리즈, 아르네 야콥슨의 작품을 포함해 100가지 다양한 종류의 의자와 소파로 채워 넣었습니다.

6년간 150억 엔을 들여 만든 이시카와현립도서관은 최근 일본도서관의 트렌드인 ‘체재형 도서관’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체재형 도서관은 도서관이 책을 빌려가는 곳만이 아닌 편하게 대화하고, 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요. 실제 이곳에서는 주민들이 도시락을 싸와 편하게 먹고 대화하면서 독서를 즐긴다고 합니다. 또 독서 관련 프로그램 외에도 클래식 콘서트를 여는 등 지역 시민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원형극장 형태의 도서관을 폭넓은 용도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곳은 1879년 설립된 작은 현립도서관이었는데요. 노후화 및 내진 강도 부족의 이유로 2021년 11월 폐관 후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여 새롭게 지어졌습니다. 이시카와 현은 저출산과 고령화로 지방 경제가 침체되는 가운데에서도 막대한 돈을 들여 도서관을 지었는데요. 그 이유는 도서관이 소멸위기를 맞은 지방경제를 되살리고 인구감소를 늦추는 수단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이시카와 현 문화진흥과 전문위원은 이시카와현립도서관을 두고 ‘지역 축소를 막기 위한 최후의 도전’이라 말하기도 했죠. 도서관의 틀을 깨는 건축 디자인과 가구 배치 등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이시카와현립도서관은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개관 5개월 만에 53만 명이 방문하며 새로운 가나자와의 명소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케이크 상자를 닮은 우미미라이도서관, 가나자와 시의 랜드마크가 되다

가나자와 시 서부 주택가에는 커다란 박스를 바닥에 덮어놓은 것 같은 모습으로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흰색 건물이 우뚝 세워져 있는데요. 가로, 세로45m, 높이 19m의 총 3층 건물로 이루어져 있는 이 건물은 바로 ‘바다의 미래’라는 뜻을 가진 우미미라이도서관입니다. 실러캔스 K&H 아키텍츠의 일본인 건축가 구도 가즈미와 호리바 히로시가 디자인한 이 도서관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케이크 상자’라는 콘셉트를 가지고 설계되었는데, 건축가는 이러한 독특한 건축 양식뿐만 아니라 특히 사용자를 위한 쾌적하고 편안한 도서관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고 합니다.

도서관의 가장 큰 특징은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것처럼 보이는 외관인데요. 외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물방울 무늬의 정체는 바로 6,000개의 원형 창문입니다. 실내에서 사용자가 아늑하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독서에 최적화된 자연광을 받아들일 수 있는 모양, 크기, 배치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하고 실험한 결과, 20cm, 25cm, 30cm 세 가지 원형 창들을 규칙적이면서도 미묘하게 엇갈려 배치한 디자인이 탄생되었습니다. 이 덕분에 도서관 내부에 들어가 보면 각각 크기가 다른 구멍으로 빛이 들어오는 모습이 바닷속에서 피어오르는 공기방울 같아 수족관이나 바닷속에 있는 듯 한 평온한 느낌을 준다고 하네요.

열람실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면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바로 천장에 조명이 달려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낮에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나 특별 제작한 책장의 조명, 테이블 스탠드 조명(가구 디자이너 후지에 가즈코 디자인)으로 필요한 조도를 확보하고 있어, 최소한의 조명을 활용한 친환경 도서관으로도 각광받고 있습니다. 2층에는 40만 권의 책이 배치되어 있지만 2층에서부터 3층까지 뚫려있는 실내 층고가 12m에 달하다 보니 답답함 없이 시원한 개방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특한 표현으로 공공건축의 새로운 매력을 구현한 우미미라이도서관은 일본도서관협회건축상 (일본도서관협회), 일본건축가협회상(일본건축가협회) 등 일본의 건축 관련 수상 외에도2011년 영국BBC  ‘세계 슈퍼도서관베스트4’, 미국 문화정보사이트 플레이버와이어닷컴 ‘세계의 가장 아름다운 공공도서관 25, 미국여행가이드 포더스 ‘세계의 매력적인 도서관 베스트20’에 선정되며 국내외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경계를 허물고 조화를 이루다, 21세기 미술관

ⓒ WATANABE Osamu

2004년 10월에 문을 연 가나자와21세기 미술관은 그 이름에 걸맞게 다른 미술관과 다른 건축양식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새로운 문화 창조’, ‘새로운 지역 진흥 창출’이라는 목적으로 개설된 미술관인 만큼 지역사회와 공생하며 활력 넘치는 공원과 같은 미술관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는데요. 이에 건축가들은 어느 방향에서든지 미술관에 방문할 수 있도록 113m에 달하는 원형으로 디자인하고, 외벽이나 건물 벽면 대부분에 유리를 사용해 다른 공간에 있지만 유리를 통해 서로의 모습이나 움직임을 볼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미술관은 관람 편의를 위해 의도적으로 동선을 만드는 게 일반적인데요. 이곳은 앞뒤가 없는 원형이다 보니 관람객들은 어디든 편한 대로 드나들며 원하는 대로 각자 다양하게 관람을 즐길 수 있습니다.

설계를 담당한 일본 유명 건축가인 세지마 카즈요와 니시자와 류에는 2010년 21세기 미술관으로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니시자와 류에는 뉴욕의 문화성을 되찾아준 건물이라고 극찬 받는 뉴뮤지엄을 설계한 건축가로, ‘열린 건축(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거리에도 열린 건축, 거리와 관계하는 건축, 들어가기 쉽고 나오기 쉬운 건축)’이라는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다양한 작업을 전개해왔는데요. 소통과 연결을 중시하는 그녀의 건축 철학이 이 건물에도 잘 녹아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WATANABE Osamu

이렇게 투명성과 개방성, 다양성이라는 디자인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 21세기 미술관은 일본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이 방문하는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개관 8개월 만에 100만 명을, 2017년에는 누적 입장객 수 2,000만 명을 돌파한21세기 미술관 덕분에 주변 상가 매출이 증가하고 백화점이나 음식점, 패션가 등 유동인구 또한 크게 증가했다고 하는데요. 21세기 미술관은 323억 엔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창출하며 도심활성화의 중심축으로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창조적 디자인의 건축물들 덕분에 조용했던 역사도시에서 사람들이 북적한 문화관광지가 된 가나자와 시. 건축물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것을 보니 스페인의 빌바오처럼 혁신적인 건축물 하나가 도시를 살리고, 도시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됩니다. 아름다우면서도 실용적인 건축물들을 통해 새로운 문화예술의 도시로 변신에 성공한 가나자와 시나 빌바오처럼 우리나라에도 도시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서 도시의 혁신을 돕는 멋진 건축물들이 많이 생겨나길 바라봅니다.

 

가나자와, 일본건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