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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미래

자연재해에 대비하는 생존과 기능의 건축

2024-02-29

자연재해에 대비하는 생존과 기능의 건축

지난 2023년 우리는 역사상 가장 더운 해를 경험했습니다. 유럽연합(EU)의 기후변화 감시기구인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연구소(Copernicus Climate Change Service: 이하 C3S)에 의하면 지난해 지구의 평균기온 상승 폭이 산업화 이전보다 1.48도 더 높은 것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세계기상기구(World Meteorological Organization: 이하 WMO) 역시 이와 비슷한 1.45도 높게 나타났다고 밝힌 바 있어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통해 전 세계 195개국이 약속한 상징적 마지노선인 1.5도에 거의 임박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전례가 없는 기후 변화의 기록들은 UN 사무총장 안토니오 구테헤스의 말처럼, 지구 온난화의 시대(Era of Global Warming)를 넘어 끓는 지구의 시대(Era of Global Boiling)가 현실로 다가왔음을 실감하게 합니다.

출처: 세계기상기구(WMO)

 

이러한 변화를 증명하듯 2023년 전 세계는 극심한 폭염뿐만 아니라 대규모 산불과 홍수, 지진, 폭설, 태풍에 이르기까지 이례적이고 치명적인 기상 이변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미국 하와이 마우이섬에서는 뜨거운 대기로 인해 대형 산불이 발생했고, 리비아에서는 역대급 대홍수로 1만4천여 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습니다. 유럽 역시 50도를 넘나드는 기록적인 폭염과 30cm가 넘는 폭설과 싸우며 혹독한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더 걱정스러운 건 앞으로도 상황이 크게 나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UN를 통해 2030년까지 기후변화 및 자연재해의 영향으로 약 3,760만 명 이상이 추가적으로 극심한 빈곤 상태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을 내놓았을 정도니까요.

 

이처럼 막대한 인명 피해와 경제적 손실을 가져오는 것은 물론, 우리의 평범한 일상마저 위협하는 자연재해에 맞서 최소한의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들어 다양한 방식의 건축적 대안들이 논의 또는 실행되고 있습니다. 각종 재해로부터 인간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지구 환경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또 다른 개념의 ‘지속가능한’ 건축이 제대로 역할을 해내려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재난적 상황에 대비해 가장 기본적이고 실질적인 생존과 기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출처: 미국 해양대기청(National Oceanic and Atmospheric Administration: NOAA)

 

잦은 홍수와 해수면 상승에 대비하는 건축, 네덜란드의 수륙양용 주택과 부유식 수상 아파트 단지

미국과학원회보(PNAS)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2100년까지 전 세계 1억8천만 명이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난민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전 세계 평균 해수면은 90년대 중반 이후 10cm 이상 상승했고, 지금도 연간 3.3mm씩 그 높이가 올라가고 있다고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밝히고 있습니다. 앞으로 10여 년 뒤에 불과한 2045년이 되면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30만 채 이상이 해마다 홍수 위험에 노출될 것이라는 과학적 통계 앞에서 우리는 어떤 대비를 할 수 있을까요?

국토의 절반 이상이 해수면의 높이보다 낮은 네덜란드에서는 오랜 시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그 동안은 대규모 둑을 건설해 바닷물의 범람을 막아왔지만 급격한 기후 변화 앞에 이마저도 여의치 않자 바닷물과 공존하는 새로운 방법을 도입했습니다. 겔더란트 지역의 마스보멜(Maasbommel)에 조성된 수륙양용 주택이 대표적인데요. 이곳에는 마스 강변을 따라 총 32채의 수륙양용 주택이 단지를 이루고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땅 위에 설치한 계선주(배를 매어두기 위해 세워놓는 기둥)에 단단히 묶어 고정해 놓았다가 홍수나 지구 온난화 등으로 인해 해수면이 상승하면 2.5m에서 최대 4m 높이까지 저절로 떠오를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네덜란드는 유럽 최초로 부유식 수상 아파트 단지인 ‘더 시타델(The Citadel)’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메인 갑판과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잠함 위에 60채의 아파트를 건설하는 구조인데, 여기에 사용된 콘크리트 구조물은 180개의 모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주차장은 물론 보트 선착장, 정원과 테라스 등의 고급 시설을 모두 갖추고 있는데요. 아파트와 대지를 다리로 연결해 언제든 이동이 가능하고, 수냉식 기술을 사용해 육상의 아파트에 비해 에너지 사용량도 25% 가량 줄였습니다. 이러한 형태의 수상 아파트 단지는 최근 홍수를 비롯한 기상 이변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유럽 전역으로 점차 확대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비슷한 시도는 홍수와 쓰나미 피해가 잦은 일본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일본의 부동산 개발업체가 제안한 ‘이치조 주택(Ichijo House)’은 홍수로 인해 수위가 1m 이상 초과하면 건물을 수면 위로 띄워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었습니다. 주택 내 모든 창문과 문에 방수 기능을 추가했고, 주방과 화장실, 욕조에도 물이 넘치는 것을 방지하는 특수 배수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이치조 주택을 포함해 일본에서는 2020년 이후 약 1천여 채 이상의 홍수 방지 주택이 건설되었다고 합니다.

 

강력한 태풍과 허리케인에 대비하는 건축, 공처럼 둥근 모양으로 강풍에 맞서는 미국의 돔 주택

지난해 8월, 미국 남동부에 위치한 플로리다는 최고 풍속 200km의 대형 허리케인이 관통해 막대한 피해를 입은 바 있습니다. 지붕이 통째로 날아가고, 나무가 통째로 뽑힐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가진 허리케인이었는데요. 미국의 비영리단체 퍼스트스트리트재단(First Street Foundation)이 발표한 보고서 ‘거세지는 바람(Worsening Winds)’에 의하면, 이와 같은 허리케인 피해가 이제는 플로리다 등의 미국 남부에 국한되지 않고 점차 북동부 지역까지 확대될 것이고, 향후 30년간 허리케인 관련 피해액이 현재보다 90%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기후변화의 징조들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는 혹독한 현실 앞에 미국은 특히 허리케인에 강한 건축에 대한 고민과 연구를 계속해오고 있는데요. 그 중 캘리포니아에서 선보인 커다란 돔 형태의 주택이 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미네소타에 위치한 내추럴 스페이스 돔스(Natural Space Domes)는 다양한 크기와 디자인의 돔 주택을 제작하는 기업인데요. 최근 그 수요가 2배 이상 크게 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이전 루이지애나, 뉴올리언스 지역을 휩쓸고 간 대형 허리케인에 의해 대부분의 집들이 전파되는 피해를 입었지만 유독 돔 주택들만 멀쩡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점차 확산된 것입니다.

실제로 돔 주택은 둥근 형태 때문에 기존 직사각형 주택에 비해 강풍으로부터의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고, 외부 표면적이 적어 더위나 추위 등의 외부 온도 변화에도 쉽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들어가는 에너지 비용 역시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엇보다 건물이 받는 무게와 압력이 건물 전체에 분산되므로 내구성이 좋은 편입니다. 이에 더해 최근에는 지붕이나 외벽에 강철이나 알루미늄 등의 내화성 소재를 사용해 허리케인뿐만 아니라 산불 같은 대형 화재에도 적극 대비하고 있습니다. 또, 작은 삼각형 모양의 소재를 엇갈리게 엮어 만든 지오데식 돔(Geodesic Dome) 주택은 일반 돔보다 더 많은 하중을 견딜 수 있기 때문에 태풍에도 강한 편입니다. 재난을 대비한 주택인 만큼 대부분의 돔 주택은 비상 급수 시스템과 자가 발전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비상시에 더욱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산불과 같은 대형 화재와 폭염에 대비하는 건축, 가장 원초적인 재료의 재발견, 흙 속에 묻힌 호주의 산불 방지 주택

지난해 5월부터 9월까지 이어진 캐나다의 산불은 국가재난 단계에 이를 정도로 매우 위험하고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한반도 전체 면적의 40%에 달하는 국토가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이는 캐나다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산불로 기록되었습니다. 또,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연구소가 발표한 통계 데이터에 의하면 2023년 한 해 동안 유럽연합 전역에서 발생한 산불로 인해 소실된 산림 면적이 약 90만ha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이는 서울 전체 면적과 비교해도 14배나 큰 규모입니다. 또한, 초대형 산불은 산림의 훼손 문제뿐만 아니라 탄소를 포함한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는 점에서도 치명적인 재해입니다.

미국, 캐나다, 아마존 등과 함께 잦은 산불 피해를 입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 호주에서는 화재로부터의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획기적인 주택 디자인을 추진해왔습니다. 그 중 호주산불건축협의회(Bushfire Building Council of Australia)로부터 최고의 디자인 혁신상을 수상한 산불 방재 주택은 아치형의 상단부 전체가 흙으로 덮여있는 독특한 구조입니다. 불에 취약한 목재는 전혀 사용하지 않은 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출입구와 창문, 베란다 등의 개구부를 제외한 모든 부분이 흙벽에 묻혀 안전하게 보호되고 있습니다. 화재 발생 시 화염이나 불씨가 들어올 만한 처마나 환풍구 등을 대부분 차단했고, 유리창은 내화 유리를 사용하였으며, 유리창 바깥에는 별도의 차폐막을 설치했습니다. 특히, 흙으로 덮인 부분에는 나무와 풀 등을 심어 탄소를 흡수하는 기능도 수행 가능하기 때문에 방재적 측면뿐만 아니라 생태학적으로도 지속가능한 주택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호주와는 조금 다른 형태지만 2021년 말 발생한 대규모 산불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는 미국 콜로라도에서도 흙을 이용한 새로운 주택 건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바로 가장 전통적인 건축 재료라 할 수 있는 진흙을 압축해 만든 블록으로 집을 짓는 것인데요. 주택의 형태가 아닌 재료를 변경함으로써 재난에 대비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진흙은 불길이 빠르게 번지지 않고 연기가 벽에 스며드는 양도 적어 화재가 발생했을 때에도 비교적 안전하며, 대피할 시간을 늘려준다는 장점 역시 가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폭염이 계속되는 여름에도 흙벽이 실내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주기 때문에 화재와 폭염 모두를 대비할 수 있는 주택이자 에너지 효율마저 뛰어난 주택입니다.

 

기후 위기의 시대, 불확실하고 유동적인 지구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건축은 이처럼 인간의 삶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직면한 다양한 종류의 자연재해에 적극적으로 대비하고 있는 새로운 건축적 대안과 기술들이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해줄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재해가 일어난 이후를 대비하는 일보다, 더 많은 재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막는 최선의 노력과 실천입니다. 수천 년에 걸쳐 인류가 지구 환경에 영향을 미쳐온 만큼 이제는 각 나라와 기업, 개인이 모두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지구의 가열화를 늦추는 일에 적극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기후위기, 방재건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