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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미래

오래된 건물들의 새로운 미래

2023-04-11

오래된 건물들의 새로운 미래

우리나라는 1960년대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며 수많은 공동주택과 상업용 건물들을 건설해왔습니다. 특히, 1980~1990년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많은 건축물이 들어섰죠. 이때 지은 건물들은 이제 ‘노후 건축물’이 되어갑니다. 일반적으로 사용승인 후 30년 이상 지나면 노후건축물로 분류하는데, 국내의 경우 2022년 12월 기준 전체의 41%가 노후 건축물입니다.

 

도시의 거대한 골칫거리, 노후 건축물

도시 발달에 따라 쉼 없이 들어서던 건물들이 노후 건축물이 되면서 철거 및 재건축 역시 증가하고 있습니다. 대규모 건설에 많은 자원과 에너지가 소비되듯이 건축물을 해체하거나 재건축을 할 때도 막대한 건설폐기물이 배출될 수밖에 없는데요. 건설폐기물은 모든 산업폐기물 배출량의 약 50%를 차지하며 불법으로 투기 되는 경우도 매우 많아 환경오염의 주 요인이 됩니다. 토지에 매립되면 토양오염을 일으키고 저감시설 없이 보관되면 비산먼지를 발생시켜 2차 환경오염의 원인이 되는 것이죠.


쓰임이 다해 쓰레기로 분류되지만 사실 건설폐기물은 천연자원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원래 모습은 산과 땅에서 비롯된 흙, 모래, 자갈, 석회석 등이기 때문이죠. 이처럼 근본적으론 유해성이 적고 적정한 처리를 통해 재활용할 수 있다는 건설폐기물의 긍정적 특성이 최근에는 ‘건축물 재활용’ 논의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허물지 않고 다시 짓지 않아도 새롭다! 건축물 재활용

건축물 재활용은 노후건축물을 철거하거나 새 건물을 짓기보다 주변 환경과 어울리는 방식으로 새롭게 바꿔 생활 환경을 개선하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건축물 재활용을 통해 환경오염과 파괴를 막을 수 있고, 더 나아가 인간과 자연의 관계 회복을 이끄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내구 연한이 다한 노후건축물의 증가와 이를 활용하기 위한 고민은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진행중입니다. ‘건축물 재활용’의 다양한 사례를 살펴보고, 용도 폐기된 건물들이 탈바꿈한 ‘신축보다 새로운 미래’를 확인해봅니다.

 

파리 한복판 기차역의 우아한 변신 ‘오르세 미술관’

출처: WIkimedia Commons

국립 오르세 미술관(Musee d’Orsay)은 원래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앞두고 오를레앙 철도회사가 관광객 유치를 위해 철도역 겸 호텔로 지은 건물입니다. 1930년대 중반까지 프랑스 서남부를 잇는 최고의 네트워크였고, 부속건물이었던 호텔은 주요 회의나 행사 등이 자주 열리며 수많은 여행객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었죠. 하지만 당시 현대적으로 설계됐던 오르세 역도 새로 개발된 열차와 플랫폼의 규격이 맞지 않게 되면서 1939년부터는 통근열차로만 이용되었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오르세 역을 놓고 은행, 호텔, 국영항공사 본사 등 신축 계획이 검토되며 철거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1971년 파리의 건축정책이 급변하면서 보존과 활용방안이 논의되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1978년 오르세 역을 ‘역사 기념물’로 지정했고, 이후 파리시위원회를 조직하여 역사(驛舍)를 재활용해 미술관으로 재구성하는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 Jean-Pierre Dalbéra

1986년 12월 9일, 드디어 대중에게 개방된 오르세 미술관은 기차역의 플랫폼과 돔 천장 등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개조되어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큼 아름다운 건축물로 평가됩니다. 오늘날 루브르 박물관, 퐁피두 센터와 함께 ‘파리 3대 미술관’으로 손꼽히며 연간 360만 명 이상이 방문하고 있는 파리 필수 관광코스입니다.

 

베를린 도심 속 친환경 오아시스 ‘우파 파브릭’

출처: ufaFabrik

독일 베를린 서남쪽 포츠담 템펠호프에 있는 우파 파브릭(ufaFabrik)은 1920년부터 40여년간 영화제작소로 활용되던 곳입니다. 그러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면서 영화작업에 어려움을 느낀 영화사는 1961년 서독으로 이전했죠. 영화사가 이전하자 당시 서베를린 시는 1만8000㎡에 이르는 부지를 매입하고 우편사업소로 재활용하려 했지만, 제대로 이행되지 않아 이곳은 빈 공간으로 남겨졌습니다. 30년 가까이 방치됐던 이곳을 1979년부터 젊고 가난한 예술가와 숙련공들이 무단 점거하기 시작했는데요. 처음엔 우파 파브릭을 점거한 이들을 서베를린 시에서 탐탁지 않게 생각했지만, 얼마 뒤 단기 임대계약을 체결하고 거주를 허가하여 상생의 길을 모색했습니다. 안정을 찾은 우파 파브릭은 주민들에게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생태마을 공동체’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86년에는 마침내 베를린 시와 50년 장기 임대계약을 체결하고 현재 30여 명의 예술인과 명장들이 거주하고 있죠. 영화제작소로 사용되던 7개의 건물과 부지를 재활용해 공동체 자립센터(NUSZ)와 야외공연장, 체육관, 주민센터, 어린이용 농장 및 서커스학교, 유기농 식품점 등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 태양열을 이용해 전기를 만들고 빗물을 재활용해 식수로 사용하는 친환경 마을이기도 합니다.

 

나이로비 빈민가에 다시 세운 교육시설 ‘키베라 햄릿 학교’

® Iwan Baan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는 아프리카 최대 빈민가인 ‘키베라’가 있습니다. 이곳에는 기부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키베라 햄릿 학교(Kibera Hamlets School)가 있는데요. 이 학교의 현재 건물은 임시로 지어진 가건물을 해체하여 재배치한 것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네덜란드의 사진작가 이완 반(Iwan Bann)이 극도로 열악한 키베라 햄릿 학교의 구 건물을 방문한 뒤 스페인의 건축사무소 셀가스카노(SelgasCano)에 연락한 것에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셀가스카노는 뉴욕의 건축사무소 헬로우에브리싱(helloeverything)과 협업하여 덴마크 코펜하겐에 위치한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의 임시 파빌리온 설계를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이완 반은 셀가스카노 측에 키베라 햄릿 학교의 현 상황을 전하고 유치원부터 초∙중등 교육을 제공하는 12개의 교실 프로젝트를 제안한 것이죠. 이완 반의 제안을 수락한 셀가스카노와 헬로우에브리싱은 임시로 쓰인 건물을 해체하여 재배치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했습니다.

마분지, 스케폴딩, 폴리카보네이트 등으로 만들어진 구조물은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의 ‘2016 여름 특별전’이 끝나고 선적 컨테이너에 포장되어 케냐로 운송되었습니다. 셀가스카노는 모듈식 비계시스템(레고처럼 조립 가능한 방식)을 활용하여 20명의 현지 노동자와 함께 키베라 햄릿 학교 재건축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죠. 이 학교는 현재 600여명의 아이들이 공부하는 학교이자 방과후 및 주말 행사를 개최하는 지역사회의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석유로 채웠던 ‘비밀’ 기지, 문화로 채우고 활짝 ‘마포문화비축기지’
국내의 경우, 노후한 공공 건축물을 전시관이나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여 지역주민들의 문화욕구를 충족하고 다양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사례들이 있었습니다. ‘마포문화비축기지’도 그 일부입니다.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의 전신 ‘마포석유비축기지’는 1973년 4차 중동전쟁의 여파로 시작된 1차 석유파동을 겪으며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지은 산업시설입니다. 1976년부터 1978년까지 아파트 5층 높이에 둘레가 15~38m나 되는 탱크 5기가 들어서 휘발유, 경유, 등유 등 6907만 리터를 저장했다고 합니다. 이는 서울시민이 한 달간 사용할 양이자 자동차 400만대가 주유할 양이라고 하네요. 하지만 2002 한일월드컵 개최가 결정됨에 따라 서울월드컵경기장 500m 이내의 위험 시설로 분류된 마포석유비축기지는 2000년 12월 폐쇄됐습니다. 1급 보안 시설로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었던 이곳은 폐쇄된 이후에도 대중의 출입을 제한했습니다. 베일에 싸인 이곳은 2013년, 서울시가 버려진 시설부지를 활용하고자 하면서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모아 470억원가량이 투입된 이곳은 축구장 22개와 맞먹는 규모(면적 14만22㎡)의 도심 속 생태문화공간 ‘문화비축기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기지 내의 모든 건물은 친환경 건축방식으로 지어졌고, T0부터 T6까지 7개 공간으로 나뉩니다. 카페와 에코라운지 등 휴식공간을 비롯해 문화마당 및 실내외 공연장, 기획 및 상설전시관 등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하여 시민을 향해 열린 것이죠.

 

음악이 울려 퍼지는 그 옛날 시멘트 저장고 ‘여수 스카이타워’
여수세계박람회(여수엑스포) 현장에는 인근 바다와 여수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스카이타워가 있습니다. 높이 67m의 타워 외부에는 하프의 형상을 한 거대한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돼 있는데, 이는 반경 6㎞까지 소리가 울려 퍼져 ‘세계에서 가장 큰 소리를 내는 파이프 오르간’으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습니다.(2011년 10월 21일 기네스북 등재) 얼핏 뱃고동과 흡사한 음색으로 박람회의 개폐장 시간을 알리기도 하고, 정시에는 가요, 팝송, 가곡 등을 연주하기도해 모든 관람객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스카이타워의 현재 모습만 알겠지만, 이 건물은 원래 일명 ‘사일로(silo∙저장탑)’라 부르는 원통형 시멘트 저장시설이었습니다. 동양시멘트(현 삼표시멘트)가 1980년에 지어 2008년까지 사용했던 산업 시설이었죠.

사일로 주변이 행사장으로 결정되자, 사일로를 철거하고 새롭게 전시장을 조성하자는 계획도 있었지만, 엑스포 조직위원회에서는 이를 산업유산으로 보고 예술성과 독창성을 갖춘 작품으로 탈바꿈하고자 했습니다. 이후 9개국 180개 팀이 참여한 재활용 국제현상공모전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현재의 스카이타워를 만들었습니다. 구 사일로 1호기 내부는 남해안의 절경을 보여주는 영상관으로, 구 2호기 내부는 해수담수화시스템을 설치해 관람객들이 담수화 과정을 직접 보고 정수된 물을 시음할 수 있도록 운영되고 있으며 맨 꼭대기에는 전망대가 있습니다.

낡고 오래되어 용도를 잃은 건축물은 비록 그 기능을 다했더라도 지역공동체의 역사와 정체성,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노후건축물의 보이지 않는 가치를 발굴하고 제대로 살려내어 재활용한다면 지역 전체에 새 숨을 불어넣는 계기가 될 것이라 말합니다. 또한 증축이나 개축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공간’을 개방하여 지역 정체성과 주민 정서를 반영한 활용방안을 찾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골칫거리로만 간주됐던 노후 건축물의 친환경 변신 프로젝트 ‘건축물 재활용’이 사람과 도시의 표정을 어떻게 바꿔 나갈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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