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건물의 구조와 형태, 공간을 설계하고 디자인하는 건축가(Architect)와 달리 조경가(Landscape Architect)는 건물 그 자체가 아닌 건물 외부의 경관이나 녹지 공간, 그리고 건물과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설계하는 전문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식물 생태 및 식생 디자인에 특화된 조경 디자이너(Landscape Designer)의 개념과도 분명한 차이가 있는데요. ‘Architect’라는 단어가 말해주듯 조경가는 외부 환경 조성을 위해 토지와 경관을 계획, 설계, 시공, 관리합니다. 즉, 도시와 건물, 건물과 건물 사이에 존재하는 외부 공간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대지의 지형과 주변 환경, 식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조화로운 아름다움과 생태적 흐름을 설계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최근에는 도시의 공원이나 광장, 가로수길 등 시민들을 위한 녹지 공간 조성에서부터 아파트 단지 내 산책로, 오피스 빌딩의 옥상 정원이나 휴식 공간을 포함해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친환경 도시 기반 시설을 구축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조경가의 역할과 범위가 점점 더 넓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에 힘입어 세계조경가협회(IFLA)와 미국의 문화경관재단(TCLF)은 각각 ‘제프리 젤리코상(Geoffrey Jellicoe Award)’과 ‘오버랜더 조경상(Cornelia Hahn Oberlander International Landscape Architecture Prize: 이하 오버랜더상)’을 제정하고, 각 협회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최종 수상자를 선정하고 있는데요. 역사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지만 이미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며 조경계의 노벨상 혹은 프리츠커상으로 불리고 있는 두 개의 상을 소개합니다.
먼저, 2019년 미국 문화경관재단(TCLF: The Cultural Landscape Foundation)에 의해 처음 제정된 오버랜더상은 같은 해 사망한 캐나다 출신의 전설적인 여성 조경가 코넬리아 한 오버랜더(Cornelia Hahn Oberlander)의 업적과 헌신을 기리고자 그녀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습니다. 7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건축과 자연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기념비적 프로젝트들을 끊임 없이 수행해온 그녀는 명실상부 캐나다를 대표하는 조경가로 명성을 떨쳤는데요. 특히, 도시가 가진 사회적, 환경적, 생태적 문제를 조경의 방식과 해법으로 해결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인 인물입니다.
코넬리아 한 오버랜더가 남긴 대표작으로는 캐나다 벤쿠버 도심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이자 공공 광장으로 현재는 도시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한 롭슨 스퀘어(Robson Square)가 있습니다. 완만한 계단식 옥상정원 구조가 특징인 이곳은 건축가 아서 에릭슨(Arthur Erickson)의 설계 하에 대부분 콘크리트로 건설되었지만 오버랜더의 부드러운 조경 스타일이 더해져 90m 길이의 인공 폭포와 함께 자연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도시 공원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조경과 건축의 놀라운 통합’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큰 명성을 얻은 오버랜더는 이후 수도 오타와에 위치한 캐나다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of Canada)의 야외 조경을 비롯해 벤쿠버 도서관 광장, 미국 LA 캘리포니아 플라자, 뉴욕타임스 빌딩 중정 등 미국과 캐나다 두 나라에서 다수의 작업을 진행합니다.
그녀는 특히 척박한 캐나다 북극권의 기후를 존중하고 현지 식생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식으로 자연의 훼손을 막겠다는 의지가 담긴 ‘최소한의 개입((Least Intervention)’과 ‘보이지 않는 복구(Invisible Mending)’라는 자신만의 조경 철학을 실천해온 것으로 유명한데요. 븍극선이 위치하고 있는 캐나다 북부의 거친 북방침엽림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국립미술관 내 정원((Taiga Garden)이나, 식재가 어려운 캐나다 노스웨스트 옐로우나이프 극지방(북극권 250마일 남쪽)에서 미리 자생 식물의 씨앗과 줄기 등을 직접 채취해 벤쿠버의 온실에서 키워낸 뒤 노스웨스트 준주 입법 의회 건물이 완공될 무렵 그 주변에 다시 심어 환경을 극복하며 자라도록 하는 조경 기법 등에서 생태주의자 코넬리아 한 오버랜더의 조경 스타일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70년간 생태학과 현대 건축의 경계를 허무는 통합적인 조경 디자인과 함께 공공 조경의 사회적 책임을 다한 한 조경가의 삶은 이제 오버랜더상 제정으로 이어져 조경의 예술적 가치와 전문성을 높이는 일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 상은 코넬리아 한 오버랜더가 그랬던 것처럼 뛰어난 비전과 창의성, 용기를 가지고 조경건축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거나 공공 공간의 가치를 실현하며 의미 있는 활동을 보여준 생존하는 조경건축가에게 수여되는데요. 여기에 기후 환경 변화 대응 및 지속가능성 기여 여부 등도 주요 심사 기준에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조경이 환경 문제 해결에 얼마나 필수적인 요소인지를 입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버랜더상은 2021년을 시작으로 2년마다 수상자를 선정하고 있는데요. 역사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지만 이미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며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총 10만 달러의 상금과 함께 수상자의 작품과 철학을 대중들에게 알릴 수 있는 각종 포럼과 전시 등의 활동을 2년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부상으로 주어진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별도의 상금이나 부상이 없는 제프리 젤리코상과 달리 수상자의 작품과 조경 철학을 전 세계에 알리는 실질적인 활동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 오버랜더상이 가진 가장 큰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그럼, 역대 오버랜더상 수상자들의 면모에 대해 잠깐 살펴볼까요? 먼저, 2021년 초대 수상자로 선정된 줄리 바그먼(Julie Bargmann)은 폐탄광, 폐석산, 폐공장 등 오염되고 버려진 도시의 폐산업 부지(Brownfield)를 생태지향적이고 혁신적인 조경 설계를 통해 지속가능한 공공의 공간으로 되살려낸 미국의 조경가입니다. 토양과 환경을 오염시키는 유독 물질을 무조건 덮거나 없애지 않고 자원화하는 방식을 취하며, 현장에 남아있는 산업 폐기물들을 예술적이고 생태적인 디자인 요소로 재활용하고 있는데요.
미국 필라델피아의 버려진 조선소를 의류 브랜드인 어반 아웃피터스 본사(Urban Outfitters Headquarters)의 친환경 캠퍼스로 리모델링한 사례를 비롯해 산성 배수와 거대한 석탄 폐기물 등으로 오염된 펜실베니아 폐탄광 부지를 자연정화 습지 및 커뮤니티 공원으로 재탄생시킨 빈톤데일 개간 공원(Vintondale Reclamation Park), 디트로이트의 방치된 주차장 부지와 화재로 소실된 19세기 소방서의 잔해들을 재조합해 도심 속 울창한 숲으로 만든 코어 시티 파크(Core City Park) 등 지역의 역사와 기억을 보존하면서도 자연이 스스로 정화할 수 있도록 돕는 다수의 조경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한편, 2023년 수상자인 중국의 콩젠위(Kongjian Yu) 역시 1990년대부터 글로벌 도시 생태계 분야를 이끌어온 대표적인 조경가이자 도시계획가인데요. 특히, 자연 기반의 홍수 관리 시스템인 ‘스펀지 시티(Sponge City)’의 개념을 가장 먼저 창시하며 전 세계 도시 계획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는 콘크리트 인프라에 의존하는 기존의 도시 설계 방식을 거부하고, 대신 자연 습지와 녹지, 투수성 포장 등의 방법을 활용해 빗물을 효과적으로 흡수하고 여과, 저장하는 생태학적 접근의 필요성을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콩젠위의 스펀지 시티 개념은 2013년 중국의 국가 정책으로 채택되기에 이르렀고, 오늘날 전 세계 70개 이상의 도시에서 적용하고 있을 정도로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중국 내 도시를 포함해 전 세계 250여 개 도시에서 1천여 개 이상의 조경 프로젝트를 진행한 그의 대표작으로는 상하이 엑스포 당시 버려진 공장 부지를 습지로 탈바꿈시켜 오염된 강물을 자연 정화 시스템으로 관리하고, 홍수 조절 기능까지 추가해 공개한 상하이 후탄 공원(Shanghai Houtan Park)과, 하천변을 따라 500m 길이의 붉은색 리본 모양의 조형물을 설치해 자연 지형과 숲을 훼손하지 않고도 누구나 쉽게 접근해 자연과 교감할 수 있도록 새로운 기능을 부여한 중국 허베이성의 친황다오 레드 리본 공원(Qinhuangdao Red Ribbon Park)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오버랜더상 수상 이후인 지난해 9월, 브라질 상파울루 국제건축 비엔날레 참석차 탑승했던 항공기가 추락하면서 ‘물의 건축가’ 콩젠위의 여정도 함께 멈추게 되었습니다.
가장 최근인 2025년 수상자 마리오 슈예트난(Mario Schjetnan)은 멕시코의 풍부하고 다양한 문화를 조경과 건축의 언어로 재해석하여 사회적 포용과 통합을 실천하고, 생태학을 반영한 새로운 도시 환경 디자인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저명한 조경가이자 건축가입니다. 그가 공동 설립자로 있는 GDU(Grupo de Diseño Urbano)가 설계한 소치밀코 생태공원(Xochimilco Ecological Park)과 엘 세다소 공원(El Cedazo Park), 차풀테펙 숲과 공원(Chapultepec Forest and Park) 등은 모두 급속한 도시화 과정 속에서도 건축과 조경이 공공 공간에 대한 평등한 접근성을 구현해내고 있음은 물론, 인간의 기본 권리이자 필수적인 기반 시설로서 작동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는 점에서 환경 정의와 생태 회복의 모범 사례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한편, 격년제로 수여되는 오버랜더상과 달리 제프리 젤리코상(Geoffrey Jellicoe Award)은 2005년 제정 당시 4년 주기로 선정하던 수상자를 2011년부터는 규정을 변경해 매년 한 명씩 선정하고 있습니다. 역사만 놓고 보면 오버랜더상보다 더 많은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는 셈인데요. 조경 발전에 기여하고, 환경과 사회에 공헌한 최고의 선구적 조경가에게 수여되는 명예로운 상으로서 세계조경가협회(IFLA: International Federation of Landscape Architects)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최종 수상자를 결정합니다.
1948년 협회를 창립하고, 이후 7년간 초대 회장으로도 활동해온 영국 출신의 제프리 젤리코 경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시작된 상이라는 점에서 오버랜더상과 공통점이 있지만 평생에 걸쳐 조경 분야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 세계적인 수준의 업적을 남겼거나 탁월한 활동을 펼친 조경가를 주로 선정한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수상자에게 별도의 상금이나 부상이 주어지진 않지만 평생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 메달(Jellicoe Medal)이 수여됩니다.
역대 수상자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놀라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각국을 대표하는 조경계의 거장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2005년 첫 번째 수상자이자 여전히 조경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고 있는 미국의 피터 워커(Peter Walker)를 시작으로, 2011년에는 코넬리아 한 오버랜더가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특히, 2023년에는 우리나라 1세대 조경가인 정영선이 한국인 최초로 수상자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는데요. 그녀는 서울 올림픽공원과 선유도공원, 서울식물원, 용인 호암미술관 희원 등 굵직한 조경 프로젝트를 두루 맡아온 인물입니다. 또, 이듬해인 2024년에는 뉴욕 하이라인 파크(High Line Park)를 설계한 도시조경주의의 세계적 권위자이자 현재 삼표 글로벌 랜드마크 프로젝트 조경 및 오픈 스페이스 마스터플랜을 담당하고 있는 제임스 코너(James Corner)가 제프리 젤리코상을 수상하며 도시 환경을 혁신적으로 바꿔온 그간의 업적을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뉴욕 하이라인파크
이처럼, 조경은 이제 단순히 식물을 심고 주변 경관을 아름답게 꾸미는 장식적 기술을 넘어 생태계의 복원과 도시 재생,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을 모두 포괄하는 구조적 설계의 기술로 그 영역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조경가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고, 그들을 묵묵히 응원하고 지지하는 오버랜더상과 제프리 젤리코상의 행보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이유입니다.