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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세대 건축가들의 유산이 새로운 시대를 만났을 때

2023-04-06

대한민국 1세대 건축가들의 유산이 새로운 시대를 만났을 때

안토니 가우디, 르 코르뷔지에, 미스 반 데어 로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안도 다다오. 우리가 ‘건축가’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름들이 아닐까 싶은데요. 우리나라에도 현대건축의 거장으로 불리며 명성을 떨쳤던 건축가들이 있습니다. 바로 대한민국 1세대 건축가 김중업과 김수근, 그리고 김종성입니다. 이들은 해방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서울 시내 곳곳에 자신의 건축 철학이 오롯이 담긴 작품들을 여럿 남겼습니다. 그렇다면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그들이 설계한 건축 유산들은 어떤 모습으로 이 도시를 지키고 있을까요? 그리고 동시대의 사람들은 그들의 작품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르 코르뷔지에의 제자이자 한국 현대건축의 선구자

창조하는 사람이 모두 고독하지만 건축가는 더 고독해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꿈을 팔아야 하니까요.
잘 받아주지 않으면 설득을 해야 하고요.”
건축가 김중업(1922~1988)

일본 요코하마에서 건축을 전공한 후 프랑스에서 세계적인 건축 명장이자 모더니즘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사사를 받고 1956년 귀국한 김중업은 서구의 근대건축과 한국적인 미를 조화시킨 독창적인 작품들을 완성하기 시작합니다. 스승의 영향을 받아 당시 국내에서는 생소했던 필로티 구조와 자유로운 입면, 옥상정원, 아파트와 같은 형태의 대단위 공동주택 등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건축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표작으로는 건국대학교 도서관(현 언어교육원(1956년)), 부산대학교 본관(현 인문관(1956년)), 유유산업 안양공장(현 김중업 건축박물관(1959년)), 주한 프랑스 대사관(1962년), 삼일빌딩(1969년), KBS 국제방송센터(1985년), 올림픽공원 세계평화의 문(1988년) 등이 있습니다.

이 중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주한 프랑스 대사관은 콘크리트를 활용해 한국 전통 한옥 특유의 날렵하고 우아한 지붕 곡선을 그대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당시 극찬을 받았던 작품입니다. 지금까지도 한국 최고의 현대 건축 명작으로 꼽히며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데요. 한국의 얼을 담고, 프랑스다운 우아함을 표현하고자 했던 건축가의 강한 의지가 건물 곳곳에서 느껴집니다.

몇 년 전 프랑스 대사관 측이 노후화를 이유로 김중업이 설계한 두 동의 건물 가운데 하나인 사무동을 헐고 다시 짓겠다고 발표하면서 이에 반발하는 건축계와 정면으로 부딪히는 일도 있었는데요. 결국 우리 정부까지 나서 건물 원형을 보존해 줄 것을 요청했고, 대사관 측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상황은 일단락되었습니다.

여러 사람의 힘으로 지켜낸 김중업의 주한 프랑스 대사관은 2021년부터 리모델링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기존 건물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돋보이게 하는 방향으로 말이죠. 이를 위해 본관과 사무동은 원형 그대로 유지 또는 복원하고, 업무동 성격의 타워동과 문화예술 행사 목적의 갤러리동을 추가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리모델링 작업 과정에서 그간 수차례의 보수공사를 거치며 약해졌던 콘크리트 지붕의 은은한 곡선미까지 다시 살려낸다고 하니 그 완성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1969년 김중업이 설계한 종로구 관철동 삼일빌딩은 또 한번 우리나라의 건축 역사를 새롭게 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바로 이 건물이 대한민국 고층 오피스 시대를 연 마천루의 효시였기 때문입니다. 지하 2층, 지상 31층 규모에 높이가 114m에 달하는 삼일빌딩은 당시에는 매우 드물었던 커튼 월(curtain wall) 공법으로 지어졌고, 1978년 서울 롯데호텔 본관이 완공되기 전까지 우리나라 최고층 건물이었습니다. 50여 년의 시간을 견뎌낸 삼일빌딩 역시 지난 2020년 리모델링을 완료했는데요. 1970년대에 구축된 철골 보와 콘크리트 기둥을 그대로 유지하고, 기존의 상징적인 입면 구성 역시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또한, 빌딩 내부로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팔각형의 노출 콘크리트가 눈에 들어오도록 배치했는데요. 이는 삼일빌딩이 처음 지어졌을 당시의 기둥 원형을 그대로 남겨둔 것으로, 김중업이 남긴 건축 유산의 의미와 상징성을 존중한 후대의 선택이라고 하겠습니다. 삼일빌딩은 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돼 있기도 합니다.

 

건축을 예술의 경지에 올려놓은 천재 건축가

건축가는 예술가나 전문가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이를 건축에 반영해야 하는 일반인이며,
건축은 건축가와 대지가 대화를 나눈 결과입니다.”
건축가 김수근(1931~1986)

한국건축사에 가장 중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로 손꼽히는 건축가 김수근은 서울대 건축과를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서 다시 건축학을 전공, 석사학위까지 마친 후 1961년 귀국합니다. 이때부터 그의 전성기는 곧바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30대에 이미 정부 주도의 대형 프로젝트들을 연이어 맡아 설계하면서 독보적인 명성을 쌓았기 때문입니다. 이 무렵을 대표하는 작품으로는 남산자유센터(1963년), 국립부여박물관(1967년), 세운상가(1968년) 등이 있으며, 이후에도 88서울올림픽의 주무대가 된 주경기장(현 잠실종합운동장)과 체조경기장, 수영장 등을 설계했습니다.

그가 40대에 접어든 1971년에 설계한 공간 사옥은 한국 현대건축사의 정신과 문화를 그대로 담아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른 건물입니다. 인근의 창덕궁과 주변 한옥들과의 조화를 위해 기와 느낌의 전돌을 주재료로 사용했고, 인공의 건축물과 자연의 상생을 상징하는 담쟁이로 외벽 전체를 장식했습니다. 다소 폐쇄적으로 보이는 외관과는 달리 한옥의 구조를 도입한 내부 공간은 스킵 플로어(Skip Floor) 방식을 도입해 가변적이면서도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하나의 건물이지만 보는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둘러싸여 있으나 막히지 않은 공간을 구현하고자 했던 김수근의 철학이 집약된 최고의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공간 사옥은 여러 차례의 증축을 거쳐 현재는 조선시대의 한옥과 고려시대의 석탑, 거기에 서양의 근현대적 양식을 상징하는 잿빛 벽돌 건물(구 사옥)과 투명한 유리 건물(신 사옥)이 함께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형태를 띠고 있어 더욱 인상적인 곳입니다. 하지만 이곳 역시 2013년 한바탕 심한 홍역을 앓아야만 했는데요. 공간건축의 부도와 법정관리, 사옥의 매각 추진과 공개 경매 유찰까지, 파란만장한 나날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김수근의 제자인 건축가 승효상을 비롯한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민간 매각에 반대하며 공간 사옥을 보존해줄 것을 주장하는 캠페인에 나서면서 이 문제는 대중적 관심사로 떠오릅니다. 그리고 철거의 위기에서 공간 사옥을 품어준 구세주는 바로 아라리오 그룹이었습니다. 현재까지도 건물의 원형은 그대로 유지한 채 공간에 어울리는 미술품들을 적절히 배치해 관람객들에게 유니크한 미술관 풍경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라는 이름으로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죠.

1970년대 이후 김수근이 서울에 남긴 수많은 건축유산 가운데 혜화동 대학로 일대를 둘러싼 붉은 벽돌의 향연- 아르코 예술극장과 아르코 미술관, 샘터 사옥(현 공공그라운드)은 ‘살아있는 김수근 갤러리’로 불리는 곳입니다. 건물 외벽이 모두 붉은 벽돌로 장식되어 있는데요. 벽돌을 반으로 잘라 사용하는 방식으로 벽체에도 많은 변화를 주었고, 특히 창 부분과 외벽에 입체적인 조적을 시도해 빛의 깊이까지 느낄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 특징입니다. 또, 한국의 좁은 골목길과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공간 구성으로 유명합니다.

현재까지도 대학로의 상징처럼 여겨지며 공연장과 미술관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아르코 예술극장과 아르코 미술관과는 달리, 샘터 사옥은 그 쓰임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맞물려 변형된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2017년 샘터사옥은 역사, 사회, 문화적으로 가치가 있는 부동산을 보존하기 위해 다수의 투자자와 벤처기업인들이 기금을 모아 운영되는 공간 투자 플랫폼, 공공그라운드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수익성이나 편의성을 이유로 의미 있는 건물들이 사라지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던 만큼 샘터 사옥은 기존의 형태를 유지하며 내부 공간은 다음 세대를 위한 새로운 실험과 교류의 공간으로 완전히 탈바꿈했습니다.

 

기본과 기능에 충실한 미시언 건축의 계승자

건축은 예술과 기술의 융합입니다.
예술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기술을 활용할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건축가 김종성(1935~)

김중업과 김수근이라는 두 거장의 뒤를 이어 20세기 한국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이름, 김종성은 미국 일리노이공대(IIT)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이후 20세기 모더니즘 건축의 선구자라 불리는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의 건축사무소에서 근무하며 그의 가르침을 받은 유일한 한국인입니다. 오늘날까지도 “Less is more”라는 미스의 이념을 표방한 건축 양식을 ‘미시언(Miesian)’ 스타일이라고 칭할 만큼 미스는 당시 건축계의 절대적인 존재였습니다. 이처럼 시대의 거장과 함께 굵직한 글로벌 프로젝트들을 수행하고, 모교인 일리노이공대 건축대학 교수와 학장까지 역임한 그를 국내로 완전히 불러들인 주인공이 바로 서울 힐튼호텔(현 밀레니엄 힐튼 서울)입니다.

1978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그에게 남산 자락에 들어설 힐튼호텔의 설계를 의뢰했는데요. 알루미늄 커튼월 마감, 아파트 6층 높이에 달하는 초대형 아트리움 등 당시 서양의 최신 기술과 디자인을 서울 한복판에 그대로 구현해낸 걸작이자 한국 건축가가 설계한 국내 첫 호텔이기도 합니다. 좌우 양쪽을 30도 정도 구부린 웅장한 병풍 형태의 외관은 마치 남산을 품어 안는 듯 위풍당당한데요. 40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이 호텔 역시 2021년 매각이 진행된 후 현재 사라질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지난해 12월로 호텔 영업은 이미 종료되었고, 향후 철거작업을 거쳐 새로운 호텔·오피스·상업 복합단지가 들어서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건축계의 거센 반발과 시민들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전해지는 가운데, 보존과 개발이라는 기로에 선 힐튼호텔이 과연 어떤 타협점을 찾게 될 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힐튼호텔 이후에도 김종성은 육군사관학교 도서관(1982년), 올림픽 역도경기장(1986년), 서울역사박물관(1997년), 아트선재센터(1998년), SK서린빌딩(1999년) 등을 설계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삼성동에 들어설 현대자동차그룹 통합사옥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의 설계 책임 건축가로 선임되어 또 한번 대형 프로젝트를 총괄하기도 했는데요. 그의 오랜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탄생할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에 벌써부터 많은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이렇듯 시대의 변화와 흐름에 따라 건축물 역시 새롭게 태어나거나 변화를 강요당하기도 하고, 또 영영 사라지기도 하는데요. 김종성이 종로 한복판에 설계한 반듯한 직사각형 모양의 SK서린빌딩은 설계 초기부터 오로지 오피스 빌딩이라는 기능에만 충실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원형 그대로를 유지할 수 있었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지상 36층 높이까지 직선으로 꼿꼿하게 올라간 빌딩의 외관은 화려함보다는 건축의 기본을 중시하는 김종성의 철학과 닮아있습니다. 뉴욕 맨하튼에 위치한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시그램 빌딩(1958년)이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제자의 SK서린빌딩 역시 변함없는 위용을 드러내며 21세기 서울의 풍경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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